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45 - 이별을 해 보신 적 있으세요?

그랑블루08 2010. 11. 28. 01:42

 

<신우 이야기> 45. 이별을 해 보신 적 있으세요?



 



 

10

 

 


* 오늘은 꼭 배경음악을 들어주세요.



1





“이야~~ 오늘 태경씨 정말 멋지던데.”


“고맙습니다.”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로 그가 대답한다.

스텝이 지나가고 나자 그는 혼자 킥킥댄다.


“크크......정말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상해졌어.”


“예? 뭐가요?”


내 앞에서 아주 해맑게 웃고 있는 그를 향해 나는 또 갸웃대고 있다.


“다들....내가 변했다는데.....너무 친절하다나?”


“음....그건 저도 인정해요. 예전엔 짜증도 많이 내셨는데, 지금은...뭐...그럭저럭 봐줄만 해요.”


“뭐? 야!! 고미녀!! 진~짜 많이 컸다~~”


“그럼요. 저도 많이 컸죠. 황.태.경.씨.”


기가 막힌 듯 뻥져 있는 그를 방송국 로비에 내버려두고, 나는 대기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꼭대기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냥 비상구로 가자 싶어서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저 위에서 스텝인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근데....황태경이랑 그 왜....고미남 쌍둥이 여자......고..미녀라던가? 그 여자랑 사귀는 거 맞지? 그지?”


“뭐....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저번에 스포츠아시아 기자 만났는데, 확실하다 그러던데 뭐.

 증권가에서는 다 그렇게 생각한대.”


“야~ 재수도 좋다. 그 여자! 쌍둥이 오빠가 짐승남이고, 애인은 황태경!!!

 쟤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거니 뭐니?

 피처링이네 뭐네 하면서 황태경씨한테 지가 꼬리친 거 아냐?”


“왜 아니겠어. 안 봐도 비디오지. 여튼....누구는 좋~~겠다~”



그래 누구는 참.....좋기도 하겠다.





2




“고미녀!! 왜 이렇게 늦어!!!”


역시 황태경 씨는 황태경 씨다.

예전 같으면 난 또 죄송하다며 발을 동동 굴렀겠지.

지금 나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성격 좋아졌다는 거, 취소예요.”


“야!!!!! 고미녀!!!”


그는 또 다시 소리를 지르고 미남 오빠는 그런 내게 엄지를 치켜 세워준다.


“어쨌든.....고미녀가 피처링하니까 진짜 좋아.

 고미녀! 너 그냥 다시 A.N.Jell 하자. 응? 응?”


제르미는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한다.

늘 고맙지만, 그래도 난 사양할 수밖에 없다.


“제르미. 난 지금이 좋아. 그리고 A.N.Jell만 할 수는 없잖아.”


“왜 안 되는데? 어차피 원래......A.N.Jell이었...”


“제르미!!!!!!!”


황태경 씨가 급히 제르미의 말을 막았다.

그러면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스텝들 눈치를 본다.


“알았어. 형! 미안!

 어쨌든 고미녀가 계속 한국 있어서 좋다.

 어차피 다음 곡도 고미녀 곡이니까.....

 계속 같이 있는 거지?”


제르미의 호의는 늘 벅차고......미안하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으로 또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따뜻하고 익숙하다.


“계속 같이 있으면 좋긴 해도.......지금 기사 장난 아닐 걸?

 미녀 너! 조심해야 할 거다.”


“오빠 무슨 소리야?”


미남 오빠는, 머리 스타일 때문에 또 스타일리스트에게 한 마디하고 있는 황태경 씨를 턱으로 가리킨다.


“조심해. 너.....안티 팬 급증이다.”


“알아.”


“고미녀......아니다. 요즘 시크 미녀가 컨셉이니.......”


“뭐?”


“아니라구요. 동생님. 무서워서 말도 못 붙이겠네.”


미남 오빠도, 황태경 씨도, 제르미도 모두 뭔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둔탱이인 나도 느낄 만큼, 이들은 아마 나와 있는 것이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할 것이다.

답답하다.


“어디가?”


문 쪽으로 발을 옮기는데, 언제 봤는지 황태경 씨가 날 보고 있다.


“옥상에요.”


“곧 1위 발표할 거야.”


“안 늦게 올게요.”

 

“고미녀!!”


“네?”


