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51 - 살리에리는 살리에리일 뿐이다.

그랑블루08 2011. 5. 4. 04:16

 

<신우 이야기> 51. 살리에리는 살리에리일 뿐이다.


 

 

 

 

 

 

 




1.




그녀가 화내면서 가버렸다.

씨엔블루로 와야 한다고 했던 내 주장은 우리가 밴드기 때문이라고 해 놓고서는,

나는 내 스스로 그 말을 뒤집어 버렸다.

그녀가......나에 대해......실망해버렸다.

날......보려 할까.......

다시......씨엔블루로 서려고 할까........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너만 아니면, 나도 이러지 않을 거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꾸만 솟아나온다.


그러다 문득 두려워진다.

이렇게라도 그녀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은 바로 내 심장을 불안하게 뛰게 만든다.

휴대폰을 몇 번이나 꺼내들고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다.


점점 두려움은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마치 gop에 혼자 올라와 있는 느낌.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른다는.........그런 숨막히는 느낌.

가슴에 통증이 온다.

심장이 조여와서 숨도 쉬기 어렵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이미 그녀의 집 앞에 서있었다.

난 지금 여기서 무얼 하자는 것일까.

그녀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인가.

내가 말을 한들 그녀가 내 얘기를 들어줄까?

그저....믿어달라고.....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그러나 믿어달라고......그런 말을 한다면 그녀는 믿어줄까.....


하아.........


봄날의 밤하늘은.....여전히 차기만 하다.


그 차가운 밤하늘은.....내게....그날 그밤을 생각나게 한다.

가슴 저 안까지 시리다.


내게 물어본다.


그녀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녀 없이 숨 쉴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죽을 것만 같다.


난....지독한 병에 걸렸다.

이 지독한 병은 내 뇌를 갉아대고, 내 심장을 파먹으면서 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제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지독하게 잡아먹어 버렸다.


미친 놈.

정말로......미친 놈이다.

난....정말 미친 놈처럼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기계음너머 그녀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왜 온 거죠?>


“하아........미녀야........잠깐만 얘기 좀 하자.”


<전 할 말 없어요. 가세요.>


“........나올 때까지.......문 앞에 서 있을게.

 제발........나와 줘........”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아니....내가 그녀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한번씩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을 때가 있다.

언젠가부터 내 스스로가 나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려나가 버릴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그 순간이다.


한참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 내겐 영겁의 시간이 지나는 듯 숨이 막혀왔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지쳐보이는 모습으로 그녀가 나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내가.......들어갈까....아니면 나올래?”


내 말에 그녀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이성이 이긴 듯했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내게 남자 슬리퍼를 내 주고는 먼저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렇게.....사는구나.”


아까까지 죽을 것 같았던 그 답답한 심정은 사라지고, 그녀가 살고 있는,

그녀의 숨소리가 느껴지고, 그녀의 삶이 느껴지는 이곳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녀가 살아온 시간이.....

내가 gop에서 보냈던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이곳에서 삶이라는 것을 살아내었다.

이상한...아주 이상한....뭉클한 감정이 올라온다.

너도 나도.......

참....지독하게 열심히 살았구나.......

죽지 않으려고, 정말로 열심히 살았구나......


“혼자......지내니?”


“아니요. 오빠랑 같이 있어요.”


“고미남.....합숙 안 해?”


“저 때문에 안 해요. 오빠 곧 올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얘기하고 가 주세요.

 오빠도.....그 쪽 보는 거 불편해 하거든요.”


그녀가 불편해 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이 공간에서 혼자 견뎌낸 것이 아니라서...

그 삶이라는 처절한 싸움 속에서....

그래도 혈육이 함께 해 줘서,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살아질 수 있게, 살 수 있게, 그 누군가를 곁에 주셨다는 것만으로,

이상하게 감동이 되고, 안심이 된다.


“무슨....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빨리 하고 가 주세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다.

그러고 보니 웃기기도 하다.

그녀를 이토록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 게 바로 난데,

그녀가 그래도 살 수 있었다고, 누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녀의 불편해 보이는 표정도.......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이다.

웃기지 않은가.

