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11 - 세상을 향해 외치다
1
아무리 기다려도 미남이가 돌아오지 않는다.
난 죄지은 사람처럼....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저기 유헤이와 미남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인다.
저 여자........이상하게 뭔가 아주 많이 걸린다.
어!
미남이가 저 여자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듯이 주저앉는다.
그 앞으로 정신없이 가는데 유헤이의 외침이 들린다.
“태경 오빠, 빨리 와봐.”
왠지 심상치가 않은 목소리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미남씨 아파! 미남씨 괜찮아요? 땀나는 거봐.”
“미남아, 많이 아픈 거야?”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다.
미남아...나 때문이니.....그래서 아픈 거야?
많이......놀랬던 거야?
갑자기.......자괴감이 내 심장을 갉아 먹는다.
“고미남, 너 약 먹으러 간다더니 많이 아파진 거야?”
제르미의 말에도....미남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떤다.
“고미남 일어나봐.”
도저히 안 되겠는지 황태경이 나서서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다리에 힘이 풀린 듯하다.
“어...미남아 왜 이래?”
사장님이 들어오시다가 깜짝 놀란 듯 소리를 치신다.
일단은 아이를 집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어제의 일을 말하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어제 물 맞고 아침부터 감기 기운 있었어요.
조명 때문에 땀 흘린 게 마르면서 더 심해졌나 봐요.”
“그래? 아유...열도 있네 안색도 안 좋구....
미남아, 내가 감독님한테 얘기할게. 넌 그냥 들어가자.”
“죄송합니다.”
“미남이는 나중에 추가 촬영할 테니까...너희들은 다 찍구와.”
하아.....
미남이의 말이 또 아프게 심장을 찌른다.
죄송하다니......
왜....미남이 니가 죄송한 거니.......
나 때문이다......
아무리 사고였다 해도.......그 순간.....아이의 입술까지 욕심내면 안 되는 거였다.
강신우!! 너 때문이다!!
2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방으로 뛰어 갔다.
제르미 녀석도 많이 걱정됐는지 정신없이 뛰어 들어간다.
“열은 어때?”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니.....여전히 뜨겁다.
“아직도 열이 있네...약은 먹었어?”
“먹었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사고 이후....처음으로...아이가 내 말에 대답을 한다.
그래도.....아이가 이렇게 아픈 와중에도....
스스럼없이 내 말에 대답해 준 게....너무....고맙다.
“아팠으면 미리 얘길 했어야지. 너 때문에 오늘 촬영 다 망쳤잖아!!”
황태경은 아프다는 아이에게 도리어 버럭 거린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저 때문에 망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이상한 건...아이의 태도다.
보통 같으면 너무 죄송하다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면 아둥바둥거릴 텐데....
아이의 목소리는 완전히 가라앉아 있다.
“당연히 그래야지.”
태경이도 뭔가 찜찜한지 그러고는 나가 버린다.
“태경이 형 신경 쓰지 마. 오늘 촬영 잘 끝났어.”
제르미는 또 미남이가 상처받을까봐 괜찮았다며 연신 미남이를 안심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각자....자기 나름대로.....미남이를 신경 쓰고 있는 거다.
따뜻하게 위로하는 제르미도, 버럭 거리며 화부터 내는 태경이도......
미남이의 주변에서 맴맴 돌고 있는 나도....
모두 미남이를 자기 방식대로 신경 쓰고 있는 거다.
“아...맞다. 아까 내가 챙겨온 게 있는데.
고미남! 기다려! 내가 금방 낫게 해 줄게.
감기에 좋은 걸 내가 좀 얻어 왔어. 잠깐만 기다려!!”
제르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밖으로 뛰어 내려갔다.
갑자기 북적대던 미남이의 방안이 고요해졌다.
나와....미남이만 남은 방......
이상하게 어색한 정적이 흘러 내 입술이 바짝 마른다.
“미남아.........”
“신우 형....신우 형도 이제 가서 쉬십시오.
전....괜찮습니다. 이렇게 좀 자면 괜찮을 겁니다.”
“미남아! 지금...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신우 형........”
