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사진 펌>
<고향 가는 길 - 원장현>
舟中卽事
임 제
一曲歌橫北斗星
百年愁與酒兼醒
若爲更把桓伊笛
明月共登江上亭
世皆如怡綠下靜
한 곡조 노래는 북두성을 가로지르고
백년근심은 술을 깨우는 구나
어쩌자고 또다시 피리를 잡는고
밝은 달과 함께 강위 정자에 오른다.
세상이 모두 고요함 아래 푸르름을 기뻐하는 것 같구나.
(세상의 모든 것이 고요함 가운데 이녹(怡綠)이 같구나.)
임제...
1549년 명종 4년에 태어나 1587년(선조 20년)에 생을 달리 했는 인물...
동서 양당으로 나누어 서로 비방하며 다투는 당시 정개를 떠나 명산을 찾아다니며 생을 마쳤다는 인물
그의 삶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화가 바로 황진이의 무덤가에 대한 이야기다.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던 길에 황진이의 묘를 지나게 된 임제는
그의 묘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시조 한 수를 읊었다.
그리고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당하게 된 인물...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잡아 권할 이 없어 그를 설어 하노라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기생 한우(寒雨)와도 시조를 주고 받았던 임제는...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고도 한다.
그의 시...
고중즉사는...왠지 <가락국>의 창휘와 닮아 있다.
노래에 담은 그리움은 저 북두성을 가로지를 정도로 넓고 깊으며
그 근심은 술조차 취하지 않는다.
그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대금을 잡고
밝은 달 아래 정자에 앉아 님을 떠올리니
정적 속에 있는 온 세상이 자신의 님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달에서도, 하늘에서도, 강빛에서도,
살랑거리는 바람에서도, 향기로운 꽃에서도
자신의 그린내를 느낄 수밖에 없는 듯하다.
500년 전의 시 한 수가 1600여 년 전 <가락국>에 선물 하나를 안겼다.
감히 임제의 시에 한 구를 더 넣었다.
7언 4구가 맞지만, 거기에 형식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가락국>에 맞추어 한 구를 넣어버렸다.
그러나...감히...어울린다고 말하고 싶다.
시 한 수가...<가락국>의 창휘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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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원장현
참으로 먼길을 돌아왔구나
상처난 꿈조차 기쁨되어 오는 길
눈물 그렁그렁
깊숙히 감추던 그리움
이제야 비로소 한숨되어 흩어지고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 차창 밖에
함께 달리던 그 산줄기
시름없이 뜬 낮달 그림자에도
터질 듯이 가슴 찢던 향수에
누군들 꺼억꺼억 목이 메이지 않겠느냐
때론 나직이 흐느끼면서도
혹은 처절히 울부짖어서
절정하지 못할 이 노래조차
그 머언 그리움을 달래지는 못하였으리
못하였으리...고향으로 가는 길
이 아득한 사랑을 다 말하지는 못하였으리
(음악 출처 : http://cafe.daum.net/soundplayer/1DBw/87?docid=1Ds3r|1DBw|87|20080803031702&q=%BF%F8%C0%E5%C7%F6&srchid=CCB1Ds3r|1DBw|87|20080803031702 코나이스 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