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22. 브루반도(ブルバンド)
“어떻게 니가 여기 있는 거지?”
“어떻게 신우 형이 여기 있는 거죠?”
1
“미녀야, 여기야. 블루 밴드, 아니 “브루반도(ブルバンド)”라고 하면 우리 팀이야.”
마실장님은 나를 클럽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시고는 전화하러 나가신다.
사장님이 지원하시는 인디밴드라고 했지. 꽤 실력 있다고 들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이 굉장히 웅장했다.
저 사람들이 블루 밴드인가?
좁은 공간에서 밴드가 직접 연주해서 그런지 소리도, 관객들의 반응도 굉장히 후끈했다.
멤버 중 한 사람이 나와서 다음 곡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리더인 이종현이란 분인 듯했다.
누군가를 소개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자지러질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굉장히 인기가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 마이크를 잡자,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teardrops in the rain...
차갑고 뭔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사람의 입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헉!!!!!!!!!
그럴 리가 없는데....정말 그럴 리가 없는데.....
저런 음색을 낼 사람은...그 사람밖에 없는데....
난 나도 모르게,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순간,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심한 듯 보더니 바로 눈을 감아 버린다.
설마.....
“오늘 형 멋있었어.
역시 여전한데....형 인기는.....”
아까 드럼을 쳤던 멤버가 옆에서 떠들어 대지만,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아무 말이 없다.
“신...아..미안, 아직 팬들 있지? 정 사마~~ 큭 사마라 붙이니까 웃긴다.
팬들이 형 호칭 때문에 싸우는 것 같더라.
정 사마네, 용 사마네....
형은 뭐가 좋아?”
옆에 서 있던 제일 키 큰 사람이 묻자, 남자는 그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다.
“신우...형!”
걸어가던 네 명의 멤버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 본다.
아니, 한 사람은 돌아보지는 않은 채 그저 우뚝 서 있다.
“신우 형!!”
그제서야 그 사람이 서서히 돌아본다.
“너!!!!!”
정말 신우 형이다. 정말....
이 사람이 내 앞에 있다.
“어떻게 니가 여기 있는 거지?”
“신우 형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한참을 그렇게 보고만 서 있었다.
내 눈에선 참아 왔던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왜 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참아 왔던 설움들이 터져나오는 것 같다.
2
“오옷~ 새로운 멤버인 거야? 꺄호~~~
민혁이는 즐거운 듯 소리를 치면서 정신이와 함께 히히덕거린다.
“어떻게 된 거예요, 마실장님! 고미녀가 왜 여기 있어요?”
“그게...일이 좀 꼬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미녀는 노래가 하고 싶고, 한국에서 노래하기는 약간 애매한 상황이라,
연습도 할 겸, 한국 상황도 조용해지길 기다릴 겸, 여기로 온 거야.”
신우 형은 경직된 표정으로 마실장님과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는 점점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는 거 아닌가요?”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난 다시 한번 그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저 말이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게 맞는지....
정말 이 차가운 목소리가 이 사람의 것인지....
“신우야...상황이 좀 그랬어. 이해 좀 해 주라.
사실 지금 고미남이 예전과 달라 보여서 약간 말이 나오고 있고, 태경이 어머니도 좀 힘들게 하고....
한국에서 연습하기에는 기자들에게 꼬리를 밟힐 것도 같고....좀 그래.”
“제가 뭐 이해하고 안 할 게 있나요?
어차피 종현이가 리더고, 저 역시 빌붙어 있는 건데....
팀에 민폐 안 끼치고 자기 앞가림만 잘 하면 되는 거죠.”
민폐......
“예, 신우 형. 폐가 안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말에 신우형은 흘낏 보더니 차가운 어조로 덧붙였다.
“일본에서 내 이름은 정용화야. 신우 형이란 말은 공식적으로는 삼가 줘.”
“아...예....”
차가운 신우 형의 말이 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 건지....
그렇게 따뜻했던 그 사람이 정말 맞는 건지....자꾸만 두려워진다.
“에이 형! 진짜 오버한다. 사실 그건 공연할 때나 팬들 있을 때만 쓰잖아.
우리끼리는 신우 형이라 부르면서 왜 그래?”
키가 큰 멤버가 나를 두둔해 주며 내 쪽으로 웃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전 이정신이에요. 베이스 기타 치구요.
나이는 이제 곧 스물.....”
“아...안녕하세요. 전 고미녀라고 합니다. 전...그럼...한 살 더 많은 거 같네요.”
