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선택 상플/(선택) 번외-그 어느 처음의 기억

[선택/상플] 번외 - 그 어느 처음의 기억 中

그랑블루08 2016. 6. 2. 19:57

[선택/상플] 94년 어느 날, 어쩌면 번외편



그 어느 처음의 기억 中

 



들국화 –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들국화 1집, 85.9) (아래는 음악링크)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52575522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1

 

 

운동장까지 종소리가 울려대고 그렇게 체육 시간은 끝이 났다. 여전히 속이 안 좋은 상태로, 여전히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택에게 덕선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택아, 너 아까 맞은 데 괜찮아?”


“어? 아...괜찮아.”


수비할 때 몇 번 택이에게 함부로 던져졌던 공을 기억하고 온 모양이었다. 사실 공의 강도가 세긴 셌다. 원래는 수비수가 던진 공이었는데, 아이들이 피하면서 애매하게 택이가 맞아버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가 다 봤는데.”


“괜찮아. 진짜야.”


“시끄러.”


“어...야!! 덕선아!!!!”


오른쪽 팔을 잡고 옷을 걷어 올리려는 덕선 때문에 택은 당황하며 피하려 했지만, 성덕선이 누군가, 그런 택의 방어 따위는 간단히 제압한 채 팔뚝 위까지 옷을 걷었다. 아니나 다를까, 택의 팔뚝은 검푸르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씨. 이것들이!! 강약 조절을 못해. 니가 어떤 앤데. 국보를 함부로 건드려!!”


“난 진짜 괜찮아.”


그런 택을 잠시 노려보던 덕선은 택의 팔목을 세게 눌렀다.


“아!”


자신도 모르게 단발의 외침이 새어나오자, “이것들이!!!” 하며 덕선의 분노는 더욱더 끓어 올랐다. 결국 덕선은 택의 손을 잡고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 갈 정도는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오른팔이야, 오른팔. 최택 너한테 오른팔이 무슨 의민지 몰라?"


뭔가 분노에 찬, 덕선의 표정에 택은 뭐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덕선이 이렇게 열 받았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래야 적어도 덜 맞으니까. 이건 숱한 세월을 함께 지내오며 뼛속 깊숙이 새겨진 삶의 지혜였다.


덕선은 택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일층 양호실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정작 둘만 알지 못했다. 그 가운데 씩씩대는 황윤주와 미묘하게 눈을 못 떼고 있는 정재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이, 반장. 오해 마라. 울 덕써이랑 택이는 불알친구야. 불알친구. 
우리한테 성덕선은 형제라고, 어?"


동룡은 그런 정재훈의 어깨를 툭 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댔지만, 동룡의 말을 믿기엔 택과 덕선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독 다른 공기가 흘렀다. 반 아이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택과 덕선이, 아니 동룡과 2반의 선우, 정환이까지 십 년 가까이 된 친구라는 걸 쌍문중 애들 중에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어떤 조합에서도 볼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라는 것이 택과 덕선에게만 존재했다.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땐 진짜 동룡이 말하는 것처럼 동네친구구나 싶지만, 택과 함께 있는 덕선은 전혀 달랐다. 그것을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재훈의 눈에는 보였다. 그래서 입맛이 썼다.


어쩌면 택의 눈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화가 난 듯 택의 손을 잡고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덕선과 달리, 조금은 느긋하게 그런 덕선을 바라보는, 아니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는 듯한 최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경고인 듯 느껴지는 그 묘한 긴장감 때문에 더욱더 이상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멍한 표정으로 언제나 책상에 엎어져 있는 최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에 가끔 등장하는 안경 낀 뭔가 프로 같고 날카로운 최택도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국어 공부라도 더 했어야 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는 없으나, 정재훈의 본능은 이미 최택을 라이벌로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택은 지금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 아니 싫어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눈으로 최택도 덕선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훈은 수돗가에 가서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머리를 쳐박았다.

 

 


2

 

 


"크게 다친 건 아니야. 인대도 괜찮고."


"그래도 선생님. 타박상에 바르는 약이라도 좀 주세요.
얘 최택이에요. 아시잖아요."


"그래, 알지 왜 모르겠니. 근데 덕선아, 이 정도는 그냥 놔둬도 괜찮은...."


"에이, 선생님께서 모르셔서 그래요. 
바둑돌 들고 놓는 작업이 얼마나 섬세한지 모르시죠?
얘가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들어야 되는데
팔목 아프면 못 든단 말이에요."


“검지와 중지겠지.”


