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믿음

그랑블루08 2009. 12. 5. 21:11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청도 운문사에 있는 처진 소나무......몇 백 년을 두고 스스로 낮아질 줄 아는 마음.......>

 

 

“넌 믿는다는 게 뭐니?

 그 사람이 결국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는 걸 믿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 자체를 믿는 거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생각과 같을 것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야.

 그 사람을 믿는 거야.

 그 사람이 다른 길을 선택해도 그 길을 믿는 거야.

 비록 그 길이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길이라 하더라도

 분명 거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사람 스스로 바라는 길일 테니,

 다르다 할지라도...

 내 길로 오지 않더라도...

 심지어 갈라진다 할지라도...

 믿을 수 있는 거야.”


그 믿음은 그 사람의 선택을, 그 길을 완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길이 자신의 길과 완전히 반대라 하더라도...

그 길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하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이므로, 그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내가 그 사람을 믿는 방식이야...”



                                 <가락국의 이녹 63 - 사람을 믿는다는 것> 中에서





요즘 <가락국의 이녹>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것 때문에 감사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또 궁금하기도 하다.

쾌도 홍길동의 팬픽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가락국>을 쾌도 홍길동을 보시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많이 궁금하다.

이 <가락국>을 쓰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다.

내 스스로는 <가락국>을 벗어나는 데 거의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그 <가락국>을 지금 다시 꺼내보게 된다.

그러다 내 스스로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 말았다.


어쩌면 난 이 <가락국> 같은 글을 다시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래서 내 모든 열정과 삶....그 이상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애착이 생기고, 또 힘들 때마다 꺼내어 읽어보곤 새로운 희망을 얻기도 한다.

팔불출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글은 마치 내가 쓰지 않은 글처럼

그렇게 늘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주고는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님들께서 다시 읽어주신다는 <가락국>을 나도 몇 편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다, 그 가락국과 그 가락국에 대한 나의 댓글을 읽게 되었다.

내가 썼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그 무엇을 나에게 다시 던져 주었다.


이녹이가......“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믿음"...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부부에게도, 부모자식간에도...

그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뭘까...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관계에서 가지는 "믿음"이 가장 힘든 것일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그 때문에 힘들어진다.


가까울수록 바라는 것이 많다.

무관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요구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를 수 있다.


이 장을 쓰면서 많은 것을 떠올렸다.

쓰면서...자꾸 내 딸이 떠오른다.

내 딸이 가고자 하는 길을...그 선택을...믿어주고 지지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해 주고 싶은데..."기대"라는 무게 보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그대로 내버려둠...그저 그대로 있게 해 줌...그대로 인정함...

이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나와 다르다고 바꾸려 하려고도, 싸우려 하려고도 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그저 그러한 대로...그것이 그것인 채로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믿음"이 아닐까...


내가 이 63회의 댓글에 써둔 글이다.

참 웃기지만, 마치 낯선 글을 보듯이 이 글을 봤다.

그리고는 혼자 반성을 했다.

가까울수록 아낄수록 사람은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과 같기를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것.

나와 다르다고 바꾸려 하는 것.

그것은 “기대”라는 말로 포장된 인간의 욕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또 큰 배움을 얻는다.

그러한 대로, 그대로 내버려둠.

그저 그대로 있게 해줌.

그대로 인정함.

그 사람의 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함.

그리하여 다시 나와 다른 그 사람의 길을 박수쳐 줌.

믿음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와 다르다고 실망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그 사람에게서 돌아서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믿어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와 반대되는 길이라 해도,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 바라는 길이고, 좋아하는 길이니,

나와 다르다 할지라도 믿고 보아주고 박수쳐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다.


이건 아주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믿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 자체를 믿는 것인가...

어쩌면 처음은 전자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의 궁극은 전자에서 후자로 가는 것이 아닐까.


“믿음”이란 아주 어렵지만, 아주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내 존재의 개입 없이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오늘.......난.......이녹의 말에서 또 큰 걸 얻었다.


난....지금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반성해 본다.


그래......사람이니까....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거다.

다시 돌아가는 거다.

다시 돌이키는 거다.

나의 모자람을 탓하지 말고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다.


나라는 어리석고 모자란 인간에게

“믿음”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심는 거다.

그러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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