이 바보 같은 아이 때문에.....더 속이 상한다.
“미남아.....미안하다. 나 때문에......”
“신우 형!!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우 형 때문이라니요?
제가 바보 같이 그냥.......감기에 걸렸을 뿐입니다.”
“아까 촬영장에서.....많이 놀랐지?
그거 때문에........미남이 니가 많이 아픈 건가봐.
미안하다. 다......내 잘못이야.”
“아...아까........”
내 눈을 힘없이 바라보고 있던 미남이의 눈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다.
촬영장에서의 일이.......떠올라 버린 듯했다.
“아...아닙니다. 아까는......사고였지 않습니까?
다...저 때문입니다. 제가 비틀대는 바람에.........
신우 형이 잘못하신 게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는 빨리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신우 형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전.....괜찮습니다.”
괜찮다.......
왜......아이의 괜찮다라는 말이.....내게는 아플까........
나 때문에, 내가 아이를 너무 놀래켜서 그것 때문에 아픈가 싶어서....
그리도 가슴 졸였으면서도.....
정작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괜찮다는 말은......날.......슬프게 한다.
“미남이...넌.......정말......괜찮니?”
“예? 예. 전.......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렇구나. 미남이 넌 괜찮구나.
근데......난......아니야.”
“예?”
“난.......안 괜찮아...........”
“신우 형.....그게 무슨......?”
“일단 쉬고 있어. 차 끓여 줄게.”
의아해 하는 눈을 거두지 못하는 미남이를 그대로 둔 채 난 이상한 미소를 보여주며 방을 나왔다.
그냥........너의 괜찮다는 그 말 때문에.......
난......안 괜찮아.
미남아...........
기대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아무리 심장에 추를 매달아 놓아도......
자꾸.......기대하게 돼.
3
촬영장에서 가져온 라임으로 차를 끓여 미남이에게로 갔다.
그런데 아이는 잠에 빠진 듯하다.
“잠들었네...
이대로 두면 차가 다 식을 텐데...”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일어나기가 힘들어 보인다.
“지금은 쉬게 둬야겠네.
식으면 다시 데우지 뭐.”
다시 차를 들고 나가려는 찰나 아이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열에 들뜬 듯 자꾸만 끙끙대고 있다.
“미남아?”
안타까운 마음에 미남이를 불러보지만, 여전히 아이는 잠 속을 헤매고 다닌다.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왜 이렇게......날.....아프게 하는 거야?
미남아.......
“아프지마...미남아..
이러면 내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잖아.”
니가 아프니까.........
내가.........그냥 있을 수가 없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은.......아이가 느끼는 고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도대체.......사랑이 뭐냐?
이 괴물 같은 감정의 정체는 뭐냐?
이 사랑이라는 괴물은.........왜......이렇게 사람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게 하는 거냐......
뭐냐 도대체!!!
뭐? 그냥.....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어?
내 마음이지만......이것이 내 마음이지만........
도저히.....알 수가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은 내 마음을 잡아먹고, 내 심장을 긁어대고,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게 한다.
어제는 마치 득도를 한 성자처럼.... 지켜보는 사랑에 만족한다고 하면서.....
오늘은........마치 하이드 마냥, 내 속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일제히 아우성을 친다.
모든 것을 포용할 것처럼.....아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어줄 것처럼.....
그렇게 멋진 척 하다가......
오늘은.......내 이기심에 못 이겨......사고를 핑계로.......욕심을 드러내고 만다.
아무리 눌러도......이렇게 터져 나오는......내 마음의 한 자락을.....
미남아....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침을 삼킬 때마다.......고통스럽게 내 목을 죄어오는데.......
심장에 돌을 단 것처럼........가슴이 먹먹한데.........
너 혼자 견디게......이렇게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걸까?
너 혼자........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지켜보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미남아.......너의 사랑법은 뭐야........
난......정말 이제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4
밤이 깊어간다.
아이는 계속 잠들어 있는 것 같은데.......차라도 끓여서 다시 가봐야겠다.
식당으로 들어와 보니, 황태경이 마치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정신없이 뭔가를 챙기고 있다.