“아, 진짜! 선생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얘는 섬세하게 바둑돌을 놔야 한다니까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어디 소꿉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니?
옛다, "


"어, 선생님께서 직접 안 발라 주세요?"


"나, 지금 교장 선생님 호출이야. 
덕선이 니가 좀 해줘라."


"연고 같은 건 발라줘 봤지만, 이런 건 해 본 적이 없는데요."


"이것도 비슷해. 
아픈 데다가 연고 짜 놓고 문질러주면 돼. 
이건 크림형이라서 오래 문질러주는 게 좋아. 그래야 약이 스며들거든."


"얼마나요?"


"뭐 적당히? 5분, 10분?
너 땡땡이 치고 싶으면 더 해도 되고."


"에이, 선생님, 저 모범생이에요."


"그래, 어련하시겠니. 어쨌든 선생님 갔다 올 테니까 둘이 잘 지키고 있어."


"네."


나가시려던 양호 선생님이 갑자기 뒤로 돌아보더니 덕선과 택을 묘하게 쳐다보았다.


"근데.....“


“네?”


“너희 둘, 사귀니?"


"예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세요? 저희 불알친구라니까요. 불알친구.
동룡이랑 2반 반장 선우랑 정환이, 저희 전부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서 완~전 가족이에요. 가족."


"그으래? 거 참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던 선생님은 이번엔 택이를 향해 물었다.


"택아, 너도 진짜 그렇게 생각해?"


"예?"


뭔가 당황한 듯 머뭇대는 택이를 보다 못해 덕선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아우, 진짜. 선생님, 우리 희동, 아니 우리 택이는 진짜 저한테 동생 같은 애예요.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해서 제 혼삿길 막지 마세요. 좀!"


"아이고 알았네요. 뭔 중2가 혼사야, 혼사길.
나라도 먼저 좀 가자."


"네네. 어서 다녀오세요."


넉살 좋은 덕선은 누가 선생인지 학생인지 알 수 없도록 그렇게 대거리를 해대며, 선생님을 배웅했다.


"하여튼 선생님들은...쯧쯧.."


혀를 차며 택에게 다가와 연고를 바르려는데, 택의 표정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왜, 택아. 너 뭐 기분 나쁜 거 있어?“


뭔가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분명 택이가 기분이 나쁘거나 삐졌을 때의 행동이었다. 유일하게 5인방에게만 보여주는, 아니 어쩌면 덕선에게만 유달리 보여주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택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덕선의 눈을 피하고 만다. 이건 삐졌는 게 확실하다는 거다. 덕선이 뭐라고 더 물어보려는 순간, 택의 입이 열렸다.


“동생, 아니야.”


“어?”


“나, 니 동생 아니라고.”


그 말에 풋 하고 덕선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덕.선.아.”


“알았어. 알았다고. 너 동생 아니지. 이리 와.”


“덕......”


택이 진지하게 뭐라고 덧붙이려고 하는데도 덕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택의 오른팔을 당겨 연고를 발랐다. 그러고는 택의 팔을 두 손으로 잡고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분명 입이 툭하니 튀어나와서는 볼멘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던 택도 어느 새 덕선에게 고요히 자신의 팔을 맡기고 있었다.


따뜻하고 나른했다. 그러나 또 한편 모든 감각이 오른팔로 몰리는 것도 같았다. 덕선이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도 같았다.


“흠흠.....”


이상하고 미묘한 기분에 택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 바람에 덕선이 택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파?”


“어? 아...아니....”


택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떨려나왔다.
 

“너, 진짜 괜찮아? 아픈 거 참고 있는 거야?
얼굴 완전 빨개.“


덕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뜩이나 열이 올라있던 얼굴에 마치 불이라도 붙는 듯 뜨거워졌다. 눈에까지 열이 차오르는 듯했다.


“아...아니야. 진짜 괜찮아.”


갸웃거리던 덕선은 손에 힘을 빼고 아까보다 더 부드럽게 택의 팔을 문질렀다. 그 바람에 택은 귀까지 붉어지고 있었다. 부드럽다 못해 간지러웠고, 간지럽다 못해 심장까지 무언가가 살랑대며 감각을 일깨워 놓았다.


심장이 자꾸만 두근댄다. 덕선은 그렇게 택의 감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하나 깨워놓고 있었다.

 

 


3

 

 


교장 선생님과 면담 후 돌아온 양호 선생님은 한참 동안 뻥해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래 놓고 안 사귄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침대에서 둘이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이 모습을 보고, 그것도 손까지 꼭 잡고 자는 모습을 보고 누가 안 사귄다고 할 것인가.


