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심장] 5회. 당신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2)
3
그녀가 드디어 미음을 들었다는 말에, 그녀가 있는 궁의 내실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웃기게도,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리 기쁜 것을 보면, 내심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진하려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모두에게 여인을 천상에서 온 신녀라 해놓고 그 스스로는 가녀린 여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침상에서 일어섰다.
마치 아이가 걷듯이, 자신의 걸음이 낯설다는 듯이 몇 번이나 자신의 발을 바라보며, 내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순간 숨이 훅하고 멈췄다.
시선만으로, 그녀는 나를 제압하고 있었다.
“나는....아직도 모르겠어요.
이곳이 어딘지....그리고 당신은 누군지......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여전히 꿈속에 있는 것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어요.”
여인이 하는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꿈이라면, 깰 때까지.......그렇게 있기로 했어요.
그 꿈이 이곳이라면, 당신이 말한....그 발해라는 나라라면,
그리 믿고 그렇게 있어 보기로 했어요.”
“마음을 정했다니, 다행이로구나.
어쨌든 넌, 이곳에서 신녀다.
니가 신력이 있든 없든, 내겐 상관 없다.
그저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녀........."
"너는 이제 발해를 구원하러 온, 천상의 신녀다.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신녀........좋아요. 그리하라면, 그렇게 해볼게요.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또다시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이 아프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탁이....있어요."
"말해 보거라."
"이곳에 있는 동안,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대신......."
"..............."
“한 번만....딱 한 번만......."
그녀가 메마른 입술을 적셨다.
"......당신을........만져봐도.......될까요?
정말...단 한 번만....이면.....돼요...그러니까.......”
얼토당토 않은, 아니 왕의 몸에 손을 대는 그것은 극형에 처할 일이었다.
그러나.......거부할 수 없었다.
간절한 여인의 목소리가, 애타는 여인의 간절함이.......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닿을 듯 다가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손이 내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것은......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이마를 지나 눈썹을 훑고, 코를 지나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그녀의 눈은 그녀의 손을 따라 하나하나 짚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그녀의 손이 가는 대로, 그렇게 깊어지고만 있었다.
턱을 지나.....천천히 올라오던 손이 입술에서 멈추었다.
손바닥으로 내 입술을 감싼 순간, 그녀의 눈은 자꾸만 물기로 채워지고만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당신이 당신 말대로 정말 왕이라 해도, 그래도.......오늘만. 오늘 하루만......허락해 주세요.
오늘만....오늘 하루만....당신을 그 사람이라고......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허락해 줘요.”
소리 없는 울음 앞에서, 물기가 잔뜩 고인 그 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두 손이 내 귀를 천천히 감쌌다.
마치 자신이 하는 말을 듣지 말라는 듯, 그녀는 내 두 귀를 꼭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 입술을 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몰라요.
아니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몰라요.
내가 죽어서 당신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쳐서 환상을 보고 있는지....
그것도....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그래도.....
아무리 지금 이 순간이....현실이 아니라고 해도......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내게 했는데, 나는 하지 못했던 말........
당신이 떠나고 나서.....내가....가장 후회했던 게 뭔 줄 알아요?
그 때, 당신이 핸들을 당신 쪽으로 꺾었을 때 내가 잡아버렸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있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그랬더라면, 당신과 같이 있지 않았을까.....
왜 당신은 나를 혼자 두고 그렇게 가버린 걸까.....
수도 없이 당신을 원망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던,
그저 당신 손을 쥐고 있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모든 기억이 흐릿해질까, 두려워서 또 되뇌고 또 되뇌어도,
결국엔 하나만 남았어요.”
그녀의 앞에서.....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그저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아니....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지며 흘러내렸다.
“........이 말을.....하고 싶었어요.
이 말을 하지 못해서, 밤마다 가슴을 쳤어요.
이 말이 뭐라고 아껴뒀는지, 그게 뭐라고 당신에게 말하지 못했는지.....
당신이 떠나서, 당신을 다시 볼 수 없어서,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그런 고통에 시달리면서,
난........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말 때문에......그렇게 가슴을 쳐댔어요.
사랑해요....서대윤 씨.......
사랑해요....서대윤 씨.......
사랑해요.....사랑해요........사랑해요.........사랑해요.....사랑...해요......”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오는데도, 그녀는 그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해요....사랑해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러나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통곡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통곡과 같은 고백을
전해오고 있었다.
그녀의 고백이, 그녀의 통곡이 가슴을 쳐대고 있었다.
그녀를 알지 못한다.
누구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날카로운 창 끝에 찔린 듯, 고통으로 찢어지는 듯, 온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미칠 것 같은 뜨거움이
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여전히 내 귀를 막고서 그토록 절규와 같은 고백을 하는 그녀를,
같은 말을 내뱉고 있는 그녀를,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그녀를,
품 안에 가득 안았다.
내 가슴 속에서도 그녀의 말은 울려오고 있었다.
사..랑..해요.....서대윤 씨.........
가슴이 젖어 들어간다.
그러나......여전히 그녀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은......그렇게 한 번도 움직여보지 못한 사내의 심장 안으로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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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소설 : 5회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252144&volumeNo=12
북팔 : 6회 http://novel.bookpal.co.kr/viewer/70235
(네이버 5회 = 북팔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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