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50 -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랑블루08 2011. 4. 9. 04:56

 

<신우 이야기> 50.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1






사고.

폭탄.

수술.

생일.


그가 말하는 순간 내 머리 속을 떠다닌 단어들이었다.

언제였지?

그 사람이 대답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보고 말았다.

이 무조건 반사적인 행동에 기가 차지만, 난......혹.....그날이었는지........나도 모르게 뭔가가 자꾸 속에서 올라온다.


웃긴다. 고미녀.


생각해 봐. 그 날....그 생일이었을 리가 없잖아.

그럴 수가 없잖아.

후임병이라고 했잖아.

그 날은.........아니야......그럴 수가 없어.


나의 이성은 조목조목 따져들며, 나를 설득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자꾸 약한 마음을 들게 한다.


아니다. 모른다.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할 필요 없다.


숱한 내 이성의 말을 뚫고 올라오는 한 마디.......

그도......힘들었구나........


나도 모르게 이해하려고 한다.

바보 같이......

그만큼 당해 놓고서도, 그 사람의 말 앞에서 다시 약해지고 있다.


인터뷰가 끝이 났다.

바로 쇼케이스가 있을 거라며, 무대 장치를 하는 동안, 2년 간 컨트롤 안 되게 커져버린 오지랖 때문에 또 그 사람 앞에 섰다.


“잠깐만요!”


돌아서 있는 그를 불러 세웠다.


“왜?”


“혹시.....아까 말했던 그 날이........언제예요?”


순간 그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뭘 이런 걸 묻나........그런 분위기였다.

뭐, 이미 예상한 일이니, 그런 눈빛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아까 분명 생일이라고 말했을 텐데.......”


“알아요. 언제....였냐구요?”


“무슨 의민지 모르겠지만, 연도를 묻는 거라면, 제대 직전 내 생일인데......왜 그러지?”


그의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그래 확인했으니 됐다.


“아니, 됐어요.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의 대답을 아니, 그의 표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아니다....나 자신의 웃기는 몰골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황급히 돌아섰다.


“잠깐만! 고미녀!”


그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내 등 뒤로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머리 위로 그의 한숨이 지나간다.


“.........왜 묻는 거야?”


“............몰라요. 그냥......확인하고 싶었어요.”


내 팔 위에 올라와 있는 그의 손을 차갑게 밀어냈다.

그리고는 돌아서버렸다.


“고미녀!!”


그가 또 한 번 부른다.


그래, 한 번쯤 정직하게 말해 주는 것도, 인간에 대한 예의로 보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러나 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에게 등을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당신도.......어떤 식으로든........힘들었네요........”


“.....미...녀야........”


“그게 끝이에요.”


그렇게 이제 내 길을 걸어간다.

마치 이 복도가 나의 새로운 길인 양,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가면 그만이다.

이 정도로 퉁 치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저 각자의 무게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의 2년을 퉁 치기로 한다.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저 앞에서 아까 질문했던 기자들이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마주치면 뻘쭘할 것 같아서 돌아서려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야~! 도대체 어디서 제보자를 구한 거야? 대단한데? 김기자?”


“뭐, 이래저래 수소문했지. 백두산 부대 쪽도 연락해보고....재수가 좋았지, 뭐.”


“여튼 행동력이랑 사람 구슬리는 능력은 끝내 줘!”


“근데......강신우. 진짜 열심히 군생활한 거 같더라.”


“그래? 안 그래도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gop 근무 보통 1년 정도 하지 않나?

 아까 생일날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더라구.

 강신우 생일이 6월인데 그때면 거의.....상병? 아닌가 병장인가?

 요즘은 짧아져서 잘 모르겠고....어쨌든 1년이 넘잖아.

 내가 알기로 gop 생활은 1년이면 끝나니까 거기 올라가 있을 리가 없는데 거기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안 그래도 제보자도 그러더라구. 진짜 열심히 생활했다고.

 gop 근무도 보통 1년이면 끝나고 내려와 있어야 하는데, 강신우 본인이 자원했대.

 거의 끝까지 있었다던데?”