모든 게 다 나라는 이기적인 인간 때문인데,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이토록 가슴이 쩡하고 금이 가버리는 건.......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할 수도 없는데......

그 모든 걸 다 아는데도.....

왜 이렇게 억울할까.......


“미녀야.........나........한 달만 봐주면 안 될까?”


그래...한 달....

용기를 내서 말해 본다.

그녀에게.......진심을 꺼내 본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알고 있다.

그녀가 화를 낼 것도 알고 있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고, 미친 거냐고 말해도 난 아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자꾸.......

미친 척 하고 말하고 싶다.

나를.....조금만.....기다려주면 안 되니?

나를.....조금만.....믿어 주면 안 되니?


“네?”


“그냥.......한 달만.......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면........안 되니?”


“이제 와서.....그게 무슨 소리죠?

 당신이 언제......내게 이해니, 설명이니.....한 적 있었어요?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갈 거잖아요?

 근데 뭐하러 나한테 와서 마치 이해를 구하는 척하는 거예요?

 어차피 당신 회사에 도장 찍은 거니까........입 다물고 무조건 하라면 해! 라고 말하면 그만이잖아요.

 이제 와서 쇼 하지 말고........나가줘요.”


“미녀야........”


“그만.....가주세요.”


그녀는 단호했다.

알고 있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염치는 있는지라........단호한 그녀 앞에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신을 신고 돌아서려던 그 순간, 참아 왔던 뭔가가 터져 버린다.

누군가가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나가지 말라고.....적어도...하고 싶은 말들을 하라고......

나의 시간들이, 과거에 멈춰 있던 내 시간들이, 아우성을 내며 터져 버린다.


“그.....곡......말이야.”


그렇게 소리가 되어서 나왔다.


“난........반드시.........그 곡이 타이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그 생각은 변함없어.

 바꿀 수밖에 없게 됐지만......그래도 여전히.....그 곡은.....내겐 타이틀이야.”


그래 말하고 싶었다.

내 뜻이 아니라고.....

내겐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구질구질한....변명들을 하고 싶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이것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너다.

너! 라는 존재....

내게 너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말하고 싶은 거다.

무엇을 위해서 이 말들을 하는 게 아니다.

이 말들이 바로 말 자체의 목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말이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것은........너.......그 자체.

꾹꾹 눌러왔던.....그것이.....말로.....드러난 것뿐.

몇 번이나 올라오려는 감정을 삼키고,

터져나오려는 욕망을 숨기며,

견뎌왔던......그 세월 속에서 터져버린....너라는 존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내게 있어서 “너”라는 존재다.


“........생사가......오가는........그 순간에.........

 딱 한 사람만 떠올랐어.

 미칠 것 같아서.......수술실 앞에서 종이에 곡을 썼어.”


그녀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번진다.

그러나....나는.....내 말을 멈추지 못한다.

그건....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보고 싶어서.........미치도록 보고 싶어서........그래서 만들어진....곡이야.

 죽음 앞에서 떠오른 단 한 사람.......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한........곡이야.”



듣고 있니........

내 시간들을, 내 고통들을, 그리고 내 심장의 소리를......

듣고 있니........미녀야.......



“지금....무슨.......”


그녀의 입술이 떨린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그 한 방울의 눈물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야 만다.


“.......2년을 견뎌냈는데.......정작......지금은......1분 1초도........견딜 수가 없어.”


내 손은 이미 부드러운 그녀의 볼에 가 있었다.

떨어진 눈물 사이로 그녀의 살결이 내 심장까지 단숨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미쳐버렸다.

내 입술은 그녀의 눈물자국 위에 놓였다.

그녀의 눈물을 머금으며, 그녀의 볼 위에 내 입술을 놓았다.

코끝으로 그녀의 향이 들어와 가슴을 서걱거리게 한다.

욕심이......났다.

그녀의 입술을 맛보고 싶은 지독한 욕망........

그 욕망 앞에서 나는 또 다시 무너져 내리고 그녀의 입술로 다가가고 있다.


“그만!!!!!!”


그녀는 다가오는 나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무나 처연하게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그녀는 차갑게 외쳤다.


“나가요! 다시는 여기...오지 말아요!”


내 뒤에서 문이 닫혔다.