“옥상에 꿀 발라 놨냐?”


“예?”


“아니다.”




난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또다시 옥상으로 올라간다.

방송국 옥상.

뭐, 방송국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갇힌 곳에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난 자꾸 옥상을 찾게 된다.


“난간 잘 잡아.”


“어!!! 황태경 씨!!!”


내가 몸을 확 돌리자 그가 내 팔 한 쪽을 잡는다.


“그러다 떨어진다.”


“어! 머리 다 했어요? 근데 여기 바람 맞으면 안 좋을 텐데....

 머리 다 날려요. 바람이 장난 아닌데.......”


“그러게. 진짜 겨울이 돼 버렸네.

 다음 주면, 12월이잖아.”


“네.”


“벌써.........다 되어버렸네.

 시간......정말 빨리 간다.”


12월.......

오지 않을 것 같던....12월

그렇게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 버렸다.

다 되어버렸다는 그의 말에서

황태경 씨도, 나도 똑같은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써.......코끝이 시큰해지는 것 같다.





3.





현실감이란.........

정말로 천천히 다가오다가,

그래서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내 눈 앞에 맞닥뜨리고는 난감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현실감이다.


한참을 마시고 있던 커피가....여전히 따뜻할 거라 여기며,

남아 있던 커피를 마시던 순간,

그 순간 이 입속의 커피가 너무나 차가울 때.........

혹은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커피가.........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런 것.

뜨거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면, 덜 놀랐을 차가움.....

남아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면, 덜 허탈했을 비워짐.....

그런 것이 현실감이다.



이별이 무엇이냐고?

이별은........이별은.........

준비한다고 해도, 준비될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맞아서도 안 될 그 무엇.

겪어본 자만이 아는.....그 무엇.


텅 비어 있다고?

죽을 것 같이 눈물이 난다고?

뭐, 어차피 지나가는 일이라고?

결국에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날 거라고?

사람이 나간 자리는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고?


그건........지금, 여기에서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해 줄 말이 못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고, 그럴 거라고 세뇌를 걸며.....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일.

그것이.......내가 만난 이별이다.


그리고 난 두 가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다시는.........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로 헤어지지 못하거나.

그 둘 중 하나.

그러나........절대로 헤어지지 못하는,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인연이란 게 세상에 있을 수가 없으니,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결국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어서......나이가 들고 싶다.

어서.......불혹의 나이가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고, 일흔이라는 나이가 되어

어서 빨리........나이가 든......여자가 아닌 그저.....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지나간......그리고 지나가고 있는, 곧 지나갈 것인,

나의 날들.





4





그가 떠났다.

정말 떠났나 싶을 만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을 때,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녀야..........”


“응.”


“들어와라. 이제.”


“뭐?”


“이제 같이 있자. 우리.”


같이 있자 우리.........

그 말에 짐을 쌌다.

종현 씨에게, 그리고 우리 정신이와 민혁이에게

많이 웃어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고맙다는 말은 더더욱 못해 보고,

금방 올게 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만 남기고

그렇게 돌아왔다.

나까지 나오면 힘들 텐데도, 내 등을 밀며 어서 가라고 해주던 이 사람들에게

나는 오롯이 내 상처만 보여주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그 나라에는 그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으므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 하나 살자는 심정으로 그곳을 떠나왔다.


오빠는 공항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가방을 들어주며, 오빠는 한 마디만 했다.


“잘 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언제나처럼 내 등을 툭 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가 떠나고도 울지 않았는데, 다들 괜찮냐고 물어볼 때도 울지 않았는데,

잘 왔다는 그 말에, 눈물이 터졌다.

아이처럼, 공항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그 사람 때문은 아니다.

오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도 없는데, 아빠도 없는데,

내게 가족이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A.N.Jell 숙소 옆에 오빠와 같이 작은 빌라를 얻어서 함께 살았다.

오빠는 A.N.Jell 숙소와 우리 집을 반반씩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활동할 때는 A.N.Jell 숙소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은 집에 들어오고는 했다.

그냥 오빠가 들어오는 날, 오지 않는 날

그렇게 그런 날들을 세며 일주일을 보냈고,

그런 일주일이 몇 번인가 흐르니, 또 몇 달인가가 흘렀다.

옷이 짧아지네. 이제 좀 덥네 싶더니, 금방 유월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석 달이 넘어가 있었다.