“그래? 이상하네.... 우리 때는 gop 시설 완전히 끝장이라서 전부 학을 뗐는데....

 게다가 비무장지대도 한번씩 들어가고, 그러면서 행군이네 뭐네 훈련은 다 하고.....

 엄청 힘들지 않나? 요새는 다른가?”


“뭐 그렇게 다르겠어. 게다가 백두산 부대는 정말 빡세기로 유명한 데잖아.

 여튼 그런 면에서 강신우 다시 봤어.”


우연히 엿듣게 된 내용이었다.

그 사람이 스스로 자원해서 gop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 말로는 1년 있기도 힘든 것 같다던데,

그는 자신이 자원해서 끝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성실하게 군생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알 수 없다.

그러나........그 때문에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그의 생일........

어쩌면 혹시.......내가 보냈던 소포를 돌려보냈던 그 시간이었을까.

그러니까 그런 힘든 시간이었으니까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자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gop 초소에 가 있었을 테니 받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앞 뒤 정황상 첫 생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한번쯤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는 정확하게 말했다.

그 다음 해라고........

그가 떠난지 1년이 되던 날......

모르는 사람이라 나를 거부했던 날......

그 이후에 왔던 그의 생일........

도둑처럼 왔던 나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아니 그 현실을 맞닥뜨리기 위해서,

처절한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들 속에,

그는 그러한 일을 겪고 있었다.


너는 나를 사랑했으니....끝까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그런 억지 논리는 아니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런 억울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저......작은.....인간의 이기심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도.......힘들지 않았을까.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은 힘들지 않았을까.

그에게도.....이별이라는 것은, 조금은 힘든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런........이기심........


그런데.....

오늘 나는.....그 이기심에 대한 답이 채워졌다.


아주 먼 길을 걸어온 것 같다.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관문을 통과한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드디어 잘 가라고, 이별을 치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2






소속사 문제 때문에 정신없는 가운데, 언제 새해가 왔는지, 언제 설날이 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쇼케이스를 끝내고, 음원 공개와 음반 작업이 마무리가 될 무렵, 그가 우리 모두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타이틀을......바꾸기로 했어.”


갑작스런 그의 말에 다들 무슨 소린가 싶었다.

타이틀 위주로 맹연습을 했는데, 갑자기 타이틀을 바꾸다니.....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무슨 소리야, 형! 지금 뭔 타이틀을 바꿔?

 그리고 이 곡 좋은데 왜 그래?

 예전에 <teardrops in the rain>이랑 분위기나 느낌이 비슷해서 좋은데, 난.”


종현씨는 불만인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정신이나 민혁이나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에서 이미 종현씨와 같은 생각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건 그거고....아무래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서, 무슨 곡으로 바꿀 건데? 어느 거?”


“우리가 연습했던 곡 말고 다른 걸로 바꿀 거야.”


“뭐?!!!! 무슨 소리야? 지금! 곧 음반 출시할 거라면서 새 곡이면 언제 연습하라는 거야?

 갑자기 좋은 곡이라도 쓴 거야?”


“내 곡....아니야. 전문 작곡가 곡이야.”


“형!!!!!!!”


이건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밴든데.....밴드가......다른 이의 곡을 받는다고?

그게.....우리의 색깔을 말해 줄 수 있다고?


“강신우 씨!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여기 데려오면서, 분명 우리 밴드 색깔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우리의 색깔로, 우리의 노래를 만들어야 돼서, 내가 와야 된다면서요?

 객원이나 남의 곡은 안 된다면서요?

 지금....그게 무슨 소리예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밴드가 아니라 씨엔블루였기 때문에 왔다.

이 밴드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단 일분도 있고 싶지 않다.

밴드이기 때문에, 밴드는 자신의 색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에 공감했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다.

아무리 불편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씨엔블루에 대한 나의 예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곡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것이......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물론.....우리는 밴드야.

 우리가 만든 좋은 곡들도 많아.

 그런데.....트렌드로 생각해야 해.

 일본에서 우리가 아무리 몇 년 간 활동했다고 해도, 한국에서 우리는 신인이야.

