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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신/단편] 나는 이 사람들이 아프다. - 염동하의 길고 긴 3박 4일.

그랑블루08 2012. 7. 11. 16:28

 

[은신/단편] 나는 이 사람들이 아프다. - 염동하의 길고 긴 3 4.

 

  

오늘 또..였다.

 

 

 

그의 사고 이후, 우리의 공주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 건지 재활 훈련을 그 전보다 열심히 하시고

새로 개발된 수술도 받으셔서 일상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어지셨다. 하지만 이렇게 비 내리는 날에는 힘드실 텐데,

공주님께서는 또 사라지셨다. 그러실 때마다 궁 안이 발칵 뒤집어지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녀는, 우리의 공주님께서는 자주 사라지셨다.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는 일이니 이젠 그러려니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걱정이 되었다.

어디 계실 지 뻔했으니, 우산을 하나 더 챙겨서 출발했다.

 

 

 

사라진 공주를 찾는 것을 오로지 내 임무이고, 나 혼자의 몫이었다.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명령, 그리고 부탁을 전하께 전하자 다행히도 기꺼이 수락해주셨다.

클럽 M의 은신처로 스스로 목숨 내놓고 가는 길이면서,

너무도 가볍게 사라지려는 그 발걸음이 아쉬워 그에게 농담 삼아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 모르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마지막 말이나 부탁할 일 같은 거 없으시냐 했더니

그는 내 걱정 섞인 농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또 그답게 진지하게 대답하더랬다.

  

“내가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공주님은 니 몫이다. 다른 근위대원,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고 잘 모셔. 너만 믿는다.”

 

, 공주님? 게다가 날 믿으신다고? 것 참. 물론 우리 업무 중에 왕족 호위도 포함되어 있고

그의 마음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바이나, 이게 근위2중대장이라는 사람이 임수 수행 중에 한참 고민하다

부하대원에게 덜렁 할 말인가 싶었다.

게다가 비밀 아니었던가, 그 마음은. 불충이며 절대 알려지면 안될 진심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공주님이요? 알았어요. 말괄량이 공주님은 제가 잘 맡을께요.

그런데 2중대는요? 다른 것들은 걱정도 안되세요? 서운하게-”했더니

무슨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말아서 내가 못들은 척 다시 물어보니

그냥 씨익- 웃고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도 돌아오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그 현장에 있던 나였으니 현실을 부정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

이제 그 일은 3년 전에 벌어진 일이 되어버렸고 궁 안 사람들 대부분은 이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가끔 중대장님 떠올리며 추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하와 전하나 전하라든지 등등..그러나 뺀질이 전하에게 그는 깨물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아픈 손가락이었다.

 

우리에게 그는 상처였다. 언제고 우리에게 그는 금방 생긴 상처였다.

살과 뼈가 너덜거리게 베이고 억지로 벌려진 상처였다.

피가 흐르고 이따금씩 아파왔지만 그를 시간에 맡겨 흉터로 남길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덜거리는 우리 스스로들이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그를 그렇게 시간에 떠밀려 추억으로 넘길 수는 없었다.

 

특히나 공주님 덕분에라도 나는 아직도 그를 그저 추억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 시간 속에 살고 계신 공주님 때문에라도.

내 생활도 여전히 함께인 듯 하였었다. 그리고 틈나는 사이사이 곧잘 내 귀에는 그의 마지막 혼잣말이 들려왔다.

내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그의 혼잣말..

그 속에 담겨있던 쓰린 진심을 읽지 못했어야 옳았다.

그랬다면 내 지금 삶이 분명 조금은 더 편안해졌을 것이다. 분명.

그 말을 아예 못 들었었다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은 덤.

 

 

 -역시나 이 곳이었다. 그녀의 기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소령 은시경, 원대 복귀를 명한다.”

그녀의 오라비가 외치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던 그의 장례식이었다.

그녀도 그 장례식을 곁에서 지켜 봤었더랬다. 장례식은 엄연히 산 자들을 위한 의식. 죽음에 경계를 짓는 것이다.

