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과 잡담

은시경의 고백

그랑블루08 2012. 6. 25. 15:50

 

 

 

 

 

 

 

 

은시경이 공주님께 고백을 했다.

물론 멍석은 공주님께서 다 깔아주신 거지만.

 

8회를 쓸 때는, 은시경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특히 공주님은 지금 고백이 누구를 향하는지 모르는데,

혼자서 하는 고백이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진짜 쓰는 게 힘들 정도로 먹먹했다.

 

몇 번을 멈추고, 몇 번을 울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덮기도 했다.

그렇게 공주님 편에서 보는 시경의 고백은 너무 아팠다.

공주님 눈에 은시경의 모습이 아팠을 거 같다.

비록 공주님 자신에게 하는 고백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공주님은 시경의 사랑법이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했을 거다.

 

8회는 그래서 공주님이 바라보는 시경의 마음이었다.

가슴 아프고, 먹먹하고, 안타깝고, 뭐 이리 바보 같은 사랑을 하나 싶고,

자신이 더 가슴 아프고, 이 사람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자기가 더 애달픈 마음.

그것이 시경의 사랑을 대한 공주님의 마음이었다.

 

어쩌면, 공주님의 마음은,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

은시경의 사랑법을 보고 있는 나의 마음.

왜 이리 답답한가 싶고, 안타깝고, 내가 더 아픈 것 같고,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고,

말하라며 등 떠밀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공주님의 마음은, 이미 객관성을 잃고 있는 것일게다.

시경의 고통이 자신에게도 고통이 되는 단계.

안타까워서 마음 아픈 단계.

가슴이 절절해서, 그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 단계.

그러나 공주님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른다.

 

그토록 힘들었던 8회는, 9회를 쓰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쓰는 품은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참....신기한 경험이었다.

 

8회를 쓰면서 아팠던 마음이 9회를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

웃기지 않는가.

이 허접한 글에서,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도 아닌, 남의 캐릭터로,

마치 내가 이해하는 것처럼, 그 캐릭터를 다 아는 것처럼,

은시경이 스스로 이야기했다.

 

8회를 쓰면서, 공주님 마음으로 바라봐서 그런지,

은시경이 너무 고통스럽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9회에서 얘기해주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던 은시경은,

사랑은 고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너무나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감동이었다.

 

은시경의 목소리로 고백을 다시 써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뒷 얘기부터 먼저 쓰고, 새벽 시간마다 은시경의 고백을 조금씩 조금씩 써나가기 시작했다.

한번에 쭉 쓸 수가 없어서

며칠을 두고 한 마디 씩 끊어 썼다.

 

그런데 은시경은 스스로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어 주었다.

이 감사하다는 내용은, 내가 쓴 것이 아닌 것 같다.

쓰는 가운데, 자신은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고, 자신은 너무나 감사한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주었다.

 

공주님께서 기억하시지 못하시니까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은시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꼭 가져가셔야 할 기억이라면, 공주님의 기억을 가져가시고, 자신의 기억은 남겨주셔서 다행이라고.

공주님께서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다.

 

은시경이 성당 후원에서 공주님의 손을 잡고 울었을 때,

나 역시 공주님의 아픔 때문에 그랬으려니 했었다.

그런데 9회를 쓰면서 은시경의 마음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공주님의 아픔이 분명 고통이지만, 더 고통인 것은, 그 상처가 보여준 것, 공주님께서 지금 이곳에 안 계실 수도 있었다는 것,

그것이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그 고백이, 내게는 진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늘 뒤에 있겠다는 말도, 그랬다.

단순히 지켜보겠다는, 가슴 아픈 사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은시경은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는 거였다.

언젠가 한 번은 와주시지 않을까 하고......

황혼 무렵에, 혼자 되셨을 때라도, 그때라도 좋다고, 단 하루라도 좋다고,

그 마음이 내게는 뭉클하다.

은시경의 마음이 고통보다는 희망이 더 보여서 좋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억을 가져가시지 않으셔서 감사하다는 것.

그것 역시 쓰면서 알게 된 부분이었다.

은시경은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혹시나 자신이 기억을 잃더라도, 자신은 다시 공주님을 사랑할 거라는 불변의 진리를 말이다.

그러니 모든 기억을 잃고 고통스럽게 공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행복한 기억을 품고, 또 그 행복한 기억 때문에 언젠가를 꿈꿀 수 있는 그 기억을 갖고 있어서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은시경의 고백은 감동이었다.

은시경의 심장이 검게 타들어갔겠구나 싶었는데,

9회를 쓰면서 보여준 은시경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은시경이란 사람은, 진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고통보다 '감사'를 하고 있었다.

 

아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김광석의 노래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대해서.......

혹시 너무 아파서 은시경의 사랑이 사랑이 아닐까봐 걱정된다고.

 

나도 걱정을 했다.

그럼, 은시경의 사랑은 너무 아파서 사랑이 아닌걸까.......

내가 은시경의 사랑을 너무 아프게만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9회를 쓰면서 확실히 느꼈다.

은시경은 아픈 사랑보다 감사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참 감동적이다.

아시님도 나도, 이제 한시름 놓고 은시경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아시님도, 또 다른 님들도 그러셨으면 좋겠다.^^)

 

세상에 이런 남자는 없다.

알고 있다.

 

그러나 쓰면서 참 감동이 된다.

은시경의 고백이 고통이 아니라, 감사라서, 감사의 고백이라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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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웃기지 아니한가.

은시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러고 있다니.......

 

그래도 놀라운 경험이다.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풀어나가고는 한다.

그럴 때면, 정말 그 인물이 살아있는 것 같아서 놀라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그런데 9회의 은시경 또한 그러했다.

고통스럽지 않다고, 도리어 가슴 아파하는 나를 위로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의 고백으로 마음이 많이 다독여진다.

그의 감사 때문에, 내 마음도 감사로 가득찬다.

 

내 주변을 돌아보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이렇게 살아있어서,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