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강풀이 다음에 출현하면, 무조건 월요일과 목요일은 기다려진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글이란 무엇이지를 너무나 뚜렷하게 새겨준 인물이
바로 강풀이다.
어제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17화가 올라왔다.
저녁에 집에 가서 유니 밥을 챙겨주고, 숙제 봐주고, 남편이 퇴근하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
요즘 마감이 계속 밀려 있어서 일이 너무 많다.
그 상황에서 남편 역시 바쁜 상황이니, 내가 바쁘다고 무조건 남편에게 치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당번을 정해 놓고, 월, 화, 금은 내가, 수, 목은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다.
예전엔 주말에는 남편이 보통 아이를 봐주곤 했는데, 지금은 남편 역시 일이 밀려서
주말에 남편이 직장에 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결국 주중에 내가 보는 날에도, 남편이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10시 넘어서 다시 직장에 와서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다.
토요일까지 마감이 하나 있어서 어제도 무진장 피곤했지만, 결국 직장에 나왔다.
그러나 지쳐 있는 만큼, 그닥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서
이래저래 서핑을 하게 된다.
그러다 목요일이라는 걸 알고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을 찾아 읽었다.
참...우습게도, 난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정말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이걸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만큼, 근래 들어 이렇게 운 적이 있는가 싶을 만큼
그렇게 울었다.
<다음 만화속세상 -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17화 중>
<당신의 모든 순간>에는 좀비가 된 한 여자아이가 나온다.
그 여자아이는 한 쪽 손을 든 채로 늘 다니고 있다.
강풀은....좀비가 된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주인공 남자와 엮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좀비 중 이 여자아이의 사연이 나왔을 때,
게시판 댓글은 한 바탕 난리가 났다.
나 역시.....너무나 가슴이 아파서.......이 아이가 장면 어디 귀퉁이에만 나와도 가슴이 아팠다.
아마.....다들....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러니까......
17화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아이에 대해서 나왔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고, 아이는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동화책을 읽는다.
그 장면은 사실.....
모든 직장 엄마와 아이의 모습......그거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도, 직장이라는 것이 바로 퇴근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늦어지게 되면, 엄마의 마음은 바빠진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지는데, 어둑해 지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학원으로 전화를 걸어, 혼자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집에 가면 엄마한테 바로 전화하라고.....
그렇게 말해 놓고 부랴부랴 퇴근을 한다.
집에 도착했다는 아이의 말을 들을 때까지 차 안에서 나는 늘 불안하다.
방과후,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어다니며,
학원 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이가 괜찮은지,
혼자 집에 간 건 괜찮은지.......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같이 장을 보러 갈 때, 저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에게 난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윤아!! 엄마 손 잡고 가자!!"
늘 같은 말이다. 늘 같은 마음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야 마음이 안심이 되는.....
온 세상의 부모님의 마음이 다 그러시지 않을지.....
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겠지.
그런 상황에서 어제 17화는 바로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어젯밤 17회를 보며 그렇게도 많이 울었나 보다.
<다음 만화속세상 -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15회 중>
사실 강풀이 말하는 <당신의 모든 순간>은 마지막 기억, 가장 소중한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저기.....좀비로 변한 인간들은 모두 마지막 기억을 붙잡고 그것만 생각하며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그렇게 강풀은 지금 당신의 모든 순간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엄마손 꼭 잡아라고 말한 그 순간을 기억하며 늘 손을 잡고 싶어하고,
주인공의 형은 동생에게 돌아가겠다는 그 순간을 기억하며, 늘 동생에게 돌아가려 한다.
강풀의 글은.....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의 이면을 보는 냉철한 시선과, 사람을 품는 따뜻한 가슴이 있다.
사실 강풀의 만화 그림체는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캐릭터들도 그림 상으로는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림체만으로는 가장 못 그리는 만화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최고의 만화가로 강풀을 꼽는다.
왜?
그것은 강풀이 가슴으로 말할 줄 알고, 그것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줄 알기 때문이다.
17화 때문에 폭풍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또 한 번 반성하게 됐다.
나...어쩌면 그림체만 이쁘게 그리려고 한 건 아닌지.......
마치 아름답게 그려야 진짜 좋은 만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겉포장을 열심히 하려고 한 건 아닌지........
그런 반성이 든다.
강풀은 내용물을 열심히 담으려고 했다.
정말 많은 생각들과, 고민들을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따뜻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보이기 위해서, 화려하게 하기 위해서 치장하지 않았다.
포장지를 이쁘게 만드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최고의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무엇으로 세상을 품고 싶은지,
내용물도 채우지 못한 채,
맛깔난 문체와 화려한 표현으로 포장지만 거창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건 아닌지.........
무엇이 기본인지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반성이 된다.
나와 같은 시대에 나와 같은 곳에
이렇게 강풀과 같은 사람이 존재해서 너무나 감사하다.
+) 위로....감사합니다. 45회는 마감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44회에 달아주신 댓글.......솔직히 아주 많이 감동이었습니다.
역시....사람의 말은...참으로 위대하구나...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이렇게 또 다른 사람의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고 또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해 주셔서...정말 감사합니다.
44회의 댓글에 대한 답은 45회를 올리면서 달겠습니다.
감사한 마음 먼저 전하려 이 글 말미를 빌렸습니다.
혹시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신 적이 없다면, 한 번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지금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를.....자꾸 반성하게 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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