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과 잡담

글적임

그랑블루08 2012. 12. 7. 15:30

마감의 폭탄 속에서, 난 드디어 배째라를 해버렸다.

자체적으로 마감을 담주로 미뤄버렸다.

꼭 마감해야 하는 사항들만 하고, 몇몇 일들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미루었다.

웃기는 건, 아무도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는 것.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워낙 평상시에 워커홀릭의 인상을 심어놔서(이건 거의 사기가 아닌가 한다. 역시 난 사기의 달인이다. 쩝...)

다들 저 사람이 미룬다면, 미루어야만 하는 것이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오늘 내일 다른 행사 때문에 그쪽일이 더 급한 상황이기도 해서,

일단 난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달까.

 

그렇게 마감을 미뤄놓고

잠시 생긴 짬에 한 일이, 당.기.못을 새로 정리한 것이었다.

3부의 내용을 다듬고, 새로 정리하면서 또 두근두근대고 있다.

28회까지 내용을 다듬고 새로 첨가하고 넣으면서, 또다시 손이 근질근질댄다.

 

원래 써 둔 시놉에 각 회마다 에피소드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첨가하고 중요 대사들을 추가하니,

이젠 뭔가 대충의 얼개가 보이는 듯하다.

에피소드별 내용과 대사까지 추가된 걸 읽고 있으니, 왜 이리 쓰고 싶은지.....

자꾸 뒷 얘기를 덧붙이고 있다.

 

단편의 좋은 점은 그 한 편 안에 기승전결을 다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괴로움도 갈등도 해결도 설렘도 모두 넣을 수가 있다.

끊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그것이 너무나 크다.

 

그런데 장편은 다르다.

장편은 흐름이 있다.

지지부진한 과정을 모두 견뎌내어야 한다.

나조차도 뒷 얘기를 쓰고 싶고, 시놉 상황이라도 뒷 얘기까지 한꺼번에 보며 즐거워하는데,

보시는 분들이야 오죽하시겠나 싶다.

쓰고 싶은 내용을 쓰지 않고, 그 흐름을 그대로 타면서 끌고 간다는 것.

그러면서도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감정의 발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장편은 그야말로 사람과 같다.

장편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장편 속 인물들은 늘 실제로 삶을 살아내는 것 같다.

지지부진한 삶, 어서 이걸 넘기고 싶지만, 싶게 넘어가지지 않는, 반드시 시간을 겪어내어야 하는 삶.

그걸 한 발 한 발 정직하게 딛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생.

그 자체인 듯하다.

그리고 쓰는 행위에서도 인생을 느낀다.

그 다음을 넘기고 싶고, 빨리 넘어가고 싶지만,

인생 역시 힘들다고 뛰어넘을 수 없듯이, 그 과정을 다 밟고 가야만 하는,

그야말로 나와의 싸움.

인물의 슬럼프를 함께 겪어야 하고, 인물의 감정을 함께 느껴야 하고,

그러면서 인물이 멈출 땐, 같이 멈추어야 하고....

그걸 모두 겪어내는, 그래서 마치 내가 그 일을 겪은 양, 기운이 다 빠지는 그런 싸움이 아닌가 한다.

 

<당.기.못> 가장 힘든 시간을 그래도 넘어온 듯하다.

아직...참 많은 산을 넘어야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넘어가고 싶었던 산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넘어온 듯하다.

내 스스로도 건너뛰고 싶었던 그 산들을, 그냥 대충 넘기고 싶었던 그 산들을,

오롯이 하나하나 한 발 한 발 밟으며 넘어온 듯하다.

 

아주 미세했지만, <당.기.못>에서 공주님과 은시경은, 정말 아주 아주 조금씩 변화되어오고 있다.

한 회씩만 보게 되면, 사실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다.

그러나 그 모든 회를 훑고 나면, 어느 순간, 그 미묘한 발걸음이 얼마나 많이 변화되어왔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너무 미세해서 잘 보이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쓰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많이....변했구나......그런 느낌.

공주님도 은시경도, 조금은 변화되고 있구나.......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성장하고 있구나 싶어서,

조금은 안도하고,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대견하다.

 

어쨌든 3부는, 두근두근한다.

잘 그려낼 수 있을까.......그것이 가장 큰 난관이지만,

그래도 건너뛰고 싶은 마음을 잘 참아내면서,

한 발 한 발 두 사람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보고 싶다.

 

내 능력의 한계가 아쉬울 따름이다.

누가, 정말 능력 있는 글쟁이 누군가가,  내 시놉대로, 글로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 장면들을 누군가가 글로 옮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 속의 장면을 눈으로 보고 싶어서, 글로 보고 싶어서, 이 짓을 시작했는데,

뛰어난 문필가가 내대신 써주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순식간에 다 써주신다면? 생각만 해도.......좋구나.....ㅠㅠㅠㅠ

 

내가 노동하지 않아도, 내가 보고픈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이 비루한 손고자가, 이 아름다운 장면들을 버리고 있는 느낌이다.(아, 물론 내게만 아름다운 장면일 수 있겠다, 내 개취이니....)

 

그러나, 노동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하였으니,

내가 보고 싶으면, 내가 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몇 년이 지나고 열어봐도 두근두근댈 수 있도록,

나만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해봐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