"어휴, 열다섯 살짜리들도 연애라는 걸 하는데 난 지금 뭐하는 거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사람 염장을 지르는구만."


양호 선생님은 계속 궁시렁대고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누워 있는 침대 주위로 커텐을 쳐주었다.


"그래, 자라 자. 종 치면 깨울 거니까, 그때까지라도 자라."


커텐이 쳐진 사이로 택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왼편에 누워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덕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거웠던 심장은 여전히 돌덩이 같지만, 이번엔 심장이 전력질주를 하는 듯 뛰어댔다.


뭐 때문에?
밖에 선생님이 계셔서?
아니면 땡땡이를 쳐서?
사귄다고 오해를 받아서?
그것도 아니면...단지....덕선이 니가 여기에 있어서?


택이 스스로도 자신의 지금 상태를 알 수 없어 그저 물음만 던져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일 뿐, 감정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의 시선은 고요했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소년의 시선이 맞잡고 있는 손에 잠시 머물렀다. 소년의 왼손에 힘이 들어간다. 왼손 안에 느껴지는 소녀의 손은 부드럽기만 했다.


소년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소녀의 얼굴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소년의 미간이 아주 잠깐 좁혀졌다가 다시 풀렸다. 소년의 오른손이 천천히 소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마치 느린 화면처럼 소년의 손은 소녀에게로 점점 가까이 갔다. 소녀의 귀 뒤로 머리카락을 올려주는 소년의 오른손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 파르란 손끝으로 소녀의 고운 볼의 감각이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의 숨이 멈추었다.


소녀의 눈이 어느 새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의 가슴이 또다시 무언가에 묵직하게 눌리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소년과 소녀의 눈은 그렇게 서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눈빛 사이로 소년의 숨이 가빠왔다. 그런 소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의 입가로 서서히 미소가 번져갔다. 마치 물 속에 물감이 번져가듯이, 청아하고 맑은 색이 옷감에 스며들듯이 그렇게 소녀의 미소는 햇살처럼 빛이 났다.


“더...덕서....!!!!”


그래서 그랬을까. 소년은 소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는 듯이, 아니 자신의 무의식이 소녀의 이름을 읖조리는 순간, 소년의 입술을 소녀의 손가락이 지긋이 눌렀다.


살이 떨리고, 입술이 떨리고, 심장이 떨렸다. 소년의 눈이 파르라니 떨려오는데, 소녀의 입술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다.


“쉿! 들켜!”


소녀의 목소리가 작은 숨결처럼 흘러나왔다. 소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소년의 입술 위에 놓여 있고, 소년의 숨은 점점 더 가빠왔다.


쿵쿵쿵쿵....


숨도 제대로 내쉴 수 없는데도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댄다. 입술로 느껴지는 소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소년은 떨리는 심장을 그저 달래며 그 순간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속이 안 좋은 것도, 가슴이 그토록 묵직했던 것도, 지금 이렇게 아플 만큼 뛰어대는 심장도.... 모두 지금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소녀 때문이라는 것을....


소녀가 웃으면, 마치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소년은 늘 따라웃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소녀가 웃고 있어도, 소년은 웃을 수가 없었다. 이 떨림을, 이 두근댐을 감출 수가 없어서 아니 소년의 힘으로는 이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러나 소녀의 시선을 놓고 싶지 않아서 소녀의 눈에 소년만이 담기길 바라서 온 힘을 다해 그렇게 소녀의 눈빛을 붙잡아 둔다.


그리고 이제는 소년의 입술에서도 심장이 뛰어댄다.

 

 

 

 

 

<응팔갤펌, 감솨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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횽들이 담편을 기다리는 듯해서 점심시간에 짬내서 中을 들고 왔어.
下는 피뎁에서 나중에 확인해 주길.....
피뎁에도 새로운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담 내용 기다리는 횽들도 있고...갈등중.
어쨌든 진짜 중딩 선택 하편과 저번에 올렸다가 지웠던 외전은 피뎁에서 확인해주길.
피뎁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야. 좀만 더 기다려주라.

 

*참 앞에 링크 걸어둔 음악 들으면서 이 글 읽으면 좋을 거야. 
몽환적이면서 잔잔한 분위기가 이 글과 잘 어울릴 듯해. 
왜 이 곡이 메인테마인지는 하편에서 확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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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에 올렸던 글, 내 방으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