다시......어둠으로 돌아왔다.


강신우.......너.....정말......제대로 살고 있는 거.......맞니........




 


2. 





“형! 이거 봐!”


인터넷 서핑을 하던 민혁이가 나를 부른다.


“와~우리 공개하자마자 급물살이야!!!

 벅스는 2위, 엠넷은 3위, 소리바다는 오~~1위다! 1위!!

 관건은 멜론인데.....여긴....5위 진입!”


생각보다 괜찮은 성적이었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명 작곡가의 곡으로 음원 공개를 했다.

다들.......결국에는 내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불만도 많겠지만,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다들 나를 따라온 거였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예전 신우 형의 가면을 쓰고, 그 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라디오 성적도 나쁘지 않고, 방송 출연도 몇 군데 예약된 상태다.

다행히 몇몇 예능 마무리에 우리 뮤비를 틀어주겠다고 했으니, 방송 점수는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예전 에이엔젤 경력 때문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열흘 정도만 버티면, 뮤직뱅크나 인기가요에서 노려볼 만도 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신인이 나왔다는, 사실 신인이 아니라 기성밴드였다는 기사부터,

씨엔블루 일본 시절까지 대서특필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부해볼 만했다.

이 정도 분위기까지 오니, 다들 예전 불만들은 쑥 들어간 것도 같았다.

지금 음반 시장이라는 것이, 트렌드를 벗어날 수 없으니, 메인스트림이라는 거대 줄기 앞에서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녀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던 며칠이 흘렀다.


“신우 형!!! 큰일났어요.”


매니저 정훈이 녀석이 사색이 되어서 연습실로 뛰어들어왔다.


“왜? 스케줄 꼬였어? 어차피 오늘 스케줄 끝났잖아.”


“그게 아니구요. 신우 형...어쩌죠?”


“왜 그래?”


“오늘 밤 12시에 음원 풀린대요.”


녀석은 계속 횡설수설댄다.


“정확하게 말해! 누가?”


“그게.....걸그룹 거대 팬덤라인이에요.”


“뭐?”


순간 지나가는 몇몇 팀들....설마?


“진짜야? 구자매야?”


내가 이팀 저팀 떠올리는 동안, 정신이는 바로 특정 그룹을 언급한다.

설마..........


정훈이 녀석의 얼굴에 낭패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끝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난 황급히 날짜를 챙겼다.


“토요일이잖아.”


토요일이었다.

계산해보니 이번 음원은 일요일 오전 12시가 된다.

어차피 음방 순위 카운트는 토요일까지니, 우리에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번 주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다면, 다음 주 금요일이나 일요일 음방 순위는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

일개 신입 그룹이, 그것도 춤도 추지 않는 밴드가,

엄청난 대형 걸그룹을 상대로 승부가 될 수가 없었다.

피해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컴백 날짜는 철저하게 계산해서 올렸다.

분명 우리가 나올 주간은 컴백할 대형 가수들은 없었다.

특히 거대 기획사 소속에서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치는 일이 발생할지는 몰랐다.

물론 그 그룹의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갑자기 등장한 엄청난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산해 보고 나온 우리 같은 신생 그룹들은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형! 괜찮아?”


조용한 듯하면서도, 나를 은근히 신경써주고 다독여 주는 민혁이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괜찮지...뭐. 어쩌겠냐.”


“그래! 형. 물론 형 말대로 1등하면 좋지만, 우리...이만큼만 해도 잘 했어.

 신인 주제에 1등이 가당키나 하냐?”


정신이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농담처럼 던진다.


“아니!”


“어?”


“아니라구!”


“뭐가? 형.....”


“이만하면 잘 한 게 아니야.

 우린.....1등을 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어.”


내 말에 다들....멍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형! 정말 왜 이래?”


종현이가 참다 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 진짜!!! 신우 형 맞아? 도대체 왜 이렇게 1등에 집착해!!!

 그래 물론....신생 소속사니까..형이 사장이니까...

 그 마음...십분 이해한다고 치자!

 근데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구!!

 신인이 음원 차트 1위 해봤으면 된 거 아니야?

 대형 신인 얘기 들었으면 되는 거 아니냐구?”