그때였다. 

정신이 든 것은.........

밥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고,

오빠가 집에 들어오는 날을 세며 일주일을 보내던 내가,

오늘이 며칠인지를 확인한 건,

내가 왜 이리 덥지 하며 달력을 바라본 건,

그 때였다.

달력을 보니 6월 중순이 되어 있었고, 나는 여전히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 때였다.

뭔가 정신이 들었던 것은.......

그리고 마실장님께 전화를 했다.


“어? 고미녀?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마실장님......저.....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어? 부탁? 그래 얘기해봐.”


“주소 좀........가르쳐 주세요.”


“어?”


“그 사람......부대........주소 좀.....”


“.............................”


마실장님은 한참을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그리고 내 휴대폰에는 문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송현1리 21사단 백두산 부대 사서함 XX호 일병 강신우”


일병 강신우.

문자로 적힌 이름을 보니, 마치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것 같다.

떠나던 날이 아니라,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처음 봤을 때 웃어주던 모습으로 있는 것 같다.


다시 기다란 MMS 문자 하나가 더 온다.


“미녀야, 근데 면회 갈 건 아니지?

 신우가 절대로 면회고, 편지고, 소포고 어떤 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거든.

 알잖아. 그 녀석 독한 거. 알고 보면 태경이보다 더 독해.

 또 100일 전에 면회 가면 휴가일이 적게 나온다는 뭐, 그런 루머도 있고.”


면회?

면회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우선 가서 만나는 것보다도 돌아설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을 직접 볼 자신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처음 맞는 그의 생일.

어쩌면 같이 맞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의 생일.

이젠 그런 꿈조차 사치일 뿐이 되었지만, 적어도 선물 하나는 보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을 뿐이다.


무엇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군에 가면 군것질이 생각난다기에

그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작은 박스 안에 먹을 것들로 가득 채웠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라면 그도 받아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선임들이 먹게라도 하지 않을까.....

그런 작은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보내 놓고 나서는 다시 일주일간 가슴을 부여잡고 살았다.

갔을까? 그가 받았을까? 받고 나서 내 생각을 할까?

숱한 생각들이 지나가며, 두근거리게 했다.

마치 그날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날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 전.....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두근거림으로 보낸 2주만에 소포 하나가 왔다.

완전히 그대로 반환된 소포.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그랬구나.

그래도 받아줄 줄 알았는데......정말....나쁘다.

그의 첫 생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에게 보낼 선물을 고민하고,

그가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을지 두근대다가,

돌아온 소포 앞에서 왜 그는 받지 못했을까를 다시 머리 터지도록 생각하면서

그렇게 6개월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러다 가을이 찾아올 무렵.......

날씨가 스산해지는 만큼, 내 마음도 스산해지는 날.....

문득......

이러다.....정말.......헤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치도록 두려워진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세뇌를 건다.

아니다, 돌아올 거다.

분명...무슨 일이 있는 거다.

그가 말했잖아.

자신을 믿으라고.....

자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었잖아.

그러니까.........무조건 믿어야 해.

그렇게 세뇌를 한다.

어쩌면 내 마음의 불안을 지우고자,

내 자신을 위로하고자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나면 살 것 같았다.

적어도 숨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1년이 가면, 미칠 것 같은 밤이 있다.

미친 듯이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매달려보고 싶은....그런 밤이 있다.

그래서 달려갔다.

미친 여자처럼...그곳으로 달려 갔다.

그가 있다는 그곳으로........

춘천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춘천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양구를 가서는

물어물어 7시간 만에 그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그래도 왔는데, 만나주지 않을까?

그가 있다는 그곳 앞에서 나는 또 다시 거절당했다.

그가 떠난 지 1년,

난 그곳에서 미친 여자처럼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저........그 사람이 뭐라고 하던가요?”


“미안합니다! 그런데 팬들의 면회는 거절한다는 방침 때문에.....”


초소 앞을 지키던 사병 하나가 대신 미안해 한다.


“저를.......팬이라고 하던가요?”


“그게. 성함을 전달했으나 모르는 분이라고 응답이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


그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의 현주소.

모르는 사람.

그저 여러 사람 중 하나인 팬.

그러니 만날 이유도 없다는 거다.


왔던 길을 똑같이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나는 왜 이리 멀리 온 것일까.

