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19 - 누구에게나 감당해야 할 무게는 있다
1
“어떻게 할 거냐?”
서울로 올라가기 직전 집에 잠깐 들렀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신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일주일 후엔 그만 둘 거냐?”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이실 수 있을까.
늘 이렇게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이신다.
나라는 인간은 생각이란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아님 여전히 내가 10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말씀 못 드립니다.”
“뭐!!”
“그 때 제 결정을 말씀드리겠다는 겁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그깟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냐? 응?”
계집애 하나?
또 시작이시다. 아버지에게 여자란 뭘까. 오로지 자신의 과욕을 채우는 물건인가?
“아버지가.......아버지가....사랑이란 걸...아십니까?”
“이런 한심한 놈! 사랑? 웃기고 있구나.
어디서 사랑타령을 하는 게냐?
그깟 20대 새파란 놈들이 하는 사랑...그게 얼마나 갈 것 같으냐?
천년만년 그 사랑이라는 게 밥 먹여 줄 것 같으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니가 사는 동안 숱하게 많은 여자들을 만날 텐데...
지금 만난 계집애가...평생 영원할 것 같아?”
“그러세요? 그건 아버지니까 그런 거죠.
사람은....모두가 다른 겁니다.
어머니 같은 사랑도 있습니다.
하.....아버지께서...사랑을 해보셨어야 알죠.
사랑이란 걸 해 보시긴 해보셨습니까?
아버지께는 뭐든 노리개 아닙니까?
그러니 이 여자, 저 여자 다 가지고 놀다가!! 어머니를......어머니를 저 지경까지 만든 거 아닙니까?
사랑은요...적어도 사람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은 사람도 아닌 겁니다.
한동안 눈에서 불을 뿜는 듯하던 아버지의 입이 서서히 열린다.
“니가.........”
나는 기다린다. 아버지의 분노를......
그래....나도 들어보고 싶다. 당신이 살아가는 법을......
어머니를 저렇게 만들고도 멀쩡한....정말로...대단하신 당신이 살아가는 법을........
“니가......니가 나에 대해서.....뭘 안다고.......”
아...이게 아닌데.....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이라도 날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신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인지가 되질 않는다.
뭘 잘 한 게 있으시다고....뭐가 당신이 억울한 게 있으시다고....
목이 메는 겁니까? 당신이 뭐가 잘 한 게 있다고!!!!
그러나 하고 싶은 말들은 속으로만 게워 넣고, 돌아섰다.
“일주일 후에 연락드리죠.”
나도 모르겠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그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택시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렇게 온 세상이 지워진다면 좋겠다.
2
“제르미, 제가 가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졸리 목욕이라도 시켰는지, 마당이 온통 물바다다.
그나마 아이의 목소리가 밝아보여서 다행이다 싶다.
수건을 찾는 아이 앞에 섰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곤 바로 얼어붙는다.
“신..우..형.......”
“나.....잠깐 보자. 옥상으로 올라 와.”
“저...신우 형!!”
뭐라고 말하려는 아이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바로 올라왔다.
잠깐 봤을 뿐인데도 심장이 정신을 못 차린다.
잠시 눈을 감고 심장을 손으로 꾹 누른다.
제발....진정해 줘.
자박 자박.......
아이가 내 옆에 와서 선다.
“앉아.”
“신우 형.......”
“어머니께서......너에게 전해 달래.”
작은 선물 박스를 아이 앞에 내밀었다.
“아...전......받을 수 없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아이는 많이...아주 많이 단호하다.
그래, 미남아......그래야지.
“왜....못 받는데?”
“그건.......그러니까.....”
“니 입으로 똑바로 말해 봐. 왜 못 받는 거야?”
“그건.....신우 형이......그러니까......”
아이가 아주 많이 당황하고 있다.
입에도...올리기 싫다는 거니?
“우리 어머니가 너에게 왜 선물을 주실까? 니가 내 여자친구라서?”
