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아무 것도 읽지 못한다.

그랑블루08 2010. 8. 3. 18:05

작법책에 보면

늘 같은 말이 적혀 있다.

 

많이 읽으라.

 

많이 써보라는 말과 함께 아주 많이 쓰인 말이 바로 "많이 읽으라"다.

 

그러나 나는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난 하나도 못 읽고 있다.

나의 어쩔 수 없는 결벽증 때문인 것 같다.

 

김태원이 예능 프로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이의 음악을 들으면 알게 모르게 베끼게 된다고......"

 

난 정말 많이 공감했다.

나 역시 그러하므로.....

어떤 식으로라도 내 무의식에 자리 잡는 게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쌓인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건설적이다.

그러나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무언가가 쌓여 간다는 건, 좋은 일임과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그 많은 것들 가운데 나만의 향기를 지닌다는 것, 나만의 문체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나만의 색깔을 가진다는 것,

그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영향을 받는 것은 좋다.

그 영향 가운데서도 나만의 것을 가진다는 것...그것이 어렵다.

정말로 날카로운 정신을 가지고 살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한 걸음 한 걸음 표절로 다가가 있게 된다.

표절은 무서운 것이다.

나라는 색깔을 잃는 것........

결국 "나"라는 사람의 창조물이 사라지는 것........

표절을 하든, 표절을 당하든.......같은 의미가 된다.

 

닮아간다는 것, 누군가....나를 닮아간다는 것도.......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더 두려운 일은,

나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럽게도, 난.....읽지 못하고 있다.

평생을 문자를 읽으며 살아온 내게....읽지 못한다는 건, 엄청난 고통이다.

일본 소설도....그 어떤 소설도, 현재 유행하는 어떤 소설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소설 외에는 반 세기 이상 돼 버린 소설 외에는......읽지 못한다.

그래서.....슬프다.

 

쓰게 되면서 가장 슬픈 일은.......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은 쓰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아니,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완전히 내 색깔을 가질 때까지,

완전히 내 문체를 가질 때까지.......

읽는 즐거움은 계속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방과 창조 사이......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그 경계를 아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상  (0) 2010.08.14
모든 엄마는 딸들의 타산지석이다  (0) 2010.08.06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0) 2010.07.13
평안  (0) 2010.06.25
깨어있는 정신, 臥薪嘗膽  (0) 201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