그 의식을 눈 앞에서 지켜보았음에도 그녀는 그를 놓을 수가 없었나 보다.

 

오늘도 역시나 비를 맞으며 주저 앉아 계셔서, 우산은 또 어딜 갔나 봤더니 그에게 씌워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묘석이 우산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다리가 걱정이 되었으나 지금은 내가 나설 수 없다.

 

그 일이 있고 공주는 한동안은 이 곳에 와서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려대었고, 어느 날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환히 웃으며 재잘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대꾸 한마디 없는 그에게 말을 걸다 지쳐 맥을 놓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만남의 끝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눈물.

언제나 눈물.

흐느끼지도 않고 그저 뚝뚝 흘려대기만 하는 눈물.

3년을 하루같이.

그리고 그의 무덤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

 

“보고 싶어, 은시경. 제발 다음에는 나 좀 반겨줘.“

 

안타까운 그녀의 목소리에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그에게 그녀는 매일 같이 찾아왔다.

그녀의 기사에 대한 애도는 그리움과 슬픔이라고만 하기엔 부족했다.

그저 깊고 애절했다.

 

 

그러나 내게 이 말은 움직이라는 신호와도 같았다.

이 말이 들리면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 것이다. 나는 속으로가볍게, 가벼운 말투, 가벼운 염동하

몇 번이나 외우고서는 준비해갔던 우산을 씌워드리면서 이제야 도착한 듯이 싱긋- 웃으며 공주님께 말을 걸었다.

 

“공주님, 염동하예요. 모시러 왔습니다. 또 여기 계셨던 겁니까. 우산은 어쩌고 이러고 계세요.”

 

공주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방긋 웃으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주저앉아있다. 물어보나마나 일어나기도 힘들어진 것이겠지.

 

“아, 잘 찾아왔네요. 은시경씨 우산 씌워줬어요. 우산 하나 더 챙겨왔네요?”

 

“네, 여기 있습니다. 중대장님께서 호강하시네요. 비올 때는 우산, 더울 때는 양산하시면 되겠어요.”

 

“그렇죠? 은시경씨는 알까 몰라. 이렇게 호강하고 있는 거.“

 

“중대장님, 공주님께서 좀 무리하신 거 알고 계시죠?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공주님 좀 모셔가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말하자 공주님께서 일어나실 채비를 하신다.

힘들어 보이시지만 나는 부축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기다릴 뿐, 그녀도 내 도움 따위 바라지 않는다.

그녀의 기사는 여전히 그인 것이다.

 

 

비를 한참 맞고 돌아온 공주께서는 역시나 앓아 누우셨다.

남자인 나라도 비를 그렇게 몇 시간 맞았으면 뻗었을 테니, 여리 여리하신 우리 공주님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편찮으신 덕분이랄지 한동안 궁 밖 외출은 못하실 테니

때는 이 때다 싶어 난 전하께 하루 외출을 하고 싶다 말씀 드렸다.

 

“또 재신이가 아프니까 가보는 거냐? 재신이가 아픈 게 반가운 모양이다, ?”

 

나 혼자 가겠다 말씀 드려서인지 심술이 난 듯 이죽거리는 우리의 국왕이셨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저 틈이 지금 말곤 없지 말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왕비님 몰래도 자주 다녀오시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와~감히 국왕인 나와 비교도 하고, 많이 컸네, 염동하? 나 뒤끝 쩌는 거 잘 알지?”

 

오랜만에 가보겠다 싶어서 내 마음이 너무 들떠있었나 보다. 이크.

 

“죄송합니다!”

 

“그래, 잘 다녀와. , 헬기 보내줄까?”

 

“아닙니다. 운전해서 가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연락하고 가는 거 잊지 말고. 내 대신 안부도 전해주고.”

 

하며 말씀하시는 전하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쓸쓸함, 안타까움 등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엿보였다.

우리 전하께서 어쩐 일로 표정 관리도 안 하시네.

 

“잘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그 복잡스런 마음을 알기에 난 더 씩씩하게 경례를 하고 나왔다.

