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16 - 하늘과 바다, 그리고 노을
1
옥상이 시끌벅적해졌다.
언제 유헤이가 난리를 피웠냐는 듯이 모두들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그 사이에도 아이는 계속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런 아이를 향해 미소를 띄워 준다.
나...이제 괜찮다고....
이 정도쯤 강신우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담아 웃어준다.
“어~~ 형!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되게 되게 매운 거...어때? 태경이 형?”
어떻게든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는 제르미의 노력이 눈물겹다.
“난 괜찮아. 신우, 넌 어때?”
태경이까지 나를 신경쓰는 듯하다.
“나도 괜찮아. 미남이는?”
“저두요.”
“그래? 그럼 다 됐네. 다 나가자!!!”
제르미가 태경이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고는 끌고 내려간다.
아이도 제르미를 따라 내려가려는데 내가 아이의 손을 잡아 세웠다.
“어, 신우 형?”
“미남아,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예. 뭐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위로가 되어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든 좋습니다.”
“나랑 같이.....부산에 내려가 줄래?”
“부산에요?”
“응. 아무래도 부모님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
“아...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 하나 때문에 신우 형도, 신우 형의 부모님께도 큰 폐를 끼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우 형.”
아이는 또 그 벌서는 표정을 하고 있다.
“미남아, 괜찮아.
그러니까 미안해하지마.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같이 가는 거니까
내가 도리어 미안해.”
“신우 형......”
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 내 표정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고는 혼자서 먼저 내려 왔다.
그래 어쩌면 나를 위한 마지막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2
마실장님이 미남이와 날 공항으로 태워다 주셨다.
“신우야, 진짜 미안하다. 진짜 이틀은 주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할 수 없죠, 뭐.
어차피 일찍 내려가니 오늘 올라오면 돼요.
미남이도 덜 힘들 수도 있고....”
“그래...진짜 미안하다. 이거참 스케줄이 갑자기 꼬여버려서...나 참....”
마실장님은 뭐가 그렇게 미안하신지 한참을 그러고 계신다.
겨우 다독여서 보내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온다.
발신자에 아버지....라고 찍혀 있다.
“미남아, 여기 잠시 있을래?
전화가 와서....”
미남이를 근처 벤치에 앉혀 놓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전화를 받았다.
“첫 비행기냐?”
“예.”
“그 애도 같이 오는 거냐?”
“예.”
“그래, 와서 말하면 되겠지만, 어쨌든 앞으로 그 일은 그만 두고 내 일을 돕다 보면 이까짓 어린애 장난 같은 스캔들 따위 금방 없어진다.
그러니 그런 줄 알아!!“
“아버지! 어린애 장난이라뇨?”
“너 설마 진심은 아니지?”
“제가 이런 일을 마음도 없이 벌일 것 같습니까?”
“강신우!!!”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한숨을 몇 번 쉬시며 목소리를 가다듬으신다.
“어쨌든 와서 얘기하자!!”
달칵.
한참을 끊어진 전화를 붙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에겐 그저 어린애들의 불장난 같은 거에 불과하다.
그것 때문에 아들의 심장이 어떤지, 가슴이 지금 어떤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심장이 꽉 막혀 온다.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난 그런 아이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며 아이의 옆에 앉는다.
아이의 옆에 앉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벌써 위로를 받고 있다.
“신우 형,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아니야. 아무 일도.....”
“얼굴빛이.....안 좋으십니다.”
“그냥.....잠을 못 자서 그런 걸 거야.”
아버지의 말이.....계속 가슴에 남는다.
괜히....아이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아버지 성미에 아이에게 뭐라고 할 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시는 그 말에 난 다른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어머니에게 이 아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 마음을 온전히 가진 아이라고.....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다른 걸 보지 못했나 보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분증 검사해야 되니까 따로 들어가야 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 전 여자 옷 갈아입구 따라가겠습니다.”
아이와 난 다시 신데렐라의 시간이 된다.
12시가 되면 펑 해버리는 신데렐라의 시간.
내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또 다시 그 시간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힘들다.
사람을 가슴에 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버지 앞에서 아이를 꼭두각시처럼 세워두는 것도 견디기가 힘들다.
아이는 그 모진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
강신우! 이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봐야하는 거 아니냐!
