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선택 상플/(선택) 번외-그 어느 처음의 기억

[선택/상플] 번외 - 그 어느 처음의 기억 上

그랑블루08 2016. 6. 2. 19:53

[선택/상플] 94년 어느 날, 어쩌면 번외편


그 어느 처음의 기억 上

 

들국화 –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들국화 1집, 85.9) (아래는 음악링크)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52575522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1

 


언제나 같았다. 쌍문동 봉황당 골목의 오인방은 여전히 같이 다녔고, 여전히 아웅다웅댔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택이의 방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어린 날이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라,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은 어느 날 머리에 돌덩이라도 맞은 것처럼, 처음으로 오인방의 세계가 열다섯 살 어느 가을 날 그렇게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11살. 그렇게 일찍 시작될 거라고는 택이도 생각지 못했었다. 스승님께서 9살에 입단하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렇게 빨리 프로에 입단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바둑이 좋았을까. 그건 택이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일곱 살, 그 처절했던 날들 속에서 쌍문동 골목은 그 어린아이의 닫힌 문을 두드려댔다. 오인방이 없는 시간들, 그 나머지 시간들을 견디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시간, 곁을 떠난 그 빈 자리를 생각지 않을 수 있는 시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따라다녔다. 유독 볼이 통통했던, 언제나 웃어주던 그 아이를 그저 따라다녔다. 그 아이 곁에서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므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아이는 곁을 지켜주었으므로, 그저 잊고자 따라다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어느 새 기원까지 따라가 있었다. 정작 그 아이는 없었지만, 택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검고 하얀 그 세계의 단순함이 좋았다. 아니, 단순한 듯 보이는 19열, 19행이 만들어내는 361개의 자리가 좋았다. 한정된 자리가, 도리어 무한한 우주를 만들어내는,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좋았다. 그 틀 안에 가두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택의 세계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그 아이가 존재하는 세계와 그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바둑의 세계. 두 세계가 균형을 이루며 택을 숨 쉬게 했다.


“희동아!! 늦었어!!!”


느릿 느릿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덕선이 택의 팔을 잡아 당겼다.


“덕선아, 안녕.”


당최 바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택의 느릿한 말투에 덕선은 뒷골이 땡겼다.


“야, 지금 안녕이고 나발이고, 빨리 가야 된다고!!!”


“아....”


여기서 ‘아...’가 대답으로 나올 말인가 싶지만, 덕선은 택의 손을 꼭 잡아 당기며 뛰어갔다. 덕선과 택을 제외한 나머지 의리없는 것들은 막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버리고, 덕선과 택이 도착했을 때는 버스는 이미 출발해 버리고 말았다.


“야, 어쩌냐!! 지각이야. 학주가 우리 죽일지도 몰라.”


“어.”


“어,라니. 택아, 우리 죽는다고!!!”


이해했다는 듯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택이를 답답한 듯 바라보던 덕선은 갑자기 올라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하고 터뜨려버렸다. 그런 덕선을 택은 여전히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죽는다더니, 또 갑자기 빵 터져버린 덕선을 보며, 자신이 지금 뭘 잘못한 건지 되짚어보는 중이었다.


“그래. 역쉬, 희동아, 넌 희동이야.”


“어?”


“이미 늦은 거, 느긋하니 가자.”


“어.”


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택이가 귀여워, 덕선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이구, 우리 택이. 누나랑 같이 가고 싶었쩌여?”


그 말에 입이 삐죽 나오는 듯했으나, 어느 새 손을 맞잡아 오는 덕선을 보며, 다시 덕선을 향해 해맑게 미소를 보내왔다.


정말 이렇게 보면 잘 생겼단 말이야. 그런 택을 바라보는 덕선의 마음이 미묘했다. 택이를 잘 모르면 분명 얘는 꽤 괜찮아 보일지도 몰랐다. 잘 생겼지, 연예인만큼 유명하지, 그리고 키도 크지...어, 그러고 보니 키도 많이 큰 것 같다. 어느 새 덕선 자신이 한참 올려다 볼 정도니 말이다. 여튼 같은 반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하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이니.

 


2

 

“야, 성덕선, 너 최택이랑 사귀냐?”


“뭔 소리야?”


“너네 손 잡고 다니던데, 사귀는 거 아니냐?”


화장실 안, 손을 씻으려는 덕선을 붙들고, 친하지도 않은 윤주가 갑자기 택이 얘기를 꺼냈다. 그것도 사귀지 않느냐는 둥, 손을 왜 잡고 다니냐는 둥, 눈을 야리까리하게 뜨는 걸 보니,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는 듯도 했다. 기가 찬다는 듯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덕선을 기다리던 지영이 더 빨랐다.


