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20 -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다

그랑블루08 2010. 1. 29. 02:04

신우 이야기 20 -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다

 

 

 





1




“그래, 어쩔 생각이냐? 내 말대로 그만둘 거냐?”


“예. A.N.Jell.....그만 두겠습니다.”


“정말이냐? 잘 생각했다. 그렇지.

 이제 내가 아는 내 아들로 돌아왔구나.

 그럼, 일단 당장 내려와서 회사로 들어와라.

 여러 가지 경영 수업도 좀 받고, 그 동안 경험한 그쪽 일도 사업화시키고....”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만 하고 계신다.

이제 그런 아버지에게서도 벗어나야겠지.


“아버지!!”


“그래.”


“아버지 말씀대로 A.N.Jell은 그만 두겠지만, 아버지 밑으로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공부하러...떠나겠습니다.”


“공부? 어디로? 미국에서 MBA 과정이라도 들어갈 거냐? 그러려면.....”


또 아버지는 당신 생각만 하고 계신다.

왜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리라 생각하시는 걸까.

내가 단 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 역시....어머니처럼, 아버지 말씀이라면 다 따를 거라 생각하시는 걸까.

이제...이렇게는 싫다.


“아버지, 그런 공부 말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겁니다.”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거야?”


“음악.....을 공부할 겁니다.”


“뭐?”


“소속사도 나올 겁니다. 그러니 소속사에서 돈을 빼시든 마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전 어차피 여기에 없으니 빼시든 마시든 아버지 자윱니다.

 뭐, 아버지야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돈이 되면 넣으실 테니 저와는 상관 없겠죠.”


“무슨 소리야? 음악?

 니가 왜 거기 갔는지 잊었어?

 그쪽으로 길을 트기 위해서였지, 누가 딴따라 나부랭이 짓을 하라고 했어?

 니가 배고파 본 적이 없으니, 이 따위로 제멋대로 구는 거다.

 요즘 젊은 것들은....”


“예...아버지. 요즘 젊은 것들이라 간이 배 밖에 나와서 저 하고 싶은 거 할 겁니다.

 굶어 죽든, 거지처럼 구걸하든, laundry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의 잘나신 돈, 절대로 축 내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전, 제 의사를 말씀드렸으니 아버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서울 생활 다 정리하고 저 혼자 떠날 테니

 아버지는 아버지 길을 가십시오.

 전....제 길을 갈 겁니다.

 그럼 끊습니다.”


처음이다.

이렇게.....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본 건, 정말 처음이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려댄다.

바로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이제 시간이 없다.

선전포고를 했으니, 아버지는 순식간에 손을 쓰실 거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일을 쳐야 한다.




“강신우!!! 강신우 어디갔어?

 전화해 봤어? 이 녀석 어디간 거야?”


안사장님의 목소리가 온 사무실을 울려댄다.

이미 늦은 건가?


“신우야, 너 뭐야? 난리 났잖아.

 빨리 사장님께 가봐. 지금 난리도 아니야.”


마실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사장실로 밀어 넣었다.


“사장님....”


“야!!! 강신우!! 너 빨리 말해봐.

 뭐 어쩌겠다구? 나가?

 Oh, My Goodness...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구.

 So Terrible!!!”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니..신우야...지금 그 말을 듣자는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어딜 나가? 말 좀 해봐.”


“아버지가.....뭐라고 하시던가요?”


“강신우가 A.N.Jell을 탈퇴한단다. 강회장님! 정말 단호하게 얘기하시던데....

 난 지금 심장이 벌렁거려서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가 그 말씀만 하시던가요? 제가 나간다는 그 말씀만요?”


“응? 아니....아, 그래 널 솔로 데뷔시킬 생각이냐고 물으시더라.

 내가 무슨 소리냐고, 그런 terrible한 소문은 어디서 들으셨냐고 야단야단했더니....

 알겠다고 그러시던데.....도대체 뭔 소리야? 응?”


“아버지가....저보고 그만두라고 하십니다.”


“뭐?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그럴 거야?”


“A.N.Jell은 그만 둔다고 했습니다.”


“야~~~!!! 강신우!!!! 이제 미남이까지 들어와서 대박을 치려는데, 너 지금 이러면 어떡하냐? 응?”


“죄송합니다.”


“아...물론....넌 자유계약이니까...내가 붙잡을 명목은 없지만....