그런 태경이의 모습이 날 불안하게 한다.
“무슨 일이야?”
“고미남이 많이 아파.”
미남이가 아프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난 반사적으로 뒤로 돌아서서 뛰어 가려했다.
그런데 태경이가 내 팔을 강하게 잡는다.
“내가 돌보면 돼. 넌 신경 쓸 거 없어.”
뭐?
한참 동안 태경이의 말이 귀를 맴돈다.
황태경이.......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아이의 일인데......나에게....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너는 되는데......왜....난 안 되는 거냐........
내 심장이........그 아이의 것인데......
왜........난.......안 된다는 거냐.......황태경!!!
속에서 터질듯이 나오는 절규가.......
단.....한 마디도......밖으로 새어나올 수가 없다.
난......그런......자유도 없다.
황태경은.....그 아이의 심장을 가진 남자.......
억지로........억지로........난 다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나도 살아 있다고......외쳐대는 내 심장을 억지로 집어넣고.......
아이의 심장으로 대해본다.
강신우.....너라면 어떻겠니........
아무리.....니 심장을 차지한 그 사람이......다른 이를 사랑한다 해도........
너의 그 사람이......같이 있는 게.......좋겠지.......
그렇겠지........
아이에게........내 사랑하는 이에게는..........
강신우가 아니라......
이렇게 펄떡펄떡 살아있다고.....
너를 향해 꿈틀거리는 심장을 가진....
이 강신우가 아니라........
황태경이.........필요하다.
입술을 있는 힘껏 앙 물었다.
내 손가락이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강신우!! 너 아니다!!!!
니가 아무리 그 아이를 향해 심장이 뛰어도....
넌 아니다!!!!!
황태경이다!!!!!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쥐며.....나는.......나와......펄떡대는 나의 심장과......싸운다.
“열만 내리면 괜찮아질 거야.
갠 나한테 맡기고 넌 들어가.”
목 언저리까지 알싸한....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온다.
침을 삼킨다.
그러나......목은 여전히 칼칼하다.
황태경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아이의 심장으로.....아이의 눈으로......본다구?
쾅!!!
혼자 남겨진 식당에서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왜!!!!
난........아니야?
왜!!!!
난........아닌 거야?
왜!!!!
이렇게 미칠 듯이 심장이 뛰는데.....
내 마음이 이제 심장을 넘어 목울대 끝까지 올라와 아우성대는데........
왜!! 너에게!! 난 아닌 거니?
식탁을 내리쳐서 벌개진 내 주먹보다도..........그래도.........심장이......더........아프다.
5
곧 동이 틀 것 같은데......아직.......태경이는 미남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아이의 방문만 바라보고 서 있다.
아이가 아픈 것이 힘든 것일까?
그 아이의 곁에 갈 수 없는 내가 힘든 것일까?
아픈 아이를 지켜주는 건 내가 아니라 황태경이라는 것이 힘든 것일까?
아니면, 연인이 있는 황태경일지라도 아이 곁에 있게 해 주고픈 어쭙잖은 나 자신이 힘든 것일까?
5시가 넘어서야 황태경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괜찮아진 건가?”
한 켠에서는 마음이 놓이고, 한 켠에서는 마음이 싸하다.
“이젠 내가 괜찮아 질 때까지...조금만 더 있자.”
웃음이 난다.
괜찮지 않은 내 자신이......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으니....
이제서야 드러나는 만신창이가 된 강신우의 심장이.......
너무 초라해서.........
밤이 새도록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지켜주지도 못하고......
문 밖에서 숨죽이며 서 있었던.......강신우.........
이 녀석이.......부끄럽다 못해 처량하다.
정신없이 쿵쾅대던....내 심장을 위해
조금만 더 서 있기로 한다.
지금은.....나를......위로할 시간.......
6
새벽이 오는 걸 보고서야....
해가 뜨는 걸 보고서야....
내가 오늘 자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가 깬 걸 알면서도 난 나가지 못한다.
해가 뜨면.......어둠 속의 강신우는 사라져야 하는데......