 

 

 

꽤 먼 거리를 가야 하니 차에 기름부터 가득 채웠다.

신나는 댄스곡을 틀어놓고 흥얼대며 운전하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이게 얼마 만에 가보는 것인지.

강남 날라리 염동하도 이제 다 죽었지.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도 아니고

고작 그 곳에 가면서 이렇게 신이 나고 있다.

운전을 해도 왕복으로 5시간이 걸리는 곳인데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궁에

인생이 매여있는 신세니 쉽사리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고 있던 것이니 이해해주시겠지.

드디어 간다.

한동안 못 가봤다고 설마 날 또 잊으신 건 아니겠지..?

 

, 도착하기 전에 먼저 의사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놔야지.

지난 번엔 힘들게 방문했지만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막 잠드셨다 하고,

또 어차피 갈 길이 또 먼 길이니 오래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그 모습만 잠깐 보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기회가 된다면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염동하입니다. 오랜만이죠?

저 한 30분 후면 도착할 것 같아서요. 지금 치료 중이시라구요?

그럼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 곧 끝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

 

  

내 눈 앞으로 큰 공원과 우뚝 선 건물이 보였다. , 드디어 도착했다.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차에서 내렸다. 이 곳은 방문할 때마다 묘하다.

그 하나만을 위한 시설이긴 하지만, 요양원도 아니고 전문 병원도 아닌데 뭔가 난 병원이요 티 내고 있는 건물에

숲을 방불케 하는 수풀이 우거져 있는 것이라든지 또 전하께서 수월하게 방문하시기 위해서 설치된 헬기 착륙 공간하며,

하나하나 뜯어보면 멋진 공간임은 분명하나 각각 너무 개성적이라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이건 분명 전하 취향일 거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 회전문을 통과하려는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코드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익숙하지만 삭막한 기계음이 나를 반겼다. 이게 하기 싫어서 미리 연락해놨던 건데,,

회전문 사이에 갇혀서 신분확인이라니, 할 때마다 전하가 원망스럽다.

 “NT20645.”

왕실 코드를 말하고 숨을 한번 몰아 쉬고는 눈을 뜨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선가 레이저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언뜻 보였다.

 

NT20645, 염동하 대위. 체격, 망막 인식 확인 완료. 지문 확인 불가. 5초 후 재확인합니다. “

 

“아!”

 

나는 회전문 손잡이를 재빨리 잡았다.

 

“지문 확인 완료, NT20645, 염동하 대위 확인되었습니다. 안내원 연결합니다.”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갑게도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서 흐리게 여자 얼굴이 보여진다.

 

“안녕하세요. 염동하 대위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민아씨? 많이 예뼈졌네요.”

 

“네, 감사합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뭐 하러 왔는지 아시잖아요. 이 문 좀 열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분은 현재 개인실에 계십니다. 4층 왼쪽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곳 직원들은 참 오래 근무하는 것 같다.

벌써 3년인가.

하긴 어찌 보면 안전가옥인 셈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리자 나를 마주하고 있는 광경은 벽이나 문이 아닌 통 유리창이었다.

창문 고리는 없는. 혹시나 자살을 시도하려 할까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필요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숲처럼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 한 눈에 들어왔지만 갈 길이 바쁘니

난 서둘러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통하는 문은 단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문을 열면 그가 있을 것이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 깨어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입니다, 대위님! 충성!”

 

나는 들어가자마자 제대로 거수경례를 했다.

내 존중의 표현. 그리고 이런 오글거리는 짓을 대위님께서는 좋아하셨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남자치고는 하얀 피부에 조금 말라 보이는 그는 당황했는지 어색한 미소로 화답한다.

 

“아, 염동하씨라고 했었죠? 경례까지는 좀..”

하더니 그래도 내가 민망할까 싶어 내 경례를 받아주었다.

 

, 역시 아직이구나. 그래도 그 자세는 역시 대위님이십니다.

 

“말씀 놓으십시오. 몸은 좀 어떠십니까?”

 

“하대는 아직 좀 불편하네요.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앉아 계시는 것을 보니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곧 궁으로 돌아오실 수 있으시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번보다 혈색도 좋아진 듯 했다.