 사람의 도리라는 게 그런 게 아니잖아. 우리 manner있게 생각해 보자. 응?

 우리가 한두 해 같이 봤냐? 응? 다시 생각해 봐라.”


“제가....A.N.Jell에 계속 있으면, 아버지...무슨 일을 벌이실지...모릅니다.

 제가 나가는 게 낫습니다.”


“뭐? 하아~~ 정말...강회장님 왜 그러시니.....

 대주주 중 한 분이 그러시면 안 되잖아.

 회사가 잘 되도록 해야지. 지금 이러면 잘 나가고 있는 A.N.Jell 엄청난 위기야.”


“대주주라니요? 아버지 분명 소액투자하신 거 아닌가요?”


“처음엔 그러셨지. 지금은 아니야. 한동안 엄청나게 주식을 사셨어.

 태경이보다도 지분이 많아.”


“예?”


아버지가 이 회사 주식을 사셨다는 건....게다가 날더러 A.N.Jell에서 나오라고 하시는 건.....

결국 이 회사를 먹겠다는 거였나?

새로 회사를 차리는 게 아니라, 이걸 먹겠다구?

그렇겠지. 그런 분이시지.


“신우야!!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나 이러다 crazy 해 버리겠다. 정말!!!”


“사장님. 어차피 제가 나가는 게 A.N.Jell에게도 나을 겁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든 아버지 뭔 일이라도 벌이실 겁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일을 벌이실 만큼 무모하시진 않을 테니 저만 없으면 될 겁니다.

 지금 아버지 저러시는 건, 순전히 저 때문이니까......”


“신우 니가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강회장님은?”


“경영...배우라는 거지요. 처음부터 딴따라 마음에 안 들어 하셨으니까.....”


사장님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사장님...저...종현이한테 보내주십시오.”


“뭐?”





2





정들었나 보다.

늘 겉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떠나려고 보니 굉장히....이상하다.

언제든지 떠날 마음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진짜 미남이 녀석이 다음 주면 온다니.......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나 아니더라도......괜찮을 것 같아....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의외로 짐을 싸니 단출하다.

이렇게 후다닥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버지가 움직이시기 전에 가려면 이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상념에 잠겨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


“신우야, 그만둔다면서?”


“네. 죄송해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괜찮아. 그런데...어디로 가는 거니?”


“그건....나중에.....나중에 가르쳐 드릴게요.”


“그래....그게 낫겠다.

 신우야...........”


어머니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며 한참 가만히 계신다.


“.........많이......힘들었지?”


어머니의 그 말씀 한 마디에 울컥하고 올라와 버렸다.

괜찮다고......마치 세상을 달관한 도인처럼......

그렇게 멀쩡하게 있었는데, 어머니의 단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어머니는....힘들지?라고 묻지 않으셨다.

힘들었지.......


차곡차곡 쌓여간 세월만큼 쌓여왔을......내 흔적들과 내 마음의 그림자를.......

어머니는 물어주셨다.

괜찮으냐는 물음보다......힘들었지라는 말 한 마디가 수백 마디의 위로보다 더 나의 괜찮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내 무릎 위로 뭔가가 툭하고 떨어진다.

이내 툭툭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떨어진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내 무릎이 다 젖어가도록 아무 말도 못하고 그러고만 있었다.

한참을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어머니께서 입을 떼셨다.


“신우야......엄마는 괜찮으니까......

 신우 넌,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그게 뭔지 찾아 봐.

 니 가슴을 뛰게 하고, 니 피를 끓게 하고, 니 심장을 떨리게 하는.......

 그런 일을 해.”


난 그저 마음으로만 대답해 드린다.

그러겠노라고, 아직 뭘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겠노라고....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찾아보겠노라고...그렇게 마음으로 대답해 드린다.


“신우야......그리고 미녀양은......내가 아니야.”


“...예?”


“미녀양에게서 이 엄마를 보지 마.

 그 아가씨가 아파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도, 니 책임이 아니야.

 그건.....니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거야.

 그 아가씨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야.

 그러니까......그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

 그리고.....이 엄마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지 마.

 넌......너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야.”


“예..........”


어머니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어하시는지는 알 것도 같다.

어쩌면, 강압적인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에게서 더 굴레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삶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같은, 책임감 같은 것이 커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어머니께서 뭘 좋아하실지.....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것을 어머니께서 원하시건 원하시지 않건 간에 나는 내 스스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그러한 마음을.......고미녀에게도 품고 있었던 걸까.