“야, 덕선이랑 최택, 10년 동네 친구거든?”


“아, 아직 10년은 아니고, 한 8년?”


약간은 거들먹거리는 듯한 덕선의 말에 윤주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야, 김지영, 넌 아가리 닥치고! 그래서 사귄다고, 안 사귄다고?”


“안 사귄다고. 됐냐?”


“야, 그럼, 왜 손은 잡고 다니는 건데?”


처음엔 그저 장난처럼 받아주는 듯하던 덕선도 점점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8년 우정이라고 분명 말해줬는데도 저렇게 빠락빠락 달려든다는 건, 분명 택이에게 뭔가 사심이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그걸 왜, 너한테 얘기해야 되냐?”


“야!! 성덕선!!!”


“택이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든가. 그럴 용기도 없으면, 닥치고 있든가.”


“야!!!!”


버럭 대는 윤주를 내버려둔 채, 덕선은 지영과 함께 화장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윤주도 덕선의 성격을 아는 탓에 섣불리 덤벼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덕선의 뒤에는 쌍문중 4대천왕이 있으니 함부로 머리채를 잡을 수도 없었다. 어쨌든 오로지 불알친구들이 뭔지, 덕선을 이토록 귀찮게 만들었다. 아마 뒤끝이 개운치 못한 건, 자꾸 이런 일이 생겨서 귀찮아서 그런 것일 듯하다. 아니 어쩌면 배가 고파서?


“야, 김지! 매점 가자.”


“올, 당근 좋지. 고고!!!”


지영과 함께 매점에서 쫄쫄이를 사먹으며,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덕선이었다. 역시 당이 떨어진 거였다.

 


3

 

택은 학교 생활도 기원 생활도 제대로 하는 듯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둘을 병행하는 것이 맞는 걸까 싶은 아주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그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잘 뿐이었다. 가끔 동룡이 그런 택이가 불쌍했던 건지, 자신의 프라임 사전을 택의 머리에 받쳐주면, 거기에 의지해 점심시간까지 기절한 듯이 잠만 잤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런 택을 없는 듯이 생각했지만, 가끔 어떤 선생님들은 택의 생존을 파악하고 싶어했다. 진짜 숨은 쉬냐며, 짝인 동룡에게 물어보게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동룡은 낭창하고도 귀찮은 표정으로 택의 코 끝에 손을 대보고는, 예, 바람은 나옵니다, 등을 외쳐대 선생님들의 오지랖을 막아주고는 했다.


점심시간이면, 옆반인 선우와 정환이까지 1반에 쳐들어와서는 택이와 동룡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밥을 먹고는 했다. 처음에 1반 아이들이 뭐 하는 짓이냐며, 왜 남의 반에 들어와서 난리냐며 시비를 붙여온 경우도 있었지만, 선우의 중재와 정환의 시크한 표정에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택이니까, 택이여서 모두들 받아들이는지도 몰랐다. 미래에 국보급이 될, 아니 어쩌면 이미 국보가 되어버린 최택이 자신들과 같은 반이니, 그저 감사히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도시락을 깨작깨작거리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택이에게 선우가 툭하니 말을 던졌다.


“택아.”


“어?”


“좀 잤냐?”


“어.”


“어제 8시간 했다며? 대국?”


택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입 안에서 밥알들이 모래처럼 잘그락 잘그락거렸다. 그런 택이를 이해한다는 듯 선우가 슬쩍 쳐다보더니 한 마디를 더 건넸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말은 먹혀들었다.


“여반에 놀러갈까?”


그 어떤 것에도 반응이 없던 택의 얼굴이 금세 선우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여자반은 곧 덕선을 의미하므로.


“아, 귀찮은데.”


정환이 짜증난다는 듯 투덜댔지만, 다들 들은 척 만 척하고 있었다. 정환이 저렇게 짜증을 내도, 결국 같이 따라나설 걸 아는 까닭이었다.


“야, 덕선이네 반에 꽤 괜찮은 애가 좀 있더라. 그 왜...무슨 주로 끝나는데....”


“덕선이 반에 예쁜 애가 있었냐?”


동룡의 말에 선우가 의아한 듯 물어오자 묵묵히 밥만 먹던 정환이 입을 뗐다.


“황윤주.”


만사 귀찮다는 표정과는 달리, 정확하게 이름을 대는 정환에 동룡은 경계심 돋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정팔이...너?”


“내 스타일 아니야. 너무 날나리야.”


“오올...그럼 다행이고.”