 알다시피 여긴 아이돌 천지야. 1~2주면 음원차트가 바뀌는 것도 현실이고.

 강렬하지 않으면, 아니.......솔직하게 말할게.

 후크적인 요소로 쉬운 곡을 선보이지 않으면, 앞에서 강렬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 숱한 이름 없는 팀들 중 하나가 될 거야.

 우리가 짐승돌도 아니고,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유명한 작곡가 곡을 받아서 제대로 우리 이름을 어필한 다음에, 우리 곡으로 우리 색깔을 보여줘도 늦지 않아.”


“아니요!!! 늦어요!!!”


“고미녀! 좀........이해해 주면 안 되니? 계속 남의 곡으로 가겠다는 게 아니잖아.”


“도대체.....뭐가 그렇게 급해요?”


“급한 게 아니야. 우리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우리는 바로 없어져.

 알잖아. 막강한 메이저급 기획사가 언론도, 방송사도 다 장악하고 있는데,

 우리는 신생 기획사에, 아이돌처럼 춤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불리해.”


“그래서요?”


“고미녀!!!”


“강신우 씨! 남의 곡으로 선다면 우리가 어떻게 밴드죠?

 기타와 드럼과 키보드만 있으면 밴드인 건가요?”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돼.

 계속 그러자는 게 아니잖아.

 처음에 강하게 어필해야 어느 정도 팬덤이 생겨.

 대형 기획사들 아이돌들과 경쟁하려면, 우리는 팬덤을 만드는 게 가장 급선무야.

 어차피 팬덤이 있어야 방송사 1위도, 음원 1위도 해낼 수 있어.

 그리고 그래야 우리 음악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는 거고......”


“하~ 정말 웃기네요. 강신우 씨!!

 아.....진짜........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나는 당신을 음악하는 사람이라 봤는데, 그게 아니네요.

 당신은..........사업가네요.”


“고미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녹음실을 나왔다.



기가 막힌다.

나를 이끌어 주던........그 사람의 모습은 있을 거라고, 그래도 그는 나의 음악적 스승이니.....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마지막 동앗줄마저 썩은 동앗줄이었다니.......



내 마음의 시를 따라가라.....

그는.......헤매고 있는 내게 그렇게 말을 했었다.


“내가 찾은 건....좋아하는 거와 잘 하는 게 다를 수도 있다는 거였어.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거와 잘 하는 게 다르다면,

연습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 잘 할 수 있는지, 그렇게 될 수 있는지.....그 길을 찾고 있는 중이야.”


길을 찾고 있다던 그 사람이 그립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길을 찾던 그 사람이........눈물이 날 만큼.........보고싶다.








3









“이건....진짜 형이 잘못한 거야. 이건 아니야.”


종현이까지 녹음실을 나가버린다.

남아 있던 정신이와 민혁이 역시 주섬주섬 챙기더니 고개만 숙이고 따라 나간다.


왜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잘못된 길.

내겐 이미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 버렸는데.......



내가 지금 너무 사업가처럼 굴고 있다고?

그래......그렇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거다.

난........사업가가 되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그렇게 되어야 한다.


내가 너무 성급하다고, 너무 조급하다고?

난........조급한 게 아니야.

너무 빨리 가려는 게 아니야.

난.........이미.......2년을 기다렸어.

난.........조급한 게 아니야.


천천히 가도 늦지 않다고 그랬니?

아니야!! 늦어!!!!

내겐 너무나 늦어!!!!

내게는.......벌써......2년이......지났어.








4







모든 건.......그녀 때문이다.

내가 이러는 건, 이렇게 급하게 곡을 바꾸게 된 것도, 빨리 대중들에게 어필하려는 것도......

다.........그녀 때문이다.


미니 쇼케이스가 있던 그날.......

처음으로 그녀는.........나를 봐줬다.



“잠깐만요!”


처음으로.......그녀가 먼저 나를 불렀다.


“왜?”


“혹시.....아까 말했던 그 날이........언제예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무언가를 보았다.

전과는 다른 무엇.

적어도 아주 오래 전, 그 언젠가 봤던, 아주 작은 반짝임.......

