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단편) 사랑과 집착의 경계
"뭐야,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시경은 당황한 듯, 손에 잡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치를 본다.
"어? 그거 내 휴대폰 아니야?"
"아, 저...그게....갑자기 문자가 와서......"
"응? 그래서 남의 휴대폰을 봤다고?"
그 말에 갑자기 시경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하여튼 저 남자, 민감하다.
"은시경 씨, 지금....화 난 거예요?"
"...아닙니다."
"화났구만, 뭘. 화났네......"
"아닙니다. 화, 안 났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딱~ 목소리도 화났는데,
그리고 지금 화낼 사람은 은시경 씨가 아니라, 나잖아요."
"..........................."
그의 입술이 꽉 다물린 채 아무 말이 없다.
어금니를 꽉 깨문 걸로 봐서는 화난 게 확실했다.
어휴........
한숨 소리에..........그가 놀란 듯 나를 다시 쳐다본다.
거봐 저렇게 신경 쓸 거면서 뭘, 그렇게 화를 내나.....
"말해요, 빨리. 나 진짜 화내기 전에......"
"제가......남....입니까?"
"어? 무슨 소리야?"
"방금....남의 휴대폰...본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그거였구나.
이러니 자꾸 주객이 전도되지.
솔직히 다른 사람 휴대폰을 보는 건 실례잖아.
그런데 이 남자는 내 말 하나를 꼬투리 잡아서는 이러고 있다.
"이, 이봐요. 은시경 씨.
부모와 자식 간에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하는 거라구요.
아무리 은시경 씨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그래도 이건 지켜줘야죠."
"그럼, 제 것도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네? 무슨 소리예요? 뭘 봐요? 자기 휴대폰?"
"..............."
이 남자, 참....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 작은 것에 집착할 줄은 진짜 몰랐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그는 궁금하다 못해 틈만 나면 내 휴대폰을 보려 한다.
그렇다고 왜 이 사람을 만나느냐, 뭣 때문이냐, 이 남자는 누구냐.....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기만 한다.
지금처럼 들키지 않았다면, 그저 또 난 모르고 넘어갔을 거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왜, 그래요? 은시경 씨, 나...못 믿어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건......"
"그런데요?"
".............."
당황하면 나오는 버릇처럼 그렇게 입술을 깨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재신은 그의 손을 잡고 침대 쪽으로 앉혔다.
그 바람에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타오르고 있는 이 남자.
자꾸 이러니 귀여워서, 재신은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도 잊고 만다.
왜 이렇게 귀엽지?
어머, 귀까지 빨개졌어.
혼잣말처럼 했던 말을 그가 들었는지,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헛기침을 한다.
그래도, 잡힌 손은 놓지 않는다.
그의 손은 여전히 재신의 손을 꽉 잡고 있다.
분명 아까까지 재신이 잡고 끌고 왔는데, 이젠 재신이 빼내려고 해도 그가 놓아주지 않는다.
이봐, 이 남자, 은근 스킨십 좋아한다니까.
"흠흠....스킨십...싫어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할 말은 다 하는 이 남자.
"말해봐요. 왜 그러는데? 나 못 믿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빨리 말해요!! 나 궁금하면, 속 터져 죽어요!"
"그게....그냥...궁금해서요."
"뭐가요?"
"공주님께서 어떤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요즘 누구를 만나시는지, 누구와 친하신지......."
"그런 게 궁금해요? 나, 대부분 시경 씨한테 얘기하잖아."
".......그리고......"
"거봐, 더 있죠? 뭔데?"
"혹시..........그........."
"아~ 빨리 말해요!!! 나 진짜 이런 거 싫어한다니까. 속 터져 죽는다고!"
"운명적인...........누군가를........혹시........만나셨을까봐........."
이게 무슨 소리지?
운명적인...누군가?
아......설마..........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거야?
이 남자, 정말 오래 가는구나.
시경은 부끄러운지 또다시 헛기침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재신의 손을 깍지를 낀채로 꼭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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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씨, 이 드라마 봤어요?"
시경은 공주님이 영상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신다길래, 들어가 봤더니, 공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계셨다.
"공주님!! 왜!"
"이 드라마....어엉...너무 슬퍼......."
드라마?
화면에는 예전 일본을 들썩이게 했던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이 드라마 알아요?"
