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시네요/(미남) 신우 이야기

신우 이야기 55 -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길들여지다(전체 공개 버전)

그랑블루08 2012. 12. 18. 23:54

 

<신우 이야기> 55.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길들여지다.

 

 

 

 

 

 

 

 

43

 

 

 

 

말도 없이 - 박신혜

 

 

하지말 걸 그랬어 모른 척 해버릴 걸

안 보이는 것처럼 볼 수 없는 것처럼

널 아예 보지말 걸 그랬나봐

 

도망칠 걸 그랬어 못 들은 척 그럴 걸

듣지도 못하는 척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아예 네 사랑 듣지 않을 걸

 

말도 없이 사랑을 알게 하고 말도 없이 사랑을 내게 주고

숨결 하나조차 널 담게 해놓고 이렇게 도망가니까

말도 없이 사랑이 나를 떠나 말도 없이 사랑이 나를 버려

무슨 말을 할지 다문 입이 혼자서 놀란 것 같아

말도 없이 와서

 

왜 이렇게 아픈지 왜 자꾸만 아픈지

널 볼 수 없다는 거 네가 없다는 거 말고

모두 예전과 똑같은 건데

 

말도 없이 사랑을 알게 하고 말도 없이 사랑을 내게 주고

숨결 하나조차 널 담게 해놓고 이렇게 도망가니까

말도 없이 사랑이 나를 떠나 말도 없이 사랑이 나를 버려

무슨 말을 할지 다문 입이 혼자서 놀란 것 같아

말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말도 없이 가슴이 무너져 가

 

말도 없는 사랑을 기다리고 말도 없는 사랑을 아파하고

넋이 나가버려 바보가 돼버려 하늘만 보고 우니까

말도 없이 이별이 나를 찾아 말도 없이 이별이 내게 와서

준비도 못하고 널 보내야하는 내 맘이 놀란 것 같아

 

말도 없이 와서 말도 없이 왔다가 말도 없이 떠나는

지나간 열병처럼 잠시 아프면 되나봐

작은 흉터만 남게 되니까

 

 

 

 

 

1.

 

 

 

 

“아무래도 잠시 끊고 쉬고 가시죠.

고미녀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응...그러지 뭐. 30분 정도 쉬고 가자.”

 

감독님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나를 안고 걷고 있었다.

아영 씨의 황당해하는 눈도, 멤버들의 의미심장한 눈빛도 모두 뒤로 한 채, 그는 나를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려....줘요......나......괜찮아요.”

 

“내가!!”

 

“네?”

 

“안 괜찮아!!”

 

 

그의 가슴에 기대어, 미친듯이 뛰어대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품에 안긴 채로, 난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내 왼쪽 가슴을, 그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내 심장을 꾹 눌렀다.

더 이상 뛰지 말기를.......

그에게 들리지 말기를........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꼭 누른 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성큼 성큼 걸어가던 그는 여자 탈의실이 아니라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어, 어, 잠깐만요. 강신우 씨!!”

 

그는 내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남자 탈의실로 들어가서는 나를 소파위에 눕혔다.

내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는 사이, 그는 탈의실 문을 잠그고 있었다.

닫힌 문 안에 오로지 그와 나, 두 사람밖에 없다.

그는 내가 앉아 있는 소파 끝으로 와서 앉으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화가....난....걸까.........

 

정면만 뚫어질 듯 보고 있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영복이라고 할지, 거의 속옷에 가까운 옷을 걸치고, 두 팔로 가슴을 감싸며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그의 한숨소리가 깊다고 느낀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샤워실로 들어가서 목욕가운을 가져와 내게 내민다.

 

“걸치고 있어.”

 

목욕가운을 내미는 그의 눈이 나를 빗겨있다.

그의 얼굴이 조금은 붉어져 있는 듯도 하다.

그가 주는 대로 나는 목욕 가운을 대강 어깨에 걸치고 앞섶을 여몄다.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리고 약간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섞여 나왔지만, 걱정도 조금은 묻어있는 듯했다.

아니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끼고 싶은 걸까. 나는. 아직도.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

 

내 말을 듣고도 그는 여전히 앞만 쳐다본 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조금 떨어져 앉아서, 그저 긴장한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촬영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과 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 마디도 서로 건넬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인 내 눈에, 왼쪽 가슴 쪽에 붉은 손자국이 보인다.

그의 흔적.

왜 하필이면 그였을까.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걸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걸.

다른 사람이 날 구해줬으면 마음이라도 조금은 편했을 걸.

지금 이 순간이, 이 긴장감이 피를 마르게 한다.