난 도대체 무엇을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난 나자신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 그가 미워진다.

너무나 미워진다.

어떻게 그가 그럴 수 있는지......

그 전......1년 동안은......마음 놓고 미워하지도 못했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서....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미워라도 하게 된 건, 그나마 그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그나마 내 마음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와서 죽을 만큼 앓았다.

열이 펄펄 끓으니, 오빠는 내곁에서 한숨만 쉬고 있다.

결국 오빠는 날 입원까지 시켜버렸다.


한 밤.........

잠깐 눈을 붙인 듯한데, 어느 새 밤이 되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봄 날씨가 왜 이리 추울까만 생각될 뿐.

어두운 방 안이 익숙해질 즈음, 내 침대에 엎드린 한 남자가 보인다.


“황....태경씨?”


“....고미녀! 깼어?”


“왜....여기.......”


“몰라서 물어!!!! 너! 너! 진짜 왜 이래!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래?”


“황태경씨........”


왜 그에게서 내가 보이는 걸까.

왜...저 흔들리는 눈빛이 내것인 것처럼 느껴질까.

왜 저 갈라진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을까.

왜...저 사람의 심장이 내 심장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미녀야! 이젠, 이젠 그만 하자. 제발!!!”


“.,...........”


“1년이야. 1년.........

 이젠.......그만 해. 그만........잊어.”


잊.는.다.

무엇을? 그 사람을? 아니면, 그 사람과의 추억을?


드디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잊는다는 거.

내가 놓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아주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잊는다는 건, 그 사람과의 시간을 지워나가는 거란 걸.......

그 사람과 함께 간 장소를 잊고,

그 사람과 함께 들었던 노래를 잊고,

그 사람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잊고,

점점 그 사람과 나와의 시간을 지워가는 것.

그런 거라는 걸.........

그 사람이 떠났다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어쩌면 그와의 시간을, 내 기억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와의 시간과, 그와의 기억을 놓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내게 지금.......그 기억을 놓으라 한다.

어떻게....놓아야 하는지.....

그 방법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제 겨우 끝났다는 걸 알았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난........기억을.....어떻게 지우는지........몰라요.”


“내가....도와줄게. 내가 니 곁에 있을 테니까.....

 이젠.....내게 기대.

 다 안 잊어도 돼.

 좀 덜 힘들게 이기적이어도 돼.

 그러니까........내 곁에서 천천히 지우면 돼.”


황태경 씨의 품이 따뜻하다.

알고 있다.

이 사람의 품이 따뜻하다는 거........

그래서........나 역시 기대고 싶다는 거.........




퇴원을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황태경씨를 만나러 갔다.


“고미녀!! 이제 괜찮은 거야?”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황태경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달려온다.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황태경 씨가....저번에 병원에서 말해 준 거........정말....고마워요.

 근데......나 안 그럴래요.”


“뭐?”


그의 표정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난 잘 알고 있다.

그의 미간이 왜 찡그려지는지, 왜 그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는지 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위해, 그리고 황태경씨를 위해 그래야 한다.


“그건.....정정당당하지 못해요.

 이별도........실연도........

 정정당당하게 해야 하는 거니까.......

 나.......당당하게 견뎌낼 거예요.”


“당당하게?”


“네. 정정당당하게. 의지하고 싶어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아요.

 황태경씨 다시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나.......내 스스로 이겨낼 거예요.”


“풋~! 대단하구나 고미녀!

 난.....결국.....아니었다는 거니?”


그의 미소가 아프다.


“당신이 결국 아닌지는 나도 몰라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래도......지금은 아니에요.

 언제나...당신은 나의 스타고, 당신은 나의 우상이에요.

 그러나.......내게 당신은 ‘남자’는 아니에요.”


“고미녀!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잔인한 게 아니라 정직한 거예요.

 그래야.....당신에게도 정당한 거라고 생각해요.”


“하아......그래........그게 고미녀겠지.

 어쨌든 나도 아니라면, 다른 어떤 놈도 아니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해한다.

난 점점 느끼고 있다.

사랑은....운명 같은 거란 걸 느끼고 있다.

또 다른 운명이 내게 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황태경 씨에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솔직히 황태경 씨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아니....이미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늬만...아닌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그저 그에게 기대버리면, 정말로 난 구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렇게 이 실연이라는 상황을, 이 이별이라는 상황을

곧이곧대로 정직하게 받아내고 싶다.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어요.”