 

그는, 공주님의 기사는 3년 전 가슴에 총상을 당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망각의 강을 건넜다가 다시 돌아온 탓인지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왕 전하 시해 사건과 사고 이후 공주님께서 기억을 잃어버리시더니 이번엔 기사가 기억을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 공주가 존재했다.

그는 공주님의 전담 호위였다는 것도 잊었고, 그 사실을 알려주자 신기해했었다.

자신처럼 모자란 이가 감히 공주님의 경호까지 했었느냐면서.

그리고 기억을 못해 아쉽지만 참으로 영광스럽다 덧붙여 말했었다.

그런 반응들이 또 우리가 알던 은시경대위라 우리는 꽤 슬펐다.

 

그는 바뀐 것이 없는데, 그 망할 기억은 그를 그가 아니게 했다.

 

제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공주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으니

그는 은시경이나, 더 이상 공주의 기사가 아니었다.

 

또한 클럽M이라는 이름도 알려주어야 했다.

본디 군인이라는 직업이 만만찮아 몸에 자잘한 흉터쯤이야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도 마찬가지.

그러나 도대체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3년 전 총상을 당한 후 응급 처치를 하기 위해

의료진들이 셔츠를 찢었을 때 보게 된 그의 상체는

의료진들과 얼핏 봤던 나를 비롯해 전하와 북한 군관 출신인 왕비님까지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총상 외에도 피를 머금고 있는 채 아물지도 못한 상처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초췌하던 얼굴에도 작은 상처가 있었지만 옷에 숨겨서 있던 상체는 더 심각했다.

상처의 크기나 모양도 제각각으로 꽤나 고통스러웠을 흔적이었다.

당할 때도 그리고 당한 후에도.

 

그럼에도 그는 전하께 충성을 다했었다.

국왕이라서 모신 것이 아니었다면서.

나조차 나라면 저런 꼴을 당하면서까지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그 모습,

더불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전하를 격려하고 믿어주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나와 전하께서는.

 

그런 사실때문에라도 전하께서는 그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전하의 집착이 그를 살려낸 것이나 다름 없었다.

총상 직후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하고 나서 바로 중국 현지에서 수술을 한번 했었고,

또 미국으로 옮겨서 수술을 몇 번 했다고 들었다.

나도 처음엔 그를 죽었다 생각했기에 1년 후, 이 곳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꿈인가 했었다.

그러니 여전히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어딘가 싶다.

그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기억을 못한다 해서 그가 은시경이 아닌 것도 아니고 게다가 살아있으니 말이다.

살아있으면 된 거다.

그 고통스런 시간들을 우리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몇 번의 수술과 재활을 통해 그는 많이 건강해져 있었고

여전히 원리원칙에 목숨 걸고 왕실에 충성하는 은시경대위였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이미 죽은 몸. 그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살리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에 그는 임무 완수 후 순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언제 서류 상으로도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궁으로 돌아와도 괜찮지 않을까.

 

내 눈에는 그가 그 혼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 공주님에게서 그의 모습이 보이듯

웃긴 것은 더 이상 그녀의 기사가 아닌 그에게,

그에게서도 공주님이 보인다는 것이다.

 

기억은 못한다면서 안부는 어찌 그렇게 궁금해하시는지.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지금의 공주님의 모습을 알려 줄 수가 없다.

그것은 전하께서 내리신 명령.

하긴 기사 때문에 우리의 공주님께서 자신의 눈물에 녹아 내리실 것 같다는 말을 어찌 전할까.

전할 수 있었다고 한들 전할 자신도 없다.

 

“아, 궁이요..”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불안하다.

 

“왜요, 대위님, 부담스러우십니까? 전하께서도 복귀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글쎄요. 전하께서도 곧잘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돌아간다는 말도 어색하고.”

 

“그래도 돌아오시면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대위님께서 궁을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하하. 제가 그랬습니까.”

 

“그럼요, 그리고 궁 안에 살고 계시는,,”

 

아름다운 공주님을 사랑하셨죠. 자신의 목숨마냥 아끼셨습니다. 라고 할 뻔했다.

