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53. 운명이란 믿음의 또 다른 말이다.
* 오늘은 위의 배경 음악을 꼭 틀어주시고 들어주시길......
사랑은(리쌍, 정인)
잊어야죠 이제는 보내야죠
놔야겠죠 잡고 있던 인연도
남겨진 슬픔 추억은
내 맘 속에 흔적으로 남길게요
알았었죠 우리의 마지막을
예감했지만 멈출 수가 없어
불안한 우리 사랑 난 밀어붙인 거죠
그렇지만 괜찮아요 나 지금도 후횐 없어요
나에게 사랑은 상처만을 남겼지만
사랑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사랑은 살아 갈 이유를 주었다가
사랑은 절망이 뭔지도 알게 했죠
사랑은 그렇게 왔다간 거죠
내 마음속에서 love is
또 오겠지요 나에게 다른 사랑이
그 땐 지금처럼 힘들진 않겠죠
이미 사랑이 어떤 건지 나에게 알려주고 갔으니
다음 번엔 지금 보다 쉽겠죠
사랑은 상처만을 남겼지만
사랑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사랑은 살아 갈 이유를 주었다가
사랑은 절망 또한 알게 했죠
사랑은 내게 알려 주었죠
이 모든 것들을
내게 사랑은 함께라는 걸 보여주고
이별은 외로움 또한 남겨줬고
사랑은 다가서는 법을 알려 주고
이별은 멀어지는 법도 알게 했죠.
사랑은 내게 알려 주었죠
이 모든 것들을 love is
1
“이제........가세요.”
단정하다.
그리고 단정한 만큼, 흔들림이 없다.
그녀는 지금 아무 흔들림 없이, 조용히 나직하게 내게 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아까 내 품에 있었던 그 여인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정갈하다.
많이 쓰릴 텐데도 약간의 동요도 없이 그녀는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녀가 옷을 다 입어갈수록 내 심장은 자꾸만 요동을 쳐댄다.
어쩌면 이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닌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가세요.”
짧은 이 한 마디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내 머리는 열심히 파헤치고 있다.
저 단정하고 정갈한 말투는 내게 무슨 감정을 보이는 것인지,
마치 흔들림 없는 말투가 나에 대한 감정인 마냥, 심장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녀는 내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그녀의 등이 내게 빨리 나가달라고 무언의 강요를 하는 것도 같다.
아주 천천히 옷을 입기 시작한다.
천천히 입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마는, 그래도 나는 이 순간을 놓치기가, 이 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이..........
싫다.
어떻게든 이 시간을 붙잡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도, 내가 움직여도,
그녀는 여전히 똑같이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다.
그 등이, 마치 나를 향한 마음 같아서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도 저 얼굴이 나를 향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다시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내가 그녀 바로 앞에 서 있어도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침대에 앉아 있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려 나는 무릎을 굽힌다.
“미녀야..........”
여전히 고개를 돌리며 내게서 시선을 빗기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를 나는 안아 버렸다.
그러나 잠시 멈칫하던 그녀가 나를 밀어낸다.
그리고는 또 내게서 시선을 빗긴다.
“......가세요.”
“미녀야.......나 좀.......보자.”
내 말에 그녀가 내게 잠시 얼굴을 돌린다.
그녀의 눈빛이 공허하다.
그 공허함이 다시 내 가슴을 스산하게 한다.
“.......갈게. 이따 전화할게.”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일어서는 내게 던진 그녀의 말은 비수처럼 쩡~하고 깨진다.
“........뭐?”
“이제.....다시.........연락하실 일.....없을 겁니다.”
“.......너....지금.......그게 무슨 소리야?”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시선을 피하던 그녀가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본다.
“전........이제 강...신우 씨를 사적으로 만날 일이 없습니다.”
“고미녀!!!!”
“우리.......이제 진짜........헤어진 거예요.
아니, 이미 2년 전 헤어졌어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진짜 그 마지막을 맺게 된 거구요.
그러니...더는.....”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헤어져!!!”
난....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거칠게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리는 걸 보고서도 난 멈출 수가 없었다.
“미녀야! 왜 이래? 이러지 마.
내가.....내가.....정말 잘못했어.
그래, 전부다 내 잘못이야.
그래도.......난.....너랑 못 헤어져. 절대 안 돼.
내가.....2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니?
내가.....그나마 살아온 건, 너랑 어떻게든 다시 만나려고,
이렇게 다시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선데.......
미녀야, 나한테......이러지 마.......”
“그래서요?”
“....미녀야.......”
“당신도....내게 그랬잖아!
내게........이별할 수 있는 시간도, 준비할 시간도 안 줬잖아!
근데........왜 이래요?”
“....그건......
그래....모든 건 내 잘못이야.
그래도.....정말 헤어지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시 만나려고 어쩔 수 없이...그랬....”
“아니요! 그건 당신 생각이에요.
내 생각이 아니라! 바로 당신 혼자만의 생각이었어요.