“뭔데?”


“나.......곡 쓰고 싶어요.”


“곡?”


“네. 곡도 쓰고, 피처링도 하고 싶어요.

 A.N.Jell 다음 활동에 저......끼워 주세요.”




5





그렇게 또 다시 6개월이 가고,

나....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잘못한 것들.........나의 바보 같은 모습들........


그러다...다시 2번째 겨울이 오면, 그렇게 떠올리지 못했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러면......또 다시......고통이 찾아온다.

그래도......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자체가 발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나는 안다.

이 사람을 잊겠지만, 결국은 잊겠지만,

난........내 평생........늘....이 사람을 문득.....기억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걸........

커피 향에서도,

철 지난 음악 속에서도,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낯익은 노을 속에서도,

문득........

어떤....장면들을 떠올리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다.



그 어떤 말로도


               작사 : 고미녀, 작곡 : 고미녀, 황태경


그렇게도 빛나던

그대 어디론가 떠난 밤

모든 걸 잃은 하루는 지고


창가에는 어둠도

빛들도 사라진 채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어떤 말로도

어둠 속으로 세상지고


눈물로도 어떤 수많은 기도로도

다시 볼 수 없는 사람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이렇게 그대 곁으로

또 찾아 왔어요

볼 수 없나요 너무 추워요

시린 하늘이 싫어 이렇게 왔는데

짐작조차도 할 수 없나요

날 이렇게 보는 건

그대 아닌가요

울지 말아요 미안해요

그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 곡은 발표하자마자 음원, 음반 모두 올킬을 하며 1위가 되었다.

이별을 하면, 곡이 깊어진다더니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웃기게도, 이 곡을 쓰면서, 그 사람이 일본에서 왜 그런 곡을 쓰게 됐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람도......그 이별의 고통이 곡을 쓰게 했을 것이다.

난....그렇게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10 아시아입니다. 이번 <그 어떤 말로도> 노래가 정말 좋은데요.

 계속 가요 차트 음반 1위를 달리고 있는데,

 황태경씨 한 말씀 해 주시죠.”


“팬 분들께 감사드리구요. 또 좋은 곡을 써주신 고미녀 씨께도 감사드립니다.”


“고미녀씨, 참 A.N.Jell 멤버 고미남씨의 쌍둥이 동생이죠?

 곡도 좋고, 피처링한 목소리도 정말 좋은데요?”


“아, 감사합니다.”


“고미녀씨, 이 곡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데, 내용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이별을 맞닥뜨린 여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런데....여자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요.”


“그럼, 남자는 죽은 건가요?”


“그저.........헤어진.......상황을 그린 거예요.

 헤어지자마자.........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고통도, 슬픔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그런...진공 상태의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럼, 고미녀 씨의 경험을 녹인 건가요? 솔직히 한 번이라도 사랑을 하고 헤어진 사람이라면 굉장히 공감이 가거든요.”


“이 노래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한 여자의 내면이에요.

 이별을 하고,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면이지요.

 여자는 지금 이별이라는 진행되는 과정을 겪고 있어요.

 그리고 남자는.....진짜 그 남자일수도 있지만, 여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일 수도 있어요.

 그저......떠나버렸을 수도 있는데, 여자는.....자기 스스로 위안을 하는 거지요.

 이 남자도........힘들고....미안해 할 거라고.......

 그 남자가.....정말 그럴 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저....여자는....자신의 마음이 편하고 싶은 거예요.

 상상 속에서, 여자는 헤어진 남자와 대화를 하고, 그렇게 이별을 받아들여가는 과정.

 그런 걸.....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럼, 더블 타이틀곡인 기억의 꽃은 어떤 느낌인가요?

 이곡도 고미녀씨가 가사를 쓴 걸로 아는데요.”


“아, 네. 이건.......‘그 어떤 말로도’보다 좀 뒤에 나온 곡인데요.

 <그 어떤 말로도>가 여전히 여자의 마음속에 갇혀 있다면,

 <기억의 꽃>은 사랑을 잃은 사람이, 사랑이 없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하는 내용이에요.

 그러니까......기억의 꽃은.........