"아, 예.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줄거리는 압니다."
"난....이 때 못 봤었는데, 요즘 왜 이 드라마가 끌리는지 몰라.
너무 짠해. 첫사랑도 첫사랑이지만, 정말 운명 같은 사랑이 있나 봐.
시경 씨도 여기 앉아서 같이 봐요."
재신이 시경을 끌어앉히자, 시경은 마지못해 같이 앉아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시경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뭐, 저런 식인가 싶기도 했다.
"공주님, 계속 보실 겁니까?"
"응? 시경 씬 재미없어요?"
"예. 전, 이런 드라마,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재미있잖아. 게다가...욘사마....넘 잘생겼고......"
시경의 굳은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주님은 계속 드라마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있죠.
아주 오래 사귄, 친구 같은 연인이 있는데, 운명의 사랑이 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말씀이십니까?"
"음.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시경 씨랑 나랑 연인인데, 시경 씨한테 운명 같은 사랑이 오는 거예요.
그럼....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일 없습니다!"
"알 수 없죠. 저기 드라마에서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잖아.
운명 같은 사랑은........자신이 거부한다고 거부되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
마치 교통사고가 나듯이, 툭하고 나버리면........."
"그래서, 공주님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시경의 목소리가 딱딱해져 있었지만, 재신은 자신의 감정에 빠져서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게. 그렇게 생각하니 슬프다.
그래도 말이에요.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운명 같은 사랑이라면, 놓아줘야 되겠죠?
너무 슬퍼도 그래야 할 거야."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에, 시경 씨한테 정말 정말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운명적인 사랑이 온다면,
꼭 내게 말해요."
"말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음....그러면, 놓아줘야죠. 시경 씨를......."
그가 아무 말이 없다.
그제서야 재신은 시경을 본다.
화가 나 있었다.
아닌가...........슬퍼보이는 건가.
"화, 났어요?"
"공주님은........떠나실 겁니까?"
시경의 목소리가 어둡다 못해 떨려나온다.
어, 이 남자, 왜 이러지?
"무슨 소리예요. 내가 놔준다니까?
시경 씨한테, 진짜 진짜 운명 같은 사랑이 오면, 놓아주겠다구요.
당신을 위해서 놓아준다니까?"
"그건 반대로, 놓아달라고......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의 눈빛이 슬프다.
아니 뭔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같다.
"공주님께, 운명 같은 사랑이 오면, 놓아달라고,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거잖아요?"
"내가 언제.......
시경 씨가 그런 상황이 생기면....내가......."
"제겐......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결국 공주님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뭐가 그런 일이 없어요.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는 거죠."
"공주님께는, 제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입니까?"
"시경 씨, 그런 얘기가 아니라........."
"사람 일을 알 수 없다고 하셨죠?
그 빌어먹을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거, 다시 올 수도 있는 거라고 하셨죠?
다시 올 수도 있다고,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 자체가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는 억울한 듯 화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지금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당신을 위해서 놓아주겠다는데 이 남자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가 싶어 재신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표정에 시경은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전요. 공주님. 이런....사랑이, 다시는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운명적인지 아닌지, 그런 걸 의심해 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깨버리면 끝나는 꿈일까봐 너무 무서워서,
꿈속에서조차 꿈이 아니라고, 공주님은 내 곁에 계신다고 그렇게 외쳐대고 있는 거, 아세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사랑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전 너무나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운명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수도 없어요."
"시경 씨...난......."
시경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재신을 자신의 품 안 가득 안아버린다.
마치 날아가 버릴까봐, 미안하다고 지금 내게 다른 사랑이 왔다고 말할까봐, 있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겁을 내며 그녀를 안아버렸다.
"전, 공주님께 그.....빌어먹을....운명이라는 게 온다 해도, 전.....못 놓습니다."
"시경 씨....."
"전 죽어도 못 놓습니다.
그러니, 제게 그런 말씀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전 죽어도 공주님 못 놓아드립니다."
그래, 지금 내 품에 있는 이 사람이 내 운명이다.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도 없이 명확한 나의 운명.
그러니 이 사람에게 다른 운명이 온다고 해도, 나는 안 된다.
순간에 결정되는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
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운명도 운명이 아닐까.
이렇게 시간을 쌓아가다보면, 그녀의 운명도 내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나는 죽어도 못놓는다.