당신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 당신은 내게 어떤 것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아니, 지금도 난......당신이 무엇 때문에, 어째서 그랬었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젠.....알고 싶지도 않아요.”
“미..녀...야!”
“이젠.......당신이 들을 차례예요.
2년.....힘들었다구요?
좋아요. 그랬겠죠.
근데요......나는.....나는 어땠을 것 같아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안 받아들일 수도 없는........
죽어가던......내 시간은.......어땠을 것....같아요?
나.....이제 다시는......절대로 그 시간으로는 못 돌아가요.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단호했던.......미녀를....본 적이 있었을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온 몸으로 울고 있는
이런......미녀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녀가....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온 몸으로 절규하는 그녀의 몸짓 속에서
나는......보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의 시간을 겨우 넘어 왔다고.......
그래서 다시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그렇게 외쳐대는 그녀에게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고 말할......용기가.......없다.
“난....이제 완전히 끝났어요.
이제 더 이상 미련도, 죄책감도, 가슴 아픔도......
없어요.
이제.....정말.......우리의 악연........
끝내고 싶어요.”
“......................”
“날 좀.......살려 주세요.
이제 좀 살 수 있게,
숨이라도 쉬며 살 수 있게, 제발....날 좀 내버려두세요.
제가 많은 걸...바라는 거 아니잖아요.
떵떵거리며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살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숨이라도 쉬게.....해달라구요.
살 수 있게....제발 살 수 있게 해달라구요!!!!”
몸을 떨고 있는 그녀 앞에서,
제발 살게 해 달라는 그녀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데.......
나만 아니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데......
그녀를 잡고 있는 것 자체가 그녀의 숨통을 조이는 일인데........
근데........난.......니가 없으면 못 사는데......
나는.......널 못 보면.....죽을 것 같은데.......
2년 동안.........너 하나 잡겠다고 살아왔는데.......
나는.......어떡해야 하는 거니......
떠나달라고 말하는 니 말에 이미 내 심장은 덜컥 내려앉는데.......
다시 보지 말자는 그 말에 벌써 숨쉬기도 힘든데......
나는.....도대체.....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니.......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말대로 돌아선다.
문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죽으러 가는 사형수의 발걸음처럼, 무겁다 못해 가라앉는다.
난.....너 없이....살 수 있을까.......
널 못 보고 살 수 있을까.......
다시 내 손으로 널 만지지도 못하고,
니 입술에 입맞추지도 못하고.......
다른 이가 너에게 손 내밀어도 아무 말도 못하고 심장만 쥐어짜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아.....하아.........
생각만 해도, 내 심장은 벌써 반응이 온다.
안 된다고....절대로 안 된다고.......
미칠 듯이 조여 온다.
게다가...난....이제.....진짜.....그녀를....온 몸으로 알아버렸다.
벌써.......이렇게 갖고 싶어 미치겠는데,
지금 이순간도, 너에게 입맞추고, 너를 안고 싶은데,
내 온 몸의 감각들이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곤두서는데,
내가.....너를 놓고 살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미안......하다........”
“.............................”
“정말.......미안하다.........”
그 말밖엔......해 줄 수 있는 말이......없다.
미안하다.......미녀야.......
2
일주일이 지났다.
끝은 다가오고, 난......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였다.
“형!!! 형!!! 문 좀 열어봐!!!!!”
종현이 녀석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려댄다.
저러다 가겠지 싶어서 못 들은 척해본다.
종현이 녀석은 그러나 포기를 모른다.
저 녀석이라면 아마 열쇠공을 부르든, 아님 경찰서에 연락하든
문을 딸 녀석이기도 하다.
결국 녀석 등쌀에 문을 열고 만다.
“...뭐야?”
“형!! 도대체 왜 이래?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형! 바지 사장이야? 뭔 놈의 대표가 잠수타고 난리야?”
“....미안하다....”
“그래, 그것도 그래.
전자키 번호는 왜 바꾼 건데?
정훈이나 나나 물먹으라는 거야?
정훈이 지금 미친다고 난리라구!”
“미안...하다고......”
“이건 완전히 반대야 반대!!
보통은 멤버가 잠수타면, 기획사 사장이 찾는 거지.
이건 완전히 반대잖아!!!!!”
“하아..........”
“한숨만 쉬면 다냐고!!!!!”
종현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지간히 열을 받았나 보다.
“해장은 했어?”
방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술병을 보더니 녀석이 한 마디 툭 던진다.
목소리가 그래도 조금 차분해진 것 같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형! 나가자!”
녀석 때문에 결국 차에 올라탔다.
“스케줄은.....?”
“왜? 이제 걱정이라도 돼? 대표님?”
“정훈이.....힘들었겠군.”
“그랬지 뭐. 그냥.......우리 대표님....링겔 처리했다. 됐어?
정훈이가 매니저 그만 둔다 그래도 우린 할 말 없어.”
“.....고맙다.”
종현이는 묵묵히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오디오를 켠다.
