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47 -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다

그랑블루08 2011. 1. 24. 20:15

 

신우 이야기 47.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다



 

 

 

 

 

 

 

*아래에 있는 배경음악을 꼭 틀어두고 읽어주세요^^

 

 

74

 


기억의 꽃 - 보드카레인

골목길 어딘가 어제처럼
꿈이었나 네 모습은
흔들리는 불빛들 꽃이 피듯이
떠오르는 너와의 기억들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시들어 버린 꽃.
사랑이란 처음부터 영원하지 않은 얘기
기억들은 한번도 나의 바램을 들어준 적, 그런 적이 없어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이런 식이라면 모두 사라질까
애틋한 마음은 흔적도 없어진 채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다 사라져버려-

기억 속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마 X 4



가사 출처 : Daum뮤직



1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다.......

오로지.....한 가지 생각만 든다.

보.고.싶.었.다.

내가 얼마나 이 사람을 보고 싶어했는지, 그것만이 느껴질 뿐......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감동인지......

그 뿐.......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던 그가 순간 멈칫 선다.

그것과 동시에 내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린다.


“말년 휴가냐?”


그의 시선은 벌써 내 너머에 가 있다.

그의 아버지였다.


“네.”


“제대는, 복귀해야 끝나는 거지?”


“...............”


그의 아버지가 물어도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한참을 가만히 있다.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굳어갈 뿐이었다.


“................네.”


그 대답과 함께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뭘......생각한 거야......고미녀......

그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이 아니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사람과, 현재의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가 받아들인 이 사실을 내 심장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럴 수 있을 거다.

그러나.......지금은.......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최대한 빨리.....그래야겠다.


빈 택시 하나가 보인다.

종종 걸음으로 택시를 향해 뛰다시피하며 걸어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조금 빠르게 걷는 소리가 들린다.


“잠깐.........나랑.......얘기 좀 하지.”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사람의 아버지와 1층 로비에 앉았다.


“여기까지 올지는 몰랐는데........”


입술 한 쪽이 약간 올라간다.

날.....비웃고 계신 건가.


“어머니께서.....보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너한테 무슨 어머니?”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라고 부르신다.

왠지 그 말 안에 이 분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껴진다.

이런 분 앞에서 더 뭐라고 말해봤자다 싶어서 나는 일어섰다.


“뭐하는 거야? 지금!!”


“궁금하신 건 대답해 드렸으니,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너.......아니, 고미녀 양, 많이 변했군.”


“덕분에요.”


“앉지. 물어볼 것도 있고. 할 말도 있고.”


결국에는 다시 앉았다.

반드시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아무리 그 사람과 끝이 났어도, 반드시 만나고 넘어가야 할 분.

그랬다.


“이제 이쪽으로는 그만 왔으면 싶은데......

 어차피 고미녀 양에게도 좋을 건 없잖아?

 애 어미가 오라고 해도, 그 정도쯤 거절할 수도 있지 않나?”


거절.......

이젠.....어머니와의 인연도 끊으라고 하신다.

이분은 뭐가 그리도 불안하신가.

나라는 애송이가 뭘 그리 불안해서, 만나라 마라 하시는 건가.

도대체 이분은.......뭐가 그리도....두려우신 건가.

모르겠다.

뭐 하나 잘난 것도 없는 내가 왜 이리 당당해지는지, 나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분보다는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님께도, 그.....사람에게도

 직접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저보다는 그게 더 빠르실 텐데요?”


“뭐?!!!!!!”


내가 정확하게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듯하다.

이 분의 아킬레스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그런......안 된 사람.

이 분의 정체성은.......그 언저리다.


“좋다. 그래서....계속 이렇게 만나겠다는.... 그 말이냐?”


“그건....모르겠습니다.”


“뭐야?”


“그건 그 때 제 마음에 달린 거겠죠.

 보고 싶으면 보는 거고, 보기 싫으면 안 보는 거고.

 그건....그 때가 되어봐야 알겠습니다.”


“하~~! 정말 맹랑한 아가씨네.

 아가씨!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압니다. 충분히.”


“근데.....뭐가 그렇게 당당해?”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 물으신다.


