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36. 최고의 하나
1.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러한 이유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김해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벌써 가슴이 쿵쿵하고 뛰고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운이 없으셨지만, 그래도 웃고 계셨다.
그러나.........결국 난 또 다시 그 웃음에 속았던 것이다.
다시 본 어머니는 벨트로 온 몸을 꽁꽁 묶이신 채, 레이저 치료 기계 안에 2시간 가까이 갇혀 계셨다.
“어머니!!!!!”
“시...신....우.....야......! 너.....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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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는 어떤 관계시죠?”
“아들...입니다. 병명이.......뭐죠?”
“음......후두암 초기입니다. 다행이 일찍 발견은 했는데, 문제는 재발이죠.
환자분이 워낙 몸이 약하시니..........”
“수술은.........안 해도 되는 건가요?”
“후두암은 사실 레이저 치료로 충분히 완치가 됩니다.
특히 환자분은 정밀 레이저 치료를 받으시기 때문에 훨씬 완치율이 높습니다.”
“치료는......얼마나 해야 되는 거죠?”
“보통 4~5주 정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환자분은 4주차에 접어드셨는데, 경과를 봐가면서 5주까지 할지 결정을 내릴 겁니다.
그런데......”
“예?”
“환자분이 4주 동안 겨우 겨우 견뎌내고 있어서 아마 5주까지는 무리일 것 같네요.”
“많이.......고통스러운가요?”
“음.....아무래도 입 안에 레이저 치료를 하다 보니, 먹는 것도 힘드실 거고, 침샘이 다 말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회복은 1~2달 이상 걸릴 겁니다.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재발은 1년 동안이 가장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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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얘기를 들어봐도, 초기라고 하니 좀 안심이 됐었다.
또 예전보다 기계가 좋아져서 정밀 레이저 기계라 다른 세포들을 훨씬 덜 죽인다니...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별 거 아니구나 싶었다.
약간의 치료만 하면 되는 거라고......
따로 수술도 없고, 항암치료도 없으니, 게다가 완치율도 굉장히 높다니......
이건 암도 아니구나 싶었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내 눈으로 보고 나서는, 퉁퉁 부어 있는 어머니를 보고 나서는,
자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떻...게...온......거...니?”
팔도, 다리도 온통 벌겋게 묶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게다가.........어머니의 목은 축 늘어난 채 벌겋게 익어 있었다.
몸은 이보다 더 마를 수 없을 만큼, 정말 가죽만 남으신 것 같았다.
“괜....찮......아.........방금....받아..서...그래......
좀........있으면..........괜찮.......아...........”
정말 화가 난다.
아들이란 놈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어머닌 지금..........생사를 오가시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정말.......나 자신이 한심하다.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다.
2
결국 어머니는 죽도 다 토해내셨다.
묽게 완전히 물처럼 만들어서 목 안으로 넣어드려도, 고통스러워하신다.
입 안은.........도저히.........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검붉게 타 버린 입 속...........
화상을 입은 상황이니 음식물이 들어가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다.
수건으로 어머니의 입 주위를 닦아드리는데, 어머니께서 미안해 하신다.
어머니의 눈이 미안하다고....자꾸만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내 손을 토닥이며,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미안하다고, 괜찮다고....자꾸만 말씀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눈을 피해 수건으로 닦고만 있는데,
내 손등 위로 물이 툭 하니 떨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들놈이 이렇게 약해서는 안 되는데..........
“어머니, 물 좀 떠올게요.”
메이는 목으로 겨우 말씀을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벽에 기대서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온 거냐?”
아버지다.
아버지가 병실 앞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낯설다.
“나가서 얘기 좀 하자.”
내게 화를 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차분했다.
1층 커피숍은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니 어머니, 어떻더냐? 그래도 내가 무리하게 너보고 오라고 한 거냐?”
“..............”
“니가.........니 어미 곁에 있어 줘라.”
“왜......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그러세요?”
“난....난..........아니다.
그래도 니가 아들이니까..........니 어미가 저렇게 힘든데, 니가 옆에 있어야 힘이 날 거 아니냐.”
