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책과 길

<체 게바라 평전> - 시인의 꿈

그랑블루08 2010. 12. 31. 05:12

 

 

 

 

 

2010년을 마무리하고, 또 2011년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

Ernesto Guevara de La Serna

또는

El Che, Che Guevara라고 불린 한 사람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는 건

또 하나의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체 게바라.

어쩌면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시작한 반성의 결과물인

<책과 길> 카테고리에

체 게바라가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내 직장, 내 모니터에는

내가 좋아하는 문구들을 포스트 잇에 붙여놓곤 한다.

모니터를 볼 때마다 볼 수 있도록

그때그때 좋아하는, 혹은 알게 된 문구들을 붙여두는데,

단 한 가지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채 붙어 있다.

 

그것은 체 게바라의 말이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

 

"수단이 비열하다면 결코 목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체 게바라 평전>은 체 게바라를 10년 가까이 추적한 한 기자의 재해석이자 창작물이다.

체 게바라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같은 평전.

그래서 조금은 어색하고, 또 앞 뒤 문맥 상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간혹 눈에 띈다.

번역의 문제일지, 아니면 원래 집필의 문제일지 알 수는 없으나 문장이 빼어나다거나 수려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어색하고 약간은 모자란 듯한 문장 사이로 보이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은 참으로 멋지다.

 

사실 <체 게바라>는 십 몇 년 전 자서전 형식으로 대충 읽은 적이 있다.

오빠 책꽂이에 꽂혀 있던 여러가지 책 중에서 이건 뭐야? 하면서 봤던, 그래서 알게 되었던 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본 것도 아니어서 그저 쿠바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구나 정도, 의사였구나 정도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체 게바라>의 말이 가슴에 꽂히면서 평전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영화 <모토싸이클 다이어리>는 보지 않았다.

왠지 체 게바라를 상업적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라는 선입견에 보기가 싫었다고나 할까.

한동안 이 영화 때문에  숱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게바라 열풍 같은 것이 불 때는 더더욱이 영화도 평전도 보기 싫었다.

그저 나중에 시간이 나면, 뭔가 이 열기가 식고 나면 찬찬히 봐야지 하는, 약간은 청개구리 같은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뭔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그리고 뭔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맨 먼저 구입한 책은 바로 이 <체 게바라 평전>이다.

모니터에 붙여 놓은 문구를 이 사람의 삶을 통해서 제대로 발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고,

혁명을 이루어낸 최고의 공신이면서도 또 다른 혁명을 위해 그 모든 혜택을 떠날 수 있었던 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혁명에 참가하기 전까지......

그의 유년 시절과,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그의 아메리카"를 여행 다녔던 그 시절의 그는 그야말로 문학 소년이었다.

혁명에 참가하기 전까지 그의 삶을 살펴보면,

딱 세 가지가 떠오른다.

 

천식, 책, 여행

 

천식의 괴로움은 겪어본 자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천식은 몸서리쳐지는 질병이다.

우리 집안의 가족력이 바로 '천식'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위의 할아버지도, 또 그 위의 할아버지도

모두 천식으로 돌아가셨다.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어쩌면 가장 경계해야 할 질병이기도 하다.

 

천식이라는 질병은 몇 십 년 동안을 사람을 괴롭힌다.

그 자지러지는 기침 소리는, 지금도 나를 섬찟하게 한다.

기침을 하는 사람도, 그 기침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쨌든 그 투쟁적인 사람이 2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천식을 앓아왔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그 가운데 자신의 꿈을 성취했다는 것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육체적 약함은 강한 정신력 앞에서는 극복 가능한 무엇인 듯하다.

 

그리고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체 게바라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릴라의 힘든 하루가 끝나고 모두가 곯아떨어진 밤에도 체는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독서광이었다.

그래서 기름을 가장 많이 낭비하는 게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천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도 그는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으며,

가리지 않는 독서는 그의 다양한 면모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체는 "전쟁의 한복판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에밀 루드비히의 괴테 전기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체가 책을 읽고 있었던 그 시공간이다.

내 변명은 늘 바쁘다였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여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완독을 하기보다는 발췌독에 익숙해져 있었다.

필요한 부분에 대한 발췌독.

전체를 하나의 호흡을 읽어나가기보다는 늘 바쁘니까 필요한 부분만 급하게 대충 읽는 게 다였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체의 독서법은 내가 따져대고 있는 그 시공간성에 대해서 제동을 건다.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나 역시 일이라는 전쟁터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좀 제대로 책을 읽어봐야겠다.

내 사고와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일하는 틈틈이 '읽기'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삶과 배움이었다.

그는 '배우고' '나누었다'.

 

 

망망하고 거친 대해를 항해하는 내 영혼은 고뇌에 휩싸인다.

과연 얼마나 더 많은 날을 견뎌야 하나.

그런데 오늘, 위험이 어느 정도 지나가자 나는 갑자기 커다란 희망이 샘솟는 걸 느끼며 나를 감싸고 있는 대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꿀 속에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개미처럼 소박한 카페의 탁자 앞에 웅크리고 앉아 내가 겪었던 일들과 그 결과들을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마디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끔찍한 심연으로 떨어뜨릴 수도, 혹은 도저히 닿을 법하지 않던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그는 사람을 발견해갔다.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지금"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꿈을 꾸었다.

 

위의 그의 일기 중 나는 "단 한 사람이나 단 한마디의 말"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한 마디의 말이 심연으로 떨어뜨리기도, 혹은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

한 사람이나 한마디의 말은 결국 "글"로 대표될 수도 있다.

사람을 발견해 가던 그는 꿈꾸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꿈은 책이라는 이상과 여행이라는 현실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부분에서 책을 덮고 한 동안 눈을 감았다.

책과 여행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꿈을 "글"을 통해 나눌 수 있기를.........

 

 

 

 

더보기

나는 분석적인 인간이 못 된다.

나는 분석적이라기보다는 해석적인 인간이다.

의미를 해체하기보다는, 의미를 덧붙이는 것.

그것에 더 능숙한 것 같다.

 

따라서 이 <책과 길>은 비평적인 글이 아니라 해석적인, 해몽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논리적인 분석이나 비평보다는, 그저 내게 도움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기록해 두는 방이 되었으면 한다.

 

또 한 가지........

쉬운 글보다는 조금은 어렵더라도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평전에 빠져들고 있다.

고전과 평전.

그것들을 통해서 조금은 사유가 깊어지고 자유로워지고 또 무한한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바라본다.

 

계속 직장에서 밤을 새고 있다.

1월 중순까지, 아니 2월 말까지 난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전쟁터 속에서 괴테 전기를 읽고 있었던,

자신이 사랑하는 시들을 늘 외우며, 읽고 낭송하던

체 게바라를 기억할 것이다.

 

책을 읽지 못할 만큼,

여행을 다니지 못할 만큼,

글을 쓰지 못할 만큼,

그렇게 바쁜 상황이란 없다.

어차피 삶은 전쟁터인 것을.........

그러니 그 치열한 삶 속에서 꿈을 꾸는 법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