종현이의 갈등이 보인다.

녀석은 혼란스러워 한다.

날 믿어달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녀석은 어떻게든 날 믿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의심스러운 상황에서조차, 이해하려고, 믿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납득시켜보라고, 열심히 들어주겠다고......그런 자세로 나를 보고 있다.

녀석의 믿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안 된다.

녀석이 나를 믿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꼭.......이겨야만 한다.






3







“와~~~ 민지씨, 오늘 정말 대단하죠? 오늘 대형 신인과 대한민국 최고의 걸그룹이 경쟁이 붙었네요.”


“그러게요. 현우씨, 저도 정말 궁금합니다.

 우리 리더들에게 물어볼까요? 먼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인 밴드 씨엔블루 정용화 씨께 물어보겠습니다.

 정용화 씨 오늘 1위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글쎄요. 저희야 신인인데 이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특히 대한민국 최고 인기 걸그룹과 이 자리에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쁩니다.“


“와~ 굉장히 겸손하신 말씀이시네요. 그럼 우리 아름다우신 리더님께 물어볼까요? 오늘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사실 강...아...죄송합니다. 정용화 선배님은 에이엔젤 시절부터 저희 우상이었어요.

 우상과 함께 이 자리에 설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저~진짜 팬이에요!!!!”


“오늘 분위기가 참 좋은데요? 자~ 그럼 민지씨 발표해주시죠!”


“네. 그럼 방송점수, 음원점수, 전문가 평가단 점수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방송점수, 음원점수, 전문가 평가단 모두 씨엔블루 점수가 매우 높네요.

 그럼 음반판매 점수를 보겠습니다.

 우와~~~ 역시......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걸그룹답게 대단합니다.

 발매한지 1주일도 안 돼서 엄청난 판매량입니다.

 그럼 최종 점수는 현우씨가 발표해 주세요.”


“네. 최종 점수는........9590점 대 11015점으로 컴백하자마자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이 1등입니다. 축하합니다.“



어떻게 무대 위에서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한터의 통계까지 확인했었다.

대형 소속사의 걸그룹 팬클럽 쪽에서 공동구매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워낙 대단한 팬덤이라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컴백 날짜 때문에 이번 주에는 카운트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 주 1위는 확실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한터의 집계와는 달리, 아니, 한터가 이때까지 집계했던 방식과는 달리,

일요일 통계까지 넣어서 계산해 버렸다.

분명 다음 주 통계에 들어가야 할 음반 판매 점수가 이번 주에 들어가 버렸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열심히 축하해 주는 척하며 대기실에 왔다.


“형....괜찮아?”


“그래........”


늘 날만 세우던 종현이었지만, 본인도 놀랐던지, 얼굴이 굳어 있다.

그러면서도 나를 먼저 챙겨준다.


“..........미안.....하다.....”


“뭐? 형이 왜 미안해? 이게 무슨 미안할 일이야?”


미안하다는 말에 다들 당황한다.

그러나.......나는......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가 벌써 데뷔 3주차.......

내게 주어졌던 한 달은.....이제 겨우 한 주 남았는데.....

이번 주에 받지 못했다면, 승산이.....없다.

대형 기획사를.....이 작은 신생 기획사가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이들에게 미안했다.

처음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는지도 모른다.


내가......너무......어리석었던 걸까.......


이들은 아무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새로 소속사 차려놓고 손해볼까봐....1등에 집착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집착어린 내 모습이......얼마나 우습게 비칠지.....내 스스로도.......부끄럽다.


나 자신을 자학하며,, 전화를 기다렸다.

분명 보셨을 테니....연락이 올 것이다.

또 한 번 단판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난......잘 할 수 있을까.


전화가 울렸다.


“예.”


<방송국 앞에 있다. 차로 와라. 달칵.>


올 것이 왔다.


“난.....먼저 갈게. 정훈이는 애들 숙소로 데려다 주고...난 알아서 갈게.

 각자....숙소 가서 쉬고,, 내일 보자. 오늘 수고했다.”


“어? 형? 어디 가는데?”


정신이가 내 팔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임마! 뭐...죽을 데 가는 것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야?

