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나온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이 말은 전염성이 있어서 곧 내 주위 사람들까지 무기력하게 만드는 듯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두들 나에게 물어보지만,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냥...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아주 서서히 진행된 건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터리 방전이 아닐까 한다.
너무 바닥까지 긁어 배터리를 다 써 버렸나 보다.
그러다 MBC 스페셜을 봤다.
무료한 기분으로 틀었는데 박찬호 선수의 스페셜이었다.
9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던 전설적인 선수.
사실 그때 박찬호 선수는 대단했었다.
메이저 리그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것도 너무나 신기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자랑이었다.
야구 룰도 잘 모르던 나까지...박찬호 선수의 경기 하이라이트는 보게 됐었다.
박찬호 선수 때문에 알게 된 것도 있다.
난 야구가 오로지 홈런 위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 때문에 투수가 야구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쨌든 그는 기적과 같은, 희망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어느 틈엔가...그를 tv에서 보는 것이 불편했다.
뭔가 거들먹거려 보였고,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듯이 보였다.
너무 대단한 인물이라 더 거부반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은 그의 기라성같은 이름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여전히 "박찬호"였다.
이 이름은 절대로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좌절해도, 그가 잘 던지지 못하고 은퇴 위기에 쳐해도
그는 "박찬호"였다.
그리고...과거였다.
그랬던 그가 1박 2일에 나왔다.
의외의 모습들...굉장히 사람을 아끼는 모습에서 약간 인간적인 냄새가 났다.
많이...힘들었을 영웅의 모습...
지는 해의 모습을 보았달까...
올해 1월 국가대표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울던 그 위대했던 "박찬호"는
나에게 그렇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아...이렇게 박찬호의 시대가 저무는구나..정도였다.
그래도..."박찬호"인데...정도였달까...
그랬던 그를...오늘 보았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구장에 서서 공을 던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불펜이 되어 구원 투수로 격하되었는지,
최고의 위치로 있던 다저스에 다시 가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투구를 선보여야 했는지,
인간...박찬호가 보였다.
아...그런데...처음 들었던 생각은 그거였다.
예전 박찬호는 움직이는 기업이었고, 대한민국 현금 1위였었다.
그랬던 그가, 왜 아직도, 저런 취급을 받으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서 있는가.
아니, 왜 그곳에 서기 위해서 저런 취급을 받으며 불펜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가.
안타깝고, 속상하고, 심지어 자존심까지 상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한국의 팬을 기억한다고 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팬들, 자신을 기억해주고 여전히 격려해주는 팬들...
그들 때문에 함부로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명예는 무엇이었을까?
돈도, 메이저 리그의 융숭한 대접도, 아닌 듯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신...
돈 때문이 아니라, 마운드에 선발로 서는 것,
최후의 한 공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던지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서 있는 것.
그것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것,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었다.
어쩌면, 내게는 다저스의 승리를 이끌어내던
메이저리그 최고의, 100승의 놀라운 기록을 가졌던 그 순간 보다도,
지금의 박찬호가 더 영웅처럼 보였다.
함부로 때려치우지 않고, 마운드에 서는 것을 애국이라 생각하는 영웅,
최선과 성실로 죽을 듯한 연습으로 자신의 명예를 세우는 영웅,
무엇보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 오키나와까지 달려와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을 한 진정한 선배로서의 영웅,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묵묵히 지킴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는 영웅,
자존심 상하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그만 두라고 말하는 그곳에서, 다시 피터지게 연습으로 일어서는 영웅,
고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겸손히 배움의 야구를 할 수 있는 영웅,
그는 영웅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영웅은 많지만,
잘 내려오는 영웅은 없다.
그리하여 늘 올라가는 영웅만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박찬호는 내려오는 영웅이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성실히 내려오는 영웅.
그리하여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 된 듯하다.
오늘...그에게서 큰 것을 배웠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포기하지 않는, 그 큰 힘.
그야말로...
이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 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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