입 조심 안 하냐, 염동하? 전하의 이죽거림이 들리는 듯 해서 소름이 돋았다.

전하, 그래도 다행히 중간에 끊었지 말입니다.

 

“궁 안에 뭐요?”

 

“아, , 대위님께선 궁 안에 살다시피 하셨다구요. 그만큼 바쁘기도 하셨고. 하하.”

 

“하하하-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냈다구요, 제가? 일 중독이었던 겁니까. 하하

 

이리도 맑고 해사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마주 웃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공주님은 지금 어떠시려나.

지금도 생지옥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기댈 곳 하나 생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지금은 내가 더 괴롭고 복잡하다.

고민은 나중에, 지금은 기사의 기억 되살리기에 집중하자, 염동하.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것 저것하고 있습니다. 기타 연습도 다시 하고 있고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요즘 같은 사람 꿈을 꾸신다구요? 어떤 꿈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 별 거 아닌 것 같은데요, 침대에 한 여자가 잠든 모습을 제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어떤 날은 곤히 잠들어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얼굴로 지쳐 쓰러진 것 같았습니다.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더군요.”

 

눈물을 말하는 그의 눈에는 아픔이 언뜻 지나갔다.

여자? 분명 공주님일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3년 전 그의 지갑 속에 있던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혹시 이 분이십니까?”

 

“아, . 그런데 이 사진보다는 좀더 마른 모습이었어요. 좀 초췌해 보이기도 하셨고.

그런데 아시는 분인가요? 누구시죠?”

 

그는 3년 전부터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건물 전체의 언론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 밖으로

외출 한 번 하지 않았던 그가 현재 그녀의 모습을 사진이나 신문으로라도 봤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말라? 뭐야, 이거. 꿈에서 현재의 공주님 모습을 보기라고 한다는 건가?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의 공주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궁금해하면서도.

 

공주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되는 지 고민하다 어느새 화제가 달라져 다시 말을 꺼내기가 애매해졌다.

지금은 우선 넘어가고, 나중에 전하께 여쭈어 봐야겠다.

 

 

한참을 이것저것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대위님. 이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네, 조심히 돌아가세요.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번에 뵐 때는 제발 하대해주십시오. 오글거리고 듣기 힘들단 말입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안되겠다는 소리지? 역시 공주의 기사 답답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유약해 보이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없다면 남들이 아무리 예라고 시켜도 혼자 아니오 할 사람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겠지. 그런 모습이 나를 안심시킨다.

 

“그럼 기억 열심히 찾아주십시오. 이왕이면 다음에는 궁에서 뵈면 좋겠습니다.”

 

“예,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것 봐.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는 현실과 기억에서 도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제 살을 스스로 찢는 짓이더라도, 죽을 줄 알아도 그의 공주님을 위해서 행동하던 그를 믿는다.

 

 

궁 안에 돌아와보니 전하께서 나를 찾으셨다고 해서 전하를 찾아 뵈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가만히 계셨고 나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아직이야?”

 

“네, 아직입니다.”

 

아직이라는 내 대답에 실망감이 가득해졌다. 혹시나 했겠지.

 

“하아…미치겠군. 그 자식의 소풍 나간 기억은 도대체 언제쯤 지 집에 돌아온다는 거야?”

 

“그래도 김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기억을 찾겠다는 의지가 있어 희망적이랍니다.

게다가 공주님을 기억하진 못하셔도 그리워하고 계신 것은 분명.”

 

“그러면 뭐 하냐고.”

 

알고 보니 또 쑥대밭이었다.

편찮으신 공주님께서는 여전하셔서 말썽을 부리지 않으셨으나,

이번엔 클럽M의 뒤를 이은 클럽 N이 또 국제 경제를 주물럭거리며 장난질치고 있었다.

정보력도 부족한 대한민국과 북한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군인이 생각 안 해도 되고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싶어서 자원한 거였지만,

왠걸. 군인이고 장교고 무식해서는,

충성심만으로는 이 나라를 지킬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감히 직언을 해보기로 했다. 나답지 않게.