“어! 누나네. 난 나랑 같지 않을까 했는데....미녀 누나라고 부를게요.
근데 이름이 끝내 주는데요?”
어색한 상황에서 정신이라는 사람 때문에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신우 형은 멤버들과 인사하는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저, 마실장님.”
멤버들이 저녁 준비한다고 간 사이 마실장님의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신우 형이 왜 여기 계신 거예요? 미국에 계신 거 아니었어요?”
“응~ 사실 일종의 트릭이었어. 신우 아버님이 워낙 힘이 있으시니 이리저리 피할 겸, 일단 미국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다시 들어온 거지.”
“근데 왜 이름까지 바꿔서....”
“그건 신우 뜻이었어. A.N.Jell의 이름으로는 있고 싶지 않았대.
일본에도 A.N.Jell 팬들이 있으니, 이름까지 바꾸면 아무래도 원래 의도대로 할 수 있으니까...”
“원래 의도라니요?”
“신우 저 녀석. 음악을 바닥부터 다시 하고 싶대.
그래서 독하게 다 끊고 온 거야.
자기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싶다던가.”
자기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블루 밴드의 연습실은 굉장히 소박했다.
일반 가정집 같은 곳에 1층을 연습실로 쓰고 그보다 좁은 2층에 네 명의 남자가 2 방에서 살고 있었다.
예전 A.N.Jell 숙소와 연습실에 비교해 보면, 이건 왕자와 거지였다.
왜 같은 소속사인데 이런 걸까?
“어쩌지. 아무래도 일층 연습실 옆에 있는 쪽방에서 생활해야 되는데 괜찮겠어요?”
리더인 종현씨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저는 같이 있게 해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충분히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고.....”
“저, 근데...”
“네?”
“왜 한국에서 안 하시고, 여기에서 힘들게 하세요?”
“아~, A.N.Jell에 잠시 계셨을 테니 여기랑 정말 비교되죠?”
“예?”
A.N.Jell이라니 알고 계신 건가?
“아, 저희 멤버에게는 마실장님이 얘기해 주셨어요.
같이 팀으로 있을 건데, 상황을 좀 알고 있어야 할 듯해서요.”
“아, 네....”
“사실 전 원래 인디밴드로 일본에 왔어요. 민혁이랑 정신이는 여기에 공부하러온 애들 꼬드긴 거고....”
“그럼 원래 Ahn 소속사에 들어오신 게 아니셨어요?”
“그랬죠. 처음엔 그냥 막무가내로 기타 하나 매고 거리 공연을 했었어요.
그러다 안 사장님을 만났죠. 지원해 주시겠다고....
고민고민하다가 오케이 한 거예요. 그러면서 한번씩 한국 소속사에 가서 연습도 하고
그러면서 이미 A.N.Jell로 데뷔했던 신우 형을 알게 된 거고...”
“그러셨군요.”
“뭐, 어쨌든 이젠 인디밴드가 아닌 거죠.
누가 우리더러 인디밴드라 하면 진짜 인디밴드에게 욕 먹어요.
그저 인디밴드의 실력을 배우고 연습하는 그냥 밴드인 거죠, 우리는....”
“그래도...멋있어요. 뭐든 열심히 하는 건...멋진 일인 것 같아요.”
“풋~ 미녀씨도 이제 우리랑 같이 열심히 하면 되죠.
참, 우리 호칭 정리하죠. 나이 같은 거 같은데 말 놓죠. 어때요?”
“예~? 아...예...말 놓으세요.”
“그러지 말고 같이 놓자. 어때 미녀야?”
“어...어......그럴게......”
종현씨가 너무 스스럼없이 말을 놓자 왠지 나도 말을 놓아야 될 것 같았다.
“뭐야, 둘이 말 벌써 놓은 거야?
우이씨, 그럼 우리도 놓자. 누나 우리한테도 말 놔.
민혁이랑 나랑 갑이니까 놔도 돼.”
“예?...아...그럴게...고마워.”
정신이와 민혁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준다.
조금은 마음이 가볍다.
“신우 형은 어디 갔어?”
민혁이가 갑자기 신우 형을 찾았다.
‘신우 형’이라는 말에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뭐...기타 안고 곡 쓰고 있겠지 뭐.”
종현씨가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다.
“신우 형, 하여튼 대단하다.
오늘 공연도 빡셨고, 며칠 스트레이트로 연습에 공연에..장난이 아니었는데..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고 저러냐?”
민혁이가 대단하다는 듯 연신 신우 형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해댄다.
“뭘....하시는 거예요?”