아들..........
그래 난.......이 사람의 아들이고, 내 어머니의 아들이다.
그래서........고통스럽다.
“니 어미.....이번 치료도 굉장히 고통스럽게 받고 있다.
지금은 목 안이나 밖이나 화상으로 다 타서 먹는 것도 어렵고.........
재발 때문에도 걱정이다.
니가..........곁에 있어야 니 어미도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될 거다.”
“그래서....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세요?”
“회사에 들어와서 일 배워라.
그리고 군대도 공익으로 다녀와.
니 어미.....몸이.......많이.....안 좋다.
이런 말까지 하기는 그렇다만, 내 생각에는......니 어미.......남은 날이......그리 길 것 같지가 않다.”
갑자기 쿵 하고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예감.........
아버지도 나도........어쩌면, 뭔가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강신우! 이제! 제자리로 돌아와라!”
제자리.......
무엇이 제자리인가.......
내게 제자리란 무엇이란 말인가.......!
“저에게........제자리란 게........있었나요?”
“강신우! 니 어미 곁으로 오라는 말이다!
사내란 강해야 하는 법!
나약한 자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후우~!!
니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
삶이란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야.
한 집안에 가장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말이야.”
“한 집안의 가장이라........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지도 않는........그런 사람이.......가장이 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려두고, 자식을 버려둔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난 눈을 들어 아버지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분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그저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뭔가.......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눈은 세월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그 눈은 무거웠다.
“니가 정말 그 계집애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느냐?
결국 니 어미의 다른 모습일 뿐이야. 착각하고 있을 뿐이야.”
“착각...이라구요?
아버지는.....평생.......사랑이란 걸 해 보신 적이나 있는지 모르겠군요.
아버지가 그랬다고,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고 함부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라고? 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아!들!이야!
넌 내 피가 흐르고 있어!
니 피속에 이미 승부사의 피가 들끓고 있다고!
너 역시 하나에 안주하면서 살 놈이 아니야!
니 일을 하면서, 성공하고 싶은 들끓는 피가 있단 말이다!
그러니 감정 따위에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감정은....널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감정이....나약하게 만든다구요?”
“그래.......
나도.......젊을 때......그랬던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너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나도 겪어 봤으니.......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걸어간 인생의 선배가 하는 말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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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국아, 니는 절대로 약하게 살문 안 되는기라. 알았슴매?”
“예? 무신 소리함매? 아부지?”
“사내라는 놈은 말이지.......지 애미랑 아바이 챙기고, 지 새끼 챙기고 살아야 함매!
기억하기라!
좋네 죽네 그딴 거 필요 업슴매!
밥 먹고 살 게 지 새끼 챙기며 살아야 함매!
현국이 니는 강해져야 함매!”
“알았응께 걱정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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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와 낯선 곳에서 죽기 살기로 돈을 벌어야했고,
다른 것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되었다.
지금도 내 아버지의 삶은 내 폐부에 깊이 박혀 있어.
넌..........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
내 아버지의 삶은.........날 정신차리게도 하지만, 또 내 한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내가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신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아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나와 이야기한 적이........살아오면서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함경도에서 월남하셨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 거였다.
전쟁 중에 함경도에서 월남하셔서 부산까지 내려오신 이야기를....난......성인이 되어서야 겨우 듣고 있었다.
사내는 나약해서는 안 된다고, 쉽게 감정을 비춰서도, 빠져서도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의 입을 거쳐 손자인 내게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한 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계집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사내란 자들의 삶에 대해서, 가장의 무게에 대해서, 그렇게 20세기의 이야기를 21세기에 듣고 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입으로 듣고 있지만,
어쩌면 할아버지도 그 위의 할아버지에게, 또 그 위의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내려오며 전해지고 주입되고 학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들은.......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소유물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소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복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처럼 생각하고, 자신처럼 움직이고, 행동할 거라고, 그렇게 착각한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삶이라 생각한다.