 

“지금은 대위님이 필요합니다. 전하.

이 궁 안에 전하께서 믿으실 수 있는 분은 대위님 뿐이시잖습니까.

불러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도 부르고 싶어. 그런데 기억이 없잖아!”

 

짜증 섞인 그의 대답 속에는 국왕이면서도 이 나라를 지킬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궁에서 천천히 시간을 가지면서 치료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하시던 일이니 금방 느낌은 찾으실 겁니다.

게다가 대위님이십니다. 빙빙 돌리고 피하는 스타일이 안됩니다, 절대.”

 

“그 녀석은 직구지. 그 답답한 자식이 견디어줄까?”

 

“분명 견디고도 남으실 겁니다.”

 

 

 

나는 일단 오늘도 공주님의 호위였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건가요? 염동하 대위?”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헬기까지 타고 움직여야 하는 거리니 공주님께서 불안해하실 만도 하였다.

그리고 어젯밤 전하께서는 명령 하나를 더 내리셨다.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기사를 그녀로 하여금 데려오게 하라는 그녀에게 너무 잔인하고

또 나에게는 직속상관을 다시 모실 수 있다는 기쁜 명령.

 

 

헬기는 무사히 착륙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염동하 대위?”

 

“공주님께서 꼭 만나셔야 할 분이 계십니다. 만나보시면 자연히 알게 되신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공주님께서 방문하신다는 연락을 해놓아서 출입문 통제가 없었다.

하긴 공주님께 암호를 대라는 것도 당황스러울 테니. 그저 민아씨가 문자를 보내왔을 뿐이다.

4층 왼쪽 개인실이라는 단순 명료한 문자. 그러나 위치를 알기엔 충분하다.

 

“이 쪽입니다. 공주님.”

 

 

 

개인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공주님을 슬쩍 바라보았다.

 

“뭐해요? 빨리 문 열어요.”

 

그녀에게 이 문을 열어주는 게 정말 좋은 것인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 또한 명령이었다.

 

“군인은 까라면 까야 됩니다. 용서하세요. 공주님.”

 

나직히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 문고리를 돌렸다.

 

“응? ?”

 

무엇이라고 대꾸를 하려던 그녀가 시선을 돌리다 말문이 막혔다.

본 것이겠지. 문소리에 돌아보는 그를, 그녀의 기사를.

그저 깊고 깊게 애도하며 그리워하던 살아있는 그를 본 것이다.

 

....떻게????”

 

그리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나 역시 심신이 힘드셨던 것을 버티고 계셨을 뿐이었다.

우리의 공주님꼐서는..언제쯤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돌아오실지..

 

 공주님!”

 

그리고 그 모습에 기사는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참 쉽게도 머뭇거림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안아 올렸다.

3년을 모셔봐도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이것 보세요. 전하, 반응 속도가 번개 저리 가라 입니다. 이건 좋은 거겠죠?

 

 

“염동하, 뭐해. 어서 의사 불러!”

 

그리고 저에겐 바로 명령하시네요. 반갑습니다. 대위님. 저도 그리웠어요.

 

“네!”

 

다행히도 이 곳은 개인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각지대가 없도록, 그리고 불안하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의료진들은 바로 달려왔다.

역시 공주님은 탈수에 쇼크로 기절하신 거라며 한숨 푹 주무시면 나으실 것이라 했다.

 

침대 위에 누워계신 공주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녀의 기사가 공주님께서 깨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1차 관문은 통과라고 볼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제 공주님께서 일어나신 후가 걱정된다.

그리고 대위님께서도 뭔가 기억 끄트머리라도 생각나신 것인지 눈빛이 바뀌셨다. 아니면 공주님 때문일지도..

 

두 분이 함께 계시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는 한데..

그래도 이 죄 많은 주둥아리. 왜 대위님을 불러 달라해서 이 사단을 낸 것이냐.

내 입이지만 내가 꼬매 버리고 싶어졌다.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일까.

 

이렇게라도 만나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대위님.”

