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아무리 지켜봐도 적응 안 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어제 오후 두 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흔 해를 사셨으니 천수를 누리시긴 하신 것 같다.
죽음의 복도 타고 나셔서
가슴 통증 때문에 병원에 오셨다가 만 하루만에 돌아가셨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야기 다 하시고, 예배도 드리시고, 직접 기도도 하시고,
자식들과 하시고 싶은 이야기 다 하셔서,
잠시 치료 받으러 오셨다고 생각했지, 아무도 돌아가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같이 가셨던 엄마도, 이모들도....다들 그리 생각하셨다.
그런데.....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시더니.....
정말....잠을 주무시듯이 편안히......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남편과 함께 병원 응급실에 가보니,
외할머니께서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계셨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이미 얼굴은........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심장은...약물 때문에 뛰고 있을 뿐, 사실상 사망하신 거라고......하셨다.
창백한.......이미.....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진 외할머니의 남겨진 몸을 지켜보면서 뭔가.....짠한 느낌이 들었다.
외할머니와 친정 엄마, 그리고 나와 우리 딸.......
언젠가부터 그 고리가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외할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오셔서 1남 7녀를 두셨다.
엄마는 둘째딸......
외삼촌이 태어나시기 전까지....엄마가....거의 아들 역할을 했다고 했다.
건축가셨던 외할아버지, 그리고 마냥 공주 같았던 우리 외할머니......
그렇게 많은 자녀들와, 친척 식구들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외갓집에 계셨다고 한다.
6.25 전쟁 때도, 많은 친척 식구들이 외갓집에서 삶을 연명하셨을 정도로 그렇게 넓게 넓게 사셨다고 한다.
그 당시......100평이 넘는 집에 많은 식구들을 거둬먹일 정도로,
외할아버지는 재력이 대단하셨다고 했다.
그 당시 대구의 유명한 건물들은 다 외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다고 하셨고,
모태 신앙으로 다녔던 교회도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셨다고 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모태신앙이셨으니 우리는 5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아마.....기독교 첫 세대 집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셨던 교회에서 늘 뛰어놀고는 했다.
지금은......새 교회로 지어져서......대구의 명물이 될 만큼.....크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지만,
난...여전히...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그 예전 교회 건물이 더.....좋다.
뭔가....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외할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다니시면서, 외할아버지께서 지으신 건물들을 가르쳐주시곤 하셨다.
아직도...남아 있는 건물들이 있다.
아주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래도....여전히......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
마치 외할아버지를 만나는 듯....너무나 좋았다.
엄마에게도.....외할아버지는.....자랑과 그리움.....그 자체였다.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지지를 가장 많이 받으셨기도 했고, 가장 인정받으시기도 하셨던 것 같다.
이제 내년이면 엄마도 일흔이시지만, 그 당시 최고였던 경북여고와 대학까지 나오셨으니......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아들처럼 키우셨던 거 같다.
그래서 엄마의 외할아버지 사랑은 남다르셨다.
모든 걸 품고, 따뜻하고 자상하시고 그러면서 딸들을 아들처럼 당당하게 교육시키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완전히 다른 분이셨다.
외할머니는.....그야말로...귀부인스타일이랄까.
그래서....결국 집안 일은 거의 큰이모와 엄마가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한다.
동생들 키우고, 집안 일 하고, 집안 친척들 식사까지....책임지시고 사셨다고 했다.
그러면서......어린 남동생을 대신해서, 집안 대소사의 일을 책임지는 거까지 엄마는 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 언니가 태어난 해였을까? 어쨌든.....별거 아닌 수술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너무 일찍 혼자가 되셨고, 여전히 이모들과 외삼촌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는.......그렇게 외갓집에 기둥이 되어가셨다.
외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은........외할머니 평생을 사셔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끝까지 우아하고 통큰 할머니로 사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늘.......귀부인 같으셨고, 힘든 일을 별로 하신 적이 없고,
그러면서 딸들에게도, 아들에게도, 굉장히 많은 걸 요구하셨고,
그러는 가운데 자식들에게도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거침없이 하셔서
이모들도, 엄마도, 외삼촌도, 외숙모도........굉장히 힘드셨다.
그나마 엄마가 가장 외할머니를 잘 맞춰드렸지만, 엄마 역시도 너무나 힘드셨다.
한번씩 던지시는 외할머니의 말씀에 그 이성적이고 차분한 엄마조차 속상해 하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엄마의 속상함을 들어드리곤 했다.
엄마는 늘 내겐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내가...우리 엄마를 닮을까봐 겁난다.
그래서.....내가.....너희들 힘들게 할까봐 너무 오래는 안 살았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엄마를 설득한다.
엄마는 정말 외할머니랑 완전히 다르다고....
