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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독료=리뷰]가락국의 이녹 37회 for 그랑블루님♡

그랑블루08 2008. 8. 3. 17:23

 며칠 전..이틀에 걸쳐 손에 들고 있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다 읽고난 그 밤.. 전 좀처럼 잠들수가 없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충격과 폐부를 깊이 찌르는 고통이었습니다.

 

 소설의 극적인 요소가 주는 카타르시스, 굳이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전'을 지나 '결'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에 익숙해져있던 저에게, 치욕의 '기'로부터 출발해 최고조의 슬픈 치욕으로 마무리되는 처절한 그 역사는.. 설령 그것이 소설화된 역사라 할지라도, 저를 잠시 어둠 속에 길잃게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 애국자가 아닙니다. 아니, 오만하게도 전, "애국심"을 "무지한 사람들이 주체측(?)에 의해 농락당한채 뒤집어쓰고 있는 수치스러운 안경" 쯤으로 여겼었습니다.

 

 사학과를 나왔다고 이야기하기에 부끄럽디 부끄러울만큼, 제가 공부한 수준은 미미하지만..어쨌든 학부를 졸업하기까지 역사를 배우고 역사보는 법을 배우며 깨달은 단 한가지는.."민족은 있으되 민족성은(또는 그 이상은) 허구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극단적인 민족사학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민족사학이 버젓이 한국 역사교육계를 여전히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도 답답하지만)

 

그동안의 역사와 역사교육이, 민족 혹은 민족성이라는 굴레를 민중에게 씌워 객관적으로 역사를, 진실을 볼 수 없게 해왔다는 것에 염증이 났었습니다.

 

역사왜곡하며 망언을 일삼는 옆나라나, 그에 반박하기 위해 역시 왜곡수준의 편파적인 사관으로 도배된 국사교과서를 펴내는 우리나라나, 제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국민들의 순진한 마음을 이용해 진실을 가리고, 우물안 개구리떼로 만들어버리는 주체측(국가..라고 하던가요) 혐오했었습니다.

 

애국심이란 건 그런 음모에 빠진 순진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우리의 치욕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확인한 직후 저는..우습게도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그 고통은 무척 실제적인 것이어서, 저는 그 밤, 마치 한겨울 무방비상태로 칼날같은 바람에 노출되어 떨고 있는 아이처럼 갑작스럽게 싸들어오는 고통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직면하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 나는 이 땅이 키워낸 생명이 맞구나. 한민족이라는 뿌리에서 돋아난 가지가 맞구나.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그 공동체가 공유한 역사라는 것은..이렇게 차가운 현실속에 "실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구나.

 

내가 오만하게 내 뿌리를 싸잡아 경멸하던 때도..내 체관과 물관에는 그 민족이라는 생장점에서 뽑아올리는 피가 부정할 수 없이 생동하며 흐르고 있었구나..하고 말입니다.

 

그 가슴시린 직면을 통해 저는 이 "뿌리"가 지금 현재 처해있는 현실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치욕스러운 결말이 더욱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그때도 약하고 힘없던 "이 민족"이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때문이었습니다.

 

무력한 동방, 선비의 나라는..작가의 말처럼 "  말로서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문맥은 다시 현실에 그대로 대입되어, 지금의 우리를 초라하게 합니다.

 

돈많고 힘센 강대국의 가시적, 비가시적 횡포에 억눌린 풀뿌리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충혈된 눈의 민중들..

 

하지만 우리의 거울이라 하는 "역사"가 비추어보여주는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현실에 두 발을 디디고 역사속을 살아왔던 선조들은, 굴욕을 견디고 수치심을 삼켜가며 강자 앞에 무릎을 꿇고 칼부림을 당해야했습니다.

 

암울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소망이 없는 현실은, 참으로 숨쉬기 힘든 것입디다.

 

그 다음 날 아침, <가락국의 이녹>을 읽었습니다.

 

아!!! 그때 제가 느낀 카타르시스란..제가 찾은 소망이란...!!

 

구지가를 부르던 갈라진 목소리로 찾은 그들만의 왕. 흙 묻은 손, 쟁기들던 손으로 쟁취한 그들만의 승리..!!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행복해했습니다.

 

현실이 그와 같을 순 없다하여도 괜찮습니다. 시린 현실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여야 하니까요.

 

이야기는, 문학이라는 것은.. 그 누군가의 말처럼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면..그 한 줄기 소망을 줄 수 있다면, 된 것입니다.

 

<가락국> 속의 가라가야인들 역시..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 후의 이야기들은 더 고단해지겠지요. 더 처절하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락국 사람들이 강한 이유는, 아름다운 이유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목소리로 거북이를 부르며, 우리에게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신 블루님이,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아름다운 분이기에 그런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아부 아님^^)

 

가락국 리뷰인데..다른 쓸데없는 이야기가 더 길었습니다. 하지만..꼭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차타고 서울올라오면서, 수채화같은 우리 나라 아름다운 들녁을, 산을, 하늘을 보며 이 글을 썼습니다.  좋은 글로 많은 이들을 늘 행복하게 해주시는 그랑블루님, 감사합니다. ^^

출처 : 쾌도 홍길동
글쓴이 : 풀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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