지금 자신이 개입해서 자식의 잘못된 길을 고쳐주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간섭하고 질타하고 자신의 방향대로 밀고 가려고 한다.
그들의 삶이 놓여 있던 시대는 20세기.....
그리고 내 삶이 놓여 있는 시대는 21세기......
먹고 사는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환경은 사람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꾼다.
그들이 학습한 그대로, 지금의 나를 주입하고 강압할........이유는.....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해한다.
할아버지의 시대.....
그리고 아버지의 시대........
그러나 이해가 납득이 되고, 그 납득이 체득이 되어 내 삶을 조종하게 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여전히......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지배를......받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싸우고 있다.
3.
“아버지 말씀.....듣지 마라!”
“어머니.......”
어머니는 단호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병실에 들어와서 어머니가 하신 첫마디였다.
어떤 말씀도 드리지 않았는데, 이미 어머니는 다 알고 계신 듯했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했든지 듣지 마.
니가 원하는 걸 해.”
아버지께는 반박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너무나 많이 참고 사셨다.
그리고 지금은, 두 눈으로 보고 있기가 가슴이 시릴 정도다.
이 분을 또........이렇게 혼자 둘 수 있을 것인지.........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버지와 상관없이
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날 빤히 바라보신다.
아버지의 눈처럼 세월을 담고 있는 내 어머니의 눈.
그러나 내게는 너무나 아픈 눈이다.
“너에게.....난 뭘까.....신우야.”
“무슨......말씀이세요?
어머닌.......어머니죠. 저에게 단 하나뿐인.....어머니.......”
“그래, 그 하나뿐인 어머니........
그러면서 니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를 단 한 번도 고통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신우야!!!”
어머니는 내 말을 단호히 끊으셨다.
“내게 넌 어떤 존재인지........말해줄까?
신우 넌 내게.......
니 아버지이자, 내 희망이었고,
그리고............
내.........복수였다.”
복수?
지금.......어머니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온 거지?
난 들어놓고서도 믿을 수가 없다.
모든 고통을 안으로만 삭이고, 자신을 희생만 하시는
온화하고 따뜻한, 그래서 더 가슴 아픈 나의 어머니의 입에서....
복수라는......말이 나왔다는 걸....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어머니....지금 뭐라고....?”
“신우야, 난 평생을 두고 복수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어머니는........희생을 하셨지......단 한번도 복수를 하신 적이 없어요.
제가 아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래요.”
“신우야, 어쩌면 나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다 용서한 것처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난.......복수를 하고 있었던 거 같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말씀.
저 말씀 역시 난.......어머니의 희생에서 나온 말씀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저런 식으로 자신에게 죄를 돌리고, 또 아버지를 감싸는 거라고......
“난........니 아버지를 숨막히게 했어.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그저 내 자존심이었지.
다른 여자와 바람난 남편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도저히 내 자존심이 상해서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누가.......그런 걸.......두고 볼 수 있어요!!!”
“아니야........
니 아버지가 그 여자 앞에서 날 밀쳤을 때, 순간적으로 생각했어.
여기서 죽어버리면, 저 남자가 평생 나라는 짐을 가슴에 담고 살겠구나.
그러니 여기서 죽어버리자.
저 남자의 평생 짐이 되게, 죽어버려서 평생 고통스럽게 하자.......
그 순간.......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머니!!!! 어떻게 그런!!!”
“신우야........
니 아버지가 잘한 건 아니야.
가족을 배신했지. 아니, 아내인 날 배신했지.
그러나 나 또한 잘한 건 아니야.
난........집착했어. 니 아버지의 꿈을...........인정해 준 적이 없었어.
그저 아버지의 지위, 아버지의 돈, 아버지가 만들어 주는 가족이라는 환경,
그것이 내 자존심이 되었지.”
난....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아내들은 남편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집이라는 울타리에 틀어박혀서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며,
그렇게 남편 하나 보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어떻게 집착이 된다는 것인가.......
“사실은........내 다리가 잘렸다는 말을 듣고......난........사실.......다행이다 싶었어.
멀쩡했다면 난.......손목이라도 그었을 거야.
