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의 왕녀> 4. 희(喜), 진(眞)의 호위 무사가 되다
대각간의 아들, 희가 오랜 타국 생활을 끝내고 가락국으로 돌아왔다. 희의 귀국연이 가락국의 궁에서 대신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그러나 정작 귀국연을 주최한 좌지왕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한바탕 기침을 밭아내는 좌지왕을 희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돌아와 주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이제 과인의 곁을 지켜줄 수 있겠느냐?”
“황공하옵니다. 전하”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다.
그래 10년이구나...왜로 너를 처음 보내던 때가...
그 어린 것을...”
“아바마마,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왜 또 꺼내십니까?
희 공의 귀국연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까?
축하하기에도 바쁜데 지나간 이야기는 접어 두시지요.”
좌지왕의 곁에서 희를 향해 깊은 눈빛을 보내던 좌지왕의 맏딸 수(秀) 공주가 아버지의 말을 막았다.
“그래...과인이 요즘 몸이 많이 쇠해져...마음이 약해졌나 보구나...개의치 말거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내 긴히 대각간의 아들 희에게 할 말이 있다.”
대각간의 아들 희라는 말에 좌중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옆의 신료와 담소를 나누던 대각간의 표정이 순간 경직되었다.
‘올 것이 드디어 온 게로군...’
왕과 왕비, 수, 진, 현 공주, 그리고 대각간을 필두로 한 신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왕이 “대각간의 아들 희”에게 할 말은 오직 하나, 몸이 불편한 왕을 대신할 어떤 권세의 자리...대각간은 내심 이를 바라며 표정을 관리한다.
“대각간의 아들 희...
가라가야 전군을 지휘할 대장군의 자리를 맡아다오.”
아니나 다를까, 순간 흡족한 표정을 숨길 수 없는 대각간은 희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밖의 것이었다.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는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나이다.”
“그것이...무슨 말이냐?”
그것은 좌지왕 역시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제 나이 이제 스물 둘...아직 대장군의 지위에 오르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옵니다.
사내 대장부란 무릇 나아갈 바를 알고, 물러날 바를 알아야 한다고 하였나이다.
그 분부는 거두어 주시옵소서.”
조금의 떨림도 없이, 낮은 저음으로 뱉어내는 희의 말에 좌중은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리...
진은 얼마 전, 마봉산에서 맞닥뜨렸던 희를 기억했다. 그 날 그는 분명, 수레에 오르지 않겠다, 했었다.
자신의 귀거래사가 결국 여기에 연결되는가...
나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아.....내가 이런 위인을 기다려왔단 말인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기다려온 수 언니는 어쩌란 말인가...
수 언니가 언제나 노래 부르던 그 말...
새로운 가락국을 이끌 인물이라던 그 말...
그리도 믿어왔단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좌중이 온통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몇몇 대신들은 그저 대각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대각간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앉아 있는 참이었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좌지왕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 알겠다. 내가 한 발 물러서지.
그러면 내 다른 제안을 하마.
우리 가락가야의 두 번째 공주 진과 함께 외교 사절단에서 일해 줄 수 있겠느냐.
물론 외국 사절에 늘 진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도 거절할 것이냐...”
나약한 듯, 병약한 듯 말을 읊조리듯 내뱉고 있는 좌지왕이었지만, 그 목소리 깊은 곳에는 가락국의 정통 왕의 무거운 무게가 담겨 있었다. 좌지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희가 갑자기 고개 들어 좌지왕 왼쪽에 앉아 있던 진을 쳐다보았다. 진 역시 놀란 마음에 희에게 시선을 두던 중 희와 진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치고 말았다. 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
그 순간, 당황한 대각간이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전하, 그것은 혹 진 공주님의 호위 무사가 되라는 뜻입니까?
그것은 희가 하기에는....조금...무리가.....”
“따르겠습니다.”
희는 아비의 말을 끊으며 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황급히 희의 아비 대각간이 희를 저지하려 했다. 어찌 이리 무모할 수가 있는지. 언제나 냉철하다 여겼으나 희는 지금 경거망동한 듯이 보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진 공주님이 우리 가락국 최고의 외교 사절단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성심성의껏 전하의 분부를 받잡겠나이다.”