난 조심스럽게 민혁이에게 물어봤다.
한국을 떠나온 신우 형에게...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신우 형....늘 곡 써.
매일 매일 빼놓지 않고...아무리 힘들어도, 공연이 늦게 마쳐도,
반드시 5곡씩 곡을 써. 대단하지?”
정신이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다섯 곡이나? 그것도 매일?”
“응....여기 도착하고 나서부터 계속 그랬어.
어차피 난 여기에서 처음 본 거니까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는데, 예전부터 봐온 종현이 형은 정말 놀라워 하더라구.
정말 딴 사람 같다구.....”
“정말....딴 사람 같은 거....맞아.”
“어?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신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아...내가 뭐라 말한 거지?
그냥........그런 것 같다구.....
내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너무 낯설어.
내가....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모르겠어.
3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멤버들은 일본 인디 밴드 팀에 가서 작곡을 배우거나 악기를 배웠다.
정말 놀라운 건, 인디 밴드 팀들이 서로의 능력을 나누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싼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열심히 배울 배짱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타도, 드럼도, 작곡도....가르쳐 주고 있었다.
겨우....아르바이트 비용....만 받고서도.......미안해 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 그런 걸로 돈을 받는다고.......
종현씨가 소속사에서 지원받는다며 억지로 손에 쥐어주지 않았다면 받지도 않았을 거란다.
정말...이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자신의 재능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삶을 바칠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자신의 것을 내어놓았다.
가르치는 것을 기뻐했고, 같이 연주하는 것을 즐기고 뿌듯해 했다.
A.N.Jell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정말......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아직까지 콕 집어낼 수는 없지만, 조금 다른 세계에 내가 있는 듯했다.
그냥......잘 왔구나......싶었다.
한참 동안, 적응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다.
예전 원장 수녀님과 봉사활동 때문에 잠깐 일본어를 배운 걸로는 정말 모자랐다.
히라가나 정도는 겨우 읽지만, 말이 잘 안 되니까......
쉬운 말부터라도 배워야 했다.
신우 형은 일본 인디 밴드 팀 멤버에게서 작곡을 배우고 있었다.
이젠 따로 화성법이나 이론을 배우지는 않고, 자신이 만들어간 곡을 검사 받거나 의견을 나누는 정도라고 했다.
특별히 이론이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저 기타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같은 음으로 여러 가지 소절을 만들어 보는 것이라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신우 형이 작곡을 배우는 걸 옆에서 흘끔거리면서 있으니까 종현씨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배우고 싶어?”
“어?”
“곡 쓰는 거 말이야.”
“아.......내가 뭘 알아야지.....”
“어차피 악보도 볼 줄 알고, 건반도 다룰 줄 아니까, 금방 배울 거야.
배우고 싶으면 같이 배워. 내가 옆에서 통역해 줄 테니까.”
“그래도 폐가 될 텐데.....미안해서.....”
“괜찮아.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건데, 뭔들 안 좋겠어?
나도 옆에서 같이 배울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니까......”
종현씨는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끌고는 건반 치는 멤버에게로 데려가서 내 얘기를 했다.
몇몇 단어만 알아듣고 있지만, 그래도 그 일본 멤버는 흔쾌히 웃어보였다.
“화성법부터 하재.
그리고 당장 녹음기부터 하나 사야겠다.”
“녹음기는 왜?”
종현씨는 일본 멤버랑 얘기하더니 대뜸 녹음기 얘기를 꺼낸다.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그냥 떠오르는 음들 생각날 때마다 녹음을 해 두면 돼.
저 형은.....원래 스타일이 녹음하는 스타일이라.....너랑 더 잘 어울릴 거야.
신우 형 가르치는 형은...또 다르거든. 좀 더 빡센 스타일이랄까?”
“신우 형은, 어떻게 배우는데?”
“신우 형은....기타 방식으로 배워. 원래 기타리스트니까....기타 코드 잡는 법대로 만드는 거야.
음부터 잡는 게 아니라 코드부터 잡고, 그 코드 안에서 다시 조합해 보는 거지.”
“아.....그렇게도 하는구나.
태경이 형님과는 많이 다르네.”
“태경이 형? 큭큭...태경이 형은 natural born 작곡가고......
그래서 형은 그냥 오선지에다가 막 그리는 거구.....
일반 사람들은 또 달라.
모르지. 나중에 실력이 쌓이면 그렇게 될 지도.....
세상에 천재만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 편한 대로 하면 돼.”