언제까지 동화 속에 파묻혀 고백을 했네 안 했네 그러고 살거냐!!
“미남아, 부산 가면, 우리 진짜라구 얘기 할까?”
“예?”
“넌 사실 여자잖아. 너랑 나랑 정말로 사귀면, 앞으로 날 기사 진짜가 되는 거잖아.”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다.
“신우 형......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에게 널 처음부터 좋아했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다른 이를 마음에 품은 아이에게 너를 처음부터 품었다고 말한다면 넌 단호하게 마음에 품은 이가 있다고 말하겠지.
지금처럼,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내가 너랑 같은 조건이어야 하겠지.
지금 당장 내 심장의 무게를 너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겠지.
내 마음이 너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내 마음을 듣더라도 니 마음이 무겁지 않게, 그만큼만 이야기할게.
“나도 너도 봐주지 않을 사람들 놔 버리고, 너랑 나랑 새로 시작하는 거 어때?”
그래.....말했다. 시작!
동화가 아니라 이제 리얼 타임이다.
“시작이라면...?”
“나를 좋아해 줄래? 나도 널 좋아해 줄게.”
정말 오래 걸린 고백.......
이런 곳에서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적어도 못 알아듣는 동화의 시간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에 고백했으니 되었다.
“한 번에 마음을 다 내놓으라구 하는 게 아니야.
조금씩이라도 나에게 마음을 내 줄 생각이 있다면 그게 시작이야.”
시간이라는 것이 마음을 조금씩 열어줄 수 있을까?
아주 조금씩 시간이 흘러가면, 그 흘러간 시간만큼 마음이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부터 좋아했다는 말 대신......다른 말로.....아이에게 고백한다.
“나는, 시작했어.”
아이의 눈이 심하게 흔들린다.
나의 시작만으로도 이렇게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더 큰 고백을 아직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먼저 들어갈게.
너두 시작할 생각이 있으면 내 옆으로 와.
기다릴게.”
당황한 듯한 아이를 내버려두고 난 혼자서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시작이라.......
아이는 나의 시작을.......새롭게 마음을 여는 것으로 알겠지.
내게 시작이란......마지막을 향한 준비일지도 몰라.
결말을 알면서 달려가는.....어리석은......준비.
마치 뜨거운 불 속으로 뛰어 드는 나방처럼.......
타들어가 죽을 걸 알면서도 그 불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처럼.....
나도 지금.....시작이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아이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난 혼자서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다.
내게 위로를 주던 아이의 자리는 비어 있다.
뭘 기대하는 거냐? 강신우!
“오지 않을 줄은 알았어. 그래두 난 시작했다고 말 했으니까, 그걸로 됐어.”
그래 그걸로 되었다.
적어도 시작했다고 말했잖아.
그러면 된 거야.
어차피 아이는 오늘 안 데려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욕심에 아이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를 아버지 앞에서 온갖 상처를 입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이를 어머니께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머니 앞에서 남자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아이에게 고백이라는 걸 했으니,
적어도 난 이미 시작했다고 말했으니,
그러니 어머니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내 심장을 가져가 버린 한 여인이 있다고......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3
“어머니? 어머니? 저 왔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지만 계시질 않는다.
“신우 군 왔구나. 사모님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몰랐어?”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머리가 멍해진다.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어디가....아프신 거예요? 또 다리가 안 좋으신 거예요?”
당황한 내 물음에 대답한 건 아버지였다.
“뭔 큰일이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
네 어머니 집에 계시면 계속 더 아픈 듯해서 병원에 보냈다.”
“하아......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다는데, 그게 큰일이 아닙니까?”
“네 어머니 겨울철에....흐음.....좀..... 몸이 안 좋잖아.
그래서 통증도 덜 겸, 병원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할 겸, 잠시 입원한 거야.
호들갑 떨지 마.”
“아....그러셨습니까?
어머니, 집에 계시는 걸 제일 좋아하는 거 아시면서 아프다는 핑계로 또 보내셨습니까?
그렇게 어머니가 귀찮으셨습니까!!!!”
쫘악!!
“이게 어디 애비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볼에 불이 이는 듯하다. 그러나 가슴 속에 더 큰 불이 인다.
“참....대단하십니다. 아버지!!