그런 것들을 떠오르게 했다.


“아까 분명 생일이라고 말했을 텐데.......”


“알아요. 언제....였냐구요?”


“무슨 의민지 모르겠지만, 연도를 묻는 거라면, 제대 직전 내 생일인데......왜 그러지?”


“아니, 됐어요.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눈에 조소가 비친다.

그녀의 눈은 다시 현재로 돌아가버렸다.

그녀는 단호하게 돌아선다.

뭔지 알 수도 없으면서, 내 마음엔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 버린다.


“잠깐만! 고미녀!”


돌아선 그녀의 팔을 황급히 잡았다.

내 팔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그녀가 내 몸 가까이로 딸려온다.

청아한 그녀의 향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한다.

마치 내 품에 그녀가 들어온 것처럼,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뛴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왜 묻는 거야?”


“............몰라요. 그냥......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단호했다.

여전히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차갑게 밀어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마치 아무 것도 물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서버린다.


“고미녀!!”


모르겠다.

그냥.......아까....느꼈던....작은 틈새가 뭐였는지......알고 싶었다.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나를 과거로 돌려놓았던 그녀의 눈빛이 뭐였는지.......알고 싶었다.

그녀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듣고 나서도 한참을 무슨 뜻인지, 내가 들은 것이 맞는지 되뇔 수밖에 없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당신도.......어떤 식으로든........힘들었네요........”


힘들었다.....

그녀의 입에서......예상치 못했던 말이 나왔다.


“.....미...녀야........”


“그게 끝이에요.”


그녀는 또다시 걸어간다.

내게서 조금씩 멀어진다.

그녀를 부르고 싶지만, 자꾸 목이 멘다.




그녀가......

힘들었겠다고 말해준다.

힘들었다....라.....


그게 아니야. 미녀야.

힘들다는 건......

힘들다고 말한다는 건, 그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살 힘이 있다는 거야.

난.....나는....미녀야........나는..........






5






“강상병님! 면회 왔습니다.”


“누구?”


“그건 모르겠습니다. 여기 면회 신청서 받아왔습니다.”


건네받은 그 종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세 글자.

그 글자를 보는 순간, 글자는 바로 사람으로 변하고 만다.


“강상병님!!!! 괜찮으십니까? 강상병님!!!!”


김이병이 걱정스럽게 날 보고 있었다.

종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남의 손을 보는 듯이, 떨리고 있는 그 손이 낯설게 보인다.


“김이병! 수고스럽지만, 가서 팬 면회는 사절한다고 전해 줘.”


“예? 팬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상병을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왔다고 했다.

난.......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마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날이 바로

탈영이라는 걸........생각한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 날....하루를....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훈련소 생활 속에서도, 그녀가 내 생일을 기억하며 소포를 보냈을 때도,

순간 순간 떠오르던 그 1년의 세월을 견뎌내었는데........

그 날 하루는........단 1분도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김이병, 오늘 gop 야근 누구야?”


“이병 김지훈. 오늘 gop 야근 근무는 이혁준 일병님과 저입니다.”


“그래? 그럼, 오늘 근무, 김지훈 이병과 나와 바꾼다. 알겠나?”


“예? 예. 알겠습니다.”


나 자신이 살기 위해 나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로 한다.

지금 이대로는,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에 총이 있다는 것도, 지금 내 정신 상태도,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컨트롤되지 않는 나 자신을 가둬두어야만 했다.

그래서 상병을 달면서 끝난 내 gop 생활에 다시 지원했다.

지원자에 한 해서 gop에 다시 올라갈 수는 있지만, gop에 더 있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은 있을 리가 없었다.

산중반까지 짚차로 올라가서 gop 초소까지는 한참을 걸어올라가야 하고,

또 한 번 올라가면 며칠 씩 전혀 내려올 수도 없는 그곳을 그 누구라 하더라도 가고 싶어할 수가 없었다.

1년간 gop 근무라 하더라도 본부대에서 돌아가면서 올라가니 그나마 이 악물고 참는 것이지만,

gop는 그야말로 가장 피하고 싶은 근무지다.