<사랑은>
잊어야죠 이제는 보내야죠
놔야겠죠 잡고 있던 인연도
남겨진 슬픔 추억은
내 맘 속에 흔적으로 남길게요
알았었죠 우리의 마지막을
예감했지만 멈출 수가 없어
불안한 우리 사랑 난 밀어붙인 거죠
그렇지만 괜찮아요 나 지금도 후횐 없어요
나에게 사랑은 상처 만을 남겼지만
사랑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사랑은 살아 갈 이유를 주었다가
사랑은 절망이 뭔지도 알게 했죠
사랑은 그렇게 왔다간 거죠
내 마음속에서 love is
또 오겠지요 나에게 다른 사랑이
그 땐 지금 처럼 힘들진 않겠죠
이미 사랑이 어떤건지 나에게 알려주고 갔으니
다음 번엔 지금 보다 쉽겠죠
사랑은 상처 만을 남겼지만
사랑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사랑은 살아 갈 이유를 주었다가
사랑은 절망 또한 알게 했죠
사랑은 내게 알려 주었죠
이 모든 것들을
내게 사랑은 함께라는 걸 보여주고
이별은 외로움 또한 남겨줬고
사랑은 다가서는 법을 알려 주고
이별은 멀어지는 법도 알게 했죠
사랑은 내게 알려 주었죠
이 모든 것들을 love is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그 목소리가........
“이거......뭐야?”
“가이드 녹음한 거.”
“누구? 미녀?”
“미녀가 가이드한 건 맞는데, 미녀 곡은 아니야.
대표님 모르게 솔로 내는 것도 아니고.”
“나 없는 새, 니가 일친 거야?”
“그러게. 왜 잠수를 타냐고!!! 연락도 안 되고.
내가 대충 결정 내렸어.”
“.....우리 스타일은 아닌데.......밴드도 아니고......
꼭........리쌍......스타일이다.”
“맞아! 리쌍.
형! 이제 자리 깔아도 되겠네...”
“진짜....리쌍이야?”
“성준이 형이.......정인 누나.......솔로 낸다고.......
작사 부탁했어. 미녀한테.”
“그 형......자기가 다 쓰는데.....
그리고 가사는 개리형도 쓰잖아?”
“랩이 없으니까.
정인 누나 솔로 미니 앨범 만들어 주고 싶겠지.
그런데 저번에 썼던 미녀 노래가 굉장히 와닿았다나?
그래서 써달라고 하더라.”
“너한테....연락 왔어?”
“응. 연락이라기보다....어쩌다 술 한 잔 하다....그렇게 됐어.
형은 연락 안 되고......
내가 미녀한테 연결해줬지.......”
“....미녀가......하겠다는 게.....신기하네.”
“원래는 안 한다고 했는데, 곡 들어보더니.....하루 만에 쓰더라.
가사 보고 순간 숨막혔어.
고미녀가 정말 꾼이거나.......아니면........”
“................”
“아니면, 지금 이 순간......자기 자신이거나........”
“................”
“........하나는......술에 쩔어 잠수 타고.......
하나는........자기 심장을 쪼개서 노래를 만들고........
결국......둘 다.....똑같은 거지.
아프다는 거.......
사는 게 버거울 만큼.......아프다는 거.........”
미녀의 목소리가 흐른다.
피아노 반주만 고요히 흐르는데.....
아직 제대로 된 반주도 없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가사가 더.....절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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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처만을 남겼지만
사랑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사랑은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가
사랑은 절망 또한 알게 했죠
사랑은 내게 알려주었죠.
이 모든 것들을
내게 사랑은 함께라는 걸 보여주고
이별은 외로움 또한 남겨줬고
사랑은 다가서는 법을 알려주고
이별은 멀어지는 법도 알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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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다가서는 법을 알려주고
이별은 멀어지는 법도 알게 했죠......
그건....그녀가 내게 남기는 말이다.
이제....그녀는.....드디어 이별을 시작했다는 거다.
이리도 담담하게, 속으로 속으로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정리해나가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제 미련따윈 버리라고 날 향해 조소를 날리는 거다.
“쿡쿡쿡쿡.......”
“어? 형? 왜 이래? 이제.....미쳐 가는 거야?”
“종현아....미안하지만, 나......서울역에 데려다 주라.”
“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부산에...가야겠다.”
“형!!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머니를.......뵈어야겠어.”
어머니라는 말에 종현이가 갑자기 입을 다문다.
“기차 타고 가게?”
“응.”
“형....요샌 SNS 시대야.
SNS로 스타 인간극장이라도 찍을래?”
종현이 녀석이 갑자기 유턴을 한다.
“너 지금 뭐해?”
“시끄러. 어떻게 된 게, 소속사에서 관리 받아야 할 내가
도리어 소속사 대표를 케어하고 있냐? 에휴.......”
“......미안하다.”
“내가.......어머니께 오랜만에 인사드리려고 가는 거야.
형 때문이 아니라구!”
“그럼, 내가 운전할게.”
“이 사람이!!! 큰일 낼 사람이네!!!
