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의 어린이날 선물로 <금발이 너무해> 공연을 보러 갔다.
윤이가 워낙 소녀시대의 제시카를 좋아해서 제시카 공연을 보느라 자리는 그리 좋은 곳을 잡지 못했다.
VIP는 이미 다 찼고, R석도 뒷 자리 밖에 남지 않아서
별 기대 없이, 아이에게 제시카를 직접 보여준다는 의미에, 어린이날 선물이려니 하면서 오페라 하우스로 갔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금발이 너무해>를 무지 좋아했다.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영화 <금발이 너무해>를 보면, 정말 유치뽕짝 그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이 영화를 보면, 늘...나 자신이....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견하기도 하고, 스스로 토닥토닥해 주고 싶기도 하다.
예전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이 놀라워한다.
변해 버린 내 모습에 더 놀라워하기도 하고,
이렇게 미친 듯이 일하는, workaholic이 되어 버린 내 모습에 적응 못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그저....부모님이나 언니, 오빠가 뭐든 다 해줘서.....
아무 것도 내 손으로 하지 않는 그런 류의 애였다.
부모님은....늘 내게 니가 뭘 하겠냐는 식으로 늘 말씀하셨다.
뭐 하나 내 손으로 안 하려고 하니...걱정이셨겠지만,
중고등학교 때도....만화에 미쳐 있거나, 책에 미쳐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 버리고,
고 3 때는, 만화책 빌려오는 담당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습 째고, 담타넘고 놀러가서 19세 이상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고......
내 주변에는....일명...노는 애들로 가득차 있었다.
일명...맥주에 머리 감아서 탈색시킨 애들로 가득했으니....ㅎㅎㅎㅎ
그리...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 재수시절.....어쩌면, 가장 열심히 놀았던 1년이 아니었던가 한다.
노는 게 좋았고, 춤추는 게 좋았고,......
학원에 있었던 시간보다, 학원 밖 공원을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놀곤 했다.
대학에 가서도...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놀았다.
엄마는 늘 내가 걱정이었다.
날라리라고 생각하셨으니......아주 오랫동안 내 컨셉은 날라리였다.
굉장히 말랐었고, 굉장히 민감했었고, 자기 중심적이었고, 내 스타일이라는 게 분명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놓고도, 뒷감당 안 하고 배째라...식으로 살아온 내가......
대학에 간 들...뭘 그리 바뀌었겠느냐 마는,
대학에서...난....한 해 한 해...새로운 경험을 하기 시작하면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여전히...난 날라리였지만, 그 안에서도...뭔가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녔다.
농활에 매년 참여하고, 야학을 8년 하고....
그 일들을 할 때도, 아무도 날 인정하지 않았다.
저 날라리가 하면 얼마나 하겠냐...뭐 이런 반응이었다.
선입견.......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와 나는 엄연히 너무나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난.......엘 우즈에게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아니, 엘 우즈가 직면한 상황들 속에서 나 자신의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즈처럼 저렇게 자신감있게 상황을 바꾸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억울했던 것 같다.
뭔가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은 시작되었다.
그때로부터 13년....
온갖 오해와 미움과 편견으로 시작한 1998년 그 때부터,
난......예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기 시작했다.
절대로 넌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먼저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
그 선입견을 바꾸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2002년의 새로운 시작과,
2003년 아버지의 부고와 내 딸의 탄생
그리고....2005년 10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그 날 이후,
난......내가 이때까지 나라고 여겨왔던 것을 버렸다.
마치 엘 우즈가 핑크에서 검정 정장을 입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바꾸어 갔다.
엄마가...작년에 이런 말을 했다.
" 정말 너는 이 일에 미친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엄마의 말은 정말 사실인 듯하다.
아직도 엄마는, 지금의 내가 믿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이렇게 일에 미쳐서 살아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살았다면, 완전히 내 인생이 달라졌지 않았겠느냐고....
서울대라도 갔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나...아마...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만나지 않고서는, 인간은 그 일에 미칠 수 없으니까.....
난....좀....늦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만난 것이고, 그래서 미칠 수 있는 것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잘하고 싶었고,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13년은.....흘러왔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날라리다.
이 일을 하면서, 난....결국 내가 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고야 말았으니........
아주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꿈꿔왔던,
마흔에는 반드시 글쟁이가 되어 있을 거라는...
그 꿈을.....지금...열심히 만들어가고 있으니.......
결국 나는.......
이성적인 검은 정장 속에 또 다시 핑크를 품고 있는
날라리일지 모른다.
<금발은 괴로워>.....
뮤지컬을 보면서........
또 한 번 힘을 얻었다.
나.....13년을...그 편견을 깨며 여기까지 왔고,
난.....앞으로 더 이상, 더 높이 날아갈 거라는.......
그런....희망이 보인다.
+) 제시카.....정말 너무나 노래를 잘 해서, 우리 남편은 MR을 틀어놓고 하는 줄 알았을 정도다.
역시, 자신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 멋진 것 같다. 제시카가 가수라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 뮤지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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