비무장지대 지뢰 철거나 잡풀 제거 작업은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어쩌면 내겐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나라는 인간을 도망가지 않게 가둘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인간을 가장 처절하게 만드는 그곳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1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gop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병을 달고 나서 가장 축하받았던 것은, 오로지 gop 근무로부터 탈출이었다.

상병은 곧 gop로부터의 해방이었으므로, 백두산 부대에 들어와서 모두의 꿈은 상병을 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그랬다.

인간을 가장 외롭게 하는, 가장 처절하게 하는, 그러면서 가장 철저하게 이기적인 자신을 만나게 하는 그곳에서

1년을 견뎌내며 나는 내 스스로를 자만했다.

아주 많이 강해졌을 거라고........


그러나.......그렇지 않았다.

나의 자만심은 상병을 달고 gop 근무를 졸업하며 단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졌다.


그녀가 왔다고 했다.

지금 이곳에 그녀가 있다고 했다.

1년 동안....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 말 한 마디에 난......철저하게 무너졌다.

뼛속까지 약한 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모든 게 멍해졌다.

그녀에게 가야한다는, 가고자 하는 내 전부와 나는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난......gop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장을 메고 산중턱에 내려 이일병과 gop에 걸어 올라가는데, 이일병이 계속 내 눈치를 본다.

나름 짝을 이루어 gop 근무를 한 탓에 둘이 있을 때, 이일병은 편하게 말을 붙이곤 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쭈뼛거리는 걸 보면, 내가 많이 이상해 보이나 싶기도 했다.


“쭈뼛대지 말고 하고 싶은 말, 해라.”


“그게 말입니다. 솔직히 강상병님 이해가 안 됩니다.”


“왜? gop 올라가서?”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번 주에 마지막 근무라고 속시원해 하시더니, 다시 gop 지원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같으면 죽어도 못할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래.”


“예? 그럼 왜 지원하셨습니까?”


“살려고. 반드시 살아서 나가려고.”


“예~에?”


이일병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나라는 인간이 어디까지 독해질 수 있는지 나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살아 나가겠다는, 그리고 반드시 내가 살아야겠다는 그 이기심이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견디게 하고, 시간을 흐르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후임병들의 일을 들어주는, 그들의 gop 근무의 날을 줄여주는 가장 이상적인 선임병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왔다.

군에서 맞는 2번째 생일.......


“강병장님! 생일까지 여기계신 건, 너무합니다.

 다른 후임병과 바꾸시고, 내일은 즐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일병이 된 김지훈 일병이 조금은 편하게 내게 말을 건다.


“왜? 바꿔주게?”


“예? 농담하십니까? 여기서 저랑 같이 gop에 계셔 놓고, 저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가십니까?”


“그러니까 내가 있겠다고.”


“생일이시지 않습니까? 굳이 저랑 내려가셔도 되는데, 왜 근무자까지 바꿔 가며 계시겠다는 겁니까?”


“생일이니까.”


“예?”




생일.........

그녀와 한번도 함께 해 보지 못한 날.

작년.....이날.....소포를 뜯어도 보지 않고 돌려보내야 했다.

보고나면 돌려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그 밤은..........아마........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내 생일도, 난.....이곳에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름이지만, 이곳의 밤은 마치 가을처럼 선선하다.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내린 비가 사람을 자꾸 감상적으로 만든다.

이럴 땐, 정말........기타가 있어야 하는데........

gop라.........아쉽다.


여명이 틀 무렵, 나와 김일병은 같이 초소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고는 산중턱으로 내려갔다.

김일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강병장님!! 그냥 저랑 같이 내려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중턱까지 같이 가실 거면서, 굳이 남으시겠다니.......”


“임마! 내가 그냥 내려가면, 지금 너랑 교대하는 일병은 혼자 근무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어차피 순번대로 두 명이 올라오면 되는데, 강병장님이 고집을 피우셔서 참......”


김일병은 생일날 굳이 남겠다는 내가 답답한지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다.

김일병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어차피 생일 아침에 같이 내려가면 되는 상황인데,

굳이 내가 하루 더 남아있겠다고 순번까지 바꿔가며 남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김일병!! 많~이 컸다.”