형 오늘 아침까지 술 마셨지?”
“어? 아침은 아니구.......새벽 정도.....”
“나참....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
형! 지금 운전하면 음주 운전이야!
걸리면 바로 끽~이라구!
씨엔블루 아작 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잠자코 있으셔!
이건 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니까....”
“..........고맙다.”
“고마우면, 좀 잘 하던가......”
“.........그래.......”
“근데......끌까?”
“뭘?”
“이거......”
턱으로 오디오를 가리킨다.
심상치 않다는 걸 이 녀석이 모를 리가 없다.
“아니........그냥......놔둬.
나한테........하고 싶은 말일 거니까......
미녀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게 나아.”
“........................”
그녀는 내게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나는 도리어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게 사랑은 살아갈 유일한 숨구멍인데,
그녀에게 사랑은 숨통을 조여 오는 절망이라 한다.
내 사랑에는 이별이 존재할 수 없는데,
그녀의 사랑에는 멀어지는 법까지도 가르치는 것이라 한다.
멀어지는 법......
멀어지는 법......
그러한 것이........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거니.......
적어도......
‘나’라는 세상에는......
없다.
3
“신우야!!!!”
병실문을 여는 순간, 어머니는 반가움보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무슨......일 있는 거니?”
“자식이 어머니 보러오는데 무슨 일 있어야 오나요?
그냥.......어머니 뵈러 온 거예요.”
“....신우야.......”
“저도 왔습니다. 어머니!!!”
“종현이도 왔네? 잘 지내지?”
“네 그럼요!! 저희가 급히 오느라 아무 것도 못 사왔어요.”
“얘는.....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사오긴 뭘 사와.”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요 앞에 가서 과일이라도 사올게요.
형이랑 말씀 나누고 계세요.”
“종현아. 아니야. 여기도 먹을 것 많아.”
“흐흐흐....제가 먹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말씀 나누세요.”
종현이 녀석이 알아서 빠져준다.
어머니는 이미 내 상황이 어떤지.......감 잡고 계실 것이다.
“........미녀......때문이니?”
“....................”
어머니의 입에서 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저 아래에서부터 울컥 하고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
이때까지 참아왔던 무언가가 터지는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조금이라도 입을 뗀다면, 금세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섣불리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기다려주셨다.
“..................미녀를.........가졌어요.”
한참 만에 내뱉아 놓고는, 난 또다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또 다시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미녀도........”
“......................”
“허락......한 거니?”
“......네............”
“.........그런데......넌.......왜 이렇게 아픈.....거니?”
아프다........
그래.....아주 많이 아프다.
“...........미녀가.........저 때문에.......살 수가 없대요.
자신은.........이제......정리가 끝났대요.
미녀에게.........저라는 존재는.......없어요.........”
바보같이.....정말 바보같이
사내자식이 울고 만다.
이런.....바보 같은 자식........
어머니에게 혼이라도 나면.......그러면 정신을 차릴까.........
“.........어렵구나........”
“.......미녀가.......왜.......절 받아들인 거죠?
전....적어도......아주 조금은.....절 사랑해서라고,
예전의 감정이 남아있어서라고....생각했어요.
그런데........어떻게......그렇게 차갑게 돌아설 수가 있죠?”
“........신우야......넌 정말....여자를 모르는구나.”
“예?”
“......아니면 너도 어쩔 수 없는.....남자.......인 게지.”
“어머니!”
“니 말대로......미녀가 널 받아들였으면,
미녀는 무조건 네 여자가 되는 거냐?
그래서.....미녀를 책임지고 싶었던 거야?”
“어...머니......”
“그래......넌.....책임감 있는 애니 그럴 수 있겠지.
그래야 한다고 믿었겠지.
아니....어쩌면, 이제 미녀를 가졌으니, 이제 진짜 니 여자가 되었다고 안심했겠지.
아니야?”
“.......................”
“그 아이는........신에게 스스로를 바쳤던....아이다.
그 아이에게......너와의 하룻밤은........보통 여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거다.”
“그러니까.....더.....제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그 귀한 결심을 꺾을 만큼.......그래도 절........마음에 품었던....거.....아닙니까?”
“그래. 그게 니가 믿고 싶은 바겠지.
그런데......그 아이는.......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아이야.
어쩌면......미녀는......신에게 자신을 바쳤던 마음으로,
자신의 과거의 사랑에 자기 자신을 바치면서 정리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정...리요?
무슨 정리요? 저랑 헤어지는 거요?
어떻게.....그런 방식으로 헤어지는 거죠?
어떻게 그렇게.....잔인하게 헤어질 수가 있죠?”
“신우야!!!
그래....솔직히 난 너의 엄마야. 그래서 팔이 안으로 굽는 건....어쩔 수 없어.
그런데.......신우야.
그 아이한테만은......미녀한테만은........그렇게 말할 수가 없구나.”
“어머니!”
“니가 마지막으로 휴가를 나왔던 날.......나를 찾아왔었다.