어린애 장난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그 어린애 장난이란 거에 저 목숨 걸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아닙니까?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뭐야! 이 자식이!!!”
난 그대로 밖으로 뛰어 나와서 택시를 불러 탔다.
“XX대 대학병원으로 가주세요.”
택시에 앉아서도 속이 타올라 온다.
속에서 불이 이는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서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마실장님이다.
“예. 마실장님.”
“어...신우야, 어떻게 된 거냐?
미남이가 왜 여기 있어?
뭔 일 있었어?”
“아니요. 별 일 아니에요. 그렇게 됐어요.
저 혼자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래? 미남이한테 물어도 별 말이 없고....”
“참, 마실장님, 저 하루 더 있다가 가야 될 것 같아요.”
“뭐? 왜?”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셨어요. 그래서 하루라도....제가 곁에 있어드리고 싶어서요.”
“뭐야? 입원? 괜찮으신 거야? 그래, 그럼 그래야지.
내가 어떻게든 스케줄 뺄 테니까.
근데 괜찮으신 거야?”
“예. 그냥 지병 때문에 겨울만 되면 도져서...걱정 마세요.”
“어..그래 다행이다...아 잠깐만 신우야, 잠시만 들고 있어.”
“아...예.”
“미남아.....언제 들어왔어?”
아이가....역시 숙소로 돌아갔구나....
다 알면서도 마음은 또 한번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참...신우는 하루 정도 더 있다가 와야 된대.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셔서......”
아......저 얘기는 안 하시는 게 좋은데.....하아.......
“참, 태경이가 아까부터 너 찾더라.
같이 들어온 거 아니었어? 아까 분명 태경이 차에서 내렸잖아.”
같이......들어온 거?
그럼, 공항에 데리러 왔다는 건가......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이제 시작은.....마지막이 돼 버린 거구나........
“아...신우야, 미안하다.
미남이가 방에 들어와서.....
어쨌든 신경 쓰지 말고 내일 올라와.
어머니 옆에서 간호 잘 해드리고....”
“저..마실장님. 어머니 아프신 얘기.....미남이한테 하지 마세요.”
“어? 어...그래.....알았어. 걱정마.”
심장이 자꾸 서걱거린다.
어머니 때문인지, 아이 때문인지.....나도 알 수가 없다.
결말을 알면서 시작하는 건.......
정말 핏줄 탓인 걸까?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내가 시작을 말했던 그 때에 넌.....태경이에게 시작을 말했던 거니?
너와 나의 다른 점은........
내 마음을 가진 이는 그 시작을 돌아봐주지 않았는데,
니 마음을 가진 이는 그 시작을 돌아봐줬다는 거......
그것이겠지.
이제.....어머니께 가서 사랑하는 이가 있다고.....
심장에 가득 품은 이가 있다고 말씀 드려야 하는데......
그 사람이 다른 이를 품었지만, 괜찮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자.
조금만.......아주 조금만......다독이고 들어가자.
4
창밖만 바라보는 어머니....
어머니는 병실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만 보고 계신다.
“누구....기다리세요?”
“어...신우 왔구나!!! 우리 아들!!!”
어머니는 마치 어릴 때처럼 팔을 활짝 벌리신다.
이렇게 커버린 아들이 아직도 어리게 느껴지시나 보다.
내가 더 크게 벌려서 어머니를 안아 드린다.
너무 가녀려서 또 다시 가슴이 서걱댄다.
“왜...이리 마르셨어요?”
“말랐니? 먹는다고 먹었는데.....”
“어머니.......”
내 목소리가 잠겨 간다.
“왜 그러니? 신우야. 무슨 일 있니?”
당신 걱정보다는 아들 걱정부터 우선이시다.
또 속에서 뭉클해진다.
“왜....왜.....여기 오셨어요!!”
“신우야.....”
“어머니, 병원 밥 싫어하시잖아요.
병원 냄새도 싫어하시면서....
왜...싫다고 하시지.....왜....하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짠해온다.
왜 그렇게 한결같이 한 사람만 보십니까?
왜...그렇게 바보 같이....
어머니.......
“왜냐하면.....신우야.....
이곳에선.....기다릴 수 있잖아.”
“하아...어머니....언제 아버지 오신 적 있습니까?