 마음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 사람이, 그저......기억 속의 존재라는 걸,

 함께 한 시간들이......정말로 ‘기억’이라는 것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깨달으면서,

 고통도 함께 느끼기 시작하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음........대답은 안 하셨지만, 곡을 볼 때는,

 고미녀 씨의 직접적인 경험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훨씬 더 리얼하게, 진실되게 느껴집니다.

 고미녀씨에게 이별은....어떤 느낌인가요?”


“이별은.......하아..........

 진공.....상태...랄까요?

 공기가 사라진......그래서.....생존만이....남은 상태......”


“음...이건 다른 얘긴데요.

 지금.......황태경씨와 스캔들........있는 거 아시죠?“”


“아...네.”


“황태경 씨 벌서 인상이 찌푸려지시는데요?

 음........이건...음악과 연관되어서 질문 드리고 싶었어요.

 원래 에이엔젤과 친하셨는지?”


“오빠가 멤버이니.....천천히 알게 된 거죠.”


“사실...연예가에 이상한 뜬소문도 있었어요. 기자들 몇몇 분이 얘기한 적이 있는데,

 고미남이 여자다..라는....풋.

 근데 알고 보니 쌍둥이였더군요.”


“아...네.”


“아, 지금 군에 가 있는 강신우 씨와 친분이 있으신가요?”


“그게.......”


난감한 질문.

곡 얘기만 하고 그칠 줄 알았는데, 이건 A.N.Jell 인터뷰가 아니라 내 단독 인터뷰같은 느낌이다.

슬슬 난감해지기도 하고, 지쳐간다.


“씨엔블루 쪽과도 같은 소속사라서......서로 당연히 알죠.”


내가 머뭇거리자 바로 황태경 씨가 치고 나왔다.


“아, 근데 이건 다른 루트로 들어온 소문인데,

 예전에 고미녀씨가 일본에 있었고, 씨엔블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던데........맞습니까?”


“네. 정식 멤버는 아니구요. 객원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같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대답은 했지만, 불안해진다.

음악과 연관된 질문이라고 하면서 계속 씨엔블루와 엮는 걸 보면, 내 노래 가사와 엮을 생각인 것 같다.


“그때.......일본에서도 약간 스캔들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건....아니구요. 그 당시......강신우 군이 마음에 두었던 여자분은 일본에 사시는 일반 여성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도 잠시 마음만 두다 끝난 사이구요.”


역시나 곤란한 질문에는 황태경 씨가 대답해 준다.

나대신 그가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더 미안하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던데요. 강신우 군이, 전설의 아오이....와 사귀었다는......”


“물론 둘이 친한 건 사실이고, 여전히 친합니다.

 그건 음악적인 교류였고, 실제로 음악적 선배였죠.

 그런데 저희가 지금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할 일은 아닌듯합니다.”


황태경 씨의 말에 기자의 눈빛이 더 반짝인다.


“두 분 사이는 괜찮은가요? 그 때 한 참 이슈가 됐었는데....”


“네. 좋습니다. 강신우 군이...제대 하면 다시....이쪽으로 복귀하길 바랄 뿐입니다.

 여러 가지 집안 문제도 있어서......저희 욕심대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강신우 군은.......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가장 빛이 나거든요.”


“동감입니다.”


“오늘 이 정도에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다음 스케줄 때문에 나가야 해서요.”


황태경 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기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겨우 인터뷰를 끝낸다.

틀어둔 라디오에서 우리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억의 꽃>

 


골목길 어딘가 어제처럼

꿈이었나 네 모습은

흔들리는 불빛들 꽃이 피듯이

떠오르는 너와의 기억들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시들어 버린 꽃.

사랑이란 처음부터 영원하지 않은 얘기

기억들은 한번도 나의 바램을 들어준 적, 그런 적이 없어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이런 식이라면 모두 사라질까

애틋한 마음은 흔적도 없어진 채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다 사라져버려-


기억 속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마






6.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쪽 프로듀서가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나레이션을 써달라는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해 줄 글을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부연 설명?

노래에 그런 것까지 넣어야 하는 걸까?


근데 프로그램의 특성상,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와, 글과, 노래가 함께 하는 공간이라 괜찮다고.......

황태경 씨도, 오빠도, 제르미도,

내게 써보라고 한다.

노래를 설명하면 된다는데, 난....그게 더 어려웠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내 노래를 설명해야 할지......