“많이 가지신 분은 알지 못하실 겁니다.”


“뭐?”


“잃고 싶어도, 더 이상......잃을 게 없거든요.”


누군가 지금의 내 눈빛을 보았다면, 진정 비어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알 수 없는 표정의 이 분도 눈빛이 잠깐 흔들린 걸 보면,

이 분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다.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완전히........부정할 수는 없는 거....아닌 가요?”


“훗~! 그래 누군가가 필요하겠지.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울 수 있는.......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건, 그 애의 결정이었다.”


쿵.........


안다고.....모두 알고 있다고

난....눈곱만큼의 미련도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침도 삼킬 수가 없다.

목이 탄다.


“모든 건, 그 녀석의 의지였다.

 내가 헤어지라고 말한 적 없다.”


헤어지라고 말한 적 없다.........

그래...지금 와서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가....그 사람이...나와 헤어지겠다고 한 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이군.

 그래, 나 역시 그 전엔 헤어지라고 한 적 있었지.

 그러나........마지막 순간, 녀석이 먼저 내게 헤어지겠다고 말했다.”


“그건......그럴 수밖에 없도록....만드신 거....아닌가요?”


“그렇게 믿고 싶겠지.

 그래도......녀석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그렇게 믿고 싶은 거냐?

 아직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쯤에서 내가 진실 한 가지는 얘기해 줘야겠군.”


진실.....무슨 진실?


“내 아들......강신우는.....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뭐? 사랑할 수 없다고?

그럼.......그전까지...내게 보여줬던 그 사람의 마음은, 진실은 뭔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까?

 신우는, 그 누구도.........믿지 못해.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할 거다.

 나 때문이든, 지 에미 때문이든.......그 애는.....누구도 믿지 못해.

 믿지 못하는데, 사랑이라는 걸........할 수 있을까?”


“그건.....결국 자식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 잘못 아닌가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그래, 내가 강요한 건 사실이지.

 그러나 결국에 그렇게 선택한 건, 그 누구도 아닌 그 애 자신이야.

 왜 그랬을 거 같으냐?

 지금 고미녀 양이 얘기하는....그 사랑이라는 거.....

 그걸 확신했다면 그랬을까?

 결국엔 지가 자신이 없었던 거야.

 상대방이든 자기 자신이든.........믿지 못했다는 거지.”


“상황이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웃기지 마라.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없어.

 그 모든 건, 다...각자의 선택이야.

 상황이 그랬다는 건, 결국 자기 변명에 불과해.

 상황을 그렇게 만든 것도, 상황이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는 것도,

 모두 비겁한 자기 변명일 뿐이야.

 글쎄. 내 생각엔 말이야.

 둘 중 하나야.

 고미녀 양이 믿음을 주지 못했거나, 고미녀 양을 시험해 보거나....

 뭐, 결국 똑같은 얘기군.

 녀석은.......고미녀 양......자네를 믿지 못해.

 그 애는 자넬 믿을 수도, 자기 자신을 믿을 수도 없을 거다.”


하아........

믿지 못한다.

아니라고, 웃기는 말로 우리 사랑을 먹칠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은데,

내 속에서는 자꾸......부정할 수 없다고, 맞는 말이라고 수긍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나를.....믿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그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전제.......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맞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다.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은 거라고....그렇게 믿고 싶은 거지...그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그가 나를 믿지 못했든, 그의 마음이 떠났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사랑하지 않는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 사람의 아버지는 다시 한번 더 비수를 꽂는다.


“고미녀 양, 잘 새겨 두는 게 좋을 거야.

 강신우라는 녀석에게 고미녀 양은, 지어미 대신이었을 뿐이야.

 잘 생각해 봐. 잘 알고 있지 않나?

 녀석이 지 어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자네가.....얼마나 지어미와 비슷한지....”



신이시여......전......분노를 배웠습니다.

제가 배워야 할 것인지 알지 못했던....분노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도........당신께서 만드신 것이라면 배워야 하는 것이겠지요?

꾹꾹 눌러서 가슴에 병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래서 당신께서 직접 만드신 제 자신을 혹독하게 학대하기보다는,

분노라는 것을 배워서 드러내는 것이 낫겠지요?