그래.....죽지 못할 바엔, 이렇게 저 사람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자.
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평생 두려움에 떨게,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그렇게 만들자 싶었어.
희숙이가 와서 니 아버지에게 난리를 칠 때도, 속이 후련했어.
그 상황에서도 난 착한 척을 했지.
괜찮다고....다...내 잘못이라고.........
그렇게 난 남편만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역할을 했어.
많은 사람들이 니 아버지를 비난할 수 있게......그렇게 만들었어.”
일부러.......그러셨다고?
난.......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실제로 그런 마음이 드셨다고 해도 아무도 어머니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만큼 아버지는.........악했다.
“그리고 난 니 아버지에게 헤어지자고 말했어.
솔직히....내가 그 말을 하면, 아버지도 결국에는 헤어질 줄 알았어.
네 아버지가 나와 헤어지면, 결국 온갖 비난을 받을 테니........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지.
악당과 희생하는 약한 양의 역할을........확실하게 만들고 싶었어.
그런데.........희한하게도, 니 아버지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더라.
그리고는 헤어질 수 없다고 하더라.
웃기지 않니?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헤어질 수 없다고....
그 말만 했어.”
어머니께서 떠나시겠다고 했다는....그 말씀이었다.
아버지가 도리어 붙잡았다는.........
그런데 뭔가.......내가 생각했던 것과는........많이.......달랐다.
“그렇게....내 복수는 시작됐어.
두 다리가 없는 나를 지켜보며, 니 아버지는 늘......자신의 죄를 생각해야 했어.
내 다리가 아플수록, 니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했지.
감정이란 걸, 배운 적도 없고, 표현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니,
자신이 겪는 감정의 고통이 뭔지도 몰랐을 거야.
내 눈에는 보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자신이 왜 힘든지, 왜 고통스러운지 몰랐던 거지.
그래서 난.........내가 아픈 게 좋았어.
내 다리가 아플수록 난.......제대로 된 복수를 하고 있는 거니까.........”
내 앞에 계신 분이......정말 내 어머니가 맞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내가 아는 어머니.
아니 내가 생각했던 어머니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무서웠다.
“그 다음 복수가..........바로.....너였어.
신우 넌...........내 고통을 다 보며 자랐어.
내가 고통스러워 할수록, 넌.........많이.......힘들었지.
그리고 힘든 만큼, 너와 네 아버지의 사이는......점점 멀어졌어.
그건......내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나도 모르겠구나.
그러나........결론은.........그것 역시, 네 아버지에게는 고통이었어.
잘려나간 다리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와,
그런 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
그건 결국 자신의 죄를 계속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했을 테니까.......
난 니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앗았어.
그것이........최고의 복수였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신우야, 내가.......왜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모르겠니?”
난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난 정말로 모르겠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잠시 쳐다보시더니,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신우야, 너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 건, 니 아버지가 아니야.
그건.........바로.........나야.”
“아니에요. 절대로 그건 아니에요.”
“아니! 맞아!
넌......내 고통을 다 지켜봐야만 했어.
평생.......내 정신적인 고통, 내 육체적인 고통......모두 지켜봐야 했어.
그리곤 내가 아프면 아플수록 니 아버지를 미워하게 됐지.
내 고통들은.........쇠사슬이 돼서 널 옭아매 버렸어.
사실은.......
널......숨막히게 했던 건, 니 아버지가 아니라........
결국은...............나였어.”
“어머니!!!!!”
“그러니 떠나라!
이 따위 숨막히는 고통 따위 버리고 떠나!
그만큼.........고통스러웠으면 됐어.
그걸로 충분해. 신우야! 아니 니 인생은 너무.........힘들었어.
지금이라도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난 니 아버지를 숨막히게 했어.
그걸로 족해.
내 아들까지.........숨막히게 하고 싶지 않아.”
이건 뭐지?
어머니는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왜......복수라고 하시지?
평생을 그렇게 희생만 하셔놓고, 왜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시지?
왜! 왜!
“신우야........사랑은......숨막히게 하는 게 아니야.