“옛?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어~~어!!!!!!!”


그 순간이었다.

산속이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밤새 내린 비 때문에 길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손전등으로 비추며 간다 해도, 그저 감으로 내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김일병이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김일병!! 괜찮나?”


“...아.....윽......예....괜찮습니다.”


김일병은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자. 내 손 잡고 천천히 일어서. 지금 비가 와서 길도 안 보이고 위험하니까 발을 아무 데나 딛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아무리 그래도 여기 근무한 지가 벌써 몇 년.....”


딱.


그 순간이었다.

김일병이 내 손을 잡고 일어서는 그 순간 뭔가 뒷골을 송연하게 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은 것은.......

나는 본능적으로 김일병의 발을 보았다.

김일병의 몸이 앞 쪽으로 기울면서, 한쪽 발을 떼려 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그 발밑에서 불빛에 반짝이는 쇠붙이를 본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이미 발을 뗀 김일병을 살리는 길은 최대한 밀어내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내 팔은 본능적으로 김일병을 앞으로 밀면서 넘어지는 김일병을 내 몸으로 덮었다.


콰쾅!!!


오른쪽 팔이 날카롭게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밑에 깔린 김일병의 절규가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김일병!! 김일병!!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발....악!! 내 발!!!!! 아악!!!!!!”


발?

김일병의 군화는 이미 산산조각 나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보기도 두려웠다.

같은 상황.....그 언젠가.....겪었던 일이 다시 떠오르며 두렵게 한다.


“강병장님!!! 흐억! 제 발.......괜찮..습니까? 으억!!”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꽉 붙든다.

그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군장 안에 있는 붕대를 꺼내어 일단 김일병의 발을 지압했다.

그리곤 김일병을 들쳐업고 산을 달려 내려갔다.

미끄러운 길을 정신없이 달리면서, 너무나 두려웠다.

어느 곳이 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흙은 헤쳐져 있었고,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너무나 미끄러웠다.

아까와 같은 일을 또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삶과 죽음.

그것이 얼마나 종이 한 장 차이인지......

얼마나 쉽게 죽음이 올 수 있는지......

난 온 몸이 덜덜 떨리도록 느낄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던 김일병의 몸이 축 늘어졌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니다. 아니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


그저 기절한 거다.

빨리 가면 살릴 수 있다.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내게 주문을 걸며 내려갔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빠지려고 한다.


죽을 것 같다는......그 심정적인 차원의 죽음이 아니라,

진짜.......죽음이란 것의 실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죽을 수도 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정말.......죽을 수도 있다는 그 순간.......

그녀가 떠올랐다.

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자마자

제일 먼저..........떠오른 사람은 그녀였다.

아니다.

난.......늘........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단지 저 속에 묻어두고 아닌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가면을 쓸 수 없는, 위장할 수 없는 상황이 오자,

그런 위장들이 사라진 것뿐이었다.


내게 이 여자는 도대체 뭔가.........

미친 듯이 이를 악물고 참아온 여자,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여자.

죽음의 문턱에서도 놓지 못하는 여자


업고 뛰며,...생각했다.

너밖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너 외에는 없다고........


그냥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니가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그래서.......그래서........

너무나.......살고 싶다고..........


내 삶의 욕망은........오로지 너였다.



김일병을 데려간 육군병원에서 나는 수술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른쪽 팔에 파편이 박힌 것도 병원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오른쪽 군복이 벌겋게 된 걸 보면서도 김일병의 피가 묻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짚차를 타고 같이 온 후임병이 이상하다며 군복을 벗기고 나서야 내가 다친 걸 알았다.

김일병에 대한 응급 수술이 진행돼서 나는 간단한 소독 후 기다려야 했다.

김일병 앞에서 난 다쳤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수술실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미친놈처럼 종이를 꺼내서 음을 그려 나갔다.

누군가 나를 지켜봤다면 그야말로 미쳤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동료는 지뢰를 밟고 발을 절단할지도 모르는데, 거기서 곡을 써대고 앉았으니......