종현씨는 참...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
“종현씨는 정말 리더다운 거 같아.”
“그래? 고마운데......
근데 생각해 보면, 지금 리더는....내가 아니야.”
“에? 리더 맞잖아. 종현씨가....”
“뭐, 명목상으로는 그런데......글쎄....정신적인 면에서는.....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지.
솔직히...난...신우 형이 더 리더 같아.”
“그래도 진짜 리더는 종현씬데.....왜 그런 말을 해?”
“리더.....그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야.
우리가 단순히 인기를 얻으려고,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열심히 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의 음악으로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누가 리더가 되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우리가 같이 하는 거지.
같이 하는데 힘이 되고, 즐겁고....그게 중요한 거잖아.
그런 면에서....신우 형은 우리 안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아 주고 있어.
그래서......정말 고마워.”
아....이 밴드......
볼수록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팀이다.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싶은지, 왜 노래를 하고 싶은지......알게 해 주는, 그런 팀이다.
4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다들 숙소에 돌아오니 녹초가 돼버렸다.
난 옆에서 구경만 하는데도 이렇게 피곤한데, 멤버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다들 윗층으로 올라가고 나도 내방에서 쉬려다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연습실에서 건반이라도 두드려볼까 싶어서 나왔더니 연습실 한 구석에 스탠드 불이 켜져 있었다.
신우 형이 기타를 안고 연습실 바닥에 앉아서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계셨다.
기타로 코드를 맞춰보다가 종이에 음표를 그려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순간 멈칫 하다가 신우 형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일본에 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이렇게 신우 형과 한 공간에서 둘이만 있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늘......신우 형은, 내게서 멀찍이 있었다.
그런 신우 형 때문에....마음이 많이 시렸다.
난 은근히.......한국에서의 신우 형이 그리웠던 것 같다.
무작정 내가 치대고 힘들다고 투정부릴 수 있는 신우 형.....
그러면 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던...그 신우 형이......지금도....많이 그립다.
“어?”
신우 형이 이제야 내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죄송해요. 불이 켜져 있길래......저도 건반 연습하려고 나왔다가......”
“어......”
신우 형은 바로 기타를 쥐고 다시 코드를 튕기고 집중했다.
“저....신우 형, 뭐 하나 여쭤 봐도 돼요?”
“응.”
여전히 기타를 잡은 채로 신우 형이 짧게 대답했다.
저런 모습 하나에도, 난 자꾸 예전과 비교가 된다.
예전엔....늘...내 눈을 보며 웃으면서 들어줬는데........
“신우 형은.....왜 그렇게 열심히 곡을 써요?
오늘 같은 날...다들 너무 힘들었는데, 쉴 수도 있을 텐데.....
그것도 5곡씩이나...어떻게 그렇게 매일 거르지 않고 곡을 쓸 수 있어요?”
기타로 줄을 튕기던 신우 형이 갑자기 내 눈을 바라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호흡이 멈췄다.
이 사람의 눈이.....이랬었나.......
일본에서의 신우 형은........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람인 듯하다.
“작곡...배우니까....많이 힘들어?”
“아.....네....저한텐 많이 어려워요.
그래서 형이 한번도 안 거르고 곡을 쓰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난 천재가 아니니깐.....”
“예?‘
“천재들은 영감으로 쓰겠지만, 난 천재가 아니니까 노력으로 곡을 써야 해.
그러니 연습밖에 없는 거지.
영감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신우 형은 다시 기타를 잡고 코드를 잡아 보고는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뭔가......왠지 경이로워 보였다.
태경이 형님이 곡을 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태경이 형님이 작업하실 때는 정말 놀랍다는 느낌이었는데, 신우 형이 곡 쓰는 모습은 왠지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멀게 느껴지기보다는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왠지 열심히 해 보고 싶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근데,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야?”
신우 형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기타 줄만 연신 튕기면서 내게 불쑥 말을 던졌다.
“예?”
“좀, 비켜줬음 좋겠는데......”
“아.....죄송합니다. 작업하시는데.......”
죄송하면서도 굉장히 머쓱했다.
혼나서 부끄러운 느낌으로 난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골목을 좀 걸을까 싶기도 했고, 하늘이나 쳐다볼까 싶기도 했고.....
옥상에는 멤버들이 자니까 괜히 깨울까 싶어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누나!”
정신이가 나를 보고 함박 웃는다.
“왜 나와 있어?”
“그냥, 요즘 운동이 부족한 거 같아서....한 바퀴 뛰었어.
누나는? 이 밤에 왜 나와? 위험한데.....
