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윤
- 녀석과 부대찌개
“응...”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격앙된 그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다.
“.............................”
“왜 아무 말이 없어?”
그 녀석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누그러진다.
“누나? 듣고 있어? 어이!!! 진!!!!”
“죽는다!!!!”
“아니..난...누나 고물 폰이 또 맛이 갔나 했지.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끙.....”
“뭐야? 앓는 거야?”
“손가락 데였다. 시끄럽다!!”
“뭐야? 많이 덴 거야? 하여간 칠칠치 못하기는... 나이 값 좀....하..”
“기어오른다!!!”
“아니...뭐 해? 집이야? 갈까?”
“음....”
“밥은 먹었어?”
“아니....”
“내가 가서 해 줄까? 아니지...그 놈 와?”
“죽고 싶냐? 그 놈이라니!!!”
“.........................”
“야!!!!!”
“그 놈 오냐고!!”
“갔어...”
“!!!.......왔..다..가. 갔군....”
“올 거냐...말 거냐...”
“알았어.”
달칵!
이 자식이 끊었다. 이게 완전히 선배를 물로 보는구나.
4살이나 어린 게, 아니지 학번으로 치면 5살이나 어린 게 정신줄을 놨군!!!
아...손가락 아파라...
딩동딩동!!!!
“문 열렸다!!!”
그 녀석이 들어온다.
저 놈이 현관 앞에 있으면 그냥 답답하다.
엄청나게 작은 집이 저 거구 놈 때문에 꽉 차보인다.
저는 185cm라고 말하지만 난 거짓말이라고 본다.
190cm은 안 되도 거의 그 근처일 텐데...굳이 185cm라 우기는 이유를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뭐야!! 누나!! 왜 문을 안 잠가? 요즘 발바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정신이야?”
“다시 말해봐....”
“문 왜....아니다...손은 괜찮아?”
“됐다. 시끄럽다.”
건성건성 던지는 내 말에도 녀석은 내 손을 억지로 잡아간다.
“그만 해라. 귀찮다!!”
“뭐야!! 또 참기름에 소금이야? 하여간!! 찬물에 손은 씻었어? 안 씻었지?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여간 뭐야!! 여자가 돼 가지고는... 이 봐라...못 생긴 손이 완전히 솥뚜껑이 됐네..”
따악!!!!
내 주먹이 녀석의 머리를 강타했다.
“우이씨!! 왜 때려!!!”
“고마해라....”
내 말에 녀석은 입만 대자로 나와서 투덜대며 약상자를 가지러 간다.
계속 궁시렁대면서 연고를 찾아 내 상처에 발라대고 있다.
“됐다니깐!!!”
목소리에 이미 짜증이 배어나왔다.
녀석은 밴드까지 붙여주고서야 내 손을 놔 준다.
“니 애인한테나 잘 해라.”
“흥!! 어차피 내 애인 잘 해주고 싶어도 너무 멀거든!!!”
툴툴대는 녀석을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회색 후드티에 헐렁헐렁한 청바지를 대충 껴입고 왔다. 머리는 샤워하고 왔는지 대충 말려서 삐죽삐죽하다. 수건으로 금방 털고 나와서 이렇게 저렇게 흐르는 머리...
“왜...그래?”
녀석의 목소리가 겁먹은 듯하다.
내 손이 어느 새 그 녀석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다.
“덜 말랐네...”
“응...샤워하자마자 전화했거든...”
녀석이 갑자기 뻘줌한지 시선을 내린다.
자식!! 그래도 누나 무서운 줄 알아서...
“뭐 해줄 거냐?”
“뭐 먹고 싶은데?”
“그냥...아무 거나...”
“내 참...맨날 아무 거나냐?”
녀석은 툴툴거리면서 냉장고 안을 열어보더니 혀를 찬다.
“요새 굶어?”
“아니, 사 먹어...”
녀석이 현관 쪽으로 나간다.
“어디 가냐?”
“집에...”
“왜?”
“몰라서 물어? 기다려!!”
안 온다는 말은 아니군.
그 말 한 마디에 다시 다행이다 싶다.
오랜만에 저 녀석 밥을 먹겠군.
갑자기 식욕이 당긴다.
다행이다. 그래도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 저 녀석이 살아서 이래저래 편한 게 많다. 5분 만에 다시 들어온다.
“또 문 안 잠갔어?”
“어차피 너 올거잖아.”
“그래도!!! 아니, 됐다. 내 입만 아프지...에휴...”
비닐 안에 넣어온 감자랑 호박이랑 파가 보인다.
“두부 있어?”
“당연하지.”
녀석이 자랑스럽게 락앤락을 꺼내 보인다.
“뭐야? 반 모야?”
“이거라도 감사하시지. 오늘 아침에 내가 된장찌개 끓이면서 다 넣으려다 남겨놨구만.”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싱크대 윗문을 열어 대충 동여매 논 라면 봉지를 내밀었다.
“뭐야? 이거 넣으라구?”
“이것 저것 넣어라. 냉동실에 저번에 먹다 남은 롯데 후랑크 있으니 것두 넣고...”
“으이그...하여간 여자 식성하고는...그거 한 달도 더 됐을걸...유통기한 넘었잖아. 봐!”
“얼려두면 일없다!!”
“하여간...똥고집은!!”