 1등 못했다고 죽으러 갈까봐?”


농담 섞인 내 말에 처음으로 미녀가 반응을 한다.

그녀의 눈 속에서 아주 엷은....걱정의 한 자락을 본 듯도 하다.


내가......걱정되니.......


“형!!!”


모두들 나를 바라본다.

나는......그녀의 눈을 바라보며......모두에게 말한다.


“걱정 마! 내가.......꼭 지켜줄게!! 간다!!”


“형!!!!”


정신이와 민혁이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방송국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방금.....내 눈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을 떠올린다.

내 말에 커지던 눈과 흔들리던 눈동자......

그래.....미녀야.......

내가.....반드시.......지켜줄게.

걱정마.








4






“타라. 사람들 눈도 있으니 차에서 얘기하자.”


내가 차에 다가서자, 아버지는 바로 차에 타라고 하셨다.

내가 차에 타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내뱉어 버린다.


“1등 못했더군.”


“....................”


“여자애나 따라다니니 될 리가 있나?”


“....................”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 갑자기 나온 걸그룹 때문이라는 것도 변명밖에 되지 않아.

 니 계산이 잘못된 거니까......

 대형 소속사를 우습게 보면 안 돼.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넌 알아봤어야 했어.

 그리고 한터도 마찬가지야.

 미리미리 점검을 했어야지.

 거대 팬덤이 항의를 하니까.....한터가 룰까지 바꾼 거잖아.

 그러니.....니들이 지는 거야.

 먼저 움직일 줄을 몰라........”


“......................”


“그래...계속 아무 말 안 할 거냐?

 뭐, 할 말도 없겠지.

 그렇게 자신 있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꼈을 거다.

 이제...... 항복하고 내 밑에 들어와!”


“아직........”


“뭐?”


“아직 일주일 더 남았습니다.”


“일주일 남아? 그 사이에 뭔가 될 거 같아?

 이번 주가 아니면, 너희들한텐 아예 기회가 없어.

 그리고.....넌 이미 나와의 계약을 어겼다.

 내가.......그나마 봐주고 있었던 거야!!”


“전....계약 위반 같은 건 한 적이 없습니다!!!!”



계약.......

그래......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라고 볼 수 없는 이 대화들.......

나와 얘기를 나누는 이 사람은 나와 계약을 한 사람에 불과하다.

2년 전.......그날.......아버지와 아들의 계약.....

아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약.....






5





2년 전........그날........


“저 왔습니다.”


“그래. 니 방법은 뭐냐?”


아버지는 의외로 기분 좋은 듯이 보인다.

차라리 이렇게 되길 바라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한다? 허어~

 이런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지.

 큰 사건에는 더 큰 사건을 쳐서 무마시키는 수밖에.”


“더 큰 사건요?”


“그래.”


더 큰 사건.......

이곳까지 오면서 내가 무마할 수 있는 선에서의 큰 사건들을 생각해 봤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쨌든 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

 일단 무마시키는 게 급선무지.”


아버지는 지금 히든카드를 꺼내려 하고 있다.

눈빛에서 이미 그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걸, 자신이 이기는 패를 쥐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신의 아들이 결국 당신 앞에 목에 줄이 매인 채로 왔다는 걸, 즐기고 계시겠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떤 기회도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


“군대 가라. 이미 입영 신청은 해 뒀다.”


이건 무슨 말인가?

입대?

지금?

그야말로 얼척이 없는 순간이다.

그것도 이미 신청을 해뒀다니, 아버지는 지금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일이 흘러가는 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 입영 신청이라뇨? 그건 본인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자식은 외국에 있으니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거고.”


“잠깐만요. 이 일은 불과 어제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당장 가라는 건, 꽤 오래 전에 신청을 해놓으셨다는 겁니까?”


“그래!!! 니가 하도 정신 못차리고 있길래, 계속 이러면 보내버리려고 했다.

 정신을 차린다면 대충 학교 걸어두고 연기해 둘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건, 다....니 탓이다.”


내 탓!! 그래 알고 있다.

알지만, 분한 마음은 자꾸만 목을 칼칼하게 한다.