아이는 놀란 듯 확 움츠려 든다.
“어머니는........내 여자친구라서 너에게 선물을 주시는 게 아니야.
나랑 아무 상관없이 너에게 주시는 거래.
미남이......너의 심장 소리를 들으셨대.”
“예?”
“그냥...그렇게 말씀하셨어.”
난 아이의 앞에 가까이 선물 포장을 민다.
아이는 한참을 주저주저 하더니 선물 포장을 풀어낸다.
박스 안에는 노란색의 작은 뚜껑 같은 것과 병이 하나 들어 있다.
“이게.......뭔가요?”
“허브향이야.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거든.”
난 어머니께 배운 대로 병뚜껑을 열고 노란색의 도자기 뚜껑을 병 안에 넣어 돌려 닫았다.
도자기 뚜껑 위로 천천히 향이 스며 나온다.
그 향이 내 마음에서 아이에게로 서서히 퍼져나간다.
“자스민 향이래.
마음이.....평화로워진대. 그래서 너에게 꼭 필요할 거라고......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
한참 망설이던 아이는 자스민 향이 나는 작은 병을 손 안에 넣는다.
“미남아........아니......고미녀.
잠시만........내 얘기 들어줄래?
아니........우리 어머니 얘기.......
내가 열 살이었을 때......우리 어머니 얘기......”
3
“당신!!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또.....그 여자한테 가는 거예요?”
“이 여자가...미쳤나?
어디 남편 일 못하게 가로막고 난리야.
비즈니스라 그랬잖아. 일하다 보면 다 그런 거야.”
“여보!!!”
“당신! 이런 식으로 남자 앞길 막으면, 같이 못 살아. 알겠어?”
“이게 어떻게 남자 앞길이야. 당신은 내 남편이잖아.”
“좋아! 나도 못 참아! 도저히 당신이란 여자를 참아줄 수가 없어.
그냥 도장 찍자. 이젠 날 좀 놔.”
아침부터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셨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는 화를 내며 나가시고, 엄마는 또 혼자서 울고 계셨다.
며칠 전에 우리 학교로 찾아온 여자에 대해서는 절대로 엄마에게 얘기를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버지 친구라며, 이제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나에게 과자를 내미는 이상한 여자.
난 여자가 주는 과자를 확 밀쳐내고는 집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렸다.
여자에게는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학교를 다녀오면.......또.....정리되어 있겠지 싶었는데.......
“엄마!! 엄마!!!”
“아이구.....신우 왔구나. 이를 어째......”
일하는 아주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나를 감싸 안으셨다.
“왜...그러세요?”
“사모님이....사모님이....흑....”
“아줌마!!! 우리 엄마가 왜요? 왜요?”
이상하게 심장이 벌렁거렸다.
“사모님....지금.....수술 받고 계셔.”
“예? 엄마가 왜요? 갑자기 엄마가.....어디가 아파서요? 왜요?”
“아이구...신우야. 사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단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XX대학 병원....
오로지 그거 하나만 듣고 택시를 탔다.
10살짜리 아이가 울먹이는 게 안됐는지
택시 아저씨는 연신 괜찮다고, 어머니 괜찮으실 거라고 위로를 하셨지만
나는......계속 울고만 있었다.
택시 아저씨는 돈도 받지 않으시고...나를 병원 안까지 데려다 주셨다.
수술실이 어디인지 알아내자마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뛰어 갔다.
그런데 수술실 왼편 복도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저렇게 다치셔서 수술 받고 있는데 아버지는 또!!!!
정말....주먹이라도 날리려는 심정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는데 순간 심장이 멈춰서는 것 같았다.
“당신이 인간이야!!! 어? 정희를 저렇게 만들어?
니가 인간이야? 응? 니가 인간이면 말해 봐. 어서!!!
너....만약에 정희 잘못되면, 너도 죽는 줄 알아!!!”