사실은.......내가.....보고 싶다고 불렀었다.”
그날.........
바로 그날이었다.
1년 10개월만에 만났던 바로 그날.........
처음엔......내가 만들어낸 환영인 줄 알았던 그날........
환영이더라도.....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던 그날.........
그래서 내 손 안에 잡을 수 있을 때.....어쩌면...진짜 너일지도 모른다고.....
미친 듯이 뛰어대던 내 심장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아버지가 없었다면, 난........너를.........놓지 못했을 것이다.
너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하던.... 나 자신을........
너로부터 떼놓기 위해서........
얼마나 미친 듯이 어머니께로 달렸는지........
지금도......기억한다.......
아니......이건 기억이 아니라,
내 왼쪽 가슴에, 이렇게 너만 생각하면 쿵쿵 거리고 뛰고 있는 이 심장 속에
새겨져 있다.
“그 아이가 그러더라.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부모님에게도, 신에게도, 그 모두에게....버림받았다고........
그리고 최후의 보루였던...........너에게서도 버림받았다고........”
“제가......제가........미녀를......버렸다구요?
제가요?”
“그래서........그 아이는.....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자신은 신에게도 버림받은 아이니,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그러더라.
그러니.....신께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수녀원에 돌아가야 한다고.......그러더라.
그게....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그 아이에게 사랑은.........신의 선물이었고,
그 사랑을 잃어버리는 건, 신의.......저주였다.
니가 떠난 자신의 삶은......그래서...........신의 벌이라 생각했어.
행복해지면 안 되는 자신이 행복을 감히 탐내서 벌받은 거라고.......”
버리다니.......
내가......미녀를 버리다니.......
그래, 안다.
내가 미친 놈이고, 내가 죽일 놈이다.
그러나.........그러나.........이건 아니다.
억울하다!!
정말 억울하다!!
내 평생.........처음으로 욕심낸 사람인데.......
그래서.......죽어도 놓을 수 없는 사람인데........
그래서...그래서 이토록 처절하게 견뎌왔는데........
그런 내가.......그녀를 버렸다고? 내가?
“전....전........”
말을 하고 싶은데, 뭐라고 이 억울함을 말로 내뱉고 싶은데,
쓸데없이 눈물만 흐른다.
“억울....하겠지.
그래.....넌....그럴 수 있다.
니 아버지 잘못이라고 미루고 싶겠지.
그런데....신우야.....그게 정말 아버지 잘못이기만 한 거냐?”
“.....예?”
“넌 내게조차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미루어 짐작하고 있지만, 그 역시 너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 아니야.
그래서....난....미녀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건....아무리 니가 내 아들이라도, 니 마음이 내 마음일 수는 없으니,
내가 널........대신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버지가..........위협하셨겠지.
너에게 미녀가 어떤 존재인지.....내가 아는데,
니가 그 정도로 단호하게 떠났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지.
아버지가.......미녀의 앞을 막겠다 하셨겠지.
어쩌면 더 큰 위협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
“......................”
“그러나........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명백히.....신우 니 잘못이다.”
“!!!!!!!!!!!!!!!!!!!!”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와 아버지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난 알지 못한다.
그러나......왠지.....요즘은.......아버지가 이기신 것 같구나.”
“예?”
아버지가....날 이겼다구?
아니다.
분명....내가 이기려고, 내가 이겨서, 미녀도, 씨엔블루도 다 살리려는 건데.....
아니다. 내가 이겨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넌......너도 모르게.....아버지가 원하는 대로.....살고 있는 것 같구나.”
“아닙니다. 어머니.....
전 어떻게든.......미녀를 다시 찾고......씨엔블루도 지켜내려고.......”
“아니야. 신우야. 넌.......지금.......졌어.
하나 물어볼까?
너........지금.........행복하니?
미녀도 다시 찾고, 음악하는 것도 즐겁고......그러니?
정말 행복해?”
“!!!!!!!!!!!!!!!!”
“넌.......지금........행복하지 않아.
그래서.......지금......내게 달려왔잖아. 아니야?”
“................”
“너......지금.....니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니?
미래에 그럴 거라는 거 말고!
지금 이 순간 말이야.
지금 이 순간....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야?
그런 음악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아........어머니는 모든 걸 아신다.
내가......지금.......하려는 변명까지 아신다.
현재는.......곧 미래로 대체될 것이니, 괜찮다고......
내 미래는.....괜찮을 거라고.......
미녀도 있고, 씨엔블루와 아름다운 음악을 할 거라고......
그런 미래가 있으니......현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는 내 변명을 미리 꿰뚫어보고 계셨다.
“아버지께서 이기셨다.
넌.........니가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을 잃었고, 그 아이의 행복을 잃게 만들었어.
그 아이를 지옥 속에 살게 해서, 다시는 사랑을 믿을 수도, 할 수도 없게 만들었어.
그리고....넌.....니가 원하는 음악을 하지도 못해.
난 안다. 니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넌 행복해 보였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더 솔직하게 말할까.