“그래서, 제가 입대를 해야 한다, 그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전 성인입니다. 제가 아버지 말씀을 그대로 따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니가 지금......뭔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니 멋대로 행동하면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그렇게 호락호락 살아온 걸로 보여?”


그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야말로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방식까지 취할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후폭풍.......

나를 결국 그 후폭풍이라는 걸로 옭아맬 생각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좋습니다. 입대하겠습니다.”


“뭐?”


내가 바로 승낙을 하자 도리어 아버지가 놀란다.


“진심이냐?”


“입대할 테니......저랑 거래하시죠.”


“뭐? 거래?”


“네.”


“니가 아예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지는 패를 가진 놈이 뭐가 있어서 거래를 한다는 거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죠. 장사치의 아들이잖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거래는 성립된다. 이것이 장사치 아닙니까?”


난 지금 무리수를 두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장사치는 장사치로 대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거래란....얼마든지 성립될 수 있다.

내 패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것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상대가 혹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얻는 게 없으면 흥정을 하지 않는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얻는 게 없는 흥정에는 뛰어들지 않습니다.”


“좋다. 어디, 니 패가 뭔지 까볼 테면 까봐라.”


걸려들었다.

이것으로 후폭풍을 막을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기를........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적어도 나 혼자 안고 갈 수 있기를......

마른 침을 삼키며, 줄기차게 나는 바라고 있다.


“제 패는 세 가지입니다.

 군대, 고미녀와 헤어지는 것, 그리고 경영 수업입니다.”


“뭐? 그게 진짜야? 지금 쇼하는 거야?”


“대신.....고미녀와 헤어지는 것........그건...조건부입니다.”


“뭐? 그 따위 조건부 헤어지는 걸 날 더러 들어달라는 거냐?

 내게 무슨 덕이 돼?”


“제가 군대 가 있는 동안, 고미녀와는 일절 연락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고미녀의 마음이 변한다면, 아버지께도 좋은 것 아닙니까?

 늘 금방 끝날 거라고 그리 말씀하셨으니, 아버지 말씀을 증명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니가.......언질을 미리 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지금부터 제 곁에 사람을 붙이시면 되는 게 아닙니까?”


“그래, 2년이면........얼마든지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옛 애인 곁에 있다면 더더욱 마음이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냉정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옛 애인이라는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싶어 일부러 저런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이다.


“단....”


“단?”


“2년 후, 고미녀가......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다면, 제게 자유를 주십시오.”


“무슨 자유?”


“일도, 사랑도.......제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십시오.”


“글쎄.......그게 과연 내게 뭐가 이득이지?”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애들 장난 같은 거라면, 2년 쯤 떨어져 있다 보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전.....어떻게 되든 경영 수업을 할 거구요.”


“그래, 좋다. 그럼, 경영 수업은 확실히 할 거냐?”


“네. 하지만......제 방식대로 할 겁니다.”


“음......내가....과히...이득 볼 건 없는 거 같은데.....”


“글쎄요. 제가 군대 갔다 오면, 그 상황에서 아버지께서 이득 보실 것도 없으실 듯한데요.”


그렇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약은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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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위반한 건 없습니다.

 군대, 고미녀와의 이별, 경영 수업, 모두 지킨 거 아닙니까?

 전...2년 동안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약속하신 건 아버지죠. 물론 지키실 생각은 전혀 없으셨겠지만요.

 어쨌든 전...세 번 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허~ 그래...아직 일주일 남았다 이거군.

 좋다. 어차피 기다린 거.....일주일 더 참아주지.

 그 이후는 없다.”

 

 

 

 


아버지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어쨌든 원하던 대로, 고미녀와 헤어지고, 군대를 가는 것이니,

심지어 사람까지 붙여, 고미녀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도록 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내가 없는 사이, 황태경에게 그녀가 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점은...... 나 역시......흔들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아버지는 내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거였다.

그녀와 씨엔블루를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그래서 그녀와 어떤 연락도 취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걸고, 나는 그 집행유예를 견뎌내었다.

군대에서 돌아와서.......집행유예는 데뷔 후 1달이라는 기간을 더 얻었을 뿐이다.

집행유예의 시간......

언제든지 형은 집행될 수 있는 상황......