이렇게 ‘분노’라는 것을 드러내다 보면,

이것을 극복할 방법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렇겠지요?





2



어둠이 깔린 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해가 뜨면, 반드시 해는 지는 법.

난....그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배우고 있는 중이다.

늘.......햇빛이 비출 수만은 없다는 걸......그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리석게도 어쩌다가 비춘 햇빛이 계속 비출 것처럼 착각하고 만,

어리석은 한 아이가 세상이 뭔가를 알게 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역 대합실에 앉아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묻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친다.

어린 남자 아이 하나가 웃으면서 나를 본다.

그러더니 내게 뭔가를 내민다.

송이라고도 할 수 없이 몇 가닥 남은 하얀 망울 꽃.

안개꽃 몇 줄기가 그 아이의 손에 쥐어 있다.

지나가다가 들꽃을 꺾은 것처럼 아이는 몇 줄기를 내게 내민다.


“나.....주는 거니?”


“네......”


“왜?”


내 말에 아이가 저쪽을 돌아보더니 다시 내게 손을 내민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엄마인 듯한 분이 내게 작게 목례를 한다.

뭐지?


아이의 손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내게 전해진다.

벌써 줄기 끝은 휘어져 꽃송이들은 힘을 잃고 있었다.


“누나! 힘내세요.”


“어?”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뭔가 뻥해진다.

이 어린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내가......힘들어 보여?”


“네. 많이 슬프다면서요?”


“내가....슬퍼? 너.....그런 말도 아니?”


아이가 또 고개를 돌린다.

아이의 엄마가 그렇게 말했나 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시켜 꽃을 주신....저 분의 마음이.....참....따뜻하다.


“고마워. 진짜.

 누나.......많이 힘이 나. 진짜 고마워.”


“그럼, 누나 안 울거죠?”


“뭐?”


“울지 마세요. 안녕 누나!”


아이는 저만치 엄마에게 뛰어간다.

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는 걸 보고서야 나는 일어나서 그분께 깊이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작고 보잘것없는 하얀 꽃망울.

약한 줄기가 이미 휘어져 작은 꽃망울조차 지탱하기가 어려운 보푸라기 같은 꽃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몇 줄기 꽃을 쥐고 예전......아주 예전 보았던.......시 하나를 읊조린다.




안개꽃의 꽃말을 아십니까


                          안성란


당신에게 안개꽃이 되어 

제일 작은

손가락에 걸어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작은 손가락에

하얀 안개꽃을 반지로 만들어 끼워드리고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안개꽃을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만 볼 수 있도록

행복한 미소가 머물 수 있도록

안개꽃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는 길마다

안개꽃을 뿌려드리고

외로운 삶에 내 사랑이 안개꽃 되어

편안하고  순조로운 길이

되어갈 수 있도록 편안한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당신만 사랑하고

온전히 받아드릴 수 있는

안개 꽃밭을 마음에 심어 두겠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한 송이의 안개꽃은

부러질 듯 약해 보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사랑을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안개꽃의 꽃말이 약속이라는 것을...





3







기억의 꽃


골목길 어딘가 어제처럼

꿈이었나 네 모습은

흔들리는 불빛들 꽃이 피듯이

떠오르는 너와의 기억들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시들어 버린 꽃.

사랑이란 처음부터 영원하지 않은 얘기

기억들은 한번도 나의 바램을 들어준 적, 그런 적이 없어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그게 너무 아파


이런 식이라면 모두 사라질까

애틋한 마음은 흔적도 없어진 채로


잊고 싶은 아픔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은 조금씩 다 사라져버려-


기억 속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만



<기억의 꽃> 활동도 어느덧 마무리에 이르렀다.

이 곡 활동이 끝나면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황태경씨는 열심히 곡작업을 할 테고, 제르미는 미국을 다녀올 거라고 하고,

미남 오빠는 열심히 연애를 할 거라는데,

그 바쁜 사람들 틈에서 난.....뭘 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독립한다는 거야?”


“그럴 걸.”


“그럼, 우리는?”


내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황태경씨와 제르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어디 나가?”


내가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다들 입을 다문다.


“왔어?”