요즘......강신우는.......완벽하게 강현국 회장의 아들이다.
아니, 강현국 회장의 젊은 시절 그대로야.
모르겠니?
아버지가 이긴 거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아들인 널........만들어가고 있는 거야.”
“그래도...그래도...전.....
미녀를 찾으려고......그래서....그런 거예요.
우리 씨엔블루도.......지켜주려고..........
적어도 지금은.....아버지와의 계약 때문이지만,
아버지와의 거래에서만 이기면,
다시......처음처럼.......”
“아니다! 아니야! 신우야!
미녀는 이미 깨달았는데, 넌.....모르고 있구나. 전혀 모르고 있어!!!”
“제가......뭘......놓친......거죠?”
“미녀는......정면 승부를 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신우 넌.......아니야.
정면 승부가 아니라.......타협을 한 거야.”
“타..협....이라구요?”
“그래.......그 어떤 말도....변명일 뿐이야.
넌........사랑을.......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했어.
과정이 없는, 결과란......없다.”
정정당당하게.......
사랑도.....정정당당하게........
그게 무슨 말이지?
내 사랑이.....거짓이란 말인가?
“그렇지만.........어머니........
제 사랑은........정직해요.
제 마음은요. 진짜......정직하다구요.”
“신우야! 니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니야.
사랑은........단순히 감정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랑은........행동이야.
니가 아무리 감정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도,
너의 행동은......정정당당한 사랑이 아니었다.
이별을, 헤어짐을, 그리고 자신의 비참함을 정정당당하게 마주하는 것도
사랑이다.
좋아하는 감정이 시작되는 것도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마무리하고, 떠난 사랑을 혼자서 정리하는 것도,
그것도 사랑이다.”
“어머니.......
지금......저에게........그래서.......미녀를 떠나보내라는 말씀이세요?”
“그건....나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미녀가 그 사랑의 시작과 끝이라는 과정을
그 지독한 과정을 정말 정직하고 정정당당하게 마주하며 걸어왔다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 줄 아니?
바로 그 과정을 겪게 되면,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다시는 그 과정을 겪어낼 수 없으니까......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납득한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머리로 이해했다고.....가슴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전......미녀를 놓을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 어머니........
전.....이제 미녀 없이 살 수가 없어요.”
“하아......신우야........나도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어쩌면....넌.......강신우와 싸워야 돼.
다른 남자라면 싸우기라도 하면 되는데.....넌...너랑 싸워야 되니까.....정말 이기기 힘든 싸움이다.
버림받았다고 느낀 여자가.......자신을 버린 그 남자로부터 겨우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여자는.......자신을 버린 남자를.......더 이상 믿을 수가 없을 텐데........
그 무너진 신뢰를.....믿음을.......어떻게 다시....세울 수 있을까.........
아무리.....그 아이를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해도,
여자를 위하는 일이라며, 또 비슷한 일을 벌일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어찌 믿을 수 있겠니......”
이제야 조금은....알 것 같다.
왜 미녀가 그토록.......자신이 사랑한 사람은....지금의 내가 아니라고 했는지......
과거의 강신우와, 지금 이 순간의 강신우가......왜 다르다고 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머니....한 가지 여쭤봐도 돼요?”
“그래.”
“아버지를.....용서하셨어요?”
“.......현재....진행형이야.”
“예?”
“용서는.......인간이 할 수 있는...그런 영역이 아니야.
용서란 건 신의 영역이야.
그래서........계속....현재진행형으로 해나가고 있을 뿐이야.“
“그럼....왜 헤어지시려다가....아버지를 받아주셨어요?”
“글쎄........처음부터 받아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저.....어느 순간.........꽉 막혔던 마음이 아주 조금 열리더구나.”
“계기가.....있으셨어요?”
“.......구두 때문이었어.
입원했다가.......집에 돌아오던 날........구두가 있더구나.
늘.......입원하고 돌아오면, 내 구두가.......현관에 놓여 있더구나.
아줌마에게 물어봤더니.....아버지가 꺼내놓으셨대.
그렇게 내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늘.....현관에는 내 구두가 놓여 있더라.”
“그게 왜?”
“그냥....모르겠다.......
그......구두를 보는 순간.......마음이 녹더라.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무엇을 어떻게 했다 라고......
미안하다고 죽도록 사죄를 한 것도 아닌데.....
현관에 놓여 있는 내 구두가....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더라.
어쩌면......이렇게 조금씩......“용서”라는 걸....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하는.......”
“그게...무슨....의미일까요?”
“그래...니 아버지는..그저 빈집이 싫었을 수도 있겠지.
누군가 손님이 왔을 때, 안주인 신발이라도 있는 게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런데....내 눈에는 말이다.......니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더라.
혼자 벗어놓는 그 신발이.........외로웠겠지.
그........외로움과.........그리워하는 마음의 한 자락을..........본 것도 같아.
사람과 사람이 인연이라면, 아무리 미워해도 아무리 용서할 수 없어도.......