하루 하루가 살얼음인 상황.......

나 하나 때문에 음악만이 살 길인 사람들의 날개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아버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

시간을.....벌고 있지만, 딱히 대안도 없는 상황.

일주일......

죽자사자 도망쳐 온 길은......막다른 골목이다.

벽이.......너무나 높다.











6





지켜.....줄.......수 있을까........

처음으로 만났다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됐다는......

그녀의 꿈을........그녀의 삶을......지켜 줄 수 있을까...........


술에 취할 수도 없는 밤........

나는.....또 다시......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한 듯.....

그녀의 집 앞에 왔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담벼락 외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내리지도 못한 채, 그녀가 살고 있는 빌라만을 바라보고 있다.

늦은 밤......

새벽을 향해 가는 이 시간......

그녀는.......잘까.......


그녀의 집에 불이 켜져 있다.

그녀도....잠이 오지 않는 걸까.....


나는 또다시.....그녀의 빌라 앞으로 걸어간다.

초인종을 누를 용기도 없으면서, 그녀가 있는 그곳에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으로

술에 취한 듯 그녀의 대문 앞에 섰다.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온다.

그 때 문 안 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나는 반 계단 정도 올라가 몸을 숨겼다.

고미남에게 들키는 것도........민망할 듯했다.


그런데!!!!!!

미녀의 집에서 나온 건..........

고미남이 아니었다.


“오늘.......고마워요.”


“섭섭하게 무슨 말이야? 또 불러!

 얼마든지 와 줄테니....

 여튼 고미녀! 넌 복받은 줄 알아!

 이 천하의 황태경이 달려와 주는데.....”


“쉿!!! 황태경씨!!! 누가 들어요. 어서 가요!!!”


“알았어!! 잘자......”


갑자기 황태경이 미녀를 안았다.


“지금....뭐해요? 빨리 가요!!!!”


헤어지기 싫어하는....연인들의 작별의 한 장면.....

나는......불청객이었고.....조연에 불과했다.

나는.....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어느 틈엔가....조연인 줄 알았던 내가......알고 봤더니 주연으로 바뀌어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 혼자만의 심각한 착각이었다.


사랑했던 여인은...내 여인이 아니라 남의 여인이었고,

그 여인은.....자신의 별을 사랑했다.

나라는 존재는....오로지 그들 사랑의 장애물이었다.

잠시 잠깐의 장애물........

그러나......그 장애물은....오래지 않아 사라졌고,

그들 사랑을 가로막았던 모든 것들이 없어졌다.


나는......악역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모짜르트는 아니더라도....그러한 천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즐길 줄 아는 살리에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단 한번도 변하지 않은 진실.......


모차르트는 천재였고, 모든 것을 가졌다.

그리고........살리에리는........오로지.......질투만이 남은......

아니 질투조차 사치스러운........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인정하는데....아는데....다 알고 있는데.......

황태경이 떠난 후에도 문을 열고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때문에

살리에리는......이성을 잃고 질투에 사로잡히고 만다.

아니......자조감에 악역의 역할을 하고야 만다.


“헉!!! 누구세요!!!!”


그녀가 잡고 있는 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그녀는 순간 도둑이라도 만난 양,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아까보다도 더 놀란다.


“강......신우 씨? 여긴.....왜........?”


쾅!


그녀의 팔을 잡고 현관 벽쪽으로 밀면서 문을 닫았다.

전자도어가 삐리릭 소리를 내며 잠겼다.


“강신우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당황해 하는 그녀가 나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나는 그녀를 내 두 팔 사이에 가두어 버렸다.

내 두 팔 사이에 갇혀 버린 그녀는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아니, 내가.....그녀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갔다.


“왜......이래요?”


그녀의 음성이 떨려온다.

긴장한 듯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화가 난 와중에도, 분노로 치가 떨리고 있는 이 와중에도,

그녀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그러나......그 아름다웠던 입술은.......이제.....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고통스럽다.


“너에게........난........뭐야.........”


“무슨....소리예요?”


“과거에...한 때 스쳐지나간....남자.....

 실수였던 거니.......?

 너의 별에게서 너를 잠시 빼앗아간......그런.....장애물이었던 거야?”