“황태경 씨, 무슨 소리예요?”


“아......내가 아는 사람이.....”


황태경 씨가 대충 얼버무리자, 제르미가 드럼을 쳐댄다.

뭔가 나 때문에 입을 다무는 듯한 이상한 분위기였다.

이젠 이런 분위기 자체도 신물이 난다.

난 모르는 척 키보드를 두들겨댔다.

우리의 마지막 연습도, 마지막 공연도 그렇게 마무리해갔다.


나는 다시 칩거 생활로 돌아갔다.

달라진 거라면, dvd 대신 오선지를 대고 있다는 것.

오빠가 사준 디지털 피아노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음을 붙여보고 있다는 것.

그런 정도다.

그래도 곡을 쓰고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조금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걸 죽이고 있을 때, 안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고미녀!! 살아있냐? 왜 코빼기도 안 보여?”


“네. 사장님. 잘 살고 있어요.”


“뭐 하고 있는데?”


“그냥...곡 쓰고...그러고 있어요.”


“오~~ 역시~~ 고미녀 대단한데!!! 근데......미녀야. 혹시 지금 회사로 들어올 수 있니?”


“네?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뭐, 할 말도 있고, 누가......너한테 제안할 것도 있다고 그러고.....”


“제안이라뇨? 누가요?”


“와 보면 알아. 지금 바로 와! 알았지?”


“아...예. 곧 갈게요.”


제안이라니.....곡 써달라는 건가.

그럼.......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딱히 회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뭔가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다.

사실...일거리가 생긴다면 그게 더 다행이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거리가 이렇게 바뀌어 있는지 몰랐다.

온통 불빛들과 트리장식들.

온 세상이 붉었다.


“풋....용서하세요. 예수님.

 제가......예수님 생일도 까먹었네요.

 제 생일도 맨날 까먹으니....그러려니 해주실 거죠?”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며 회사로 들어섰다.

저녁 무렵이라 다들 식사하러 갔는지 조용했다.


2층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저 왔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저한테 일거리라도?”


장난스럽게 사장님을 향해 웃어보이며 들어섰다.

내가 들어서자 사장님 맞은편에 앉았던 손님이 일어섰다.

짧은 찰나, 검은 수트 차림의 손님이 꽤 젊고, 굉장히 키가 크다고 느끼며 얼굴로 눈이 가던 중, 난.....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 언젠가 만날 건 알고 있었다.

그가 제대했다는 것도, 머리로 계산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면, 분명 회사에서 마주칠 거라고,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지금 이곳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검은 양복에 붉은 빛이 도는 검은 넥타이까지 맨, 이런 모습의 그를 마주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다.


“미녀야, 이거 소개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네.”


“소개해 주시죠. 사장님.”


뭔가 조금은 차가운 듯한 그의 목소리였다.


“아....그래? 그럴까? 그래 아무래도 정식인 게 좋겠지.

 다 알더라도......이쪽은 알다시피 강신우 씨.

 예전엔 에이엔젤 멤버였지만, 지금은 2K 엔터 대표 강신우 씨.

 그리고 이쪽은 에이엔젤 객원 멤버 고미녀 양.”


뭐? 대표?

사장님의 말을 듣고서도 나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사람이 회사를 차렸다는 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고미녀 씨.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입니다...라니....

오랜만입니다 라니......

어떻게 저런 표정으로 저렇게 메마르고 차가운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지?

오랜만이라니? 지금 누구에게....오랜만이라는 건가?

그래서 당신은 멀쩡했다고? 그렇다고?

내 속은 점점 타들어간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 든다.

그에게는 오로지...난....나라는 존재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그저 알던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게도, 모든 걸 다 내려놓겠다고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게도,

어쩔 수 없는 기대가 있었나 보다.

그도 힘들지 않았을까.

그도...적어도 나만큼은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곳에서 나보다 더 힘들거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오랜만이라는 한 마디에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며,

유치한 생각이었는지 모두다 알아버리고 말았다.


“자자, 다 아는 사이니, 일단 일 이야기부터 하자.

 신우가....아니지 강대표가 얘기해.”


“고미녀 씨,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

내게 무슨 제안이 있단 말인가.