 

“먼저 설명해. 왜 날 보시고 쓰러지신 거야?”

 

낮게 깔린 저 목소리에는 긴장해야 한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3년을 하루처럼 죽었다는 대위님만 그리워하셨습니다.”

 

“뭐? 3? ”

 

“대위님께선 대외적으로 3년 전 총상으로 순직 처리되어 있으셨으며,

오늘 황실 근위대장으로 발령 받으셨고, 때문에 모시러 왔습니다. “

 

“순직?”

 

“또한 그 사고 이후 일정 부분 기억을 상실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디까지 기억 나십니까?

제가 보기엔 대위님께서도 검사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검사가 더 급해 보입니다 라는 말은 목구멍에서 삼켰다.

 

“검사는 나중에, 공주님 먼저 깨어나시는 거 보고 나서.”

 

제대로 상황 판단과 계산이 끝나신 걸까. 아니면 아무래도 좋은 것일까.

 

이 상황을 전하께 보고해야겠기에 슬쩍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또 말씀을 하셨다.

 

“전하께서는? 그리고 클럽M?”

 

“클럽M은 잡혀서 유죄 판결 받았고, 전하께서 공주님을 이리로 모셔가라 이르셨습니다.”

 

“전하께 먼저 보고하고 돌아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존대를 하시지도 않고, 간단명료한 명령만 전달하시는 것을 보면 거의 모든 기억이 돌아오신 것 같은데..아닌가.

 

“다녀 오겠습니다.”

 

대위님께서는 고개만 까닥하셨고 시선은 계속 공주님께 고정되어 있었다.

저 눈빛의 깊이를 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공주님께서 은시경 근위대장님을 보시고 쓰러지셔서 지금 링겔 맞고 회복 중이시며

아직 깨어나진 않으셨습니다. 또한 대위님께선 일정 부분 기억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재신이가 쓰러져?”

 

공주님의 기절 소식에 놀란 얼굴이시긴 했으나 곧 냉정을 되찾고 필요한 질문만 해대는 왕이었다.

 

정말 감쪽 같달까. 역시 아이큐가 남달라서일까. 오히려 그저 국왕이기 때문일지도.

 

“이미 탈수가 심하셨고 또 충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탈수와 충격. 그럴 만했지. 깨어나면 둘다 데리고 궁으로 돌아오도록. 수고했다.”

 

“돌아갈 때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화상 화면이 꺼지는 것을 보고 일어섰다.

 

개인실로 돌아가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해진 답은 없었다.

나는 살아있는 대위님이 안타까웠고 슬퍼하시는 공주님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3년이었다.

그 마음을 이제는 믿어도 되지 않을까.

 

언젠가 대위님께서 야근 후 한잔하자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 때도 그는 그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답지 않게 술로 마음을 달래려 하였으니.

그 마음이 그녀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감히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을 하루라도 더 숨길 수 있을까,

내가 죽어야 이 마음이 사라질까.

낮게 읊조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어서 난 이렇게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공주님께는 불충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난 공주님보다 대위님 편이니까.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걱정되는 것은 그녀뿐이야.”라던

나라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목숨 거는 그답지 않은 중얼거림을 들어버린 것이 내 죄다.

그가 감히 그녀에게 직접 소리 내어 전하지도 못했던 그 진심을 들어버린 내 죗값.

 

 

“꺄악!!!!!!!!!!!!!!!!!!!!!!!!!”

 

???”

 

무슨 일이지? 이건 공주님의 비명소리 아닌가?

분명 대위님께서 곁을 지키고 계실 텐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인가.

불안해진 마음에 서둘러 개인실로 뛰어갔다.

 

 

“공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염동하, 나가.”

 

깨어나신 공주님께서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침대 머리맡에 서 있는 대위님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고 무덤에서 현실을 인식하려 했으나 그래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정말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게 무슨.”

 

“염동하, 나가!”

 

대위님께서는 다시 한번 명령하셨고, 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가서 대기하겠습니다.”

 

“아니예요, 나가지 말아요. 나 무서워요.”

