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가 묻는다.....
세상이....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억울하면 어떡해요?
<닥터챔프>
김소연이 나온다기에, 그리고 태릉선수촌 이야기라기에
좀 색다르다 싶어 우연히 틀어두었다.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시키고,
헉헉 댈 쯤, 9시 무렵 시작하는 드라마가 이거였다.
<성균관스캔들>하기 전이니 쉬엄쉬엄 볼까 해서 틀었는데,
웃기게도 주객이 전도되어,
난 <닥터챔프>에 열렬한 시청자가 되었다.
<성균관스캔들>은 후반부에 닥본사하지 않았지만,
<닥터챔프>만큼은...꼭 닥본사했다고나 할까.
남편과 나는 바톤터치를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저녁에 아이를 찾아서 밥을 먹이고, 숙제 시키고
그러고나면 남편이 9시쯤 들어온다.
더 일찍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면 나는 주섬주섬 챙겨 다시 직장으로 가서, 일을 한다.
그리고 새벽에 귀가.......
주말에는, 모자라는 잠보충을 위해 특히 일요일 오후에는 정말 죽은 것처럼 잔다.
직장에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쌓인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지금 나가서 일찍 들어오라고 해도, 난 끄떡도 하지 않고 <닥터챔프>를 사수한 다음, 일하러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남편까지 같이 매니아가 됐다.
아마....이 드라마에 꽂힌 건, 김소연이 연기한 연우가,
지방대 출신의 여의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열심히 일해서 한국 최고 의과 대학에 펠로우까지 되어 인정받은 여.자. 의사.
게다가 지방대 출신.
남들이 지방대 출신이라 비웃을 때마다 죽기살기로 더 공부하고, 더 일하는 정말로 독하고 독한 의사.
그런 연우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이다.
그렇게 잘났으면 서울 가지? 라는 말 앞에.....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여건이라는 것이 있다.
그놈의 시험 한 번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있을까?
또....그놈의 시험....아무리 잘 쳐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뭐, 그래도 여튼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어쨌든 연우는 죽어라고 일했고,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병원 그 누구도 인정하는 실력가가 되었다.
그러나, 연우는 그 창창한 위치에서 쫒겨나고 만다.
지도 교수의 의료 사고를 양심고발했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래서 철저히 버려지다 못해, 짓밟힌다.
1,2회의 연우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뭐, 대단한 양심 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뭐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연우를 보며, 왜 그렇게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니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그때, 박지헌 선수를 향해서 이런 말을 한다.
"만약에요.
운동을 되게 열심히 했는데, 상대 선수가 나보다 힘도 너무 세고,
반칙도 막 쓰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어요.
죽어라 더 노력해서 그 놈만큼 세지는 수밖에......"
"그래도 결국 못 이기는 거.....아닌가?
정정당당한 방법으로는?"
"아니요!! 이겨요!!
반.칙.패!!
심판이 있잖아요.
반칙하면 다 걸리지. 심판한테......"
심판이 있잖아요.
박지헌의 한 마디가.......
결국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닥본사하게 만들었다.
심판이 있잖아요.......
연우처럼, 연우의 마음에 닥빙되어, 마치 내 상황을 투영까지 하며,
억울해 하고 있는 내게,
이 드라마는 아주 담담하게....
심판이 있잖아요.
반칙하면 다 걸리지. 심판한테.....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를 툭~하고 던져주었다.
태릉선수촌에서 온갖 부상과 온갖 일을 다 겪으며 운동을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조금은 나 자신을 돌아봤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아시안 게임에 나간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지도.....아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왜......유도 결승전에서 유도 선수가
은메달이 결정되고 나서 그렇게 바닥에 하염없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도 이해가 된다.
이 드라마.....만약....박지헌이 금메달을 땄다면, 아주 우스워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그렇게 온갖 부상과, 온갖 상처를 이겨내고 결승전 자리에 선 박지헌은 결국 은메달을 땄다.
그것도, 그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더 좋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최고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결승전 경기 장면은 아예 생략했다.
철저히......과정만을, 어떻게 피땀을 흘렸는지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감동적이었다.
지금....반칙하면, 그것을 다 보고 있을 심판이 있다는....믿음.....
그리고....삶은......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가 보여주었다.
밤마다......다시......직장으로 나오면서.......지쳐갈 때,
이 드라마....나에게 또 다른 힘을 주었다.
오늘도........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직장까지 오면서 DMB로 시청한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다시......힘을 준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그렇게 살아봤자 남는 건 없다고.......
그래도 말이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심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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