아버지가 어떤 아줌마에게 멱살을 잡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봤던 그 향수 냄새가 진했던 여자는 아니었다.
언젠가....우리 집에 놀러왔던 엄마 친구 아줌마인 듯했다.
그런데...왜 저 아줌마가 아버지를......
“거기 있던 사람들 다 봤대.
이 미친 인간아? 계집질에 눈이 뒤집혀서 조강지처를 밀쳐 내? 응?
넌 인간이 아니야!!! 이 짐승 새끼!!!
너!!! 내가 너 반드시 감방에 쳐 넣을 거야.
바람난 지 서방 찾으러 간 아내를, 차도에 밀어?
그년이랑 같이 있으니 좋디?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년도 니 차에 타고 있었다며?”
아줌마의 말에 주변에서 수군수군거린다.
“저 남자...완전 쓰레기야.
어떤 년이랑 바람나서 같이 차타고 놀러가다가 마누라한테 잡혔대.”
“어머, 어머....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근데 마누라는 왜 다쳐? 때렸대?”
“그게 아니구. 더 나쁘지!!
아까 목격자들 얘기 들었는데 마누라가 남편 차 앞에 서서 못 가게 하니까,
남편이 차에서 내려서는, 비키라며 마누라를 그대로 밀었대.
근데 마누라가 차도에서 구르다가 그 때 트럭이 지나갔다나 봐.”
“세상에! 세상에!! 마누라는 괜찮아?
아니...저 미친 놈!! 저런 새끼는 진짜 감방에 쳐 넣어야 돼!!!”
뭐....?
그것이 내가 맞닥뜨린 10살의 세계였다.
너무 일찍 알아버린......세상이었다.
그렇게 내 세상은 무너져갔다.
4
“말.....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아이는 손으로 입을 막는다.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잔뜩 고였다.
“그래.....우리 어머니 그렇게 두 다리를 잃으셨어.
근데 말이야. 우리 어머니는......아버지를....여전히 사랑하셔.
나 같으면.....아버지를 고소라도 했을 텐데.......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어.
도리어 자신이 미안하다고 하셨어.
심지어.......당신께서는 아버지에게 짐만 될 뿐이라며, 놓아 드리겠다고까지 하셨지.
정말......”
또 다시 생각해도 울컥한 무언가가 올라온다.
“어떻게......그렇게.......”
아이 역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때부터.....아버지는 죽자사자 일만 하셨어.
모르지....어머니 몰래 또 여자를 만나러 다니셨는지....그건 모르는 일이야.
적어도 들키진 않으셨어.
어쨌든 어머닌.......겨울이면.......다리가 많이 아프셔.
그때도......겨울이었거든......”
“그러셨군요. 그런데....어떻게...그렇게.......평안해보이시죠?”
“글쎄...... 그게 어머니의 내공이신 건지....나도 몰라.
가끔은 그것 때문에...더 속이 뒤집어질 때도 있지만 말이야.”
아이가 내 눈을 또 말갛게 바라본다.
왜...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지....궁금하겠지.
자...이제....끝이 보여. 이제........서로의 마지막으로 가는 거야. 이렇게.......
“그래서......난 다짐했어.
난.....사랑 따윈 하지 않겠다구.
아버지도 싫었지만, 어머니의 그 사랑도.....싫었어.
어머니의 그 징한 사랑 때문에 화가 나고, 숨이 막혔어.
그렇게......내 마음을 닫아왔어.
그렇게......내 마음은, 내 심장은 얼어갔어.
그랬는데.......”
난 눈을 들고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내 심장은....더욱더 세차게 뛰어댄다.
그래...바로 이렇게.......
“그런데......어느 순간.....내 심장이 뛰어대는 거야.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내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뛰는 거야.”
아이의 눈이 파르라니 흔들린다.
“그 사람만 보면......내 심장이 뛰는 거야.
