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그쪽이 생각하는 남편과 그쪽이 생각하는 아내

그랑블루08 2011. 2.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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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생일날, 만난지 만 11년, 결혼한지 만 10년이니

제대로 선물과 카드를 내놓으라며 협박을 했었다.

원래 날짜 챙기고, 선물하고 뭐 그런 걸 싫어하는 나로서,

10년 간 꾸준히 참아줬으니,

10주년엔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닥달을 했다.

 

신혼 초에 꽃사오면, 비싸게 왜 이런 걸 사오냐며 돈으로 달라며 툴툴대고

케익 다 필요 없다고 툴툴대고,

기념일 다 귀찮다며 뭘 그런 걸 챙기냐며 그야말로 귀차니즘의 진수인 내가

그래도 10주년인데 싶어서 남편에게 닥달을 했더니

남편이 진짜로 카드를 준다.

 

글 쓰는 걸 넘 싫어해서, 예전 연애할 때도 메일 보내는 게 딱 3줄이었다.

누구야, 몇 시에 보자, 누가...

이게 다였으니.....

남편에게 카드니 편지 받는 건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억울해서,

10주년 꽉꽉 밟은 올해는 카드를 내놓으라고

그리고 뭔가 그럴싸한 보석함도 내놓으라고

엄청나게 닥달을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절대로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건 안 되고, 반드시 직접 가서 사야 한다고.....

남편 정말 미치려고 했다.

사실 남편은 그야말로 공학스러운 인물이라....전자제품이나 카메라 이외에 돈 쓰는 거(아...차도 있다.)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선물은 전자제품이었다. ㅠㅠㅠㅠ

 

이번 생일겸 결혼기념 선물은 그야말로 제대로 뭔가를 내밀라며, 물품을 지정해줬다.

귀걸이.....그나마 저렴한 걸로......

그랬더니 남편이 왜 돈 아깝게 그걸 사느냐, 차라리 그 돈에 해당하는 전자제품이나 가방을 사라 어쩌라 저쩌라 난리였지만,

난 아주 고고하게 보석함에 꽂혀 있는 귀걸이를 받고야 말겠노라고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27일 내 생일에 이 카드와 귀걸이함을 내민다.

 

근데 정말 카드를 보고 완전히 빵터졌다. 

윤이나 남편이나 시크릿가든의 엄청난 매니아지만, 카드까지 이러게 쓸 줄이야....

생각해 보니, 원본에 단어만 바꿔 끼웠으니 가능했지,

아니면 남편이 이렇게 긴 글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너무 웃겨서 온 사람들에게 다 읊어줬다.

 

제일 맘에 안 드는 건, 사실 .....60년이었는데....

우리 딸내미가 쿨하게 바꿔 읽어주신다. 600년으로....ㅋㅋㅋㅋㅋㅋ

윤이는 아빠가 600년간 같이 산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ㅋㅋㅋㅋㅋ

나 역시 윤이 말대로 600년이라 믿으며, 살까 한다.

 

남편 말대로, 주소지가 같으니 같이 사는 걸로 쳐야지.....ㅋㅋㅋㅋㅋ

 

어쨌든.....남편 덕분에 웃겨 죽을 뻔 했다.

재미있는 남편과 사는 것도 아주 많이 재미있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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