아주 작은 구두 하나에도 마음이 풀릴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이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그렇게 어긋날 수도 있어.
그게......운명이야.”
타이밍.......이.....결국 운명이라는 건가.
그러면.....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은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노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인가.
“인연은.......내가 억지로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구나.
그저...인간은...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지.
그 사람이 인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그렇게 최선을 다해 보는 거야.”
“그러면.....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을.......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가요?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 인연이 아니면, 운명이 아니면,
아무리 괴로워도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글쎄. 난.....그것까진 모르겠다.
그러나.......적어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것은 있는 것 같아.
인연이 아니라 헤어지게 된다면, 그래도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연을 이어보려 한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은 얻게 될 것 같다.
그 사람을 놓을 수 있게 되거나, 하늘을 감동시켜 연이 다시 이어지거나.......
그 두 가지 다........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또 열심히 살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끝까지 노력해 보는 것은......당연한 일인 것 같구나.
그러면....어느 순간.....그 연을 놓을 수도, 혹은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을 놓는다.
어머니의 말씀처럼.....언젠가....놓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난......처음으로 어머니를 거스르려 한다.
그렇게 돌아서는 나에게 어머니가 한 마디 더 던지셨다.
“신우야,
사람들이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하게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야.
그건......적어도 내 과거를 내 잘못이라고 후회하며 내 시간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선택한 거야.
적어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는, 내 잘못이라고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도 있지만,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것이 운명이라고,
또.....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라면, 내게 맞지 않는 것이라고,
내게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그런 믿음을 담은 것이.......‘운명’이라고 말하는 거다.”
어머니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런데요. 어머니.......
그런데요. 어머니.......
제게......더 좋은 것은........이 세상에.......없습니다.
그래서.....전.......놓을 수........없습니다.
4
“나......케이블 방송에 나가게 됐다.”
한참만에 나타난 그는 갑자기 선전보고처럼 우리에게 던졌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다들 의아한 눈치다.
“뭐야?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나름 우리 팀이 좀 잘 나가니까 케이블에서라도 얘기하는 거잖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정신이는 일단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종현씨의 표정은 좋지가 않다.
“갑자기 왜?”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어......그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버린다.
그렇게 됐다는 건, 또 어쩔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인지......
늘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지만, 그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풀어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나은지도 모르겠다.
이제 단순하게 살자는 나에게 다른 것들이 더 들어오면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슨 프로그램인데? 우리도 같이 나와?”
역시 정신이다. 가끔은 저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정신이가 부럽기도 하다.
“그럴지도.......”
TV에 나올지도 모른다니.......
이건 좀 부담이 된다.
분명 그는 우리가 아니라 ‘나’라고 했다.
그건 음악 방송이 아니라는 건데.......
“도대체 뭔데? 음악 프로그램이야? 아님 리얼 버라이어티 쇼? 뭐 그런 거?”
“오락 프로......야.”
정신이와 민혁이가 들떠 있던 사이 계속 굳어 있던 종현씨가 그 사람의 어깨를 툭 친다.
“형, 나 잠깐 보자.”
종현씨가 그를 불러내는 것도, 마치 그럴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따라나가는 그 사람도,
왠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과 일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굉장히 다른 의미다. 분명 그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지난 1달 동안 안달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1등을 할 수 없었다. 잠수를 타고 한참만에 나타난 사람이 갑자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겠다니......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이젠.....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상관 없는 일이다.
난.....그냥....음악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그 사람 일이다.
내 일이 아니다.
그렇게....며칠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그 사람은 방송국에 일 때문에 나가고, 남은 우리는 여느 때처럼 연습실에 다 같이 모여 있는데 누군가가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어? 누구세요? 저희 연습실에 이렇게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정신이가 벌떡 일어나 경계하듯 한 마디 던졌다.
“아........죄송해요. 전.......케이블 프로그램 때문에 왔어요.”
“예? 케이블이라니요? 피디세요?”
정신이의 말에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방긋이 웃는다.
“아...아니에요. 전...대학생이에요. 그리고 이번에 강신우씨와 같이 프로그램 하게 돼서.....인사드리러 왔어요.”
“프로그램? 혹시......이거.........TVN <스캔들>...이에요?”
“아....네.........”
정신이나 민혁이는 그 프로그램을 아는 것 같다.
“근데....신우 형은 지금....없는데....
아 맞다! 형 지금 그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국 간다고 그랬는데,
모르셨어요?”
“아뇨. 저도 들었어요. 오늘 PD님께서 이쪽으로 바로 오라고 하셔서요.
제가 조금 일찍 왔어요. 곧 PD님과 스텝분들도 오실 거예요.
혹시.......모르셨어요? 오늘 촬영 있는 거.......”
“죄송합니다. 오늘 촬영은 저만 알고 있었습니다.
제작진에서 비밀로 해 달라고 해서요.”
계속 가만히 있던 종현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야? 형만 알고 있었어? 우리한텐 왜 얘기도 안 해?”