어머니 인사불성 되셨을 때도, 몇 번이나 까무러치셨을 때도....
한 번도 들어오시지 않으셨어요!!
아직도 모르세요? 어머니 왜 이렇게 바보 같이......진짜 바보 같이....”
기어코 목이 메고 만다.
“신우야......너....모르는구나.”
“뭘 말씀이세요?”
“집은....늘 오는 곳이니까....그 사람이 나 때문에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는 없어.
그런데 이곳은 스스로 선택해서 와야 하니까......그 사람이 이곳에 온다면, 정말로 나 때문에 오는 거잖니.....”
“그래서요? 그냥 그렇게 마냥 기다리시기만 하셔도 좋으십니까?”
“아버지가.......한 번도 안 오셨다고 생각하니?”
“예?”
“그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병실로 들어오신 적은 없지.
그러나......늘 저곳에 서 계시지.”
어머니는 창밖으로 눈을 돌리신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뿐 아버지는 보이질 않는다.
“아버지는......늦은 밤.....저기에 그냥 서 계신단다.
차마......못 들어오시는 거지...”
“아버지가 오셨다구요?”
난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병원 밖에서 서 있다가 가셨다구?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너 왜 여기 왔냐고 했지?
그래......네 아버지를 위해서야.
겨울마다 아파하는 날 보는 네 아버지 역시.....고통스러우니까.....
그걸 내가 아니까.......
그래서 이곳에 있는 거야.”
어머니는 또 아픈 당신보다 아버지를 걱정해서라고 하신다.
또....
또....
어머니는 자기 자신보다 아버지가 먼저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사랑법.......
미치도록 슬프고, 미치도록 속상하고, 미치도록 가슴 아픈....
어머니의 사랑법.......
어머니의 사랑법 때문에 난 또 고개를 돌린다.
콧잔등까지 시큰해진다.
“근데 그 아가씨는 같이 안 온 거니?”
“아......예.”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기는 하더라.
아직 시작일 텐데 부모님까지 보자고 하면 어느 누가 부담스럽지 않겠니?
당연한 거야.”
“예.........”
“신우야, 그 아가씨 어떤 부분이 좋았니?”
어머니는 또 묻지 않으신다.
좋아하느냐는 물음부터 던지지 않으시고,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이미 전제가 된 말씀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좀 웃긴 질문을 한 것 같다.
그 사람이 좋은데 이유가 있을 수가 있을까......
그럼, 언제 알게 됐어? 신우 니가 그 아가씨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언제였을까......
마음이라는 게 이 때부터다 하고 시작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이미 마음이 가버린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니까.......
그 마음의 시작은 나도 알 수가 없는 듯하다.
“언제부턴지는 잘 모르겠어요.”
“풋......그렇구나.
신우야. 너 정말......그 아가씨, 마음에 많이 담았구나.”
어머니의 말씀에 자꾸만 얼굴이 더워진다.
“정말 다행이다. 신우야. 정말 다행이야.
우리 신우가 사람을 마음에 품다니.......
세상이......조금은....달라 보이지?”
내게 세상이 달라 보이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멀쩡하던 일상이.......좀.....깨졌어요.”
“깨져?”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들이.....
좀......힘들어요......어머니.......”
어머니가 내 눈을 말갛게 바라보신다.
내 속마음까지 다 들키는 듯하다.
한참을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약간 미소를 품으신다.
“그랬구나.
우리 신우가 진짜 사랑을 하는구나.
신은 참 공평하시단다.
가장.....아름다운 선물은 가장 가슴 아픈 것과 함께 주시지.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더 뼈저리게 알게 되지.”
공평?
신이 공평하다고?
어머니는 아직도 저 타령이신가?
“하아......
어머니, 제가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적어도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요.
적어도 제가 만난 세상은......그래요!”
“그.....랬구나.......
우리 신우.......
미안하구나 이 엄마 때문에......”
“어머니...때문이 아니잖아요.
제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요!!!”
“신우야....우리 밖에 나갈까.....
요즘은 해가 빨리 떨어져서 지금 나가면, 일몰을 볼 수 있을거야.
해가 바다로 내려가는 걸.......보고 싶구나......”
어머니가 이 병원을 늘 고집하시는 이유는 이거 한 가지다.