어제의 강신우는 사라져야 하는데.......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나갈 수가 없다.
밝은 빛 속에서는 어두운 강신우는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좋은 형....강신우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너무 얇게 입었다. 아직 따뜻하게 있어야지.”
몇 번을 다짐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아침부터 미남이는 얇게 입은 채로 밖에 나와 있다.
담요로 덮어주는데 미남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 눈을 보며........내 심장은...또 쿵....하고 내려 앉는다.
왜.....이러니....미남아.....
미남이의 표정이 뭔가....있는 듯이 보이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다.
이제....묻는 것조차 겁이 난다.
그런데....저기....유헤이가 우리 숙소로 들어오고 있다.
유헤이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난 미남이의 표정부터 살핀다.
미남이의 얼굴이 뭔가 결연해 보인다.
“안 그래도 오실 것 같았습니다.”
“아...선물로 과일 사왔는데 차에 두고 왔네.
좀 가져다 줄래요 신우씨?”
차 키를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미는 이 여자.
“네...”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고 나가지만, 미남이의 어두운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과일 바구니를 식당에 놓는데 미남이 방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뛰어 들어가 보니 유헤이가 뭔가 과장되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미남씨 왜 이래요?
미남씨 물건 좀 만졌다고 이러는 건 너무 하잖아요.”
그 말에 미남이가 나를 돌아본다. 이상하게 비어보이는 그 눈빛이.....내 마음을 싸하게 한다.
미남이는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깨진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이 여자 앞에서 나약한 니 모습.........
미치도록 열이 솟구친다.
유헤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상할 텐데.....
저 여자는 저 오만불손한 태도로 아이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
저 여자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상처인데.....
저렇게 아이의 속을 상하게 하는 저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뭔지.......
아이는....유헤이를.......내가 황태경을 바라보듯이 보겠지.
가슴 아파하며, 질투하며, 부러워하며....
그렇게 아프도록 바라보겠지.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비교하겠지.
그리고는 또.....한없이 작아지겠지.
화가....난다........
내 심장을 가진.......이 아이가.......상처받는 것을.....
내 눈 앞에서 똑똑히 봐야한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난다.
저토록.....힘없이 고개 숙이는 아이의 모습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놔둬. 내가 할게. 손 베겠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청소기 좀 가져다 주시겠습니까?”
“조심해. 갔다 올게.”
청소기를 가지러 가는데 유헤이가 따라 나온다.
“미남씨 이상해요. 뭐 숨기는 거라도 있나 봐요.
제가 보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있나?”
“원래 자기 물건 허락 없이 만지는 거 누구나 싫어하죠.”
“그래두 저건 너무 과민 반응이잖아요.”
“저한테 저런 정도면, 신우씨한테 뭔가 감추는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찜찜하지 않아요?”
“전, 상대방이 감추려고 하는 거 애써 들출 맘 없어요.”
“기분...안 나빠요?”
“사정이 있겠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면 기분 안 나빠요.”
이 거만한 여자에게 확 질러주고는 바로 청소기를 찾으러 갔다.
가면서도 열이 점점 차오른다.
이 여자는 모른다.
미남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자기 물건을 건드렸다고 화낼 미남이가 아니다.
도대체.....무슨 일로....미남이를 이리도 갈구는 거지?
분명....저 여자와 미남이.....뭔가 이상하다.
혹시.......아는 건가?
청소기를 가지고 들어오니 이번엔 제르미를 붙들고 실랑이다.
저 여자.....분명 문제가 있다.
자기가 사랑한다는 남자를 가졌으면서, 도대체 무얼 더 바라는 건가?
5살짜리 꼬마가 자기만 바라보라며 떼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밖에 태경이 온 거 같은데요.”
제발 좀 한 사람에게 집중하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마음으로....
난...냉정하게 여자에게 쏘아 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저 여자....자신이 가진 걸 감사할 줄 모르는 건가......
아님.....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건가.........
뭔가......이상하고 찜찜하다.
7
“고미남! 잘 하구 와. 끝나고 축하 파티 해 줄게.”
“긴장하지마.”
