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심장/발해의 심장

[발해의 심장] 4회. 당신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1)

그랑블루08 2014. 5. 29. 20:43

 

[발해의 심장] 4. 당신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1)

 

 

 

 

 

1

 

 

 

 

 

다시 눈을 떴을 땐, 마치 꿈처럼 그는 없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꿈이었구나......싶어 가슴이 무너질 듯한 그 때, 내 눈 앞에 한 여자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기침(起寢)하셨는지요....신녀님.”

 

그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동안 이해를 하지 못했다.

기침.....?

신녀.....?

누가? 내가?

 

방금...내게 한 말이에요?”

 

? . 신녀님.”

 

신녀라니....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여긴 어디죠?

사극 촬영장인가요? 왜 다들.....이런 복장으로...

! 혹시 조선족인가요? 그래서 옛날 방식대로.....”

 

? 조선족이라니 무슨 말씀을?

조선은.......아주 옛날 태곳적 나라이온데........”

 

그야, 당연하죠. 지금 그게 아니라.....왜 다들 이런 옷차림에, 이런 말투에....

사극을 찍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씀인지, 소인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뭘까....지금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꿈에서 그를 보았다.

마치 옛사람인 듯한 그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그의 아호를 불렀다고 했다.

왜 이곳에서 그의 꿈을 꾸었을까.

이곳이 그와 신혼여행을 오려고 했던 그곳이라 더 깊게 박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처음이 될 줄 알았던 이곳이 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온다.

나는 아직도.....그 말을 떠올리기가 겁이 난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꿈에서라도 그를 만난 적이 없는 척, 정신을 가다듬는다.

 

휠체어......가져다 주세요.

, 아니면 경호원, 누구라도 좀 불러주세요.

장하 씨가 근처에 있을 텐데.....”

 

내 말에 여자는 당황한 듯, 얼굴이 불안해 보였다.

 

신녀님.......송구하옵니다. 제가 미천하여 하명하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사옵니다.”

 

떨려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아무리 조선족이라도, 또 이곳이 아무리 문명과는 떨어져서 옛 습속 그대로 가지고 산다고 해도,

분명 모를 리는 없을 텐데.......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누구 몰라요?

한국 사람?”

 

.........이 무엇이옵니까? 나라....이옵니까?

당나라와 신라 외에 이국(異國)은 잘 알지 못하여........”

 

?

지금 이 여자가 뭐라고 말하는 거지?

 

수연은 지금 들은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인가.....

혹시 신종 인신매매단인가......

점점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납치......!

 

......납치....한 건가요?”

 

?”

 

수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써 괜찮은 척 여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봐요. 나 납치해봤자, 우리 아빤 꿈쩍도 안 해요.

다리도 못 쓰는 나 같은 여자를 어디다 쓰려고.......

이것 보라구요.”

 

수연은 이불을 걷고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그 여자 앞에 내놓았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자신은 움직일 수 없다고, 자신은 무력한 장애인일 뿐이라고,

그 여자 앞에 증명하려 다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그 순간......

수연의 호흡이 그대로 멈췄다.

 

수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다리가......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치.....예전 어느 날처럼.....

앙상하게 마른 다리가 아니라, 근육이 붙어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꿈이야.....이건......

그래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그저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일어나면 다 끝날 일이야.

잠시...아주 잠시....꿈에서라도 위로하시려는....누군가의 손길일 뿐이야.

 

그 때였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깨어났느냐?”

 

그였다.

... 그가, 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2

 

 

 

 

그녀는 사흘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만큼 그녀는 잠만 잤다.

누구일까.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들을 품은 채, 그녀는 그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언제 봤다고,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이런 여인 때문에 내가 안달복달 못하며 그곳을 드나든다는 것이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두가 물었다. 누구냐고......

 

나도 모른다.

솟구치던 물과 함께 내 품에 떨어진 여인이라....그리 말한들, 그들이 받아들일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가 어디에서 왔든, 아비의 바람은....아니 아비의 예언은......이루어졌다.

그녀가 천상에서 온 신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어떤 영험한 신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녀의 말투도 그녀의 의복도 모두 생소했다.

그리고 그녀의 물건들도......

분명 그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첩자일지도 모르는데, 자꾸만 아비의 말을 믿고 싶은 나의 이 마음은 무엇인지......

 

어쨌든 모두를 안심시킬 거짓말은 필요했다.

아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실이기도 했다.

 

중원 정복을 위하여 영험한 신비의 샘에서 제사를 지내던 중,

하늘의 별이 떨어져 샘에서 신녀가 솟아나왔다, 고 모두에게 고했다.

 

대신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제사니, 무녀니, 신력이니, 그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겼던 내 평소의 성정을 알기에

그들은 분명 뭔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이 없었다.

아비의 예언이 실현된 것으로, 발해를 일으킬 수 있는 영험한 천상의 신녀가 이 땅을 향해 왔노라

그리 믿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났다.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나뭇빛의 눈속에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져내릴 것 같은 물기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자꾸만 목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기에, 어찌 나를 알기에 이러한 눈빛을 가지는가.

 

“....꿈인...가요?”

 

? 니가 아직 정신이 덜 든 모양이로구나.

사흘을 죽은 듯 누워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사흘......?”

 

그래, 사흘 동안 정신을 놓았다.”

 

그러면...꿈이 아닌가요?

지금....당신을 보는 것이.....현실이란....말인가요?”

 

그러하다.”

 

그러면....여기는 어디인가요?

당신이 있는 이곳은, 당신이 숨쉬고 있는 이곳은.....도대체 어디죠?”

 

정녕 모르는 것이냐?

발해의 땅. 도성 안이다.”

 

“.....,,,라구요?”

 

그녀가 충격을 받은 듯,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신을 잃을 듯하여 그녀의 어깨를 두 팔로 잡았다.

 

아직도.......어지러운 것이냐.”

 

혼란스러운 듯,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가 이윽고 입술을 열었다.

 

여긴.....2013년이 아니란 말인가요?”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좋아요. 그러면......지금은......서기 몇 년....

, 아니.....서기가 아니지......

.....내가 미친 건가......이 말을....믿는다고?”

 

혼자서 뭐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하아.......그러면 지금은 몇 년도죠?

당신 말이 진짜라고 치면......”

 

인안(仁安) 이년.”

 

?”

 

인안 이년이다. 그 말은 발해를 세우신 고왕이 붕어하신 지, 두 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점점 여인의 눈이 커지고 있었다.

흔들리던 여인의 눈이 다시 초점을 찾는 듯했으나, 여전히 물기를 머금은 채, 떨리고 있었다.

한참만에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그러면.........당신은............누구죠?”

 

이 땅의 두 번 째 왕, 대무예다.”

 

하아........

 

그녀는 입을 닫았다.

그녀는 그렇게 입을 닫은 채, 만 하루를 지냈다.

 

그 사이 궁녀들이 드나들었으나, 그녀는 식음을 전폐한 채,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다.

첩자일 수도 있는데......

왜 이리 눈길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왕의 눈은.......그녀를 향해 있었다.

 

자꾸만 그녀가 불렀던 자신의 이름이.....가슴을 울려대고 있었다.

 



네이버웹소설 : 4회 https://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252144&volumeNo=11

북팔웹소설 : 5회 http://novel.bookpal.co.kr/viewer/70234 

(네이버 4회 = 북팔 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