"어이, 최택, 넌 황윤주가 누군지 아냐? 같이 체육했으면 본 적 있지 않냐?"


누군지 모르는 듯, 곁에 앉아 밥알을 분해라도 하려는 듯 아까 들어간 밥을 아직도 씹고 있는 택이를 선우가 툭 치며 물어왔다. 그러나 모두가 예상헀듯 택은 처음 듣는 이름인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자식, 이렇게 무신경한 거 보면, 우리 이름 아는 게 신기한 거 아니니?
어이 최 사범, 너, 덕선이 이름은 아냐? 알고 보면 모르는 거 아니니?"


"야, 장난 하냐?"


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성덕선 한정판 최택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동룡은 뭔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야, 우리반 반장 있잖아. 저기 앞줄 두 번째 앉은 놈."


그 말에 선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막 튀나게 돌아보면 안 되지. 반장 알지?"


"정재훈? 알지 당연. 대의원 회의 때 보잖아."


"정팔이 넌 아냐?"


"가끔 축구 시합해."


"그럼, 다 아는 거네. 근데 저 놈이 눈깔이 삔 것 같애. 시력이 나간 건지."


"무슨 소리야? 그게? 대의원 회의 때 보면 애 멀쩡한데?"


"아, 써누~!! 범생이 같이 말하지 좀 말고. 좀!!
저 새끼가 덕선이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애."


"야, 도롱뇽! 말 같잖은 소리를 해라, 좀. 
저 새끼가 돌았냐? 성덕선을 좋아하게?"


"아, 맞다니까, 김정팔, 내 촉 좋은 거 모르냐? 
저번 체육 시간에 감이 왔다고. 확실해, 확실하다니까?"


선우와 정팔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놓았던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놀리며 입에 쑤셔넣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조용히 깨작깨작이라도 숟가락질을 하며 먹고는 있던 택이 어느 새 수저를 놓고 멍하니 동룡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룡은 밥을 입에 우겨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음 시간 체육이니까, 내가 오늘은 확실히 증거를 잡는다.
니들, 돈이나 두둑히 챙겨놔라."


"도롱뇽, 너 딴소리하지 마라, 새끼야. 나중에 거지되고 울지 말고."


"정팔이 새끼, 내가 반드시 니 돈은 다 거덜낼 테니 두고봐, 인마."


그때부터 숟가락을 놓아버린 택은 다시 수저질을 못하고 있었다.


"택아, 왜 안 먹어? 못 먹겠어?"


"어. 속이 좀 안 좋아."


"자식. 너 어제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밥도 못 먹고 어떡하냐?"


걱정스런 선우의 말에도 택은 희미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택은 정말 속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손으로 계속 위를 쓸어내리며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4

 


쌍문중이 남녀공학이기는 해도, 무늬만이었다. 1반에서 8반까지 남자반, 9반에서 16반까지가 여자반으로 나뉘어서는 동아리 활동 외에는 굳이 만날 수가 없었다. 아, 물론 작년까지 그랬다. 수업 따로, 반도 따로였던 것을, 올해부터 교장 선생님이 바뀌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체육 시간만은 남녀반을 혼합해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나름 효율과 능률을 높이기 위함이라는데, 정말 그러했다. 남반 1반과 여반인 9반이 짝을 이루어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반인 택이반과 9반인 덕선이반이 체육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작년까지 체육 수업은 그저 편히 자는 시간이라 여겼던 택이도 올해부터는 무슨 일인지 체육시간에는 꼭 참여하고는 했다. 그게 덕선이 때문인지, “너도 운동 좀 해야지.” 라는 덕선이의 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핏기 없이 하얀 택이가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건, 분명 건강에는 좋을 일이었다. 여튼 체육 시간은 최택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수업 시간이었으니 9반의 여자반 애들의 집중도가 유달리 좋아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차라리 축구나 달리기라도 있으면 나을 텐데, 오늘은 피구였다. 하필이면 홀수는 홀수끼리, 짝수는 짝수끼리 팀을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덕선이와 택이는 팀이 갈리고 말았다. 1반 반장인 정재훈과 덕선이가 같은 팀을 먹고, 동룡과 택은 홀수라 둘만 같은 팀이 되었다. 택이와 한 팀이 된 9반 여자 중에는 동룡이 말했던 황윤주라는 애도 있었다.


“쟤야, 쟤. 황윤주.”


동룡이 택의 귀에다 속삭이며 기분이 좋은지 큭큭 댔다.


“걔가 누군데?”


“아, 우리 대각선 앞에, 쟤 말이야. 뽀얀 애.”


“근데 왜?”