어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보신 걸까.......


“그리고 신우야.......

 너무 잊으려고만 하지 마.”


“예?”


미녀에 대해서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말라는....말씀이신건지.......

접을 때는 접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신지.......알 수가 없다.


“가장 쉽게 잊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니?

 고통의 시간이 추억이 되도록 만드는 거야.

 사람들은.......상처받은 일을 빨리 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

 그런데 사실은 그거야말로 잊지 않으려고 용쓰는 것과 같단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대로,

 기억이 나면 기억이 나는 대로

 슬프면 슬퍼하는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그저 그러한 대로......그대로 놓아두면 돼.

 그것이 가장 빨리 나의 시간들이 추억이 되는 방법이야.

 그렇게 추억을 품으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추억을 품는 것이........사람이야.”


추억을 품는 사람........

벌써 이렇게 아픈데.......

빨리 잊어야겠다고.......떠나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다 타들어가도록 끊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다른 말씀을 하신다.

그저 그러한 대로.......놓아두라 하신다.


어머니....그래도 괜찮을까요?

내 심장의 불이 다 타들어 가면, 그 때는.......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시간을 품게 될까요?






3




사무실에 와서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 벌써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안사장님과 마실장님께는 조용히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멤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뭔가 내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건 눈치 챘겠지만, 내가 이렇게 빨리 그룹에서 탈퇴하고 외국으로 가버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한국에서 기사화되기 전에 미국에 도착해서, 거기에서 내 입장을 이메일로 보내는 편이 나나, 아버지나, 멤버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으로 걸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연습실 앞에 내가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내가.....김유신의 말이라도 된 건가?”


피식......웃음이 나온다.

내가 언제 대단한 뮤지션이라고........대뇌의 지령 없이 무조건 반사로 연습실로 온단 말인가.

그렇게 스스로를 비웃으면서도 난 내 기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이미 기타를 잡고 줄을 튕겨 보고 있었다.

기타에서 웅~하는 소리가 내 손에서 심장까지 전해진다.

소리가......감각을 지니고 내 몸을 울리는.....이런 기타 소리가 정말 좋다.

그래.....이곳에서 같이 기타를 치고, 리듬을 맞추고........

그리고.....그리고........

절대로.....넘을 수 없는.....벽을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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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경 너에게 음악은 뭐냐?”


“.............지푸라기지.”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죽기 직전에 잡은.....마지막.....삶의 집착.

 살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잡은.......지푸라기.....”


“그렇군........

 그게......황태경과 강신우의 차이였나 보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나갈 곳이 없어서, 벼랑 끝에서 잡은 지푸라기 같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놀이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결국에는 같은 거 아닌가?”


“무슨.......말이 하고 싶은 거야?”


“강신우 너 말이다. 너도 나만큼이나 자기중심적이지.

 단지 차이라면 난 티를 낸다는 거고, 넌 굳이 티를 안 낸다는 거고........

 너나 나나 그런 면에서 인간답진 않지.

 그러나!

 강신우 너라는 차가운 인간도, 기타를 쥐고 있을 때만은 적어도 피가 흐르는 사람 같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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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내몰려서 죽기 직전에 잡은 마지막 삶의 집착이라는......

황태경의 음악.......

이곳에서....녀석의 음악을 만났다.

넘을 수 없는 벽......


“아버지 때문이냐?”


어느 틈엔가 황태경이 내 앞에 서 있다.

다....알고 있는 건가.....


“다 알고 있어. 니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거.....

 근데 아버지 때문이라면 굳이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안사장 지분이나 내 지분, 니 거랑 제르미 거 좀 합하면, 뭐......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굳이.....”


“꼭 그것만은 아니야.”


“그럼.....고...미녀....때문이냐?”


고개를 들어 황태경의 눈을 봤다.

늘.....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황태경의 눈에.....이상한....정말 이상한....한번도 본 적도 없는......그런 기색이 엿보인다.

미안....해 하는 거냐? 천하의 황태경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역시 그것만은 아냐.”


“그럼....뭐냐?”


“우리 아버지는 말이야.

 어릴 때부터 날....늘 벼랑 끝에 세우셨어.

 그리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지.

 그럼, 난 늘 뒤돌아서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갔어.