처음으로......내 심장 소리를 들었어.
세상은 지워지고 그 사람만.....보이기 시작했어.
그래서.....그 사람의.....아픔도....힘듦도 보이기 시작했어.
처음엔.....신기하고 들뜨기만 했는데....시간이 지날수록.....외로워지기 시작했어.
그 사람을 보고 있어도 힘들고, 그 사람이 눈에 안 보여도 힘들고,
그 사람이 힘들어 하면 더 힘들고.......그 사람이......다른 이를 바라보는 건......하아.....”
“시.......신우...형.....!”
목이 멘다.
그래....미남아.....나...다 알고 있어......
그렇게.....난....널......내 마음에, 내 심장에.....품었어.
“그래서 힘들었는데 말이야.
어느 순간......그 사람이 힘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행복하고 늘 웃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 들어.
그래서...말이야......
그래서....나....우리....어머니를......이제서야........이해하게 됐어.......”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다.
이제 다 왔어......
그러니까....조금만...조금만 더 가자....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또르르 흘러내린다.
“고미녀......
널......사랑한다.”
내 생애......처음으로......“사랑”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이제......“사랑”을 접어가야 한다.
“신우...형......정말..........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치만..전....”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난 일어나서 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몇 번 토닥여 준다.
“다 알아. 그러니까......애 쓰지 마.......”
“신우 형!!”
“난 지금.......내 사랑을........끝내기 위해......너에게 말한 거야.
걱정 마. 적어도 끝낼 때는 알고 있어.
사랑이 죄는 아니지만, 강요하는 건......죄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신우 형.......죄송합니다.”
“뭐가? 내가 너에게 미안하지 않듯이, 너도 나에게 미안한 건 없어.
사랑도.........살아가는 일이니까.......이것도.....삶의 일부일 뿐이니까........
내 사랑도....니...사랑도......
나.....먼저 내려갈게.”
아이의 등을 한 번 두드려주고는 내 방으로 내려왔다.
그래......강신우.......잘 했다. 정말 잘 했어.
됐어. 이걸로.......
5
도대체 이게 뭐야!!!
황태경이 고미녀를 밀어낸다.
둘이 잘 되고 있어서....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는데, 황태경!! 도대체 뭐가 문제야?
“신우야!! 니가 어떻게 좀 해 봐. 응?
태경이는 혼자 열받아서 문 쳐닫고 저러고 있지.
미남이는, 아니 미녀는 떠나겠단다.
어떡하냐?
어떻게 좀 해 봐라. 신우야!!!”
마실장님은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신다.
“황태경! 지금 어디에 있어요?”
연습실에서 황태경은 그 와중에도 작곡중이다.
저런 녀석의 모습에 속에서 불이 올라온다.
“황태경!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황태경은 날 힐끗 보더니 마지못해 입을 연다.
“지금은.....말하고 싶지 않아.”
“고미녀......떠난다는 데......어쩔 거야?”
“..............”
황태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키보드 건반만 두드리고 있다.
한 대 쳐 주고 싶은 걸......억지로 참는다.
“넌 천재지. 단 한번도 빛나 보지 않은 적이 없지. 심지어 태생조차도 빛이 나.”
내 말에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황태경이 날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그래서 넌 니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그래...그건....니 잘못이 아니야.
신의 거룩한 선물을 받은 게 죄는 아니니까.....”
“무슨 소리냐니까?”
점점 황태경의 목소리에 날이 선다.
“황태경! 넌 니가 태어나서 니 스스로 움직여서 가지려고 한 게....뭐가 있지?”
“강신우!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얼마나 노력해....”
“노력? 아니! 넌 노력을 한 게 아니라, 너의 기프트를 사용했을 뿐이야.
니가 괴로웠던 건....니 기프트 때문이고.......
너의 태생조차 너의 탈렌트를 빛나게 했을 뿐.....
넌! 노력한 게 없어! 스스로 뭔가를 잡고자 노력한 게 없어!
