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Lyue
- 몸이 마음을 지배할 때
그곳에 갔다.
정신과 상담이라니...알려지면...그다지 좋을 것 같진 않은데...
소현이는 포기란 걸 할 줄 모른다.
정신과가 아니라나 어쨌다나...
레저 스포츠와 스포츠 마사지를 겸해서 한다나 어쨌다나...
이 사업을 하는 사장이 정신과 닥터라나 어쨌다나...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따고는 주로 부부 문제를 다루다가 아예 이 길로 전업을 했다던가...우쨌다던가...도대체가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대며 날 이쪽으로 데리고 왔다.
뭐..이런 데가 다 있지?
병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헬스클럽도 아니고, 또 마사지샵도 아니고...
빌딩 자체도 워낙 컸지만, 그 빌딩 전체가 희한한 알 수 없는 스포츠인지 마사지인지 피부관리인지...뭐...그런 거였다.
병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마사지 방들이 눈이 돌아갈 만큼 많았고 도대체가 여기가 어딘가라고 할 만큼 희한했다. 결국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지나가는 언니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꼭대기로 가라고 알려줬다.
10층으로 올라가니 접수처가 있었다.
참..희한한 일이지 어째 접수처가 10층인지....
간호사인지 알 수 없지만, 간호사처럼 앉아서 업무를 보던 여자가 의아한 듯이 전화를 끊고는 나를 불렀다.
“저...복도 끝 투명 문을 열고 나가면 엘리베이터가 하나 더 있거든요. 그걸 타고 한 층 더 위로 올라가세요.”
“네? 거기는 뭔데요? 거기서 상담하는 거예요? 상담은 9층에서 했었는데...”
소현이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 카운터 여자에게 물었다.
“네....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상담 내역 때문에 가끔은 이사님...아니 선생님께서 부르시기도 해요.”
“네? 그럼 누가 상담하신다는 거예요? 9층 분들과는 다른 거예요? 9층에 계신 선생님들이 정신과 전문의라고 하시던데...”
소현이는 계속 이상해하는 듯했다.
“아...그러니까......보통은 9층의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시기도 해요. 9층 선생님들 중에 정신과 전문의도 계시지만, 레저 쪽이나 피부 미용쪽 전문가들도 계시거든요. 윗층에 계신 분은 정신과 전문의로 보시면 돼요.”
“아...예...”
소현이는 그제서야 알듯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짜증이 나서 소현이를 잡아 끌었다.
“뭐야? 밑에랑 위랑 다른 거야? 위는 또 뭐야...뭐 이상한 거 아니야?”
“좀...이상하기는 한데...내 생각이 맞는 거 같아...”
“뭐가?”
“좀...희한한 일이기는 한데 나도 들은 얘기야. 미국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딴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이 사업을 벌였다고 했거든. 정신과 육체는 하나다라든가 뭐라든가 하면서 마사지나 운동을 정신과 치료에 접목시키는 인물이라던데...하여간...그 사람이 직접 널 상담하려는가봐.”
“뭐야? 비싼 거 아니야?”
“뭐...나도 모르지...보통 병원에도 원장이 직접 진찰하면 더 비싸니깐..”
“야!!! 정소현!!!!!”
“야...너무 화내지 마...내가 조금 보탤게...응? 그래도...넌...무슨 일이 있어도 이 치료 받아야 돼!!! 알겠지!! 내가 아는 불감증 부부도 여기 와서 고쳤대잖아.”
“야...너무 크게 말하지마!!”
“요즘 세상에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냐!! 그리고 넌 정말...이번에 반드시 고쳐야 돼!!! 난...정말 니가 진짜 “사랑”을 하길 바래!!!”
“사랑? 좋아하네...그깟게 어디있냐?”
소현이는 뭐라 말하려다가 입술을 깨물고는 나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데려 간다.
“난...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거야. 절대 도망치면 안 돼!! 오늘 상담비는 내가 낼 테니까 절대로 도망가면 안 된다!! 알았지?”
소현이는 거의 나를 납치하다시피 여기로 끌고 와서는 그 엘리베이터 안으로 집어넣었다.
단 한 층을 올라가는데도 무지 오래 걸리는 듯했다. 뭔 한 층이 이렇게 긴 건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다시 층을 확인했다.
12층 다음에 S라고 적혀 있는 곳에 빨갛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맞는데...”
층은 맞는데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도 이상했다. 엄청나게 넓은 미술관과 호화로운 거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러 방들 위에 팻말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팻말을 보러 걸어가니 첫 번째 방문 앞에 상담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창가로 한 남자가 서 있었지만, 유리창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 때문에 나는 그 남자의 음영만 보일 뿐이었다. 실루엣이 아름다운 남자였다. 나이가 많은 남자일거라 생각했는데 실루엣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젊은 듯했다. 약간은 마른 체격에 일단은...너무...키가 컸다...그 녀석이랑 비슷하겠는걸...내가 워낙 심하게 키 큰 남자를 싫어해서...그 녀석 외에는 내 주변에 저렇게 키 큰 남자는 잘 없었다.
책상이 있고...책상 앞에 의자가 길게 누워 있다.
책상에는 Dr. Nicholas H. Lyue라고 적힌 명함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거기에 앉으세요.”