 근데.....계속 그렇게 살면 난 뭐가 될까?

 이 아이돌 그룹....계속 하고 나면.....뭐가 남을까?”


“뭐....계속 음악을 하는 거지. 다른 게 있냐?”


“그래, 황태경. 넌 늘 음악을 할 거야.

 예전에 내게 말한 대로 그렇게 벼랑 끝에서 물러설 곳 없는 곳에서 마지막 삶의 지푸라기로 잡은 음악이니.....넌 그럴 거야.

 그럼 난?

 계속 이런 식으로 살면 나중에 뭘 하지? 아이돌? 그럼, 서른이 되면? 군대에 다녀오면?

 예능인? 엠씨? 아님 연기?”


“..........................”


황태경 아무 말이 없다.

녀석도....공감하고 있다는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그걸....찾으러 가볼 거야.

 그래서 벼랑에서 뛰어내려 보려구.

 뭐가 있나.....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적어도 후회는 없겠지.”


“......혹시.....나 때문이냐?”


이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너도 느끼고, 나도 느낀.....우리의 아킬레스건이지만, 녀석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올지는 몰랐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한다.


“그래.”


“그렇군......”


“너와 같이 있을 수가 없어.”


“그 정도.....였나?”


“차라리.....예전 같으면 같이 있을 수도 있었어.

 예전처럼....마음껏 너를 조롱하며 비웃으며 때로는 질투하며......무시하며 있으면 되니까......

 너의 까칠함을 비웃어 주면 되니까.....

 니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뛰어들면 되니까......”


녀석....이상하게 상처받은 눈치다.

하아....이 녀석도...참....여린 놈이다.

그걸....참으로.....한참 후에야 깨닫는다.


“근데 말이야. 황태경.

 내가....살리에리더라. 처음 알았어.

 모차르트 옆에서 끊임없이 질투하며 괴로워하며 눈치를 보던......그 찌질이...살리에리더라구.

 알고 보면, 황태경 니가 부러웠나봐.

 솔직히.......그걸.......인정하기가 어려웠어.

 너의 천재성을........인정하는 게.....죽기보다 싫었어.

 그래서 끊임없이 너를 끌어내리려고 했어.”


황태경의 눈빛이 미묘한 빛을 띤다.

내가......이 강신우가......황태경과 같은 과인...이 강신우가.....

이런 말을 할 줄은...황태경 너도 몰랐을 거다.

내가 여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을 줄은....나 역시.....기가 찰 노릇이니....

넌 오죽하겠냐.....


“근데 말이야. 살리에리는 살리에리대로 대단한 작곡가였어.

 그가....모차르트를 질투하고 괴로워하고 비교만 하지 않았다면.....

 그도....뛰어난 음악가였지.

 근데....생각해 보면....사람들은 대부분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야.

 모두들.....2인자들로....살아가는 거지.

 근데....2인자가 나쁜 걸까......그런 걸까.......”


“강신우 니가 그걸 느꼈다면, 굳이 여기를 떠날 이유는 없는 거 아닌가?

 나에 대해서 이젠....별 생각이 없다면 말야.”


“아니야....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리 쉽게 바뀌진 않아.

 그냥....천천히 시작하기로 했어.

 너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하기로 했어.”


“인정?”


“그래. 인정. 있는 그대로의 황태경! 사람을 기죽이는 빛나는 천재성! 그걸 인정하기로 했어.

 그리고.....그런 너를 따라갈 수 없는 나를, 그리고 그런 너를 질투하는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어.

 예전엔 이유를 댔었어. 너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하면서도, 너를 계속 따라하려 하고 있었어. 그러니 결국 늘 비교만 하게 되더라.”


“비교라.......”


“지금은, 지금 내가 느끼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황태경, 그리고 그만큼 주위를 힘들게 하는 황태경, 거기다.....”


황태경이 고개를 든다.


“......고미녀의..... 심장을 가진....황태경.......”


황태경은 한참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 눈빛이 너무나 복잡해서....황태경이 어떤 마음인지....짐작할 수가 없다.

이제.....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가야 돼.”


“미국에서......시작할 거냐?”


“.......간다.”


“.......고미녀는? 안 보고 갈 거야?”


“...잘 해 줘라. 부탁한다.”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황태경의 목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그게....비교라는 게 맞다면, 나도....그런 걸....해 본 것 같다.