5동 7층 어머니 병실에서 늘 바다를 보실 수 있는 거, 그리고 그 바다로 해가 담기는 걸 보실 수 있는 거........
그래서 이곳이 늘 마음이 편하다 하신다.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어머니가 계신 5동은 이 병원의 여러 동들 가운데 가장 높다.
옥상에서는 바다가 훤히 다 보인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에게 숨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니....오늘은...좀 가까이 가고 싶어.
아래로 내려가서 바닷가 근처까지 가보자.”
“추운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오늘은 우리 신우도 왔으니까......
내친 김에 송도 해수욕장까지 가볼까?”
갈 때는 해가 있어서 그나마 낫겠지만, 아무래도 돌아올 때를 위해 집에 전화를 해서 차를 불러 두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나왔다.
병원 쪽이 언덕이라 워낙 높아서 바다는 어느 쪽에서든 보인다.
다행히 그리 춥지는 않았다.
지척에 바다가 보인다.
점점 바다가 가까워진다.
“정말 가까워보이는데 또 이렇게 막상 가보면 의외로 멀어.
손에 잡힐 듯한데 막상 가보면 가도 가도 손에 안 잡혀.”
어머니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
바다를 말씀하시는 걸까......
사람을.....그리운 사람을 말씀하시는 걸까.......
드디어 고요한 모래사장이 드러난다.
“진짜......오랜만에 와 보네.
만질 수 있는 바다는.......”
그 말씀에 자꾸 마음이 서걱댄다.
“신우야, 그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야?”
“아이..... 같아요.”
“그렇구나......”
“실수도 잘 하고, 어설프고, 순진하고, 착하고.......”
“그리고?”
“그리고.......마음이 쓰여요.”
“왜?”
“감싸 줘야 할 것 같고, 지켜주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옆에 계속 있어 줘야 할 것 같고.......그래요.”
“그랬구나.....”
“근데......어떨 땐......바보 같이 착하기만 한데, 그런데도 굉장히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사람을 바라보고.........
그래서 저를 반성하게 해요.”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신다.
그래요, 어머니.
아이도 어머니 같은 미소를 내게 지어줘요.
“때로는........
그 아이도 어머니 같은 미소를 지어요.”
그래서.......마음이......아파요.
“가슴만 두근거린다고 했다면, 우리 아들이 아직 사랑을 모르는구나 했을 텐데.......
우리 아들.......
진짜.......사랑을 하는구나 싶네.....”
“그래서.......
그래서.......”
갑자기 목이 메어온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신다.
“그래서.......어머니를.......
이제야........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니?”
“참.......그 아이도 종교가 있어요.
어머니랑 조금은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성당을.......다닌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구나. 비슷하네.
처음........마음을 고백할 때, 선물은 했어?”
선물.......
하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어디까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어머니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그런 말씀을........드릴 수 있을까........
“.......예.”
“....구...두 였니?”
어머니는 나를 너무 잘 아신다.
그래서 그것이.......지금....날 힘들게 한다.
어머니는........어느 틈에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살피셨을 것이다.
“........예.”
“그래......그 아가씨.....참 좋았겠구나.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다음엔 꼭 보자.”
해가.....서서히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가 마치 해를 먹어버리는 듯이 동그랗던 해가 조금씩 옆으로 길쭉해진다.
하늘을 온통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며 해는 그렇게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온 바다가.......심연의 푸른 빛을 띠고 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푸른 빛........
어머니의 말씀대로 한다면 신의 선물........
“신우야!”
“예.”
“참 다행이지?”
“뭐가요?”
“저 바다 말이야. 저 바다와 저 일몰의 풍경.......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지?”
“어머니......”
“저렇게 매일 매일........
선물처럼 또 다시 볼 수 있어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내일도 해가 뜰 거고, 또 이 아름다운 풍경이 또 벌어질 테니.......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볼 수 있을 테니.......
참 다행이지 않니?”
어머니....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나는 내뱉지도 못하는 말을 가슴으로만 해댄다.
“사람들은 해가 뜨는 것만 대단하다고 야단들이지.
새해 첫 새벽을 연다고 야단들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매일매일......신의 선물은 내리고 있어.
매일 매일 마지막일 것 같이 아름다운.....지는 해의 풍경.
마지막까지 저렇게 열심히, 아름답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매일 매일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고......
