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27. 내 심장의 노래
1
드르륵.....
오늘따라 연습실 미닫이 소리가 크게 울린다.
5시가 넘은 시간, 새벽이라 하지만, 여전히 사방은 고요하고 어둡다.
아직도 술기운이 도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일렉 기타의 전원을 켜고는 헤드폰을 찾았다.
작은 스탠드 불을 켜고 이곳에 온 이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던 나만의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에 5곡.
처음에 정하면서도 미친 게 아닌가 나 스스로도 생각했었다.
그래, 미친 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황태경도 2-3일에 한 곡씩 써대곤 했었다.
어떨 때 황태경은 1달에 10곡씩 써댈 때도 있었다.
뭐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황태경에게 기죽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은 하루에 5곡씩 써 대고 있다.
처음 5곡씩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황태경을 떠올렸다.
황태경은 천재다. 그 천재인 녀석도 곡 쓰는 걸, 곡 연습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그 녀석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어디든, 음악 방송 대기실 속에서도 황태경은 오선지를 들고 악보를 그려가고 있었다.
미친 놈......
그 때 황태경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저렇게 티를 내야 하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천재라는 황태경도 그렇게 미친 듯이 쓰고 연습했었다.
그래서 황태경은 더......대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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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죽기 직전에 잡은.....마지막.....삶의 집착.
살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잡은.......지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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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자신의 말대로 정말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곡을 써나갔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삶의 집착이든, 유일한 삶의 희망이든, 황태경은 절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작곡을 배우자마자 난 어김없이 황태경을 떠올렸다.
신은 황태경에게 100을 주었다.
녀석의 출발점은 이미 100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출발점은....1이다.
신은 나에게 1과 좋아하는 마음만 주신 듯하다.
그래,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나 불공평했다.
왜 누구에게는 100이고 누구에게는 1이냐.
차라리 그 1조차 주지 말지, 차라리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주지 말지.......
그러나 이곳으로 온 이후, 아니 이곳으로 떠나오면서 어디까지 내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시험해 보고 싶었다.
황태경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
황태경은 황태경의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난 내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강신우라는 놈!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죽기 살기로 좋아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아니, 좋아하는 게 있긴 있었던가.
늘.....난 잘 못한다고, 아니면 난 안 된다고 그런 식으로 변명만 해왔을 뿐이었다.
아니면, 저 놈은 원래 저렇게 타고 난 거고, 난 원래 그렇게 타고 난 게 아니니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세상과 나를 비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100에서 110까지 커간 놈이나, 1에서 10까지 커간 놈이나 과정을 보면 똑같은 거 아닌가......
출발점이 달랐으니 결과만 보면 110이 더 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노력은 똑같은 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100을 가진 황태경이 저렇게 죽기 살기로 한다면, 1을 가진 나라는 놈은 적어도 10까지는 만들어봐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말해야 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10배는 더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하루에 5곡이라고 내 자신과 약속을 해 버렸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내 1이 10만큼 커졌을 때 그 때 다시 생각하자고, 그 전에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5곡...
말이 좋아 5곡이지.....
처음은 그야말로 동요 수준도 되지 못했다.
4소절을 겨우 쓰기도 했고, 같은 곡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꿔보기도 했다.
arrange도 일종의 창작이란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하루에 5곡을 쓴다는 것이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main음으로 5가지 종류의 버전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arrange 연습도 같이 되고 있었다.
내 곡을 스스로 arrange 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내 곡이 아닐지도 모른다.
편곡도 창작이란 걸.......이곳에 와서 겨우 배우게 됐다.
이때까지 난 어쩌면 음악이란 걸 흉내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난 음악이 뭔지 어렴풋하게 알게 된 듯하다.
그래, 이 음악이란 놈을 위해 난 내 개인적인 아픔까지 음악에 팔아 넘겼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미칠 것 같은 밤에는 그 마음을 재료 삼아 곡을 썼다.
차라리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게 다행이다 싶은 날들이었다.
곡을 쓸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감정은 눈에 보일 듯이 드러나 관객과 호흡했다.
그렇게 난, 내 노래를 위해 내 감정을 이용했다.
지금 이 순간도.........그렇다.