 나도....니가 부러웠다. 무대에서....강신우 넌 늘 가벼워보였다. 그게...부러웠다.”


그랬나.....그랬었나.....

내가...가벼워 보였었나......





4





“Aooooo 9:30분 샌프란시스코 행 탑승자께서는 **번 탑승구로 와서 boarding 수속 절차를 밟아주십시오.”


이제.....갈 시간이다.

천천히 걸어들어가는데 누군가 내 팔을 확 잡아끈다.

고미녀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 서 있다.


“너!! 너 어떻게!!!”


“신우 형...어떻게.....이렇게 말도 없이...떠나십니까?

 어떻게....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이미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태경이가....말해줬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황태경.....여튼...불가사의한...녀석이다.


“미안하다. 말 못해서......

 말하기가...좀 힘들었어. 그래서 그냥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이렇게 보니까.....좋네.”


“신우 형! 정말 너무 하십니다.

 가시면, 언제 오시는 겁니까?”


“글세....그건...나도 잘 모르겠어.

 답을 얻으면, 올 수 있겠지.”


“무슨 답 말씀이십니까?”


“답.....그냥....지금 내 물음에 대한 답.....

 내 미래에 대한, 내 길에 대한 답.....그런 거야.”


“여기에서는...안 되는 겁니까?”


“...그래.”


“왜...안 된다는 겁니까? 혹시....저 때문입니까?”


아이가......내 심장을 건드린다.

너 때문이냐구?

너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나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내가 여기에 있으면, 내 불은 계속 타오를 거고,

그러면, 너도, 나도, 황태경도 힘들어지겠지.

아니야, 내가 힘들어질 거야.

그래서......가야 돼. 여기에서는 안 돼.


“미녀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야.”


“신우 형....”


“불이 타오르는데, 그 불은 이미 지펴져서 완전히 다 탈 때까지는 꺼지질 않아.

 그래서.....열심히 태워볼 거야.

 어떤 식으로든.......끝까지 태우고 나면, 돌아올 거야.”


아이의 눈에 미안함이 눈물이 되어 흐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눈물을 내 손으로 닦아낸다.

내 손에서 촉촉이 아이의 마음이 흘러내린다.


“이제.....미녀 니가 알던 신우 형은 없을 거야.

 다음에 만날 땐.....내가 아마....많이 다를지도 몰라.”

 

아이의 눈빛이 많이 흔들린다.

그러나......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태경이에게 잘 해줘.

 태경이는......빛나고 있지만, 여린 녀석이야.

 겁도 많고, 외로움도 많고.....

 미녀 니가 많이 받아줘야 할 거야.”


“신우 형처럼요?”


“내가...그랬나?”


“네....제겐....늘 그러셨어요.”


다행이다. 아이가.....알고 있었던 거구나.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난 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많이 힘들 거야. 그래도....너 자신에게 지지마.”


아이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난.......내 심장을 두고......떠났다.






5





「ブルー バンド!!  ブルー バンド!! 」


작은 클럽을 가득 매운 사람들의 열기가 공연이 끝나가도록 식을 줄을 모른다.

점점 더 흥에 겨운 듯한 alternative에 빠져들고 있다.

밴드의 이름을 부르며 점점 더 음악에 취해만 가고 있다.


「ラストは teardrops in the rainです。

 今日も 本当に ありがとございました。」


리더의 마지막 곡 소개 후, 늘 한 쪽에서 기타만 치던 모자 쓴 남자가 간만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무심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No one ever sees no one feels the pain

teardrops in the rain


I wish upon a star I wonder where you are

I wish you're coming back to me again

And everything's the same like it used to be


I see the days go by and still I wonder why

I wonder why it has to be this way

Why can't I have you here just like it used to be


I don't know which way to choose

How can I find a way to go on

I don't know if I can go on without you oh


Even if my heart's still beating for you

I really know you are not feeling like I do


And even if the sun is shining over me

How come I still freeze?


No one ever sees No one feels the pain

I shed tears in the rain


I wish I could fly I wonder what you say

I wish you're flying back to me again

Hope everything's same like it used to be




「すごい! すごいねよ!!」


그 함성들 사이로.......무대 뒤로 내려왔다.

모두들 여전히 흥분에 들떠 있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사람만은 어떤 표정도 느낄 수 없다.