희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대답을 확정지어 버렸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대각간의 아들 희, 그대를 사절단 상위도간에 책봉하는 바이다.”
왕의 흐뭇해하는 미소와는 달리 그 자리에 모인 공주들과 신료들의 얼굴은 매우 복잡했다. 수는 좌지왕께 예를 표하고 연희장 밖으로 나가는 희를 탐색하듯이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진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그분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
평상시 궁 안에서는 웬만하면 평정심을 잃지 않던 진이 연희장을 나오며 분노를 폭발했다. 곁을 지키는 상등시중인 실이가 그런 진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언니, 지금 웃을 때야?”
“공주마마, 여긴 궁이옵니다. 말씀을 가려하시지요.”
“뭐야, 왜 웃어?”
"이럴 때보면 마마는 어린아이 같사옵니다. 아직도 희 공에게 삐지신 겝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하는....”
열이 받은 진이 뭐라고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공주마마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이제 곁에서 모시게 되었소.
자주 보겠구려...
마마의 위중한 업무를 내가 성심성의껏 도와 드리리다...”
두 여자 뒤에 희와 희의 시종 무사 장천이 서 있었다. 비웃듯이 웃으며 지나가려는 희를 진은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겝니까?”
“뭐 하다니요? 난 전하의 어명을 받잡은 것뿐이오.”
“하~~날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겝니까?
도대체 호위 무사를 하겠다는 저의가 뭐요?
관직도 싫고, 세상도 싫다 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귀거래사가 해석은 되었나 보군. 어느 정도 머리값은 하나 보오.
뭐 귀거래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그대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짧게 답변해 주겠소.
내가 싫다고 한들 관직이 없을 리 만무.
그렇다고 전하의 청을 거절할 수도 없을 터.
복잡한 일도 싫고, 관직도 싫은데....
대장군에 비해 그대의 호위 무사는 거저지 않소? 아니 그러하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뭐 그까짓 호위 무사? 거저?
진은 속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그대란 사람은 도대체...무슨 생각을...하는....”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하였소.
앞으로 공주의 일거수 일투족은 나와 함께 하게 될 거요.
싫으면 직접 전하께 고하여 날 자르시든가...”
어쩜 저리도 유들유들하게 말하는 걸까...
도대체 오류 선생은 왜 저런 인물을 제자로 받으신 게야...
하여간 그 영감도 사람 보는 눈이 없군...
황망해 하는 진을 뒤로 한 채 궁의 뜰 뒤로 걸어나오면서 장천이 그의 주군에게 물었다.
“주군...이제 마봉산은 당분간 아니 가셔도 되시겠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손으로 해를 가리는 희의 입자락 위로 아주 연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동시 연재 중>
북팔 웹소설: http://novel.bookpal.co.kr/viewer?uid=62130&bid=5616
네이버 웹소설 :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237996&volumeNo=4
그 외 로망띠끄 연재
* <가락국의 왕녀>는 4회를 마지막으로 제 블로그에서는 더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너무 여러 군데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북팔에 집중적으로 올려야 할 일이 있어서....
북팔에는 하루에 3~4개 씩 올리고, 네이버에는 하루에 1~2개 씩 올릴 것 같습니다.
로망띠끄는 하루에 2개씩만 올리게 되어 있어서 역시 느리게 올릴 듯합니다.
* 아마 제 블록에 오시는 분들은 당기못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니,
아무래도 여기에 자꾸 올리는 것보다는, 그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5월 23일 이후에, 블록에도 천천히 올려볼까 합니다.
(북팔에 5월 23일까지 올려야 할 이유가 있어서...그 쪽은 달리게 될 듯합니다.
그때까지 50회를 올려야 한다네요. ㅠㅠㅠㅠ)
* 혹시 이 허접한 글에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위의 북팔이나 네이버, 혹은 로망띠끄에서 봐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곳은 은신과 신우를 계속 즐겨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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