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영화나 드라마나 뮤지컬이나

10cm의 도전

그랑블루08 2010. 9. 12. 03:13

<뮤직비디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오랜 팬인 나로서는 이 영화를 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어제 행사의 후유증으로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후배와 함께 심야 영화 상영관에 가서

이 영화를 보고 새벽 3시에 주차장에 앉아서도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서

1시간 가까이 차 안에서 I believe I can fly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이 영화가 내 마음을 아주 많이 다독여 준 건 사실이다.

 

아리에티와 쇼우.....

솔직히 이번 남자 주인공인 쇼우는 정말....내 스타일이었다.

요즘 들어 더 확실하게 느끼는 거지만,

난 조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거들먹거리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약간은 냉철한.....그런 사람이 좋은 것 같다.

 

여튼.....스토리면에서는 좀 아쉬웠다.

플롯의 가장 기본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성으로 볼 때,

이 영화는 전개와 위기 사이에서 끝나버린 느낌이다.

 

여기서 끝이야? 진짜?

를 외쳐야 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고나 할까.

 

그리고 예전 지브리 스튜디오를 갔을 때 봤던

지브리만의 색감......

그 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 작품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지만, 그래도 지브리만의 색감과 음악은 여전했다.

음악은 충분히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줬고,

색은...아름다웠다.

그래픽과 3D의 매끈함이 주는 색깔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깊이 있는 대나무의 색을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기계음인 MP3, CD의 음이 아닌, 진짜 레코드판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그 색감이 실제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물론 당연히 그래픽을 사용했겠지만,

지브리는 붓이 그려내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쨌든.....

5개월의 준비와 하루종일 열렸던 엄청난 행사....

내가 있는 이 직장에서 가장 큰 행사를....

적어도 전국적인 행사에 비추어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하고 큰 행사로 치러냈다 해도,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칭찬을 해대었다고 해도,

어제를 난....결단코 잊을 수 없다.

 

내 팀을 위해서, 우리 조직을 위해서,

난 어제 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죄를 했다.

내 잘못이 아닌 일을 위해서, 명백히 그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내 팀을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무사히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행사 마칠 때쯤........그쪽에서 사과를 받아내었다 해도

난......결단코 어제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편견과, 그들의 사고와 그들의 말도 안 되는 권위의식,

그리고 그들의 골이 깊은 기득권적 행동과 의식에 대해서......

난....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행사는 최고였다.

행사 예산마저 삭감된 상태에서 작년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러냈다.

작년보다 3배 이상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 넓은 장소가 모자라 난리를 칠 정도였다.

그래서...그 누구나 내게 인사를 했다.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정말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고.....

전국 각지에서 오신 분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그래, 행사로서는....내 조직으로서는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으로 본다면,

팀이 아니라 조직이 아니라,

내 개인으로 본다면, 실패다.

 

내 생애 태어나서........절대로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난.....절대로 어제의 그 실패를, 그 상처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말들도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신에게 힘을 보탤 수 있나 없나로 판단하는 당신을,

자신보다 낮다고 판단할 때, 그렇게 무시하며 욕하던 당신을,

그러면서 그 모든 상황이 뒤집혔을 때, 비굴하던 당신을,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단지 자신에게 해가 될까봐 사과하는 척하던 당신을,

그러면서 제발 좋은 말 해달라던 당신을,

난......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으로 대표되는 이 권위적인 사회를, 이 권위적인 조직을,

난......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난...당신을 통해....."진짜"를 보고 말았다.

이 현실이, 이 사회가 어떤지....정말로 보고야 말았다.

실력?

실력과 전혀 상관 없는 이 사회의 편견을,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이 웃기는 사회를 보고야 말았다.

 

오냐! 그러하냐?

좋다.

두고 보자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당신! 그리고 당신으로 대표되는 이 조직 사회!

당신들을 다시 돌아봐야 할 그 어떤 것도 없다.

당신들에게는 지켜봐야 할 그 어떤 거룩한 무엇도 없다.

그러니, 대신 날 지켜봐라!

꼭 두고 봐라!

 

내 10cm의 도전을 두고 봐라!

 

 

 

 

아마...이 영화는......

이 10cm의 아리에티의 도전은 내 이 날의 도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두고 봐라!

날 지켜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