이....미칠 듯한 마음은......또 다시 내게 내 노래의 재료가 되어 준다.
끊어질 듯한 심장 소리도, 헤벼파는 듯한 고통도, 목구멍 위로 솟아올라 내 울대를 뻐근하게 하는 그리움도,
그렇게 눈으로 그릴 수 있는 노래가 되어 갔다.
어쩌면, 내 노래가.....그나마 날....숨 쉴 수 있게 해 줬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도 어쩌면, 살기 위해......음악이란 걸 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내게 들려달라며 듣고 싶어 했던 노래.....
just please.....
어쩌면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곡인지도 모르겠다.
<출처는 영상 안에>
Just please
Do you know (알고 있니?)
This song is for you (이 노래는 너를 위한 거야.)
The most incredible
You heard
Just please know why my heart is beating for you.
(제발 좀 알아줘. 왜 내 심장이 너 때문에 뛰고 있는지)
Just fix what is inside of my shadowed mind
(제발 좀 봐줘. 내 그늘진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I can't live without you don't leave me alone
(너 없이 난 살 수가 없어. 날 혼자 두고 떠나지 마.)
Baby, listen to my grawling
(baby, 내 그로울링(내 노래)을 들어줘.)
This song's for you, dear miss
(이 노래는 너를 위한 거야. 나의 아가씨)
It's a tale of painful love
(그건 고통스러운 사랑 이야기야.)
From the code name
I'm containing a dizzy chain
(난 지금 미칠 듯한 체인에 휘감겨 있어.)
That is what? I couldn't do it cause of myself
(그게 뭐냐구? 나도 나 자신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I was so sick and sick, couldn't handle it myself
(난 너무 아프고 아파. 나도 나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I thought she and I were the Bonnie and Clyde
(그녀와 난 보니와 클라이드인지도 몰라.)
Laugh at me or heal me and wanna know what I'm singing
(나를 비웃어 아니면 날 치유해줘......내가 노래하는 걸 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Just thanks
(단지 그것만으로도 고마워.)
I woke up with the sudden notion
(괴로운 생각에 놀라서 깨어나기도 하고)
And I can't get out of my compunction
(내 자신을 자책하며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해.)
Even if I knew how you feel
(니가 어떻게 느낄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Now, how you feel setting such a line of action
(그런 행동들에 지금 니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면서도 말이야.))
Every time I hear your voice
(언제나 난 니 목소리를 듣고 있어.)
Just staring at the overcast blue sky
(흐리고도 슬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From the beginning to the termination
(시작부터 끝까지)
I stand on my silly position
(난 여전히 바보 같은 위치에 서 있기만 해.)
Should I ask you for your remission
(너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해도 될까?)
I'm thinking like that and exploration
(마치 조사라도 받는 것처럼)
Cause my mind is not so fine
(내 마음은 불안해.)
Why don't you come into my mind
(니가 내 마음으로 와주면 안 되겠니?)
Hey please listen to my rhyme
(제발 내 시를(내 시의 운을) 들어주면 안 되겠니?)
So you can look into my life
(그러면 넌 내 삶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거야.)
All of this is not imagination
(이 모든 건 상상(거짓)이 아니야.)
I can feel my heart go down
(내 마음이 점점 가라앉고 있어.)
Can someone relax my mind, my mind
(누군가가 내 마음을 쉬게 해줬으면 좋겠어.)
Just please know why my heart is beating for you.
(제발 좀 알아줘. 왜 내 심장이 너 때문에 뛰고 있는지)
Just fix what is inside of my shadowed mind
(제발 좀 봐줘. 내 그늘진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I can't live without you don't leave me alone
(너 없이 난 살 수가 없어. 날 혼자 두고 떠나지 마.)
Baby, listen to my grawling
(baby, 내 그로울링(내 노래)을 들어줘.)
Just please know why my heart is beating for you.
(제발 좀 알아줘. 왜 내 심장이 너 때문에 뛰고 있는지)
Just fix what is inside of my shadowed mind
(제발 좀 봐줘. 내 그늘진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I can't live without you don't leave me alone
(너 없이 난 살 수가 없어. 날 혼자 두고 떠나지 마.)