“야, 최택, 아까 점심 먹을 때 얘기했었잖아. 
9반에 좀 괜찮은 애 있다고.“


“언제?”


택은 진심으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우...속터져서....!!”


그래 이 자식은 최택이다. 도대체 귀라는 것이 달려 있는지 의심스럽고, 그 귀와 뇌가 제대로 연결은 되어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드는 바로 그 최택. 동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팀끼리 모이느라 이동하려는데, 반장과 몇 명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쟤 좀 이쁘지 않냐?”


반장의 목소리였다.


“누구? 단발머리에 눈 큰 애?”


“어.”


“아...성덕선. 좀 괜찮긴 하지.”


“웃을 때, 이쁘지?”


“오올~~ 반장, 작업 들어가게?”


“됐어. 인마.”


지들끼리 얘기하는 소리였지만, 동룡의 귀에는 정확하게 와서 꽂혔다.


“들었지, 들었지? 택아?
맞잖아. 반장 저 새끼, 덕선이한테 관심있다니까?
이쁘대잖아, 어?“


“정.재.훈?”


그 말에 택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야, 최택! 너 우리 반 반장 이름 외우고 있었냐? 니가 웬일이냐? 이름을 다 외우고?”


“밥 먹을 때 너희가 얘기했잖아.”


“어..어?”


순간 뻥한 듯 동룡이 입을 벌렸다. 분명 점심 먹을 때, 여러 명이 거론됐는데, 유일하게 반장 이름을 기억한다? 이것 참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최택, 근데, 너 속 안 좋냐?”


“어. 약간. 계속 그러네.”


“피구하지 말고, 쉬어, 그럼.”


택의 눈이 덕선과 덕선의 앞으로 가고 있는 정재훈을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할래.”


“그래도, 인마. 몸도 안 좋은데.....”


그러나 곧 게임이 시작되면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택은 시작해서 얼마 안 되어 공을 맞고 나가서는 수비 진영에 서 있었다. 워낙 걸음도 느리기도 했지만, 공을 받아서는 내려놓는 바람에 황당하게도 아웃이 된 상황이었다.


덕선은 의외로 오래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은 덕선의 앞을 정재훈이 막아주고 있어서일 수도 있었다. 어느 새 피구는 막바지에 접어들어, 짝수팀은 덕선과 정재훈, 홀수팀은 미꾸라지처럼 잘 피해다닌 동룡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동룡에게 던진 수비수의 공을 동룡이 교묘히 낚아채서는 바로 덕선을 노리며 공격에 들어갔다. 그 때 정재훈이 덕선의 앞을 막아주면서 정재훈이 대신 맞고 아웃이 되었다. 그러자 남학생들이 야유를 보내며, 둘이 사귀라는 둥, 이미 사귀냐는 둥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덕선은 그 소리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재훈을 맞힌 공을 주워서 바로 동룡을 쳐내서 결국 짝수팀이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이겨서 기쁜지 덕선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정재훈과 하이파이브를 하자, 또다시 아이들은 사겨라, 사겨라 는 등 잡음들과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그것을 바라보는 택은 이상하게 자꾸 가슴이 답답했다. 진짜 체했나.


자꾸만 속이 이상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하고. 도대체 몸이 왜 이런가 싶기도 하지만, 덕선이 환히 웃는 모습을 보는데, 그것도 정재훈을 향해서 웃고 있는 그 모습을 보는데, 뭔가 심장에 돌이라도 달린 듯 무겁고 답답했다. 아니 이젠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찌릿하며 아프기까지 했다. 동룡이 말처럼 너무 무리한 걸까. 어제 8시간 대국이 너무 힘들었던 걸까. 머리로 온갖 이유를 찾아내고 있었지만, 택의 눈은 덕선이에게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두 손 가득 주먹을 꽉 쥐고, 손등으로 핏줄일 파랗게 올라오고 있다는 것도 택은 정작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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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폭탄 쳐내고 열심히 쓰고 있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번외편을 2개나 진행하는 바람에 낑낑거리며 적고 있는 중.
<9.어.면> 피뎁(pdf) 혹시 기다리는 횽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번외편 2개가 마무리되는 대로 가지고 올게.
이것도 상편만 올려. 하편은 피뎁에서 확인 가능. 
(저번 글 이후편도(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는 길 上) 피뎁에서 확인 가능.
그러나 피뎁편이 언제 다 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함정.
열심히, 부지런히 적고 있으니, 좀만 더 기다려주길....미안하다.

여튼 혹시나 기다리는 횽들 있을까봐, 내가 먹튀했다 생각할까봐, 맛보기 하나 놓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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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에 올렸던 글을 내 방으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