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작은 이야기

[스크랩] [가락국팬픽]말녀, 용호의 강가가 되다

그랑블루08 2008. 12. 5. 16:45

바쁘신 작가님께 말용&치현 라인 얘기 써달라고 조르는 불경죄를 범한 것을 사죄드리며..

 

그래도 자꾸만 두 커플이 눈에 밟히길래..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쓰는 걸 흔쾌히 허락해주신 그랑블루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허락은 받았으면서도..쓰는 내내..(지금까지..) 가락국에 누가될까 마음이 콩닥콩닥입니다.

 

그냥..가락국을 사랑한..팬심에서 비롯된 작은 글이라고 보아주시길.

 

이현과 치수 이야기는 아직...머릿속에 있는 걸 풀어내지 못해서...

 

그럼..후다다닥.

 

 

 

 

 

 

 

 

 

 

 

 

 

 

 

 

 

 

<말녀..용호의 강가가 되다>

 

 

 

"괜찮아? 앉는데 불편한 건 없어?"

 

"어..괜찮아.."

 

"역쉬~ 연씨손에서 나오면, 아주 작품이 된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의자에 수레바퀴를 달 생각을 다 했냐?"

 

말녀가 앉아있는 바퀴의자를 둘러보며 수근이 감탄했다.

 

"이거 되게 재밌겠다, 누나! 나도 한번만 타보면 안돼?"

 

"으이구, 녀석. 바랄걸 바래야지, 이게 재미로 타는거냐?"

 

연씨가 곰이의 머리에 꿀밤을 주었다. 입이 댓발로 나온 곰이를 향해 파리하게 웃어보이던 말녀가, 자신의 옆에서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이녹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마.."

 

"편해..?"

 

"네..아주, 제 몸인 듯..편합니다. 연씨가 만들었잖아요."

 

의연하게 웃어보이는 말녀가 애틋하고 맘이 아파  눈물을 참기 어려운 이녹이 괜히 심술을 부린다.

 

"이제 쭉 앉아서 편히 사시겠다? 피. 언니 그동안 내 시중 들면서, 그렇게 힘들고 싫었던거야? "

 

"평생 그 정도 시중들었으면 됐죠, 뭐.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공주마마이실때도 그리 힘들게 하셨는데. 태자저하까지 되신 마마 시중을 제가 더 어찌 듭니까? 저도 이제 좀 앉아서 쉴랍니다. "

 

이녹의 마음을 읽은 말녀가 피식 웃더니 한 술 더 떠 대답했다.

 

"그래애, 공주마마가, 아니지 태자저하가 그 동안 말녀를 좀 부려먹긴 했어. 그지이?"

 

"뭐야, 지금 나 빼고 다 한편이야? "

 

"아니~! 난 태자저하편~!!! 이제 이녹이 누나 임금님 되는거지? "

 

연씨가 곰이의 이마를 또 한번 쥐어박았다.

 

"어린 녀석이 벌써 권력에 빌붙을줄이나 알고."

 

"아얏! 우쒸.."

 

"역쉬! 곰이밖에 없다. 일루와 곰아, 우리끼리 잘먹고 잘살자."

 

웃음과 함께 농이 오고 가는 이 장면을..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바퀴 의자위에 앉아있는 말녀에게 머물렀다.

 

어디에 있어도..저렇게 파리하게 앉아있어도..바래지 않는 그녀만의 빛..

 

꽤 오랜시간 그 빛을 그리워해온 듯..

 

멀찌감치..자리에 붙박힌 듯 서서 말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의 눈빛은..조금 젖어있는 듯도 보였다.

 

사내 쪽을 살짝 돌아다보던 이녹이 말녀의 바퀴의자를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다들 나중에 봐. 난 언니랑 잠시 갈데가 있으니까."

 

말녀가 당황하며 등뒤의 이녹을 돌아보았다.

 

"제가..하겠습니다. 이렇게 바퀴를 굴리면, 앞으로 잘 나가게 되어있어요. 그러니.."

 

"잔말말고 앞에 봐. 언니 말대로 언닌 평생 내 시중만 들면서 살았잖아. 언니가 내게 해준거에 비하면, 이런것 아무것도 아니야."

 

말녀가 하는 수 없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아직 이 커다란 바퀴가 달린 의자에 몸을 의지해 앉아있는 것이..낯설고..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난..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겠지..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서..무엇인가에 몸을 기대서..이렇게..

받아들이기..쉽지만은 않았던 이 현실..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해도..자신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나의 주군..나의 세상..이녹 공주님을 위해..그리고 그 분의 세상을 위해..

 

"경치가..참 아름답습니다."

 

오솔길을 벗어나니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말녀가 감탄했다.

 

"마마..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말녀의 질문에도, 이녹은 대답이 없다.

 

"마마, 멀리 가는 것이라면..전.."

 

등뒤로 고개를 돌리던 말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는..이내 몹시 흔들렸다. 언제부터였는지..용호가..그가..이녹 대신 자신을 밀어주고 있었다.

 

"뭐하는거요..!"

 

말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앞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용호는 묵묵히 의자를 밀고 나아갈 뿐, 아무런 대답도 없다.

 

말녀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참을만 했던 비참함과 수치심이..왠지 그 앞에서는 견딜 수 없이 다시 자신을 옥죄어 왔다.

 

이런 모습..이렇게 불구가 된 모습..이 자에겐..이 자에겐..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어딜 가는게요?"