그러니....반드시 오래 살아야 된다고.......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저렇게 될까 두렵다고 하시고,
난....우리 엄마를 보며, 난 절대로 우리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늘...우리 딸에게 미안하다.
우리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늘....그게 미안하다.
엄마는.......늘 외할머니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하시는 거 같았다.
외할머니가 외숙모를 너무 힘들게 하셔서....엄마가 가운데서 중재를 많이 하셨다.
그래도....그 사이는 너무나 힘들었다. 가시기 직전까지도.....
외할머니께.....외삼촌은 너무나 잘난 아들이었고, 일찍 돌아가신 남편 대신이었다.
그러니....외숙모가 아무리 괜찮은 분이셔도 당신께는 성에 차지 않으셨다.
외숙모는....정말....대단한 미인이시다.
좋은 집안에, 피아노를 전공하시고, 지금까지도 굉장히 아름다우시다.
그러나...외할머니께는...그 모든 것들이 다 미우셨나보다.
엄마는....그 모습을 보면서...또 타산지석으로 삼으셨다.
엄마는 늘 경계하셨다.
외할머니를 닮을까봐...자식에게조차 예의를 갖추셨다.
늘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하시고,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맙다고.....인사를 하셨다.
자식들이 편한 대로 무조건 따라주셨고, 지금까지도 그러고 계신다.
그래서...새언니와 엄마의 관계는 나와 엄마 관계보다 더 좋다.
새언니는....자신에게 가장 큰 복이......시어머니 복이라고 한다.
내가 봐선......엄마나 새언니나 똑같다.
엄마도 새언니에게 친정 엄마처럼 최선을 다했고, 새언니 역시 마찬가지다.
새언니가.....외국에서 첫아이를 낳아야 했을 때, 친정 어머니께서 오실 수 없으신 형편이셨다.
그때....내가 애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엄마는 새언니에게 가셨다.
그리고는......아이 낳고, 산후 조리까지......다 시키셨다.
둘째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보면....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사람 관계는 달라진다는 걸...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엄마는 자신이 자랄 때 너무 많이 일한 게 속상해서, 당신 자식들은 자라면서 물 한 방울 묻게 하지 않으셨다.
너무나 웃기게도, 고등학교 때, 대학 때 정말 어쩌다가 한 번 한 설거지에,
엄마는 너무나 고맙다고 야단이셨다.
사실은...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을 텐데....
난.......결혼하기 전까지.....너무나 작은 일 하나까지도, 엄마의 시중 아닌 시중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내 파란만장한 인생과 역경은.....결혼 후부터 지금까지이니......
사실...결혼 전까지...난....아무 걱정 없이.....아주 편하게 잘 살았던 거 같다.
모든 엄마는 딸들의 타산지석이다.
긍정적인 타산지석이든, 부정적인 타산지석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타산지석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는....자신의 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난....엄마를 닮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딸은 또 어떻게 될까...........
외할머니와 성격적으로 가장 다른 엄마가.......혼자가 되었을 때,
외할머니는 가장 많이 아파하셨다.
자신처럼...혼자 남겨진 것에 대해서....그렇게 가슴 아파하셨다.
외할머니는......사실....엄마를.....너무나 아끼시고 사랑하셨다. 물론...자신의 방식대로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달 뒤.....난.....우리 딸을 만났다.
여러가지 일을 겪고 보니,
혼자 계신 외할머니와, 혼자 남겨진 엄마, 그리고 나와 내 딸....
그렇게 딸들로 내려오는........뭔가.....계보같은......그런 끈같은 것이 느껴졌다.
외할머니 때문에 속상한 엄마와, 그러면서도 외할머니께 화를 내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속상한 나와, 절대로 엄마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나(사실...화를 낼 일이 없다.)
그 다음.....나와......우리 윤이.......
그 연결고리들....
세대를 거치면서.....연결되는 무언의 딸들의 계보.......
엄마에게 외할머니는......애증이자........그럼에도 불구하고......"어머니, 모성" 그 자체 그리고 그 이상이었다.
나는 그 모성의 긍정적인 면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받았지만,
난......사실.......그러한 긍정적인 면을 윤이에게 물려주지 못할까봐.....많이 두렵다.
사실.....내 이야기의 모든.......깊은 줄기들은.....
이 계보에서 나온다.
알고 보면.........내가 쓰는 이야기는.....하나로 통해 있는 듯하다.
모든 엄마는 딸들의 타산지석이다.
그리고....엄마는.....가장 큰....희망의 유산이다.
한 세대가 저물었다.
90세의 한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고,
70세의 한 어머니는 약한 육체를 이끌고 살아가시며,
30대 중반의 한 어머니는 일에 치여 살아가고,
8살 딸은 이제 인생이라는 걸음마를 드디어 떼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이 네 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딸들은
모두
과거, 현재, 미래의
어머니들이다.
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그 울림을........
저 영혼 깊은 곳에 새겨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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