구속하는 게 아니야.
내 옆에만 두는 게 아니야.
사랑은.........
그 사람을.........자유롭게 해 주는 거야.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놓아줄 수 있는 거............
그게.......사랑이더라.
그러니........난.......사랑한 적이......없었던 거야...........”
4
“......................”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우 형!!! 신우 형이죠!!!”
“.......................”
“신우 형!!! 말씀 좀 해 보세요? 네? 신우 형!!!”
목소리가 들린다.
미친 듯이 보고 싶은 목소리.........
내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는 목소리..........
오늘은.......그 목소리에.........기대고 싶다.
“미...녀야.........”
“신우 형!!!! 괜찮아요? 목소리가....왜 그래요?
어머니는....어머니는 괜찮으신 거죠? 그죠?”
“미녀야.........”
“무슨 일 있었어요?”
“모르겠어. 아무 것도 모르겠어.”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다.
뭔가가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신우 형.........”
“난........어머니가.........절대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했어......
지금도....그렇게 생각해......
근데........잘 모르겠어. 아무 것도 모르겠어.”
“.......................”
“미녀야, 어머니가.........평생을 두고 아버지께 복수를 하셨대.
사랑이 아니라, 복수였대.
내가 배운 사랑은.........어머니의 사랑이었는데,
그렇게 답답하고, 애절하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고통스러운......거였는데,
어머니는......그게 사랑이 아니었대.
근데 말이야.
미녀야.......
아버지가.........날 숨막히게 한다고....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무의식으로는........어머니 말씀처럼, 어머니가........내 삶의 굴레였을지도 몰라.”
“뭐가........가장.......힘든 거예요?”
“모르겠어. 나도.......
어머니를 지켜보는 게 힘들었어.
그리고.........아버지를 지켜보는 것도.........고통스러웠어.
근데 말이야. 아버지는 미워하면 되니까.........그저 미워하기만 하면 됐는데,
어머니는........내 아픔이었어.
그러면서........두려웠어.
어머니는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나 자신에 대해 두려웠어.
닮고 싶지 않은데, 닮아서는 안 되는데,
나도 어느새 아버지처럼...........그렇게 닮아갈까봐..........이미 닮아 있을까봐........
무서워..........”
“신우 형.........”
“어머니는......내게 떠나라고 하셔.
더 이상........나를 숨 막히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고........
내 꿈을 찾으라고 하시지만,
내가 떠난다고, 어머니의 굴레에서,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꿈만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정작 가장 두려운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굴레가......내 현재에 영향을 미칠까봐 두렵다는.........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 두렵다고........
결국.....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어머니를 통해 보고야 말았다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내게서 되풀이 될까봐...........
너무 두렵다고..........
그 말은..........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입밖에 내면, 정말 그렇게 될까봐..........너무나 두렵다.
난......아직도.......열 살의 시간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우 형,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자리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리고 신우 형도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달라진 건 없다........
그럴까....미녀야........
앞으로도 달라질 건....없는 걸까.....
“어머니는.....어머니의 방식대로.......사랑을 하셨을 뿐이에요.
그것이 복수든, 그것이 증오든, 그것이 용서든,
그 역시.......어머니의 사랑이었을 뿐이에요.
그리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셨을 거예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하고, 깨달아갈 뿐이에요.”
“미녀야......난.......”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어요.
더 나빠진 것도 없어요.
그저 같아요. 이미 바닥을 쳤잖아요. 그러니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다 같은 곳에 서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나도, 신우 형도.......변함없이 같은 곳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두려워할 것도 없어요.”
“................”
“어머니 말씀처럼 돌아와요. 신우 형.
어머니는, 신우 형을.......책임이라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 신우 형을 아끼고 기다리는 사람 곁으로 와요.
당신이 길들여서, 당신만 보고, 당신만 느끼고, 당신만 품고 있는......
그 사람 곁으로 와요.”
가슴에서 뭔가가 자꾸만 올라온다.
내 울대를 흔들며, 뭉클한 뭔가가 내 목소리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 같다.
