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단편·조각

떨어진 별이라도 별은 별이겠지요-그 남자의 이야기(은시경 편)

그랑블루08 2012. 5. 3. 16:12

 

지상으로 떨어진 별이라도 별은 별이겠지요

- 그 남자의 이야기(은시경 편)

 

 


 

 

 

 

 



제가 그렇게 답답합니까......

 

 




몰랐습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그저 무시하는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저 왕실 경호가 힘겨워져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왕실의 위엄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제게는 직무 유기로 보이는 거라 그리 화를 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이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공무 중에 이성을 잃은 적이 있었던가......

그 상황이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던가......

왕족의 한 사람을 모시는 상황에서 내가 이성을 잃을 만큼, 내가 믿고 왔던 신념과 어긋났던 상황이었던가........

 



공무 중에는 감정을 숨기고,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왔던 세월이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리고 그 국가에 준하는 존재에게 위협이 가해질 때만 명예롭게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살아온 서른 몇 해는 오로지 감정을 누르며, 숨기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니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진정한 군인이 되기 위해 그렇게 제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저와는 반대로 감정을 드러내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외치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춤추며 노래하던 그 사람이 먼저였습니다.

처음부터 경호를 받는 귀한 신분으로,

이 나라의 자존심인 왕족의 한 사람으로,

먼저 만났더라면,

제가.......이런 마음은 들지 않았을까요?

 



이 나라의 지존으로서, 왕위 계승 서열 2위로 만났더라면,

제가 이.....어리석은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제가.......분노했나 봅니다.

제가 누구인지........당신이 누구인지......잊고 말았나 봅니다.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당신에게 저는......

그렇게 쉽게 말해버리고 말았나 봅니다.

 



“하지만 공주님도 그다지 품위는 없으셨습니다.

전 최소한의 품위를 말하는 거였습니다.”

 


“이 사람 진짜 재미없다......”

 



그리하여 당신의 입에서 나온 “재미없다”라는 말이 묘하게 제 심장을 건드리고 있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처음은 고귀한 혈통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지키고, 당신을 호위하는 일.......

그것이 군인인 제가, 근위대 제2중대장인 제가 담당해야 할 임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뒷골목 선술집에 앉아 고기를 굽고 소주를 들이킵니다.

그들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립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지존 중 한 사람인 당신이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처럼......그렇게 계셨습니다.

 



“둘에 출발하다뇨? 비겁하셨습니다.”

 



갑작스런 달리기 시합도, 유쾌하게 뛰었던 그 순간도,

헉헉대며 올라오던 당신을 바라보던 그 찰나도,

당신은 마치......나와 같은 사람, 내 위가 아니라, 내 옆에 있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고,

제가.............감히........당신을.......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떨어지는 별을 향해, 한 가득 미소를 품으며 눈을 감고 기도하던 당신의 모습을,

훔쳐보았습니다.

마치 소녀처럼, 바람에 머리를 나부끼던 당신의 모습을........

제가 훔쳐보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왕위 계승 서열 2위도, 대한민국의 자긍심도, 왕족으로서의 고귀한 혈통도.....

아니셨습니다.

저 하늘 위에 손댈 수 없는 곳에 빛나는 별이 아니라,

내 곁에서, 내 바로 옆에서, 빛나던,

마치 손을 뻗으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 만큼, 반짝이던 별이셨습니다.

 

 



“뭐가......웃깁니까?”

 



그래서,

그 날,

그렇게,

화가 났었나 봅니다.

 



대한민국의 왕위 계승 서열 제2위인 지존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사람에게........

화를 냈었나 봅니다.

맑은 미소를 가진 한 소녀에게

나를.......제대로 봐 주지 않는 한 소녀에게,

화가 났었나 봅니다.

 



“그래요....

공주님은 가수죠.

그런데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이 소원으로 나라의 안보를 비는 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가수는 되면서, 군인은 왜 안 됩니까?

군인이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것이 그렇게 가식적입니까?”

 



군인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일 거라고......

자긍심을 가진 군인이니 당연히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주님은 우리가 바보 같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이거였나 봅니다.

서른 몇 해를 넘게 살아오면서 흔들리지 않던 제가,

이렇게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나 봅니다.

 



“무식하고 단순한, 또라이들 그래요.

그래서 저 육사 다닐 때 정복입고 시내 나가지 말라 그랬습니다.

왜?

사람들이 비웃으니까....

이젠 그런 거 괜찮아요.”

 



맞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전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지키는 일,

그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코웃음 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저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군인들은 바보 같지만

순진하게 이 나라 지킵니다.

공주님이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도 그래서 가능한 거구요.

우리 덕분에 놀고 먹으면서, 우리 덕 보면서

왜!!!

우리를 그렇게 비웃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내 곁에서 빛나고 있던 한 사람만은, 우리를,

아니......

나를........나라는 사람으로 봐주길.......

기대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당신이 나를........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나도 모르게 그런 욕심이 생겨나나 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화를 내고 있나 봅니다.

 


당신의 눈에는.......내가 어떻게 보입니까?

그저 바보 같은.............군인입니까?

무식하고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 같은.........그런.......군인입니까?

 


아니면,

나도......

당신이라는 사람 곁에 앉을 수 있는,

당신이라는 반짝이는 별 옆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입니까?

 

 

 

“니가 필요해.........”

 



그렇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왕족의 위엄을 갖추고 저에게 왔습니다.

 



“난 아직 공주야.

근데 내가 왜! 너 따위한테!

나 너 정말 재수없고, 답답하고, 꼴도 보기 싫은데,

없어.....

오빠랑 언니까지 WOC 가고 나면, 내가 기댈 사람이 아무도......

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게 비참하지만...

있어줘....부탁이야......”

 



압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얼마나 바보 같고, 답답한 인간으로 보이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아무리 이 땅으로 내려온다 하여도,

그것은 엄연히 별일 뿐,

감히 인간이 욕심낼 수 없는 존재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필요하십니까?

 

 



근위대 제2중대장이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아니면.........은....시경이 필요하신 겁니까?


 

 

 

 

 

 

 

저는......또 묻지 못할 말을 떠올립니다.

 

떨어지는 별이라도 별이라는 것을,

감히 인간이 함부로 탐낼 수도, 욕심낼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니, 뼈저리게 느낍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이 떨리더라도,

가슴이 떨리면서도 자꾸만 내 눈이 그쪽을 향하더라도,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심장을 뛰게 만들더라도,

별은 별일 뿐, 감히 제가 욕심낼 수 없겠지요.....

 

 



그러나.........

또 저는.........

이렇게 심장을 내려놓습니다.

 



“니가....필요해.........”

 



당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만,

심장은 자꾸 다르게 말합니다.

반짝이는 별을 욕심내도록,

자꾸만 요동을 칩니다.

다잡았던 마음이,

겨우 눌러 놓았던 마음이,

당신의 말 한 마디에

또다시 울컥하고 올라옵니다.

 

공주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저......은...시경......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