일본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가끔...독특한 정신세계인 사람들도 있어.”
“아니...난...그냥 바람이나 쇠려구....어차피 대문 앞에 나오는 건데 뭐.”
“왜...잠이 안 와?”
“응....사실은 건반이라도 연습할까 했는데.....신우 형이 계셔서 나왔어.”
“신우 형 있어도 치면 되지. 그냥 헤드폰 하고 치면 되잖아.”
“그게....신우 형이 좀....불편하신 거 같아서......”
“무슨 소리야. 신우 형,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써.”
정신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손사래를 친다.
“사실은....나 쫓겨났어.
신우 형이 자리를 좀 피해 달래.”
“뭐? 신우 형이? 그럴 리가 없는데......
형은 자기 작업할 때 드럼을 치든 떠들든 전혀 상관 안 해.
집중력 짱이야. 진짜 이상하네......”
“그래? 그냥...오늘은...뭐....기분이 그러셨겠지.”
그랬나.......
신우 형...다른 사람은 있어도 상관없었나......
나만......그런 건가.......
이상하게 그 말이 참....서운하다.
둘이 떠들다가 안으로 같이 들어오는데, 연습실에서 나오는 신우 형과 바로 마주쳤다.
“어..형? 이제 다 했어?”
신우 형은 정신이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는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왜 저래? 진짜...형....좀 이상하네.”
“정신아....너도 어서 올라가. 잘 자구.”
“응.....누나두...내꿈꿔!!!!”
정신이는 키가 무진장 커서 오빠 같기도 하지만 정말 내 동생같이 귀여운 아이다.
이 아이는 늘.....웃음 짓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
5
“와~~ 역시...오늘 아침도 푸짐한데.....
미녀가 와서 제일 좋은 게 아침이야. 흐흐흐”
“누나 짱이야~”
멤버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호들갑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아침은 건너뛰기 일쑤였다는데, 내가 와서 뭔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야 민폐형 인간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
그런데 아침부터 민혁이와 정신이가 자리 때문에 투닥거리고 있다.
“야....강민혁! 좋은 말할 때 비켜라.”
정신이가 냉정하게 민혁이의 어깨를 툭 치자 민혁이는 기가 찬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야, 우리가 언제부터 자리 정해 놓고 앉았냐.
대충 앉자. 좀.”
민혁이는 귀찮다는 듯이 몇 마디 대꾸를 던졌다.
“안 돼. 여긴 내 자리야!! 무조건 내 자리야!!!”
“아...진짜 임마 왜 이래? 여기가 왜 니 자리야?”
“시끄러. 여기 미녀 누나 옆자리는 무조건 내 자리야. 형들도 그렇게 알아.
무조건!! 미녀 누나 옆자린 내 자리라구!!!!”
민혁이는 결국 정신이의 고집에 자리를 옮겨주고 말았다.
정신이가 아이처럼 고집을 피우니까....다들 어쩔 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쟤는 왜 저리 귀여운지......
찌개를 상 위에 올려놓고 나도 자리에 앉자, 정신이가 내 팔짱을 끼면서 애교를 부린다.
“누나~~~ 누나도 내 옆에 앉으니까 좋지? 그지?”
정신이의 이런 웃음에는 늘 약해진다.
귀엽고 고맙고....늘 그런 느낌이랄까.
“응....좋아.”
“거봐~~! 무조건 미녀 누나 옆자린 내 자리야!!!!”
그 때였다.
몇 숟가락 뜨던 신우 형이 숟가락을 갑자기 식탁에 탁 놓고는 일어섰다.
“신우 형!! 더 드세요. 거의 안 드셨는데......”
내가 당황해서 얘기했지만, 형은 잠시 내 눈을 보더니 고개를 확 돌렸다.
왠지......뭔가 화가 난 느낌......이상하다.
“다들 잘 들어.
고미녀, 임자 있는 애야.”
“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정신이가 신우 형의 말에 당황해서 뭐라고 대꾸를 했다.
나 역시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황망한 표정으로 신우 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고미녀....마음에 두지 말라고......
황태경 여친이니까.......”
신우 형은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황태경 여친이니까.......
이상하게 이 말이......자꾸 내 마음 속을 휘젓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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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갈등 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3월부터는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미남존이 없어질 것 같네요. 이제야 봤습니다.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미남존에 올리도록 할게요.
지금 제 블로그에도 올리고 있는데, 미남존이 닫기면 제 블로그로 오셔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어쨌든....혹시 기다려주신 분이 계신다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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