그녀를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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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걸...아직까지 담아둔 거예요?"
자신의 손을 여전히 꽉 잡고 있는 그를 향해서 재신이 예쁘게 웃는다.
시경은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와 이렇게 나란히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함께 시간을 보내어도, 자꾸 믿기지가 않고, 설레기만 한다.
"은시경 씨는 바보구나."
"예?"
"아직도 나를 모르잖아요."
"무슨...말씀이세요?"
"나, 의리 빼면 시체인, 이재신이라구요.
인생이 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내가.....다른 사람 만날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이라는 말에 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진다.
그 말조차....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싫다고 그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약속, 하신 겁니다."
"응?"
"공주님께서....그런....사람이, 다시 오더라도, 지금 말씀 지키셔야 합니다."
"풋~~"
"웃지 마세요. 저, 진지합니다."
"응. 알았어요. 큭큭...은시경 씨, 은근 웃겨요."
"전, 하나도 안 웃깁니다."
시경은 장난처럼 웃고 있는 재신을 침대위에 눕혔다.
"지금도, 웃기세요?"
"시....."
재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시경의 입술이 재신의 입술을 덮었다.
따뜻하게, 그러나 조금은 격하게, 시경의 입술은 재신의 입술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왔다.
분명 아까까지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이 사람은, 어느 순간 이렇게 사내의 향내를 풍기며 다가온다.
블라우스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와 부드러운 그녀의 속살을 헤집고 다닌다.
"시경 씨, 잠깐만.....아......."
재신은 속수무책으로 그의 손 아래에서 신음을 뱉어내고야 만다.
언제 쑥스러워했나 싶게, 손 하나 잡고 있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던 그 남자가 맞나 싶게,
그의 손은, 그의 입술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여자라고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자신의 입술에, 반응하는 자신의 여자.
몸으로 이야기하는 이 여자를, 두 볼이 부끄러움에 붉게 타오르는 이 여자를,
자신의 여자라고, 내 여자라고,
그렇게 온 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어떡하죠? 궁중실장님."
궁중실장은 문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궁인 둘을 각각 복도 끝에 세워두었다.
"아침까지, 불침번 서도록 해.
반경 100미터 안으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한 마디라도 소문나는 날에는 너들 죽고, 나 죽는 거야. 알겠지?"
하아하아......
시경씨......오늘...왜 이래......
하악하악......
신음 소리는 오늘따라 너무 커서, 궁중실장님은, 이 층 전체를 통제해야될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악!!!"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궁중실장과 두 궁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궁중실장님, 노크라도....."
"미쳤어? 안 되겠다.
너희들 둘, 아예 1층에 내려가서, 계단 쪽을 지키고 있다가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해.
알았지?"
층 전체를 울려대는 신음소리에, 조만간 궁 전체에 소문이 나겠거니 싶은 궁중실장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궁중실장의 귀에까지 들리는 말에, 궁인들도, 궁중실장도 얼굴이 불타올라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황급히 내려갔다.
"시경 씨!!! 도대체 몇 번을....하아 하아....."
"공주님, 제 거예요."
"하악하악........안다고....누가 뭐래.....나 시경씨 거야......그러니까...이제 그만......."
"안 돼요. 공주님, 아직......전......시작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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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여자, A형 남자> 쓰다가 급 단편을 쓰고야 말았다.
이런 모습으로 둘이 꽁냥질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외로 대담하고 쿨한 공주님과, 공주님에 대해서만은 굉장히 소심하고, 집착하는 은시경.
그러면서도 대놓고 공주님 관리는 못하고, 이렇게 슬쩍슬쩍 소유욕 보여주시는 은시경이 아닐까 싶어서.
내 생각에 은시경의 집착은 이렇게 보일듯 안 보일듯 귀엽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공주님은...아마 옛날이 좋았지, 암......속았다....뭐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되지 않으실까....
내 남자가 너무 귀찮다고.....뭐 이렇게 집착 쩌냐고.....그런 생각을 하시며, 은근 즐기시지 않으실까......
<당.기.못>은 못 가져오고 계속 이런 글들을 끄적이고 있다.
그래도 꽁냥대는 은신이 좋아서리.......
그리고 저기 은시경 속을 뒤집은 저 드라마는 아주 오래된 <겨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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