난 여전히 저 사람의 눈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이 상황에서 무슨 일 얘기를 한다는 것인가.


“우리 팀으로 들어오시죠.”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롭니다. 고미녀 씨, 예전에 블루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었고,

 그 때 쓴 곡들 블루밴드 이름으로 발표도 했으니,

 우리 팀으로 들어오는 것이 서로가 다 윈윈할 수 있는 길일 겁니다.”


“잠시만요!! 지금 블루밴드라면, 씨엔블루....씨엔블루 밴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지금, 씨엔블루가 한국으로 들어온다구요?”


“네. 이제 며칠 후면 모두 들어옵니다.

 그리고 2K엔터테인먼트를 자회사로 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죠.

 블루밴드는 Ahn 엔터 소속이잖아요.

 종현 씨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구요.

 근데 키워준 건 Ahn인데 어떻게 다른 소속사로 가죠?”


“이미 그 부분은 안 사장님과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고미녀 씨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닙니다.”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 한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좋아요. 그 부분은 그렇다 쳐요.

 저는요? 지금 전 에이엔젤 객원멤버예요. 저 역시 Ahn 엔터 소속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어떻게 에이엔젤을 나와서 씨엔블루로 가죠?

 그거야 말로 웃기는 일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목소리가 울컥한다.

그에 비해서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냉정하고 부드럽다.


“고미녀 씨, 한 가지 명확하게 할 일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고미녀 씨는 Ahn 엔터 소속이 아닙니다.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에이엔젤 활동에 잠깐 도와주는 객원에 불과했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는 안 사장님께 확인해 보시죠.”


“미안하다. 미녀야. 사실 내가 지금 경영진에서 물러날 판국인데.......”


“예? 사장님께서 물러나신다구요?”


이 무슨 소린지.

도대체 저 사람이 들어와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계약서도 없으니 자기 회사로 오라니, 무엇 때문에 날 데려가는 건지, 또 Ahn 엔터를 흔들리게 하는 건지....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회사 쪽 상황은 고미녀 씨가 굳이 알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고미녀 씨가 우리 2K 엔터테인먼트로 들어와서 씨엔블루와 함께 작업을 하자는 겁니다.”


“누구 마음대로!!!!!!!!”


그 순간 문소리가 쾅 하고 난다.

그곳에는 완전히 얼굴이 붉어진 황태경 씨가 서 있다.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겠다는 거야? 누가 된다고 했어?

 형이 그랬어? 누구 마음대로 고미녀를 데려가!!!!!”


“태경아!!!! 이건....하여튼....지금은 다 말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이 편이 미녀에게도 좋아.”


“무슨 소리야? 형?

 강신우한테 돈 받았어? 뭐, 한 몫 챙겨 주겠대?

 왜 이래?”


“태경아!!!! 그런 게 아니래도!!”


“시끄러!! 고미녀는 절대로 안 돼!!

 강신우!! 니가 뭘 하든 상관 안 해!

 니가 누구랑 싸우든, 회사를 세우든, 마음대로 해.

 근데 하나만 알아 둬!!!

 내 여자는.......안 돼!!!! 알겠어?”


황태경 씨는 내 손목을 잡고 방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손목이 멍이 들 만큼 아팠지만, 그에게 끌려 나가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상황이 안 된다는 사장님 앞에서, 계약서 한 장 써두지 않은 내가,

그렇다고 대단하지도 못한 내가 뭐라고,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냐고 말할 수 있겠는가.

초라하고 비참한 이 기분으로 그 사람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정신이 들고 보니, 옥상이다.

내 눈 앞에는 황태경 씨가 내 어깨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서 있다.


“미녀야!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다.

또 안 괜찮으면 어쩌겠는가.

늘 대답은 같다.

괜찮다. 괜찮아야만 한다.


“고미녀!!!”


“괜찮아요.”


황태경 씨의 눈빛은 마치 예전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도 날 이렇게 봤었는데......

그 눈빛이 떠오르자 또 다시 고통스럽다.

그 순간 그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의 품이 넓고 따뜻하다.

아주 아주 예전에는 이 품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안겨 있어도 쓸쓸하다.


“고미녀! 흔들리지 마!!!”