 

공주님이셨다. 나와 대위님은 서로 놀라 쳐다봤다. 무섭다고? ?

 

“염동하 대위, 당신도 여기 이 사람이 보여요? 나만 보이는 거 아니예요?”

 

“예? 보입니다. 은시경 근위대장님이십니다. 공주님.”

 

 

공주님, 당신의 그 기다림은 그저 현실도피였을 뿐이었던 것입니까. 그 때의 기억상실처럼..?

 

 

“은시경?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죠? 내가 아무리 보고 싶다고 했지만.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있어요. 어떻게

 

그저 어떻게만 반복하며 울고 있는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살아서 귀신 취급 당하고 있는 그녀의 기사뿐이었다.

괴롭지만 나는 있어봐야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다.

 

“대위님, 부탁 드립니다. 나가있도록 하겠습니다.”

 

슬쩍 말을 건네고는 슬그머니 나가서 문을 닫았다.

이제 악마에게 사로잡힌 공주는 기사가 구해야 한다.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한동안 내가 서있는 곳으로도 그녀의 발작 같은 비명과 여러 소리들이 스며 나왔다.

 

 

그러나 믿는다.

그녀는 그녀의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가 기다려온 그라는 것을 알아볼 것을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녀를 놓지 못해 죽음에서도 돌아온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그녀 뿐임을...

 

 

 

한 낮을 지나 어느새 저녁이었다.

개인실 내부는 한동안 시끄럽더니 조용해진 것도 한참이었다.

 

아무래도 진정하신 것 같고 해서 슬쩍 들어가서

저녁은 어쩌실 지 여쭤볼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가

침대에 걸쳐 누워있던 대위님의 손짓에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안겨 잠들어 있었다.

 

언뜻 보이기로는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녀도.

 

 

 

 

 

그런데 전하께는 언제 모셔간다지? 클럽N 때문에 예민하실 텐데다, 기다리고 계실 텐데..

대위님의 정밀 검사도 해봐야 될 거 같고, 공주님께서는 언제 다시 깨어나시려나.

문득 현실감이 살아났다. 하지만 바로.

, 어찌 되든 상관 없나.

드디어 공주와 공주의 기사가 만났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시간이 흐른다. 째각째각.

 

- Fin, For 그랑블루 

출처 : 自我?足
글쓴이 : 냐미 원글보기
메모 :

 

이 글은 냐미님께서 제게 선물로 주신 글입니다.

10개가 넘는 댓글에 이 글을 붙여서 주셨더랬죠. 저 혼자 볼 수 없다는 제 성화에 결국 카페에 블로그까지.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기운 빠지는 날들인데,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읽는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__)

 

왠지 이 글에 달린 댓글은 제가 답하면 안 될 듯해서리.....ㅎㅎㅎㅎ
여기서 살짝 말씀드리자면, 죠기 냐미님의 닉넴을 클릭하시거나, 원글보기를 클릭하시면,
바로 냐미님의 블록으로 들어가실 수 있답니다.
이왕이면, 원글에 댓글 남기시면, 더 좋지 않을까......제 짧은 소견이에요.
글 쓰는 사람들에게 댓글은.....엄청난 힘과 용기를 주는 거라서, 그래서 또 쓰고 싶게 만드는 거라서,
여기다가 살짝 말씀드려봅니다. 겨우겨우 용기내신 냐미님께 힘을 주시길.....
그래서 어여 담편 볼 수 있게 우리 모두 냐미님을 쪼아보아요!!!! 헤헷~

제 갠적으로
1) 방에서 둘이 뭔 일이 있었나, 아주아주 자세한 묘사!!!!
2) 은시경은 기억이 돌아왔나?
3) 은시경이 어떻게 공주님의 현재 모습을 알쥐?
4) 도대체 왜 은시경은 여기 있어야 했지?
5) 이 담은?
뭐, 요런 내용으로 담편을 쪼고 싶다능....좋은 짐 얹어드리고 싶다능...뭐 그런 생각임돠!!!

동참해 주실 거죠? ㅎㅎㅎㅎㅎㅎ
원글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