분명.......미친 짓이다.

그러나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쓰지 않으면, 거기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아니 이미 울리고 있는 음들을 적어나갔다.


  

사랑은 비를 타고

 

 

창가에 흐르는 빗물에 숨겨놓은 그댈 떠올리고

가슴에 흐르는 눈물로 그대를 지워보곤 하죠

이 소리를 듣고 있죠 비를 좋아하던 그대도

나를 기억하나요 비가 오면 나는 그댈 그려요

 

사랑은 비를 타고 내려 추억은 비를 타고 흘러

내리는 빗소리에 또 그댈 떠올려요

눈물은 비를 타고 내려 기억은 비를 타고 흘러

굳은 가슴 적셔 놓고 떠나가네요 비를 타고

 

그댄 비를 보면 비를 닮아 슬퍼진다고 말했죠

우리의 사랑도 이젠 비를 닮아 버린 얘기이죠

그댄 떠나갔어도 나를 기억해줘요 (나를 기억해줘요)

그리움이 많아서 차오를 때 비가 부를 테니까

 

나를 잊었더라도 (나를 잊었더라도)

다시 기억해줘요 (다시 기억해줘요)

그리움이 많아서 차오를 때 비가 부를 테니까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어디서든 웃고 있기를

비를 닮아 슬픈 사랑 그만 하기를

이것만은 잊지 말아요 그댈 사랑하는 바램이

비를 타고 그대 곁에 내릴 테니까



살고 싶다는 욕망은.......서정적인 멜로디로 드러났다.

그것은.......너였다.

나를 미치도록 흔들어대는, 살고 싶게 만드는, 그래서 이기적으로 만드는.......

너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넌.......반드시.......날 기억해야 한다고......

그것이 너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더라도, 넌 그 고통을 새기며 나를 기억해야 한다고.......


그렇게........

삶이라는 욕망 속에서 너를 잡았다.






6






그래서 이 노래여야만 했다.

타이틀이 되기에는 너무나 서정적이라 해도, 이 곡이어야 했다.

그것은......너를 향한 내 선전포고였다.

너에게......꼭 들려줘야 하는.......내 삶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래 잘 돼 가냐?”


미니 쇼케이스가 마치자마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 인터뷰부터 해서 쇼케이스 진행 중에도 인터넷에 기사가 많이 올라온 듯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 문제나 해결하시죠.”


“니가 워낙 호기있게 말하길래, 뭐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았더니,

 아직도 여자 애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냐?”


“끊습니다.”


“잊지 마라. 넌 지금 1달 내로 내게 증명해야 돼.

 그게 아니면, 넌 진 거다.

 그게 뭘 의미하는 지 당연히 알 거라 믿는다.”


뚜뚜뚜뚜........


내가....나를 꺾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난.......지금.....내 음악을 버려서, 내 음악을 살려야 하는 모순에 부딪치고 말았다.


욕심이라는 거.......나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그녀가.....내게.......힘들었겠다고 말해준 순간........

다시는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과거 어느 순간의 찰나를 보고 말았다.

그 순간의 찰나가 내 심장에 일으킨 파장은 너무나 컸다.

기대가 커서는 안 되는데,

난........그 기대를 접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당겨오고 싶어서......

너라는 존재를 다시 내 안에 두고 싶어서........

난......내 음악을 버리기로 한다.

그래서......타협이란 걸......하고야 말았다.







7




집에 와 있으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아니, 사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강신우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받아들여야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적어도 음악인으로서의 강신우는 이럴 수 없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강신우가 나에 대한 마음은 변할 수 있어도, 음악에 대한 그 마음은 변할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적어도 씨엔블루 활동은 같이 할 수 있다고,

그 정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안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었다.

그런데.....그가.....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타이틀을 바꾸겠다니....

그것도......히트 제조기라는 작곡가 곡을 받겠다니.....

이건......아니지 않는가.......


그때 찾아올 사람도 없는 집에 벨이 울렸다.

누군가 싶어 인터폰을 여는 순간, 인터폰 창으로 뜨는 얼굴을 보며,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왜....이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기.....왜 온 거죠?”