그리고......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 주는.......
신의......선물이야.
볼 수 있는 자들에게만 주는........신의 선물........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볼 수 있는 신의......공평한 선물.......
위로........”
어렵다......
너무나 어렵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심장은 알아듣는 것 같다.
하늘과 바다와 노을이 주는........위로를........나도.....
받고 있다.
어쩌면........어머니......당신께서 주시는 위로일지도 모른다.
“이제 갈까?”
“예. 차.....불러 놨어요.”
“그래......”
차 불렀다는 말에 이미 어머니는 차를 쳐다보고 계신다.
아니.......차가 아니라 그 차 너머에 누군가를 찾고 계신다.
오지 않았을 그 누군가.......
병원에 도착해서 휠체어를 내리고 어머니를 태워드렸다.
5동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내 팔을 잡으신다.
“왜 그러세요?”
“혹시....너...아는 사람이니?”
“누구 말씀이세요?”
“저기........”
어머니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다가 숨이 멎는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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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사는 잘 끝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우 이야기 16>은 아주 오랫동안 썼습니다.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정말 아주 조금씩 써 왔던 건데 두서가 없을까봐 걱정이네요.
오늘로서 <신우 이야기> 시즌 1이 끝났습니다.
<신우 이야기> 17회부터는 시즌 2가 시작됩니다.
시점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즌 1에서는 오로지 신우의 시점으로만 이야기를 이끌어갔지만,
시즌 2에서는 인물 시각적인 시점으로 다양한 인물의 눈과 목소리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해의 말씀 하나 더 드립니다.
<미남이시네요 15회, 16회>는 제 이야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두 회는 오로지 황태경을 위한 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배우의 열연으로 제 개인적으로 무지 감동 받으며 봤답니다.
그래서 홍자매님의 <15회, 16회>를 제 뻘글로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 두 회는 이 이야기에서 완전히 제외시킵니다.
신우와 관련된 부분은 제 뻘글에서 간혹 활용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에서의 신우를 원하시는 분들은 <신우 이야기 16>까지만 보시면 될 듯합니다.
<신우 이야기 15>에 달아주신 댓글에 대한 답글을 달아두었습니다. (__)
<미남텔존 소설게시판 댓글>
신혼새색시 | 시즌2을 정말 기대 많이 해 봅니다...그랑불루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 저편에 서 뭉실뭉실 뭔가가 올라오려 합니다...감사합니다..주말 잘 보내세요...^^ | [2009-12-19] | |||
gtholic | 미남이가 찾아온건가요? | [2009-12-19] | |||
Phoenix | 습관처럼 찾아온 곳... 그랑블루님의 블로그에 매일 가면서도 여기에서 먼저 읽네요^^ 넘 감 사드려요~~~~ 블로그로 가볼께요^^ | [2009-12-19] | |||
냥이학이범이 | 미남일꺼 같은데 .. 아니면 어쩌나.ㅎㅎㅎㅎ 작가님 힘드셨겠어요. 이사하시느라.. 스토리 조 금 까먹어서 복습했다지요 | [2009-12-19] | |||
ru | ㅠㅠ 저도 일출보다는 왠지 일몰이 좋습니다... 제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게 해주거든요... 마치 하룻동안 제가 지은 잘못들을 모두 불태워줄 것같고... 편안한 저녁을 약속해주는 고해 성사처럼.....느껴지니까요.... | [2009-12-19] | |||
ru | 더 늦게 오실 줄 알았는데.. 바쁘실텐데... 잊지 않고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오늘 사진이 참 시리도록 좋네요...... | [2009-12-19] | |||
요술공주 순이 | 누굴까? 너무나 기대되네요... 그랑블루님 글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기다렸는데.. 드뎌 올 려 주셨군요.. 시즌2도 기대할께요..신미로 가는거죠? 전 신우에게서 벗어날수가 없어서 리...ㅎㅎ | [2009-12-19] | |||
Ryeong | 미남일까요? 아아.. 시즌2라니..너무 기대가 됩니다.(웃음) | [2009-12-19] | |||