“제작진에서는 우리가 놀라는 것도 찍고 싶었겠지.
근데.......이 분이 조금 일찍 오시는 바람에 완전히 틀어졌네.”
종현씨의 목소리에서 약간 빈정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실례가 되는데.......
워낙 팬이다 보니, 방송으로 말고 제대로 인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결례를 범했어요.
죄송합니다.”
굉장히 깍듯하게 사과를 했다.
정말......아주 귀한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은 아가씨 같았다.
하늘하늘한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수줍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같은 여자라도 반할 것 같았다.
“직장인이세요?”
정신이는 관심이 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해댄다.
“아직 제 소개를 못 드렸네요.
이번에 프로그램 같이 찍게 될, 이아영이라고 합니다.
대학교 3학년이구요. 22살이에요.”
“어......나보다 어리시네요.”
“네.....정신 오빠.......”
정신이는 오빠 소리를 듣더니 입이 귀에까지 걸린다.
스물두 살.........
내.....스물두 살......은 저렇게 환하지 못했는데.......
저 사람이.....부럽게 느껴진다.
그런데.......오락 프로그램인데......이상한 것 같다.
아무리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연예인은 아닌 것 같은데,
일반인이랑 같이 찍는 프로그램인 건가.......
우리 음악하는 걸 함께 하는 건가.......
내 나름대로는 이제 TV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아영씨 벌써 와 있었네.”
“김피디님 오셨어요? 제가...좀 빨리 왔죠?
씨엔블루가 너무 보고 싶어서 바로 왔어요.
제가 오빠들.....엄청 팬이거든요.
물론.....신우 오빠가 제일 좋지만.......”
“하여튼.......신우라면 난리도 아니지.
하기야 전국민이 강신우라면 난리니......아니지. 이제 참 정용화잖아.
카메라 앞에서는 뭐라고 부르지?”
“오빠한테 직접 물어볼게요.”
“강신우랑 아영이 원래 아는 사이야?”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저는 팬이에요. 팬.”
“그래...알았다 알았어.
어쨌든.....씨엔블루 오늘 잘 부탁해.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도 없이 너무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려니 해라.”
“감독님 원래 그러신 거 잘 알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종현씨가 넉살 좋게 받았다.
“근데...오늘 무슨 촬영이에요?”
우리 모두가 촬영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걱정되는 마음에 피디님께 물어보았다.
괜찮다면, 빠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기도 했다.
“어? 고미녀는 몰랐어?
<스캔들> 찍는 거잖아. 나름 우리 프로 유명한데....몰랐던 거야?”
“스캔들....이라뇨? 프로그램 이름이에요?”
“하여튼....고미녀 양 역시 무결점녀 맞네.
아니면, 음악에만 푹 빠져 사는 건가?
우리 프로가 스타랑 일반인이 연애하는 프로잖아.
이번에 강신우랑 여기 있는 이아영 양이랑 연애하는 거 찍는 거야.
한....2~3주가량 찍게 될 거야.
티비로는 1달 정도 나갈 건데.......분량 모자라면 더 찍을 수도 있고......
어쨌든 씨엔블루 팀 전부 잘 부탁해.
여러분들도 많이 찍힐 거야.
여러 가지 이벤트 같은 것도 동참할 거고.
참.....고미녀 양은 특별히 잘 부탁해.
아마......이아영 양에게 조언을 해 주는 역할로 단독 컷 나갈 거야.
그러고보니, 두 사람.....이미지가 닮았는데?
두 사람 컷도 꽤 괜찮겠어. 허허”
아........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
그 사람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영씨라는 사람이 연애하는....그런 프로인가 보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은 이 두 사람을 도와주고.........
근데....저건 무슨 말이지?
나와 이 사람이 닮았다니.......
저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을........
내가 어떻게.........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빛이 나는데,
난....난......이렇게 어두운데.......
뭐가 닮았다는 건지........
난....이제....저렇게.....맑게 웃을 수 없는데.......
저런 환한 미소를 지을 수가 없는데......
아니, 난 단 한번도 저렇게 웃지 못했을 텐데.......
빛과.......그림자.....일 뿐이다.
빛과 그림자는 절대로 닮을 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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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6개월만이네요.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흘러갈 줄 몰랐는데,
돌아서니 해가 바뀌어 있습니다.
아직도 읽어주실지 알 수는 없지만,
읽어주시는 단 한 분을 위해서라도, 꼭 마무리 짓겠습니다.
위에 언급된 정인의 <사랑은>은 2004년에 나온 거지만,
편의상 그냥 지금 나온 걸로 바꾸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징하게도......오래....진행되네요.
이 모든 것은 제 역량이 부족해서입니다.
말만 많아져서 자꾸 분량만 늘어나고 지지부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33장이나 되네요.
깔끔하게 끌어내지 못하고, 이리도 수다스럽게 길게 적어대는 걸 보니,
저도....나이가 들어가고 있나 봅니다.
그저 너그러이 봐주시길.....
오늘도....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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