“형!! 오늘 수고했어.

 아무래도....다들 마지막 곡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 그지?”


드럼 스틱을 들고 즐거워하던 민혁이가 모자 쓴 남자를 툭툭 건드려 보지만, 살짝 미소만 지을 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다들 옷 갈아입는 동안, 남자는 혼자 밖으로 나와 클럽 뒷문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하나 꺼내 든다.

연기가 폐로 들어오자마자 머리가 혼미해온다.


「さびしい...か...(외로운 건....가.....)

 俺は 足踏みじょうたいだか....(난......제자리 걸음인건가......)

 いまだに そうか.....」(아직까지도.....그러한가......)


지나가던 일본 여자 두 명이 남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얼굴을 붉힌다.


「なに?」 (네? )


「きにしないで。」(신경 꺼.)


여자들에게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담배를 문 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하늘만 바라본다.


No one ever sees no one feels the pain

teardrops in the rain


마지막 곡의 잔상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 사이로 떠다닌다.

빗속에서 담배만 타들어간다.


さび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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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일주일에 2편을 올리네요.

괜시리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느리게 올리는데도 잊지 않고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__)

(중간에 진한 글씨체로 쓴 부분은 <신우 이야기 8 - 기다림에 믿음이라는 등불을 달아주다>에서 나왔던 에피였습니다.)

 

 

 

<미남텔존 소설게시판 댓글>

 

 

두개의보물 님 필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읽으면서 감탄에 또 감탄을 하면서 정독했답니다. 드라마 볼때 는 태경이가 넘 강해서 신우에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습니다. 님 글 속에서의 신우 는 뭔가 역동적이면서도 내면의 아픔을 깊이 간직한 ...... 강하다기보단 깊은 캐릭터랄까.. 넘 매력있어요. 모차르트에 늘 비교할수     [2010-01-29]
두개의보물 밖에 없었던 살리에리의 비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리도록 느끼는 감정... 신 우의 경우엔 좀 다르긴 하겠지만.. 그것이 신우에게 돌아보기와 제자리찾기를 시키는거겠죠.. 신우와 태경의 미묘한 대립..드라마에선 대충 넘어갔지만.. 전 그게 늘 아쉬웠답니다. 님 글 에서 유독 그 부분이 눈에 들어오네요.     [2010-01-29]
두개의보물 신우를 내몬건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실연만이 아니겠죠.. 근데 글 속에 노래는 어떤 건가 요.. 노래에 대해 문외한.. 님이 만드신건지, 아님 기존 작품인지.. 궁금하네요. 분위기랑 딱 떨어지는것이 맘에 드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지네요.     [2010-01-29]
choth2 시즌2....너무 기대되네요...     [2010-01-29]
이쁜마양 오랫만에 오셔서 무척이나 행복한 하루가 시작될것같습니다. 신우 상처 치유하는데 많 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0-01-29]
푸른 하늘 신우 아버지 지나번부터 참 모진 분이다 싶었어요. 그런데 끝까지 자식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 시는 분이군요. 태경이도 아버지도 무엇보다도 미녀도 훌훌 떠나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신우라 서 다행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2010-01-29]
qkqh 이번주는 완전 대박이네요...2편씩이나....너무 감동입니다...담편도 기다리겠습니다...^^     [2010-01-29]
별달 감동했습니다..너무 잘 쓰세요..;;;;     [2010-01-29]
maira 그랑블루님 글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푹 빠져서 읽게하는 깊은 매력이 느껴집니 다. 다음 글 기다릴께요. ^^     [2010-01-29]
Ryeong 아아아아아.. 씨엔블루인가요.... Teardrops in the rain은 저번에 ru님이 알려주셨던 그 곡.. 들어 보셨군요?(웃음) 그런데 작가의 직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신우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듯..     [2010-02-02]
free1017 블루님~ 오늘 세편을 연달아 읽었는데 역시 좋군요ㅠㅠ 신우는 그사이 많이 변했나요~ 사랑하 는 마음은 추억으로 변했을까요~ 그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거 같은데... 마지막 씨엔블루 나 오는 장면은 제마음을 훈훈하게 하네여~ㅋㅋ 지금은 씨엔블루에 빠져살고있다죠~^^;;     [2010-02-05]
아싸 와 늦게 봤어요 ㅋㅋ 죄송해요 ㅋㅋ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     [201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