뭐든......이미 니 손 안에 있었어.
그러니 니 손 안에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지."
황태경이 주먹을 쥔다. 한 대 때리고 싶겠지. 그래도 니가 내 심정만 하겠냐?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니가...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그래....뭘 알까.....
근데 황태경...세상에.....힘들지 않은....사람이 있을까?
살아오면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보다 더 적을 거라고, 나만큼 고통스러운 사람은 없을 거라고...
어떻게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지?
고통이...비교 대상이 되나?”
“강신우!!!!!”
황태경이 키보드 판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미녀...어떻게 할 거야?”
“...........몰라.....”
녀석은 한참만에야 대답한다.
“몰라?”
“지금은...나도 정리가 안 돼.
고미녀도, 나도, 우리 어머니도, ...다...정리가 안 돼.
내가 정리가 안 되니까...고미녀도....그럴 거야.”
“그래? 내가 그 정리 도와줘?”
“무슨 뜻이야?”
“너! 알고 있잖아. 이미.”
“강신우!!!!!! 너!!!”
“난 고미녀를 보고, 고미녀는 너! 황태경을 보고......황태경은....누구를 보는 거지?”
“..............”
“.....내가.....고미녀를 빼앗아 버린다면.....어쩔래?”
“강신우!!! 죽고 싶어!!!!!”
“어정쩡거리지마. 정말로....고미녀 훔쳐버릴 테니.......정리?
하~~ 황태경...복에 겨웠구나.
자기 손에 뭘 품었는지도 모르는 이런 어린 놈에게 정리? 정신 차려 황태경!!!
정리하든 놓아주든....그런 건....끝까지 가본 사람만, 적어도 끝까지 잡아본 사람만.....말할 수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정말로 이런 녀석에게는 고미녀를 양보할 수 없다.
뒤돌아서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황태경의 목소리가 나를 잡는다.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혀지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포기하게 돼.
그래서.....손조차 내밀지 않게 돼.
노력해도...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너무 어릴 때 알게 되면, 그렇게 돼.
모든 걸....놓게 돼.”
녀석의 말이....자꾸만....머리에서 맴돈다.
6
옥상 위는 늘.....시원하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신우 형.....”
아이가 쟁반을 들고 서 있다.
쟁반에는 커피 두 잔과 작은 티라미슈 조각이 하나 놓여 있다.
“따뜻한 커피랑 부드러운 케잌입니다.”
아이가...날....위로해 주고 싶은 건가?
“신우 형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럽게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위로를 드릴 수 없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괜찮아. 넌 몰랐겠지만, 나 그동안 너한테 백번은 차여 봐서 극복할 만 해.
연습해 두길 잘했다.”
아이가 미안해하는 것 같다. 너무 솔직해서도 부담이 되겠지.
한 마디 더 해 줘야겠다.
커피잔을 잡고 한 마디 덧붙였다.
“따뜻하다. 꽤 위로가 되네.”
“다행입니다.”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약간 번진다.
아이를 보다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의 따뜻함이 저 아래에까지 퍼져간다.
찰칵!
“어?”
아이의 손에 즉석카메라가 들려 있다.
“신우 형이 따뜻해 보입니다. 이건 한 장뿐이니까, 제가 가지겠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웃어보이고는 숟가락을 내밀었다.
“같이 먹자.”
“제가 좀 거들겠습니다.”
아이와 난 둘이 나란히 앉아 케익을 나눠 먹었다.
아무 말 없이 햇빛을 맞으며,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차와 케익을 나누었다.
둘이...화해한 거 축하해.
신우 형...미안합니다.
괜찮아...
그러나 우리는 둘 다 알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지만, 이런 말들을 서로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둘 다 알고 있다.
7.
“안 그래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한 거냐?”
“네”
네...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전....어머니처럼.....살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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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__)
<미남텔존 소설게시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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