Baby, listen to my grawling
(baby, 내 그로울링(내 노래)을 들어줘.)
Can you know that?
(그거 아니?)
How do you think that
(넌 어떻게 생각해?)
This way is the right way? Or go back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아님 돌아서야 하는 걸까?)
It reminds me not so bad
(내겐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
What can I do I thought she was my boo
(그녀는 내 사랑(애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But one day she will know my truth
(그래도 언젠가 그녀는 내 진실을 알 수 있겠지.)
Just please my mind is true
(제발 내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길)
I'm so sorry my boo can you hear?
미안해, 내 사랑.....너 듣고 있니?
듣고 있니?
내 노래.......
2
just please를 마지막으로 곡을 정리했다.
겨울의 아침은 7시가 되어서도 해를 보기가 어렵다.
창밖으로 어슴푸레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해서야 연습실을 정리했다.
연습실을 나가려다가 그 아이의 방문이 내 눈에 오늘따라 유난히 더 크게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방문 앞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금방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돌아서는데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신음 소리?
“고미녀! 고미녀!!”
밖에서 문을 두드려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아니 여전히 낮은 신음 소리만 들린다.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이 열린다.
찬 다다미 방 바닥에서 아이가 쓰러져 있다.
“미녀야!! 괜찮아? 왜 이래?”
아이는 이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황급히 아이를 안는데 아이의 몸에서 열이 펄펄 끓는다.
가슴이 선듯해진다.
아무리 불러도 아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심장이....정신없이 뛰기 시작한다.
이불을 펴고 아이를 일단 눕혔다.
그리고는 전기 히터를 켜서 아이의 곁에 두었다.
이제...뭘 해야 되지?
열을 내려야 할 텐데......
마음은 불안해지고 머리는 마비되는 것 같다.
일단 따뜻한 물과 수건을 가져와서 아이의 얼굴과, 팔, 다리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건은 이내 뜨거워지고, 아이의 몸에서 열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약을 먹이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다.
해열제를 챙겨와 보지만, 이걸 먹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미녀야, 일어나 봐. 약을 먹어야 열이 내리지. 고미녀!! 정신 차려 봐!!!”
아이는 계속 인사불성이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뭘...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을 못 차리니 약을 삼킬 수도 없다.
알약을 까서 아이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 입에 물을 머금은 채로 아이의 입술로 다가갔다.
그 와중에도 아이의 입술이 까칠한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입에서 아이의 입술 사이로 물이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쉽게 아이는 물을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자꾸만 물이 흘러나온다.
결국 알약은 다시 입 밖으로 나오고 만다.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아이가 물과 알약을 삼켰다.
“시...신...우...형?”
아이가 작게 신음 소리처럼 나를 부른다.
“괜찮아? 정신 들어?”
“무...물...좀........하아.....”
열에 너무 들떠서 탈수증상까지 보이는 것 같다.
물 컵을 입에 대줘도 마실 기력도 없어 보였다.
아이가 아프지만, 순간 갈등이 생긴다.
아까까지는 어차피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약을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가 직접 입에 물을 넣어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상황이다.
아이가........나중에 알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혼자 주저하는 사이 아이는 다시 물을 찾는다.
왜...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내 가슴은 진정을 못하는 건지.......
입 안에 물을 한 가득 머금고 아이의 입술로 또 한 번 다가간다.
물은 흘러 아이의 목 안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그 물이 다 흘러 들어갈 때까지....내 입술은 아이의 입술 위에 놓여 있고,
아이의 입술 위에 놓여 있었던 시간 이상으로 내 심장은 뛰어댄다.
열에 들뜬 아이의 입술만큼....내 입술도......화끈거리는 것 같다.
아이는 다시 기절하는 듯이 눈을 감았다.
나는 아이의 팔 다리를 수건으로 또다시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닦고 나니 아주 조금씩 열이 내리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내 마음도 진정이 되기 시작한다.
마음이 좀 놓이고 나니 그 언젠가가 떠오른다.
언젠가......이렇게 아이가 앓은 적이 있었지.
그 때....난....오로지 밖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걱정이 돼도 들어가 볼 수도 없었다.