흔들리지 마.

무얼 말인가요?

뭘 흔들리지 말까요?

회사를요? 아니면, 아니면....내 마음을요?


“.......안 흔들려요. 흔들릴....마음 따위......없어진지 오랜데요. 뭐”


그 순간이었다.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려했던 그 순간.

내 눈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마치 데자뷰처럼, 똑같은 상황이 지나간다.

아주 아주 예전의 상황.

그때도 나는 지금 이 사람 품에 안겨 울고 있었고,

그 사람은 저기서, 그렇게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멈칫하자, 황태경 씨도 뭔가 이상한지 나를 풀어준다.


“왜...그래?”


그러다 내 시선을 따라 그 사람을 발견하고 만다.


“뭐야? 무슨 할 말이 더 남았어?”


“황태경! 오랜만이다. 첫만남이 이래서 좀 그렇다만......”


화가 나 있는 황태경 씨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훨씬 차갑고 여유롭다.


“강신우! 너랑 그런 대화를 나눌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 그렇지. 한 가지만 묻자.”


그의 시선이 순간 내게 머문다.

여유로운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의 눈은 너무나 차갑고 무섭다.


“두 사람, 다시....사귀는 거냐?”


어떻게 저런 걸 묻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거의 2년 만에 나타나서 어떻게 저런 걸 물을 수가 있지?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 강신우! 니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닐 텐데?”


“아니! 신경 써야지. 소속사에서 자기 가수 관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뭐? 강신우! 누가 자기 가수야?

 고미녀는 우리 소속사야. 착각하지 마!”


“아니, 고미녀는 반드시 씨엔블루로 활동하게 될 거야.”


“하아~~참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강.신.우. 씨!”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말은 하나도 들어보지 않고, 너무나 자신 있게 자신의 팀에서 일할 거라니......

저 아래에서 불덩이 같은 게 솟아오른다.

그러나 내 앞에 선 이 사람은 너무나 차갑다.

아니 너무나 냉정했다.

가느다란 미소가 더욱더 그를 냉혈한처럼 보이게 한다.


“사실이니까......고미녀는 반드시 씨엔블루로 들어올 수밖에 없어!”


“강신우 씨!!!”


화가 났다.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거 알아요? 강신우 씨 누구와 굉장히 닮아보인다는 거?”


“뭐?”


“당신 아버지!”


그랬다. 나는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보고 싶었다.

아니, 그저 표정이란 걸, 보고 싶었다.

적어도 살아 있는 인간이란 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그 말은 곧 그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짙은 눈썹이 모아지며,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오롯이 보고 있었다.

잡아먹을 것처럼 나를 노려보는 그의 눈을, 그래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적어도 나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이었다.

그의 표정은 다시 냉정하게 돌아왔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차갑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풋~ 오늘은 이 정도만 하지. 처음부터 너무 몰아붙여서도 안 될 테니........”


그가 돌아선다.

고개를 돌린다. 등을 돌린다. 그리고 저 아래로 다시 내려간다.

내 눈은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뒷모습은,

적어도 그의 뒷모습은, 예전의 그 사람이란 착각이 들게 한다.


오늘따라....아주 오래 전, 그 사람의 등이 그립다.




나는 지금 분노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언젠가.......분노라는 감정도 극복이 될 거라고......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지금.....사랑한다.

그러나........또한......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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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리셨죠?

잘 모르겠어요. 47회.....너무 어려워요.

썼던 내용을 다시 바꾸고,

또 다른 회로 옮기고,

계속 그 작업만 했습니다.

47회를 쓰면서는 거의 2편 반 분량을 썼습니다.

비록 이번 회에 다 실리지 못하고, 다음 회로 간 것도 있고, 버려진 것도 있고........


3부의 시작입니다.

대충 세 부분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3부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아니, 그렇게 안 쓰려고 했다는 게 맞겠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자꾸 제대로 쓰라고 저를 압박하는 듯합니다.

제대로 쓴다는 거....

제 능력밖에 너무 많은 걸, 이 이야기가 요구하고 있네요.

그래도 이야기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듯합니다.

시키는 대로 쓰다 보면, 이야기가 길을 내겠지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