저게 완전히 기어오르는군...
열받지만 참기로 한다. 저 녀석표 부대찌개는 최고이므로 먹고 나서 군기나 잡아야지...
역시나...맛있다.
정신없이 밥을 퍼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너무 맛있다.
“밥 더 없어?”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밥솥에서 한 공기 퍼다 준다.
정신없이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배가 부르니 그제서야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녀석의 밥이 거의 그대로다.
“뭐야? 왜 안 먹어?”
“그냥...누나가 너무 잘 먹어서...무서워서...”
“뭐얏?”
내가 소리를 질러도 녀석은 그냥 나를 탐색하듯이 본다.
불편하다.
“그냥..말 해!! 뭐가 궁금해?”
“.............................”
녀석이 아무 말이 없다.
“왜?”
“토요일 9시까지 왜 밥도 안 먹었어? 그리고 왜 혼자야?”
열심히 먹었던 밥이 자꾸 목구멍 위로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두세 번 삼켰는데도 계속 찌개 국물이 식도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입을 막고 정신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손이 축축하다. 이미 손가락 사이로는 역주행한 국물이 흐른 듯하다.
결국 변기 속으로 찌개와 밥알들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을 내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역시 너무 많이 먹은 거야...
입을 물로 대충 헹구고 화장실 문을 여는데 바로 앞에 녀석이 서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뭐야?”
“누나!!!”
“왜?”
“말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무슨....”
“그 놈은...왜...없어?”
“여기가 내 집이지...그 사람 집이냐?”
“...싸운....거야?”
녀석이 나를 뚫어질 듯 본다.
이러다 녀석 눈에 얼굴이 뚫릴 것 같다. 저 자식이 하여간에 버릇을 잘못 들여놔서!!
짜증이 나서 녀석을 밀치고 물이라도 마시려고 두 세 걸음 옮기다가 갑자기 내 몸이 확 꺾였다.
“아얏!!!”
녀석이 내 팔을 확 잡아서는 벽으로 몰아 세웠다. 이 자식이!!!
“야!! 이거 안 놔!!! 죽고 싶어?”
짜증나게 이 자식까지 왜 이래?
“싸운 거야? 대답해!!!”
“.....................”
“대답 안 하면...나도 내 마음대로 한다!!!”
“죽고 싶냐? 정말?”
녀석이 손이 내 턱을 잡아 쥔다. 녀석의 손가락이 내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다.
“뭐야!! 너!! 너무 굶은 거냐?”
“어차피...누나..상관없잖아...느끼지도 못하는데 굶은 애 하나 살린다 생각하지...”
“뭐야?”
이미 녀석의 입술은 내 입술을 스치고 있다.
“잠시만...희연이라 생각할게.”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그대로 내려앉는다. 녀석은 내 입술 전부를 그대로 먹어버린다. 내 아랫입술을 자신의 입 안으로 빨아대다가 다시 윗입술까지 입술 안으로 먹혀버렸다. 숨이 막혀 와서 녀석을 밀어내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예 내 입 안으로 혀까지 밀어넣고는 도망가는 내 혀까지 잡아 채서는 얽혀든다.
“숨.......읍....막.......혀!!!!!!”
있는 힘껏 녀석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바위 같던 녀석이 겨우 내 입술에서 떨어진다.
녀석의 입술이 떨어져나간 자리가 얼얼하다.
“죽고 싶냐?!!!!!!”
짜증이 밀려온다. 이 녀석은 완전히 나를 물로 보는 거다.
호주로 어학연수간 지 애인 고프다고 하늘같은 선배를 이용하다니!! 열 쳐받아서 원,
“그러니까...말하라니까!!!”
이 녀석 정말 너무 굶었나 보다. 눈이 이글거린다. 저 야릇한 표정은 또 뭐야...희연인지 뭔지 오면 나한테 죽었어!!! 남자 친구 죽으라는 거야 뭐야, 뭐한다고 이렇게 안 돌아오는 거야?
“혹...시....그놈이랑 헤어..졌어?”
이 녀석 때문에 열받아서 궁시렁대는 와중에 녀석의 말이 들린다. 점쟁인가?
“..................어........”
“진짜야? 정말 헤어진거야? 누나 이번에 진했잖아!! 근데 정말 헤어진거야? 진짜야?”
“응!! 근데 너 내가 헤어진게 그렇게 기쁘냐?”
“어?”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희연이 없는데 나까지 애인이 있으니 그렇게 심심하더냐? 이 짐승아!!!!”
녀석의 머리를 한 대 날렸다.
금세 죽는다고 난리를 치며 머리를 안고 주저앉는다.
“너 한 번만 더 짐승짓하면 정말로 죽는다!!! 희연인지 뭔지한테도 전화할 거니까 몸사리고 있어!!! 알았냐?”
“아..진짜....비싸게 구네. 어차피 자기는 느끼지도 못하면서, 그냥 좀 대주면 안 되냐? 닳냐 닳아?”
“이게!!! 죽을라고 아예 발광을 하는구만!! 닳는다 닳아!! 입수구리 벌개진 거 안 보이냐? 더러워죽겠네!!!!”
하여간...아메리칸 놈들은 정말 싫다. 거기에서 살다 온 놈들은 죄다 싫다. 갔다 온 놈들도...거기 가서 사는 놈들도...정말...정말...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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