오롯이 밤을 새면서 아이의 방 앞에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태경이가 그 밤을 아이 곁에서 간호하는 걸 보면서,
질투조차 하지 못하고 가슴 아파 하며 밖에서 지키고 있는 거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난.....어쩌면 그 어느 날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경이가 그 어느 날 했을 그 일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이 아이는.......태경이의......사람일 뿐.......그럴 뿐........
“어! 형!!!!”
정신이가 열린 문 사이로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깼냐?”
“뭐야!!! 왜 형이 여기 있어!!! 어~!!! 누나 아파?”
녀석의 목소리에서 그 언젠가.....나 자신이 보인다.
너도......이미......시작된 거냐?
“이젠 괜찮아. 일단 열은 내렸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누나! 누나!”
정신이는 직접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보며 아이를 깨우려고 했다.
“그냥 둬. 좀 자야 될 거다. 열은 내렸어.
근데 지금 몇 시야?”
“아홉시 반쯤 됐을 거야.
참...형 오늘 오전에 작곡 레슨 있는 날이잖아.
지금 가도 늦겠는데?”
“아........!”
오늘 열시에 완성된 곡으로 가녹음을 하기로 했었다.
잊고 있었다.
“형!!! 어서 가! 늦었잖아!”
“어........”
가야 하는데.....정말 가야 되는데......
왜 이렇게 발이 안 떨어지는지......모르겠다.
모르겠다. 뭐 때문인지....
“누나는 내가 볼게. 걱정 말고 갔다 와.”
정신이의 말에 확 깨는 것 같다.
그래, 누군가 볼 사람이 있으면, 난 내 할 일을 하는 게 맞다.
그게 정상인 거다.
그러니 무조건 가야 한다.
걸어 나가다가.......정신이를 불렀다.
“정신아......”
“응?”
정신이의 눈이 맑다.
그 눈을 보고 있으니......내 마음 한 켠이 또 시큰해온다.
착한 녀석인데.......
“정신아......”
“왜? 형! 오늘....좀 이상하다.”
“너무.......많이......다치진 마라......”
“뭐? 무슨 소리야 형!! 형!!!!”
정신이가 알아듣든 말든 난 내가 해 주고픈 말만 던지고 돌아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게 다치고 싶지 않다고 다치지 않는 건 아닌데....그런 건데......
3
처음 일본에 와서 공연을 하면, 늘....내 앞에 그 아이가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 틈 속에 그 아이가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노래를 하면서 눈을 감게 된 건.......
잊기 위해 온 이 곳에서........난....그 아이를 늘 만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보일 때면 눈을 감고 그 아이를 지워냈다.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
그리움으로 곡을 쓰고, 노래하면서는 그 그리움을 끊어낸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그러면서 점점 내 마음은......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현실 속에 나는....점점 얼어가고 있었다.
이미....내 심장을 두고 왔으니....이곳에서 뛸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내 심장은 얼어갔다.
그래 그랬다.
“신우 형!!!!”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그런 줄 알았다.
숱한 시간을 지워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단 한 마디가 나를 다시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려놓을 줄.....정말 몰랐다.
그럴 리가 없다고.....이곳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거라고....
아무리 내 머리가 얘기를 해도, 심장은......뛰고 있었다.
이곳에는 없는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이였다.
날더러 어쩌라는 건지.......
이곳에 와서 이렇게 내 심장을 뛰게 해 버리면, 이때까지 나의 노력은 뭐가 되는 건지......
화가 났다.
내 노력에, 내 시간에, 그리고 다시 뛰고 있는 내 심장에.......
그리고....
그 아이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반가운 마음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그 아이의 정직함에 너무나 화가 났다.
도대체.....날더러.....어쩌라는 건지.....
이 아이는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지.....전혀 모른다.
미녀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종현이가 내게 미녀 얘기를 했다.
“형! 좀....이상한 거 알아?”
어떻게든 아이와 말을 섞지 않으려 계속 피해 다니고만 있는데 종현이가 와서 내게 툭 던졌다.
“뭐가?”
“형....미녀한테....되게 차갑게 군다?”
“......그....래서?”
“이상하다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둘이......한국에서 뭔 일 있었어?
마실장님 얘기 들어보니 A.N.Jell에 같이 있었다며?