 

말녀의 말엔 대꾸도 없이, 용호는 갑자기 의자 밀던 것을 멈추고 말녀 앞으로 와 등을 내민다.

 

"..........?"

 

"여기서부턴, 길이 험해 의자를 끌고 갈 수 없소."

 

"도대체 어딜 가기에 이러는거요? 싫소..!!"

 

하지만 용호는 억지로 말녀의 몸을 의자에서 자신의 등쪽으로 끌어당겼다. 당황한 말녀가 몸부림쳐보았지만,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탓에 꼼짝없이 용호의 등에 업히고 말았다.

 

"뭐하는 짓이요! 내려주시오!"

 

아무리 화난 목소리로 내려달라 소리를 질러대도, 용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걸었다.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말녀도 결국 포기하고 용호에게 몸을 맡겼다. 그러자 그의 너른 등판에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 날..그와 밤을 함께 보낸..자신의 아픈 마음을 서툴지만 정성을 다해 만져주던 그 때 처럼..따뜻하면서도 묵직한..그만의 체온이었다.

 

말녀가 팔을 들어올려 용호의 목에 가만 감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상체가 더 가까이 닿았다.


 

두근.

 

그의 것인지..자신의 것인지...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뛰는 두 사람의 심장박동소리가..그들의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

 

 

 

 

 

 

 

"여기가..어디요..?"

 

용호가 말녀를 내려놓은 것은 한참을 더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깊은 산속에 숨은 듯 흐르고 있는 강가는..더할나위 없이 조용했고,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내...어머니요..."

 

".....?"

 

강건너 산기슭에 눈빛을 대고..용호가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내 어머니이자..아버지..누이이자..여인..벗이자..고향이오.."

 

"......"

 

말녀도 조용히 흐르고 있는 강물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그렇게 혼자가 된 후 난..무언가 그리워질 때면..혼자인게 힘에 부칠 때면..늘 이 곳을 찾았소.

 

저 강물은..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주었소.

 

그리고는 내가 마음으로 하는 말들을 다 들어주고..

 

때로는 위로해주고..

 

때로는 슬퍼해주고..

 

때로는 웃어주며..

 

나를 늘 받아주었소..

 

이 강가에 와 앉아있을 때면 난..

 

지극히 혼자라는..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는 외로운 생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소.."

 

그의 외로운 삶이..그 삶의 시린 무게가..마음과 마음을 타고 전해져왔다. 말녀가 고개를 돌려 용호를 바라보았다.

 

"참..아름다운 곳이오."

 

줄곧 말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던 용호도, 시선을 말녀에게로 옮겼다.

 

"그런데..오늘이 마지막이오. 이 곳에 오는 게.."

 

"마지막..? 왜 그렇소..?"

 

"왜냐하면..."

 

말녀를 향한 용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젠 그대가..나의 강가이기 때문이오.."

 

".........!!"

 

말녀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무슨 뜻이오..?"

 

그의 깊은 눈빛을 외면하고, 다소 차갑게 되묻는 말녀를, 용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혹시, 이전에 나와 함께 밤을 보낸 것 때문에 아직도 맘을 쓰고 있었소? 그 옛날일을? 그런 것 때문이라면, 그럴 거 없소! 알다시피 난 워낙 함부로 굴.."

 

"함부로,"

 

".....!!"

 

자신의 말을 단호하게 가로채는 용호로 인해..말녀의 말문이 막혔다.

 

"함부로 말하지 마..그대 자신에 대해..더 이상..그렇게 함부로, 아무렇지 않은 듯..얘기하지

마.. 이젠..내가 아파. 당신이 아니라..내가..."

 

그의 뜨거운 진심이 담긴 눈빛이 말녀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눈물이 울컥하고 솟으려는 것을 겨우 참고, 말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이제 난.."

 

자신의 힘없는 다리를 내려다보며..결국 말녀가 눈물방울을 떨구었다.

 

"당신에게..짐만 될거요..난.."

 

"그렇지 않소.."

 

용호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말녀의 턱을 가만히 들어올렸다.

 

"그대는 내게..완벽한 사람이오. 아름다운..소중한.."

 

용호의 고백을 듣는 것이 꿈만 같으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말녀가 젖은 눈을 하고 그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마음의 불구였던 나를..다시 사람이게 한 이가 그대요. 그러니..그런 말은..그런 생각은 마시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말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뭐라고..이 천한 년이 무어라고..이이처럼 선하고 좋은 사람이..나에게 마음을..삶을..나누어준단 말인가..내가..이런 사랑을..받을만한 사람이었나..나에게도..이런 사람의 진심을 받을 만한..영혼을 받을 만한..자격이 있단 말인가..

 

말녀의 볼을 천천히 닦아주던 용호의 손이 말녀의 손으로 내려와 포개어졌다.

 

"나의 강가가..되어주겠소..?"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않은 채..말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의 얼굴에...부드러운 미소가 서렸다.

 

"웃는거..처음..보오.."

 

말녀의 말에 용호가 더 크게 미소지었다.

 

"이것 보시오.. 그대가 이렇게 만든거요. 마음의 불구를..웃게도..울게도..떨리게도..가슴 무너지게도..행복하게도 만들었소."

 

이번엔 말녀가 용호의 뺨을 어루만졌다. 자신의 얼굴을 감싼 말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간 용호도, 부드럽게,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깊은 입맞춤..

 

조용히 흐르는 맑은 강물 위로, 산너머 드리워진 붉은 노을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출처 : 쾌도 홍길동
글쓴이 : 풀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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