너무나 난감했다.



“A.N.Jell 여러분이 드디어 초콜릿을 찾아주셨네요!!!!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전, 예전부터 A.N.Jell 광팬이에요. 알고 계시죠?”


“알고 있죠. 정말 감사합니다.”


“황태경 씨, 여전히 멋있으시고, 제르미 씨, 너무 귀여우세요.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셨네요?

 와~ 그리고 미소년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짐승남이신 고미남씨!!

 거기에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고미녀씨!!

 모두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고미남씨와 고미녀씨 쌍둥이라지만, 굉장히 다르세요.

 한 분은 짐승남이시고, 고미녀씨는 이렇게 여성스러우셔서,

 사실 자세히 안 보면 쌍둥이 아닌 거 같아요.”


“아? 그러신가요? 저희 예전에는 무지 비슷했었는데, 갈수록 미녀가 여성스러워지네요.”


“훗훗......고미녀씨 정말 앳되고 아름다우세요.”


“아....감사합니다.”


나의 어쩡쩡해 하는 대답에도 김정은 씨는 환하게 언니처럼 웃어주신다.


“이번 곡은 화제가 되고 있는 <그 어떤 말로도>죠?

 저...사실 이 곡 때문에 밤 샌 적도 있어요. 노래가 넘 좋아요.

 고미녀 씨가 작사, 작곡한 곡 맞죠?”


“예? 예. 아...근데 작사는 제가 했지만, 작곡은 황태경 씨와 함께 했어요.”


“그래요? 사실 노래 가사와 음악이 너무 잘 어울려서, 저.......정말 감동받았어요.

 고미녀씨, 이제 스물세 살 이신가요?”


“예.”


“근데...어떻게 이런 노랫말을 쓰세요?”


“예?”


“음....그러니까.......헤어져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그런.....깊이 있는 아픔이 느껴진달까요?”


그렇게 말하는 김정은 씨의 눈가에 아주 살짝 물기가 비치는 것도 같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나와 같은 마음을 겪었을 것 같은.....그런 느낌이 든다.


“이번 곡은 고미녀 씨가 직접 나레이션을 넣고, 다음에 곡이 이어질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곡에 대해서 궁금해 하셔서 조금 색다르게 꾸며봤습니다.”


갑자기 황태경씨가 거창하게 말하자 걱정이 된다.


“아!! 저!! 그렇게 거창한 거 아니구요.

 곡 내용을 해석하면 좋겠다고 멤버들이 말씀했지만, 전.....좀 부담스러워서, 그냥...편하게 말하듯이, 편지를 쓰듯이 써 봤어요.

 공감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으로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적었구나,

 이런 노래를 적었구나 하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고미녀씨 걱정 마세요. 이미...노래만으로도 이렇게 공감이 되는데요.

 그럼, A.N.Jell의 <그 어떤 말로도> 청해 듣겠습니다.”


김정은 씨는 무대 옆 긴 의자에 앉아서 나를 향해 미소를 띄워준다.


그렇게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내 글을 읽어내려 갔다.


“이별을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처음 이별을 하면, 바로 죽을 것 같이 힘들 것 같지만,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치 내가 아닌 내가 걸어다니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지요.

 그러다...1년이 되면,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하지요.

 기억이 고통이 되면, 그제서야...서서히.....이별이 뭔지 알게 되지요.

 그리고.....또 한 해가 가고, 다시 또 한 해가 가면,

 사람들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요.

 그러나....사실은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점점 고통은 심해지지만,

 나아지는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겪어내야 할 지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고통이 익숙해지는 것이지요.

 고통이 익숙해진다고....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예요.

 그저.....겪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사라지지 않아요.

 여전히.......살아나..........아무렇지도 않게....

 빛나던 그 시절을 눈 앞에 떡 하니 보여주기도 하지요.


 이별을....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어떤 노래도 들을 수 없었던 적이 있으세요?

 애써.......미친 듯이 바쁘게......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인 적 있으세요?


 이별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굿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틀어놓고...펑펑 울어본 적이 있으세요?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그 말에 위로를 받아.....펑펑 울어본 적 있으세요?


 이별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괜찮다라는 말이........사실은.......습관 같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으세요?

 그 말은......사실........나 자신을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걱정하는.....이들을 위한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으세요?