그 때 고미남이 미녀였다며?
꽤 친했다 그러던데.......
왜 그래?”
“.................”
종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녀석에게......들켜버린 걸까.....
“그거 알아? 동전의 양면......”
동전의 양면이라 말하는 종현이의 눈빛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뭐?”
“사랑의 반대가 뭔지 알아?”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종현이 녀석이 점점 긴장하게 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야.”
“이종현!!”
“아니, 그렇다구......나 간다.”
연습실에서 나가던 종현이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근데.... 미녀는.......항상 형을 보고 있는 거 알아?”
저 녀석.......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를 보고 있다구?
왜?
왜.......
그 알 수 없는 말은.......지금까지도 내 심장을.....뛰게 한다.
4
미녀는 점점 적응해 가는 듯했다.
나는 아이를 멀리했지만, 멤버들은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작곡도 배우고, 나름 열심이었다.
힘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난.......예전의 신우 형이 될 수는 없는 거였다.
연습실에 들어가는 것이......점점 힘들어진다.
자꾸만 마음이.......힘이 든다.
내 눈은......늘.....그곳을 향해 있다.
내 노래도, 내 눈도, 내 마음도......자꾸만.....그곳을 향한다.
정말로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피하는 척만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나 자신을 알 수가 없다.
그 날도........어두운 연습실에서 작은 스탠드 불만 켜두고 곡을 쓰고 있었다.
어느 틈에 내 앞에 그 아이가 와 있었다.
가슴이.......떨리기 시작한다.
바보 같이.....그 아이가 내 앞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니.....
얼어붙기는 뭐가 얼어붙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심장이 펄펄 살아서 날뛰어대는데.....
나 자신에게 너무나 한심했다.
그러나.....난.....아이의 눈도 바라보지 못한 채, 겨우 짧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신우 형은.....왜 그렇게 열심히 곡을 써요?
오늘 같은 날...다들 너무 힘들었는데, 쉴 수도 있을 텐데.....
그것도 5곡씩이나...어떻게 그렇게 매일 거르지 않고 곡을 쓸 수 있어요?”
아이의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바라봤다.
힘든 거니.......
처량한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그 눈을 보고 있으니.......또 한 번......가슴이 싸해진다.
“작곡...배우니까....많이 힘들어?”
“아.....네....저한텐 많이 어려워요.
그래서 형이 한 번도 안 거르고 곡을 쓰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난 천재가 아니니깐.....”
“예?‘
“천재들은 영감으로 쓰겠지만, 난 천재가 아니니까 노력으로 곡을 써야 해.
그러니 연습밖에 없는 거지
영감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미녀야....
연습하다 보니......그리움도.......잊혀지더라.
또 한 번 뭔가 울컥한 것이 올라오려고 해서 난 급히 기타를 다시 잡았다.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시선이 불편하다.
“근데,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야?”
“예?”
“좀, 비켜줬음 좋겠는데......”
“아.....죄송합니다. 작업하시는데.......”
그렇게 난 아이를 내쫓았다.
내가 보냈으면서.......연습실은 금방 휑해져버린다.
“미친 놈......”
그래....아이에게 멋지게 말했다.
천재는 영감으로 쓰지만, 난 천재가 아니니까 노력으로 써야 한다고........
아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곡을 쓰냐고.......
그러나....정작.....또 하나의 큰 이유를.....정직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왜 이러냐구?
이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보고 싶어 죽을 것 같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으니까.....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내 심장이 이렇게 살아 있다고 뛰고 있다고.....
너에게 가라고 자꾸만 말하니까......
그래서......곡을 썼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그래서......그렇게 미친 듯이 써댔어.
근데.....이렇게 와 버리면, 내 눈 앞에서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니.....
정말 날더러 어쩌라는 거니......
고문이다.
이건 정말........고문이다.
아이는 모르겠지.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미친 듯이 기타를 붙잡고 있는지......
너에게 뛰어 가려는 마음을 어떤 마음으로 누르고 있는지......
넌......그때도 몰랐고....지금도 모르잖아.
그러면서 넌.....또다시.....누군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기대고 있잖아.
정신이는....정신이는....어쩌면.......나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이와 같이 있는 아이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 짠해지기도 한다.