“하아........미녀야........잠깐만 얘기 좀 하자.”


“전 할 말 없어요. 가세요.”


“........나올 때까지.......문 앞에 서 있을게.

 제발........나와 줘........”


인터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린다.

뭐가 그리도 답답한 걸까.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변명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서 있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러다 기자에게라도 들키면 그야말로 데뷔하기도 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황태경씨와 나에 대해서 스캔들이 터진 마당에, 이건 또다시 삼류가 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내가.......들어갈까....아니면 나올래?”


순간 갈등을 하다가 결국 그를 들어오도록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밖에선 요즘 기자들이 특종을 노린답시고 잠복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들어오세요.”


그에게 오빠가 신는 슬리퍼를 내 주며, 거실로 데려갔다.


“이렇게.....사는구나.”


그는 여자친구 집에 처음 온 것 같은 태도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 모습이.......너무나 불편하다.


“혼자......지내니?”


“아니요. 오빠랑 같이 있어요.”


“고미남.....합숙 안 해?”


“저 때문에 안 해요. 오빠 곧 올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얘기하고 가 주세요.

 오빠도.....그 쪽 보는 거 불편해 하거든요.”


난 불편한 마음에 거짓말을 해댄다.

요즘 곡작업 때문에 집에 거의 못 들어오는데, 마치 곧 올 것인 양 거짓말을 친다.

분명 그도 알고 있을 텐데.......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도........불편하다.


“무슨....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빨리 하고 가 주세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와 단 둘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서 내 말은 더욱더 차갑게 나가고 만다.


“미녀야.........나........한 달만 봐주면 안 될까?”


“네?”


“그냥.......한 달만.......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면........안 되니?”


“이제 와서.....그게 무슨 소리죠?

 당신이 언제......내게 이해니, 설명이니.....한 적 있었어요?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갈 거잖아요?

 근데 뭐하러 나한테 와서 마치 이해를 구하는 척하는 거예요?

 어차피 당신 회사에 도장 찍은 거니까........입 다물고 무조건 하라면 해! 라고 말하면 그만이잖아요.

 이제 와서 쇼 하지 말고........나가줘요.”


“미녀야........”


더 이상 같이 마주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가주세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그런 그의 시선을 비껴 선다.


“그.....곡......말이야.”


구두를 신고 나가려던 그가 갑자기 돌아선다.


“난........반드시.........그 곡이 타이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그 생각은 변함없어.

 바꿀 수밖에 없게 됐지만......그래도 여전히.....그 곡은.....내겐 타이틀이야.”


지금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니.....무슨 말인지 집중할 수 없는 것은.........이 사람의 눈빛 때문이다.

그의 눈은.......내 영혼 저 안까지 깊이 바라보고 있다.

깊이 깊이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에.......난.....자꾸 숨이 막힌다.


“........생사가......오가는........그 순간에.........

 딱 한 사람만 떠올랐어.

 미칠 것 같아서.......수술실 앞에서 종이에 곡을 썼어.”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지금 왜 저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 건지........

아주 아주 오래 전.....내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의 눈빛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

정말로.......알 수가 없다.


“..........보고 싶어서.........미치도록 보고 싶어서........그래서 만들어진....곡이야.

 죽음 앞에서 떠오른 단 한 사람.......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한........곡이야.”


나.......이제..........처음 내가 일본에 갔을 때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알 것 같다.

왜.....내게 그렇게 이기적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그 때........내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정말로 알 것 같다.


어쩌면 이 사람은....내게 복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통이 어땠는지......자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대로 내게 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미칠 것 같다.

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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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는 많이 깁니다.

28장이나 되네요.

신우 군 생활 부분이 의외로 길어져 버렸습니다.

나름 중요한 부분이라 열심히 적었는데, 읽으시면서 지루해 하실까봐 걱정입니다.


씨엔블루.......

자작곡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발매한 음반도, 이번 음반도....

전.....정용화 군과 이종현 군이 직접 만든 곡들이 훨씬 좋더라구요.

그저....개인적인 소견입니다.


2주 후에 뵐게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