 이별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고통보다 더 진한 그리움이 박히게 되면,

 드디어...진짜.....이별을.....알게 되신 적이 있으세요?”


그리고 우리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 어떤 말로도


               작사 : 고미녀, 작곡 : 고미녀, 황태경


그렇게도 빛나던

그대 어디론가 떠난 밤

모든 걸 잃은 하루는 지고


창가에는 어둠도

빛들도 사라진 채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어떤 말로도

어둠 속으로 세상지고


눈물로도 어떤 수많은 기도로도

다시 볼 수 없는 사람


여기 있어요

나 여기있어요

이렇게 그대 곁으로

또 찾아왔어요

볼 수 없나요 너무 추워요

시린 하늘이 싫어 이렇게 왔는데

짐작조차도 할 수 없나요

날 이렇게 보는 건

그대 아닌가요

울지 말아요 미안해요

그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황태경 씨의 목소리 뒤로 저기 김정은 씨가 보인다.

김정은 씨는 우리 노래가 계속 되는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어깨가 가느다랗게 흔들린다.

이 사람........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노래가 끝났는데도 김정은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한다.

스텝이 다가가자, 김정은 씨는 미안하다며, 잠시만 녹화를 쉬자고 하며 무대 뒤로 들어갔다.

객석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웅성이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이러한 이별을 겪어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난......혼자서 김정은 씨가 걸어들어간 무대 뒤로 따라가 본다.

무대 뒤, 그녀는 어깨를 흔들며 울고 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 하나를 들어 가만히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놓았다.

움찔하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예?”


“스물세 살이라면서.......어떻게....그런 노래를 만들 수가 있죠?

 어떻게 그런 마음을 노래할 수가 있죠?

 나보다....열 다섯 살이나 어린데,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어요?”


“......................”


“얼마나.....됐어요?”


“예?”


“미녀씨는.........헤어진지......얼마나 됐어요?”


“아.......그게......1년 반.....정도 지났어요.”


“난......4년이에요.”


“.......4....년..........”


“그래요. 4년이면 잊어진 줄 알았는데,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미녀씨 노래 때문에 또 이렇게 터지네요.”


“이별.......언제쯤이면....잊을 수 있어요?”


“미녀씨.......잊을 수는 없어요.”


“네?”


“단지.........이별이 익숙해질 뿐.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는 게 아니에요.

 그저........익숙해지는 거뿐이에요.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나빴던 기억이 아니라, 좋았던 기억들만 남아서,

 그렇게 기억 속에서 늘.......살아갈 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만나,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지 몰라도,

 그래도.......평생......그 사람의 자리는.......그렇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이렇게 가슴을 두드릴 때면, 뜻하지 않게 툭~튀어나와 사람을 당황시켜요.”


슬픔에 익숙해지는 거였나?

4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이렇게 건드리면 툭하고 터져나와 버리는

기억이라는 거.

사람은......그래서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이별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고통보다 더 진한 그리움이 박히게 되면,

드디어...진짜.....이별이 무엇인지.....알게 되신 적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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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이 글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쓰다가 결국 금요일 하루 완전히 앓아 누워버렸습니다.

목요일 일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왠지...이 글을 쓰는 데 아주 많이 힘이 들었네요,

오늘도 일 때문에 시외출장을 다녀오느라 11시 되어서야 정리를 했더니 지금 이 시간입니다.


뭐가 이리도 장황하냐고 말씀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별이라는 거........

그걸 한 번 제대로 표현해 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저...죽을 것 같다. 싶은 감정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것......

그것은 사실...진짜 이별의 감정이 아닌 듯합니다.

진짜 이별은....처음에는 아무 것도 못 느끼다가....

아주 서서히 알게 되어가는 것이라......

그렇게 미녀를 통해 그리고 싶었습니다.


A.N.Jell의 곡으로 소개된

<그 어떤 말로도>와 <기억의 꽃>은 보드카레인의 곡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는 장윤주가 피처링했습니다.

두 곡 다 정말 너무 좋네요.

제가 보드카레인의 팬이라.......

보드카레인이나 루시드폴이나 정재형이나......노래가 정말 좋네요.


오늘은 30장입니다.

이별을 해 본신 분이라면, 왜 이리도 길게, 지루하게 45편을 적었는지 이해해주시지 않으실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평안하시길....(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