5
아이의 첫 데뷔 공연......
아이는 teardrops in the rain을 선택했다.
내가 편곡 겸 한국어 가사를 쓰겠다고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동안이나 진전이 없었다.
teardrops in the rain을....내가 어떤 마음으로 불렀는지....아이는 전혀 알지 못한다.
Why can't I have you here just like it used to be
왜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널 가질 수는 없는 걸까.....
I don't know which way to choose
내가 무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How can I find a way to go on
내가 가야할 길을 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I don't know if I can go on without you oh
너 없이 내가 살아갈 수는 있을지....정말 난....모르겠어.
Even if my heart's still beating just for you
여전히 내 심장은 오로지 너 때문에 뛰고 있는데,
I really know you are not feeling like I do
넌 나처럼 그렇지 않다는 걸(느끼고 있지 않다는 걸) 나도 정말 알고 있는데.....
And even if the sun is shining over me
여전히 태양은 나를 비춰주고 있지만,
How come I still freeze?
왜...난..여전히 얼어있는 걸까?
이런 가사들을....이 노래를 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불렀는지 모르지?
내 심장은 여전히 너 때문에 뛰지만, 너의 심장은 오로지 황태경만으로 뛰고 있을 텐데......
도저히 볼 수도, 봐서도 안 되는...널....
그러면서도 널 볼 수 없어서 숨이 막히는 날.......
그 미칠 듯한 마음을 노래로 불렀던...이 노래를.....
아이가.....부르겠다니......
도저히 이 가사 그대로 번역할 수가 없었다.
지금....차가운 내 모습 그대로 가사를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한다.
아이가....내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욕심내지 못하도록......
그렇게 단호하게, 차갑게 가사를 붙여 나갔다.
모두들 말도 안 된다고 전혀 다른 곡이라고 반대했지만, 난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무대 위에 섰다.
teardrops in the rain......
이 노래는......오로지......아이를 위한 노래다.
아이와 함께 무대에 서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심장의 노래.......
나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내 심장의 외침.......
이 노래가 마치 형체를 지닌 것처럼, 내 마음을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이 공간을 가득 채워 나갔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내 눈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심장이......아이를 눈으로 담아오고 있었다.
내 심장이 뛰고 있다고.....
여전히...너 때문에 뛰고 있다고......
그렇게 내 심장이 아이를 향해 노래하고 있었다.
아이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럴 겁니다 잊을 겁니다 오늘부터 난
그대란 사람 모르는 겁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겁니다
내가 쓴 가사지만, 아이의 마음을 듣는 기분이었다.
마치.....내 마음을 비웃는 것처럼.....노래는......차가웠다.
모두 지울 겁니다
꼭 그럴 겁니다
사랑이 가면 또 다른 사랑이 다시 올 겁니다 꼭 그럴 겁니다
눈물이 흘러도 조금만 지나면 웃을 겁니다
그럴 겁니다 잊을 겁니다 상처가 아물 듯
그럴 겁니다 그럴 겁니다 잊을 겁니다
그런데......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고 싶은 건...난데......
왜....우는 거니.........
왜....그런 슬픈 표정으로....날 바라보는 거니......
왜....그렇게 날....자꾸만 고문하는 거니......
너에게도.....조금은.......고통스러운 거니......
그런 거니.......
“근데.... 미녀는.......항상 형을 보고 있는 거 알아?”
종현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내 심장을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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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밤에 올리려 했는데 결국 2시간 가까이 초과해 버렸네요.
이상하게 이번 회는 분량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27회 안에 써야 할 내용을 다 못 쓰고 늘어나 버렸네요.
쓰다 보면 늘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2회 내용이 거의 4회로 늘어날 듯합니다.
아무래도 27회와 28회는 신우의 시선이라 자꾸 쓰고 싶은 내용이 더 생기네요.
블로그로 찾아와서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 <신우 이야기>는 <신우 이야기 알림판>에서 언제 올리게 되는지 확인해 주시길.....
이번에 쓰면서 느꼈지만,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쓰는 것도 좀 버거운 상황입니다.
그래도....최소 일주일에 한 편은 꼭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시길.....(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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