“긴장해! 고미남”
드디어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시간......
미남이를 향해.....우리는 우리 나름의 축하법으로 아이에게 격려를 불어 넣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런데....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슬퍼보이는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려.....
아이의 뒷모습을 자꾸 보게 한다.
이상하게 불안한 하루다.
괜찮은 건지.....
왜 그런...아픈 표정을 한 건지....
하루종일.....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정말.....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미남이가 없어졌다니?”
“마실장님이 찾는데 없대! 전화두 안 받는대.”
마실장님이 제르미에게 전화를 해서 미남이가 없어졌다고 했단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잖아. 무슨 사고 났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내 말에 제르미가 불안해 한다.
제르미의 말을 들으며....나 역시 불안해진다.
“일단 우리라두 거기 가 있자.
만약 고미남이 거기 안 나타나면, 우리라도 있어야 수습이 돼.”
황태경은 역시 냉철하게 판단한다.
뒷수습까지 생각하고 있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에는 이미 불이 꺼지고 뮤직비디오가 곧 상영될 것 같다.
“난 아무 것도 안 보여서 찾을 수가 없어.
고미남 좀 찾아.”
황태경의 말이 내 뒤통수를 때린다.
고미남을 여기에서?
그럼 황태경은 이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건가.....
“무슨 소리야?
고미남이 여기 있어?”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찾아볼게. 형”
“여자를 찾아.”
“여자?”
“아이보리색 코트에 분홍색 치마를 입은 앨 찾아야 돼.”
“고...고미남 찾으라며?”
“고미남이 그 여자야 .
설명할 시간 없어.
걔 찾아서 여기서 나가야 돼.
난 밖을 찾아볼게.”
제르미와 황태경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태경은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거다.
여자임을 밝히려고 한 것인가.
왜......무엇 때문에?
황태경과 유헤이 때문에?
“형...고미남이...왜...그 여자야?”
“설명할 시간이 없다잖아.
일단...찾자!”
지금은 나 자신도 혼란스러워서 제르미에게 어떤 말도 해 줄 수가 없다.
녀석에게 아무리 미안해도....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황태경은 아이가 분명 이곳에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가 여장을 하고 이곳에 왔다는 건...
자신이 여자인 걸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는 건데.....
아이는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등장할 거다.
그렇다면?
나는 중앙 무대 쪽으로 뛰어 나갔다.
바로 그 때 황태경의 목소리가 행사장 전체를 울려댄다.
“안 보이는 데 있지 말랬잖아!!!”
갑자기 불이 켜졌다.
중앙 스테이지로 나오는 복도 끝에 황태경이 보인다.
그리고 나와 황태경 사이에 여자 옷을 입은 아이가 보인다.
아이의 얼굴은 황태경을 향해 있다.
어떤 표정을 하는지, 어떤 모습인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황태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보지 않아도...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내가....할 수 있는 일을......해야 한다.
적어도......아이가 덜 상처받을 수 있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내가 이 모든 것을 막아야 한다.
여전히 황태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팔을 확 잡아 당겼다.
아이는 놀란 듯이 내 품으로 안겨 왔다.
그리고는 아이의 얼굴을 내 가슴 속으로 파묻었다.
“허억!! 뭐야!!!!!!!!”
“고개 한번 들어주십시오!!!”
사방의 외침들이 들려온다.
황태경과 눈이 마주친다.
황태경을 심장에 담은 여자를....지금 내가 안고 있다.
그런데.....황태경의 눈이 이글거린다.
황태경!! 넌....지금 어떤 눈으로 나와 이 아이를 보고 있는 거냐?
왜.....니 여자를 바라보듯이....이 아이를 바라보는 거냐?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유헤이 역시 놀란 듯 보고 있다.
황태경...넌 지금.....두 여자 모두.......힘들게 하고 있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아이를 위해서......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을 수 있는 일을......해야 한다.
적어도, 황태경과 유헤이 앞에서....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이 아이를......온몸으로 막아 낼 거다.
이제.......내가 할 수 있는 말을.....하자.
“제 여잡니다.
