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영국·프랑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랑블루08 2016. 10. 18. 16:16




올해 1월,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윤이 초등학교 졸업 기념해서 다녀오자고, 예전부터 계획을 잡아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럽 패키지 여행도 생각했었지만,

윤이가 콕 집어서 영국을 가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아예 영국 하나만 잡아서 계획을 짜게 되었다.

그러다가 영국만 가기는 아까우니 프랑스 파리에도 잠깐 갔다 오는 걸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작년 연말에 파리에 테러가 일어나는 바람에, 파리는 끝까지 갈 건지 말 건지 엄청나게 고민했었다.


처음 계획은 11일 중, 2박 3일 정도 파리에 묵는 거였으나, 테러 이후 겁이 나서 파리는 접었었다.

그러나 윤이가 워낙 파리를 가보고 싶어 해서, 그것도 루브르와 오르세.

그 중에서도 오르세를 너무 가보고 싶어 해서 끝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윤이는 패키지를 굉장히 싫어한다.

우리끼리 다니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어 다니는 걸 힘들어 한다고 해야 할까.

결국 나 혼자 계획 잡고, 비행기 끊고, 호텔 예약하고, 모든 여행 계획까지 다 마련하라는 거였다.


어쨌든 파리는 접고, 영국 호텔을 열흘 예약했는데, 또다시 고민이 되는 거다.

직장 동료 분은 예전에 프랑스에 사신 적도 있고, 자주 프랑스를 들락달락하시는데

괜찮다고 가라고 하시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에 1박 2일로 파리 호텔을 예약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호텔도 이동하며 다니겠지만, 우리집 사람들 특성상 짐 옮기고 호텔 옮기는 걸 싫어해서

빅토리아역 바로 옆에 있는 교통이 끝내주는 호텔에 그냥 잡아버렸다.

심지어 파리를 갈 때도, 모든 짐은 호텔방에 둔 채, 단촐한 배낭 하나만 매고 유로스타를 탔다.

결국 영국 호텔 하루치는 날린 셈이었다.

어쨌든 이미 영국 호텔은 열흘을 이미 예약해 버렸고, 호텔값을 날리더라도 하루만 가능하다 싶어서 결국 1박 2일로 파리에 다녀왔다.


사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박물관 투어였다.

영국에서도 박물관, 미술관 등을 엄청나게 다녔고, 대영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은 2번씩 다녀오기도 했다.

또 파리에서 1박 2일간 있으면서도 루브르, 오르세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파리에 도착해서 세느강 바토무슈 유람선을 탄 이후, 바로 루브르로 가서 거의 문 닫을 때까지 돌아다녔다.

다음 날은 개선문을 들렀다가, 또 루브르를 들려 징하도록 보고, 건너편 오르세로 갔다.


남편은 수학여행이냐며, 공부만 실컷 하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윤이는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좋았던 것이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간 거라고 했다.

그 정도로 윤이는 오르세가 좋았단다.

나도 고흐를 좋아하지만, 윤이도 몹시 좋아한다.

또 르누아르도 좋아하는데, 피아노 치는 소녀, <그녀는. 예.뻤.다>로 유명한 시골무도회,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장 등

자기가 아는 작품들을 직접 본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음으로 윤이가 좋아했던 것은,

영국의 타워브릿지 밤 풍경.

사실 나도 그 날이 가장 좋았다.

타워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고, 템즈 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밥을 먹으며, 타워브릿지를 바라보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진정한 쉼을 누렸던 그 순간, 생각했었다.

아마 나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라고.....

그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미래가 보였다.

내가 그리워하고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될 거라는 걸.....


2007년이었나, 서울에 오르세 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꽤 많은 작품을 봤었다.

그러나 이번에 오르세에서 직접 보는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고흐의 작품 중 <밤의 카페테라스>와 더불어 좋아하는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그렸다는 <별이 빛나는 밤>보다는

론 강에서 그렸다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나는 더 좋아한다.


생각보다 원작에서 하늘은 완전한 코발트 블루는 아니었다.

약간은 옅은 하늘색이 섞였다고나 할까.

도리어 론 강이라고 해야 할지 바다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물 빛이 코발트 블루였다.

론 강에 비친 밤의 하늘. 그리고 빛이 퍼져가는 색감. 그리고 고즈넉한 그곳을 걸어가는 남자와 여자.

그냥 그것이 내게는 쉼처럼 보였다.

팍팍한 일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그 밤, 그 강가를 걸어가는 오랜 부부의 밤.

별은 빛나지만, 머나먼 우주의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을 비추어주는 은은한 빛을 품고 있고,

강은 여전히 푸르지만, 하늘의 짙은 밤을 품어내며

또한 일상이, 삶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빛 역시 그 안에 녹아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언가 편안하고, 쉼 같이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일에 바빠 정신 없는 와중에, 영국에서 사온 달력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여행 기억을 모두 잊어먹기 전에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참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

어쨌든 쓰고 싶을 때, 떠오를 때, 조금씩 올려볼까 한다.


사진을 보니, 또 떠나고 싶다.



<템즈강 유람선을 타고 찍은 타워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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