“네?”
앉을 의자가 아니라 눕는 의자인 듯했다.
“여기요?”
“네. 거기 앉으시면 됩니다.”
“이건....”
“불편하십니까?”
“아..아니에요...”
소현이가 낸 돈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 눕는 의자에 누웠다.
“옆 협탁 위에 안대가 있습니다. 안대를 눈에 착용하십시오.”
“네?”
점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저 남자는 남자인데...햇빛을 등지고 있는 남자 때문에 난 그 남자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영화 보신 적 없습니까?”
“네?”
“일종의 정신과 상담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긴 의자에 편안히 누워서 누군지 모르는 인물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히 이 부분의 상담은 한국에서는 좀 꺼려하시더군요. 그래서 서로 모르는 채로 이야기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아...예...”
그러고 보니 정말 영화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 방법은 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인지 선생인지 상담사인지 알 수 없는 남자가 버티칼을 돌리자 주위가 다소 어두워졌다. 책상 앞에 흐릿한 불빛만 켜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안대를 하고 누우니 나름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상담 처음이십니까?”
“네? 아...네...”
“어떻게 오신 겁니까...친구분 이름이 추천인에 있는데...정소현씨 이분의 소개로 오신 겁니까?”
“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이런 내용의 상담에 대해서 특히 여자분들은 껄끄러워하셔서 다소 여러 장치를 해 봤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정소현!! 이 계집애가 뭐라고 적은 건지...이런 내용의 상담이라니...아예 불감증이라고 온동네 소문을 내기라도 한 건지...
“뭐가...가장 좋습니까?”
“예?”
“가장 좋아하는 걸 말해 보세요.”
뭐야!! 이 남자 정말 정신과 전문의 맞아? 그런 걸 갑자기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갑자기...말하라고 하니깐...잘.....”
“그냥...좋아하는 걸 말해 보세요. 아니면 서로 한 가지씩 말해 볼까요? 저부터 하죠. 돌고래!”
“아....돌고래...저도 좋아요.”
“그렇군요. 그럼, 자연스럽게 돌고래부터 시작하죠. 또 뭐가 좋죠?”
“아......그랑 블루....”
“코발트 빛 하늘...”
“아....................”
“왜 그러죠?”
“제가 좋아하는 거라....”
“바다와 하늘과 푸름과 돌고래가 좋군요...맞습니까?”
“네.....”
“또 뭐가 좋습니까?”
“아...커피 한 잔 하고 싶네요. 푸른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발코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곳에 혼자 있고 싶나요?”
“네. 혼자서 그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혼자 있는데 행복한가요?”
“네. 방해받지 않아서 더 좋아요.”
“자주 바다에 가나요?”
“그러지는 못해요. 바빠서...”
“그래도 남자 친구와 가끔 바다를 보러 가진 않나요?”
“아...그러기도 했지만...”
“그러기도 했지만? 했다...입니까...한다 입니까?”
“....................했다...예요...”
“그렇군요. 그럼...그 가끔 남자친구와 바다를 보러 갔을 때, 그 때 하늘과 바다와 커피가 있는 그 곳에 남자친구가 함께 있으면 좋나요?”
“.....아니요....”
“그럼...그 남자친구 말고 다른 멋진 남성이 있으면 좋을까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뭐...그런 사람과....”
“음....그 순간에는 싫을 것 같아요.”
“왜...싫을까요?”
“그건......그러니까....방해 받고 싶지 않아요. 좀...귀찮기도 해요...”
“뭐가 그렇게 귀찮나요?”
“그냥...그게...자꾸...나 혼자 두지 않고...귀찮게 하니까요.”
“귀찮게 한다...라? 혹 자꾸 당신에게 터치를 시도하나요?”
“..............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싫어요?”
“그게....”
“어떤 느낌이에요? 그 남자의 손길은?”
“그냥...귀찮고, 싫어요.”
“잠자리 때도 그런가요?”
“!!!!!!!!!!!!!!!!!”
“잠자리에서 그냥 억지로 참고 있나요? 왜 싫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냥...이 관계는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자신이 정상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아!!!!!!!!!!!!!!!!!!!!!”
“그렇군요. 내가 정곡을 찔렀군요.”
“그렇다기보다는....”
“오늘 이곳에 오신 이유는 당신의 의지도 있습니까?”
“네...저도...좀 바뀌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가능하지 않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마음과 의지에 달린 거지요. 정말 바뀌고 싶다면, 당신은 나를 믿고 따라와야 합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믿고 따라야 한다고? 아....믿는다..라고?
저 말....은...싫은데....
그렇지만...그래도...왠지...저 남자의 말을 따라가 보면, 지금 나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당신은 지금 느끼지 못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 남자의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다. 꼭 저렇게 적나라하게 말해야 하는 걸까...
“마음이 가야 몸이 간다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도리어 “마음”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치기도 하지요. 어쩌면 당신은 몸이 먼저 치료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몸이 먼저라...
두정엽이 울리는 것 같다.
'강철과 트라이앵글 > 강철과 triang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 5 (0) | 2009.05.11 |
---|---|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 4 (0) | 2009.05.06 |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 2 (0) | 2009.04.30 |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 1 (0) | 2009.04.28 |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프롤로그) (0) | 2009.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