그 동안 말 못했던....제 여잡니다.”
아......근데.........
내 여자라는 말을......감히 내 입으로 하고 나니........
심장이 그 말 앞에서 터져 버린다.
나도.....몰랐다.........
아이를 위해....아이를 내가 온몸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던진........이 한 마디가.......
이렇게....내 심장을....터져 버리게 할 줄......정말 몰랐다.
말이......밖으로 내뱉는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말이 되어버리는 그 순간.....
말은....형체를 가지며 세상을 향해 달려가 버린다.
그 말이 세상을 향해 선포되는 그 순간.........
관념은 현실이 되고,
숨겨둔 비밀은 진실이 되고,
처절했던 마음은 눈으로 보이는 행위가 된다.
그래.....말하고 싶었다......
널 사랑한다고.....
넌 내 여자라고.......
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상을 향해서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야.....그게 아니야.....
내 여자라고........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냥.......내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그 말이라도 해 보고 싶었어..
사람을......마음에 품는 게......죄는 아니니까.....
사랑하는 게.....죄는 아니니까......
그 마음...한번쯤....이렇게 세상을 향해 외쳐도.......
그 정도는.......그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니니.......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도.....내 심장에 한 사람을 담았다고 보여주는 것도........
죄가 되는 거니...........
날 봐달라고.......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
니 마음에....내가.....들어가겠다고.....그런 욕심 부리는 거 아니잖아.
그냥.........내 마음이 소리쳐.
그냥.........내 심장이 소리쳐.
나......이 사람만 보고 있다고.......
내 눈엔 너만 보인다고.........
넌.......내 심장이라고........
뛰지 않았던 내 심장을.....살아 있게 만든.....뛰게 만든.....유일한 사람이라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너....때문에...나......살아 있는 것 같다고.......
사는 것이 뭔지.....알게 되었다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너 때문에.....내 심장이 뛴다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제....여잡니다. 그 동안 말 못했던 제 여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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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생각보다 좀 많이 깁니다.
이리저리 구질구질...자꾸 적어버려서 양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너그러이 읽어주시길.......
<신우 이야기 11>은 <미남이시네요 10>을 바탕으로 했고,
파란 글씨체는 원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신우 이야기 10>에 제가 뻘짓을 하는 바람에 회가 달라져 버렸네요.
오늘도......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남텔존 소설게시판 댓글>
달래 | 글 너무 좋아요~ 진짜 신우속마음을 보고있는듯.. 님 능력자!! ㅋ | [2009-11-24] | |||
몽이삐삐 | 뻘짓이라뇨.. 얼마나 고마웠던 씬이었는뎅.. ㅠ.ㅠ.. 10회.. 정말 많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읽다보니 사진이며 대사며, 님의 글이며 넘넘 맘이 아파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당.. 울 신우 맘이 너무 이해가 되는데, 이해되는만큼 더 속상하네여.. 엉엉엉.. 신우야, 니 가슴에 달아놓 은 추를 내려놓으렴.. ㅠ.ㅠ.. | [2009-11-24] | |||
파란바다 | 신우야!! 마지막까지 아련아련하면 ㅠ.ㅠ 누야는 잠을 못잔다. | [2009-11-24] | |||
수 | 드디어 10회를..고마워요. 그랑블루님~~ | [2009-11-24] | |||
바다해 | 기다리고 있었어요.. 신우의 상황이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요..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 [2009-11-24] | |||
eann | 우아..정말 그랑블루님 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우가 정말 저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짠하면서도 아프네요. 신우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덧붙여 그랑 블루님 글 언제나 최고예요!! | [2009-11-25] | |||