사랑니 | 오늘도 맘 한켠....짠함과 깊은 생각을 품고 갑니다...계속 기다렸어요^^ 시즌2도 기대합니 다. 그런데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는 누구? ㅜㅜ 궁금해요~~~~~~ 신우 보고 싶다! | [2009-12-19] | |||
사는게 뭔지 | 공항씬에서 신우의 고백이 조금 아쉬웠는데 그랑블루님글 보니 그마음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글 많이 기다렸어요^^ 시즌 2도 기대할께요~~ | [2009-12-19] | |||
별달 | 잘 읽었습니다^^ | [2009-12-19] | |||
뜨는돌 | 그랑블루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신우형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요... 시즌2 기대하고 있겠 습니다. 꾸벅 | [2009-12-19] | |||
Young-Im Lee | 공항에서의 고백은 신우로서는 최선의 고백이었네요. 미남이를 너무 배려해요 ㅠㅠㅠㅠㅠ 근데 5동입구에서 누구를 만난 걸까요? | [2009-12-19] | |||
free1017 | 와~ 블루님~ 오랫만이네요~ 많이 기다렸는데.. 시즌1이 끝났군요~ 시즌2 기대할께요~ 마지막 장면 너무 궁금하네요^^ | [2009-12-19] | |||
하얀눈송이 | 에응?? 누규?? 와우웃~!!!! 미남이가 돌아온거?? 와우~!! 올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헤헤... 완죤 감동이에엽.... (얘 지금 뭐레니??!!) 와아아앗~! 시즌 1 끝내신거 추카 추카드려요!! ^^* | [2009-12-19] | |||
choth2 | 언제나 마음을 울리는 님의 글...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사진에 있는 바다와 하늘의 푸른빛 이 더욱 먹먹하게 하네요..... | [2009-12-19] | |||
hyang이 |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사진들이네요^^ 글도 깨방정이던 제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줘요. 정말 님 글을 좋아합니다!! | [2009-12-19] | |||
HERA | 블로그주소 찾고 다시다는 댓글.. 미남이가 온건가요..? 미남이도 신우처럼 시작을 한건가 요? 너무 궁금합니다..더이상 아픈 신우가 아니였음 합니다.. 지금까지 신우를 보면서 맘이 많이 아팠었거든요 ^^; 시즌2를 기대해 봅니다~ | [2009-12-20] | |||
오월이 |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 글이네요..님의글 첨부터 복습하다 블로그 찾아가 봤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2009-12-20] | |||
반짝반짝빛나는 | 누구인가요?... 신우 이야기는 이번편으로 그만하신다니요.. ㅜㅜ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 랑블루님 덕에 신우 맘을 더 많이 보게 된것 같아 행복했답니다 ^^ 열심히 다음편 기다릴께 요 ^^ | [2009-12-21] | |||
qkqh | 드디어 오셨군요....이사하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건강은 괜찮으신지 걱정이네요...이제까 지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앞으로 이야기는 또 어떨지...너무 기대되요...병원에 온 사람 누 구일까요? 신우의 숨을 멎게할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일듯 하네요....담편 기다릴께요..항상 건강하세요. | [2009-12-21] | |||
qkqh | 드디어 오셨군요....이사하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건강은 괜찮으신지 걱정이네요...이제까 지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앞으로 이야기는 또 어떨지...너무 기대되요...병원에 온 사람 누 구일까요? 신우의 숨을 멎게할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일듯 하네요....담편 기다릴께요..항상 건강하세요. | [2009-12-21] | |||
HERA | 복습하다 새롭게 느낀점.. 이 애기가 혹 드라마랑 같은내용으로 가는게 아니란 느낌? 맞나 요? 또.. 여긴 신우의 시점만 나오잖아요.. 왠지 여기에서의 미남이가 좋아한 사람은 신우일 꺼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왠지.. 인터뷰때 얘기에서도.. 그림자놀이하고나서..숙소앞에 서 한얘기.. 그런거 봤을때 그런게느껴졌어요 | [2009-12-29] | |||
HERA | 하하하 -_- 나 머래니!! 그냥 복습하면서 느낀거였어요. 신우이야기에서 미남이가 진짜 좋아 한 사람은 신우다!! 온실에서 운것도.. 신우가 진짜 자기맘을 모르고 태경이 얘기해서 운거 다!! 라고 ㅋㅋ ㅋㅋ 이렇게라도 신우랑 미남이를 엮어주고픈 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09-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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