“미녀야.........보고......싶다.”
“나도..........보고 싶어요. 그러니까........돌아 와요.”
난.......어머니일까........아버지일까........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는 것........
미치도록........보고 싶다는 것........
그래서.......내 심장이.......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아이 때문에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것.........
그뿐이다.
5
다음 날 아침..........어머니께 갔다.
“결정했니?”
“네. 죄송해요. 어머니.....”
“아니야. 잘 생각했어.
미녀가.........니 결정......도와 준 거니?”
“네.........”
어머니가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막상 간다고 말씀드리니 너무나 죄송했다.
여전히 의문이 든다.
내가 이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는 게 맞는 것인지......
여전히...무엇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나도.......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 때마다 내 눈에 니가 보이더라.
살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널 붙잡고, 너 때문에 살았던 거 같다.”
“어머니........”
“그런데.......내 그 마음이 너에겐 엄청난 짐이 되었을 거야.”
“아....니에요. 어머니, 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짐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전.....늘.....어머니를 사랑해요.”
“알아. 내 아들......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내 아들이 날 사랑하는 만큼, 내 아들이 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는 것도 알아.
근데 신우야, 널 붙잡고 살면서 말이야.
널 보면서, 숨을 쉴 수가 있더라.
그래서 살았어.”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속으로 속으로만 쌓여갔을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 말씀처럼.........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그 고통이 내 살을 갉아 먹고, 내 심장을 멍들게 했지만, 그렇다 해도 내 어머니를 빼고 내 삶을 말할 수는 없다.
“그때 난 기도했었어.
그래도 내가 가진 것들,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 다 가지고 가지 않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도 이렇게 하나를 남겨 주셔서, 내가 기대고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그렇게 감사하다고 그랬었어.
근데 말이야. 신우야, 그게 아니더라.”
“예?”
“신이, 내 인생의 즐거움을 다 가져 가시고, 단 한 가지만 겨우 남겨주신 게 아니더라.
그 반대였지.
한 가지를 남겨주신 게 아니라, 내 인생 최고의 하나를 선물로 주신 거더라.
그리고 그 최고의 한 가지는, 내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단번에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무기더라.
그러니 신께서 너에게도, 그러한 최고의 하나를 주셨겠지.
그렇지......신우야?”
최고의 하나......
괴로움을 단번에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나를....살고 싶게 만드는..........존재.......
그 존재만으로도, 그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되는 존재........
그리하여, 나는 그 존재에게로 돌아간다.
6
마치......처음 도쿄에 도착하는 듯이 심장이 떨린다.
아이가........기다리고 있을...........그곳으로.........난......이미 달리고 있다.
문이 보인다.
대문을 열고, 연습실 문을 열면, 그곳에........
아이가.........있을 것이다.
환한 미소로........날.......반겨 줄 것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오로지..........이 한 가지 생각 외에는 없었다.
연습실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 문을 열면, 정말 기쁠 거라고.........
너무나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었다.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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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사족을 안 쓰고 싶지만, 결국 이렇게 새가슴으로 사족을 달고야 맙니다.
36회는 아마 많이 지루하셨을 듯합니다.
신우와 신우 아버지, 신우 어머니의 관계....
이 관계를 풀지 않고서는 신우의 성장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은 좀 더 자세히 풀고 싶었지만, 너무 지루할 거 같아서 급 줄였습니다.
그래서 아마 약간 분위기만 느끼실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6~7회 정도 남은 것 같네요.
많이 지루하시겠지만, 이제 끝이 보이니 조금만 참아주시길......
그리고 제가 27일까지 휴가로 여행을 가서 아마 다음 회는 좀 늦어질 듯합니다.
그 주에는 쓰기가 어려울 것 같구요.
8월 첫 주에는 쓸 수 있도록 할게요.
그럼, 오늘도 평안하시길......(__)
+) 아직.....교정을 못 봤습니다. 다른 일거리 때문에 일단 올려 두고 나중에 다시 교정 볼게요.
혹시 이상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길......(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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