ru | 그랑블루님.... 그랑블루님.... 오늘은... 정말... 이리도...ㅠㅠㅠㅠ.. 그동안.. 피를 철철 흘리면서 갈기갈기 찢어졌던 신우의 심장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절절하게 전해주시는군 요..... | [2009-11-25] | |||
ru | 안길어요.. 절대로!!! 안깁니다!!!..... 읽어 내려가면서... 오히려..그동안 아픈 신우를 보 면서 먹먹하게 가슴을 막고 있던 고통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답니다......ㅠㅠ... 정말 짝 사랑 안해본 사람은..........모르는 고통이죠... ㅠㅠ | [2009-11-25] | |||
ru | 정말..마지막의 '제 여자입니다. 그 동안 말 못했던 제 여잡니다'.. 저 대사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어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까........ 그랑블루님이 아니 었다면...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그냥 먹먹하기만 했을 겁니다... (댓글이 주구장장 이라 죄송 (__)!! 합니다...) | [2009-11-25] | |||
Phoenix | 저역시 그랑블루님의 글을 애타게 기다렸습 니다. 기어이 저를 울리시는군요 ㅠ ㅠ.... 저는 신우이야 기 버전으로 이 미남 이시네요 번외편을 만 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하고 싶답니다. 그랑블루님 버전 말이 지요 ......이렇게라 도 해서 신우의 깊고 깊은, 그러나 표현하 지 못해 더 뜨겁고 아 픈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ㅠㅠ | [2009-11-25] | |||
Phoenix | 중간중간 나오는 대본 들을 보면서도, 새삼 신인이지만 우리 신 우=용화군의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 었습니다. 물론 누군 가 가르쳐 주더라도, 그 것을 온전히 자기 의 몫으로 표현한 것 은 신우 그자체가 용 화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방문 밖에 밤새 서있던 신우.... 정말 제가 본 장면중 가장 슬펐던 ㅠㅠ.... | [2009-11-25] | |||
얼음연못 | 신우는 너무 멋진사람.. 하지만... 너무 아파서 내 마음까지도 아픈듯...ㅠㅠ | [2009-11-25] | |||
리아니 | 감사하다는 말 밖엔 그랑블루님께 드릴 말씀이 없네요. 신우 마음속을 이렇게 그려주셔서 감 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 [2009-11-25] | |||
신혼새색시 | 아..정말 신우의 마음이 절절합니다..가슴아픕니다..^^ | [2009-11-25] | |||
이정일 |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말이 되어버리는 순간 말은.. 형체를 가지며 세상을 향해 달려가버린 다... 그랑블루님 생각과 말씀에 적극동감합니다... 그렇게라도 신우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랑블루님께 감사의 마음 전할뿐.. ^^~ | [2009-11-25] | |||
푸른 하늘 | 너무 슬펐어요. 말도 하지 못했던 신우의 마음이 이리도 절절히 다가올 줄 몰랐네요. | [2009-11-25] | |||
하늘물고기 | 그랑블루님 글을 보고나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우리신우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 겠어요.. | [2009-11-25] | |||
qkqh | 선물 받은 기분으로 아주 잘 읽고 갑니다. | [2009-11-25] | |||
돈키호테 | 정말,,,꼭,,,신미로 이어주세요!비록 드라마에 맞쳐쓰는것이지만,,,신미로 가게 해주세요,, | [2009-11-25] | |||
*라니* | 미남 소설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 제가 최고로 좋아합니다!! | [2009-11-25] | |||
free1017 | 소설게시판이 생긴줄 몰랐네여~^^ 항상 잘 보고있답니다~~ | [2009-11-25] | |||
하얀나라 | 그랑블루님 소설에 약타셨나요ㅜ.ㅜ 중독쵝옵니다~~ '가락국 이녹'편도 날새는줄 모르고 넘잘 읽었답니다!! | [2009-11-25] | |||
그랑블루 | ㄴ 앗~ 하얀나라님....설마 <가락국의 이녹>을 이번에 읽으신 건 아니죠? 설마 날새며(?) 이 번에 읽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만약 이번에 그 많은 걸 다 읽으셨다면...저....지금...완전 깜놀중입니다 @0@ | [2009-11-26] | |||
돈키호테 | 다음편이 언제 나올까요,,매일매일 출석하고 있는데 오늘은 안 보이네요,, | [2009-11-27] | |||
루핀 | 항상 눈팅에 추천만 했었는데...^^;;;; 이번편은 정말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네요....ㅠㅠㅠ ㅠㅠ | [2009-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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