“강신우씨!!!!”


“늘...같은 자리야.

 열심히 걸어간 줄 알았는데......

 열심히....니 마음 한 자락을...잡은 줄 알았는데.....

 난....늘....같은 자리야.......”


“...................”


“니 눈엔.........내가 보이긴 하니?”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이러지....말아요........왜..이래요...진짜!!!!”


그녀의 고통스러운 목소리.......

그러나.....이기적인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들어도 모르는 척한다.


“미녀야!!! 나...안 보여?

 니 눈엔.....내가 안 보여?

 나 좀.....봐 주면 안 되니?”


“강신우!!!!!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한테 왜 이래? 정말 왜 이래?!!!”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가고, 그녀의 볼이 젖어간다.

그녀가.....울고 있다.


“난....난....미녀야......

 내 시간은......2년 전에 멈춰 있어.

 내 시간은......그 때 이후로 흐르질 않았어.

 넌 내게.......늘......지금이야.

 아니? 내게...너라는 존재는 말이야.

 늘....이렇게 살아 숨쉬는 현재야.

 타협도 할 수 없고, 적당히라는 것도 없고,

 오로지 이렇게 올인하게 하는....나의 현재.....나의 지금.......

 그게.....고미녀야.”


“신우 형!!!! 나한테.......왜 이래 정말!!!!”


신우 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단숨에 나는 2년 전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녀의 입술로 달려가버리고 말았다.

눈물에 젖은 입술을......그토록 그리웠던 입술을,

이제...예전처럼 그렇게 다가가면 안 된다고...다짐했던 그 입술을

또 다시 가지고야 만다.


지독하고...지독하고....지독한.......이 고통.......

달콤함은 지독한 아픔으로 변해서 심장을 날카롭게 찔러댄다.


왜 이리도.......지독한 거냐......

잔인하고도 잔인한.......인생......

사랑은 잔인하다.

인생은 잔인하다.

그 사랑을 놓지 못하여 잔인하고,

그 사랑을 버려야 함으로 잔인하다.

또한 사랑하지 않음으로 잔인하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럼에도....나는 그 잔인함을 놓지 못한다.

순간의 달콤함이 주는 저림을.....놓지 못한다.


입술 사이로....눈물이 섞여 든다.


그리고...나는....그녀의 입술 안으로 더 깊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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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입니다.

약속도 못 지켰습니다.

사실은.....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열심히 쓰려고 해도, 하루 종일 한 문장도 못 쓰겠더라구요.

몇 시간을 투자해도, 밤을 새어도, 겨우 몇 문장을 쓰니.....심각해지더군요.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공지도 못 올렸습니다.


사실....개인적으로 직장에 일이 있어서 이래저래 심각한 슬럼프이긴 합니다.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하면서 모두들 우왕좌왕거리고, 목표를 잃고 헤매고 있네요.

저 역시 그러합니다.

남편이 오늘은 이런 말을 합니다.

조울증이 있는 거 아니냐구요.


며칠 전...아주 심각하게 울기도 했습니다.

왜 이리도...안 풀리느냐고...하늘에 대고 한탄도 했습니다.

그런데...어제는....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하늘이 제게 주시네요.


너무 큰일들이 터져버리니.....무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선물이 제게 주어지기도 하고......

그리고는 또 한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도, 충격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그래서 하루종일 장염에 걸려 골골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늘은......충격적이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도록 선물을 주시는 듯합니다.


그래서.....오늘은 힘을 내어....51회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면 갈수록...이 글을 쓰는 게 많이 어렵습니다.

시간을 아무리 투자해도 단 한 문장도 써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번은 정말로 암담했습니다.

이렇게 끙끙대며 억지로 써나간 글을 올려도 되는 건지...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읽어봐도...마음에 들지 않아.....무진장..고민했습니다.

그러나...오래 기다리셨을 님들께 죄송해서.....무작정 올려봅니다.

(웃기게도, 그렇게 안 써지는 글을 29장이나 썼습니다. 구질구질하게 길어져만 버렸습니다.)


사족이 너무 길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저...여러가지 큰 일을 겪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그러려니 해 주시길.....


오늘도...평안하소서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