숨조차 편히 내쉴 수가 없다.

나가고 싶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앞만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내 앞에서 옆모습만 보여주는 그가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의 압박을 내가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서 감독님이, 스텝들이 촬영 들어가자며, 찾아와줬으면 좋겠다고, 누가 나를 이 긴장감 속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그 말....무슨 뜻이야?”

 

시간마저 긴장을 하는 듯, 멈춰버린 듯하던 순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서서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꾹 참고 있는 듯, 그의 눈이 일렁였다.

내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무슨....말이에요?”

 

“아까........미녀, 니가 했던 말.

내게 굳이....너일 필요는 없었다는 그 말, 무슨 의미야?”

 

그는 묻고 있었다.

 

아까 내가 그에게 했던 말.....

아니, 그가 아영 씨에게 했던 말.....

 

<내 첫사랑을 닮았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말.

그래서 내가 그에게 내 바닥을 보이게 만들었던 그 말.

그 말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나는 왜, 그 말을 참지 못했을까.

난 왜 내 바닥을 보여야만 했을까.

그의 물음에도 나는 입술만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것이 내 바닥이다, 그렇게 말해야 할까.

이런 말들, 그저 내 속으로 꾹꾹 집어 삼켰으면 좋았을 텐데.....

뭘 그리 확인하고 싶었을까.

이미 지나간 사람, 이미 지나간 사랑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그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 억울하다, 말하고 있는 것일까.

 

“미녀야.......”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쥔다.

그 바람에 내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나를 자꾸만 몰아치는 것일까.

더 할 말이 없다.

아니, 입을 열면, 계속해서 내 바닥만 드러낼 뿐이다.

이 구질구질한 내 바닥을, 그에게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

 

“그만.....해요.”

 

“고미녀!!!”

 

“......................”

 

“너, 내 첫사랑이 누군지...알아?”

 

듣고 싶지 않다. 그의 첫사랑 따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그의 과거도, 그의 현재도,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

힘이 든다.

아무리 지나갔다, 아무리 외쳐대도, 아직은 앙금이 남은 내 마음에, 그런 작은 것들도 모두 다 상처가 되어 긁혀댈 뿐이다.

이제 좀, 그만 하자. 제발........

 

“이제...그만.......해요........”

 

“너야.”

 

“뭐..라구요?”

 

“내 첫사랑.......너라고.........”

 

“그래서요? 지금 와서 뭘 어쩌라구요?”

 

화가 난다. 그래서 지금 와서 날더러 어쩌라는 건가.

아영 씨와 나와 닮았다고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어쩌면 그의 여자 타입이 나같은 여자가 아닐까.

그뿐이었던 건 아닐까.

굳이 나였을 이유는 없었던 거였다.

굳이 나일 이유는 없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고미녀!!”

 

흔들리고 있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독하게 외쳐댄다.

 

“그래서요! 아영 씨와 나와 닮았다구요?

그래서, 뭐가 달라지죠? 잘 됐네요.

어차피 나같은 타입이 강신우 씨 타입이라는 거네요.

그러니까 굳이 나일 이유는 없잖아요.

아영 씨, 그래요. 나같은 타입이라는 것도 웃기죠.

아영 씨 같은 타입, 강신우 씨 당신 이상형일 테니, 잘 해보시라구요.

제발 나 좀 가만히 내버려달라구요.”

 

“고미녀!!!”

 

그의 두 팔이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이거 놔요. 촬영 시작할 거예요.”

 

“나.가.지.마.”

 

그러나 나는 그의 팔을 뿌리친 채 소파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한 걸음 떼려는 순간, 나는 다시 그의 힘에 의해서 소파로 끌어당겨졌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가지 말라고 했어!!”

 

그의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화가 나서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 점점 열기가 더해지고 있었다.

 

“놔줘요!!!!”

 

“싫어!!!”

 

내 손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몸부림을 치며 나가려던 찰나, 그가 내 어깨를 뒤로 밀었다.

나는 그대로 소파 위로 눕혀지고 말았다.

 

“지...지금....뭐 하는 거예요!!

강신우 씨!! 미쳤어요? 빨리 비켜요!!!!”

 

그는 내 위에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내 팔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밀치는 바람에, 어깨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의 앞섶이 열린 채로, 비키니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촬영하지 마. 너, 이런 모습, 방송 나가는 거, 싫어.”

 

“강신우 씨!!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죠?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다.

평상시의 그가 아니었다.

뭔가 그의 꼭지를 돌게 만들고 있었다.

 

“강..신..우!!!!!!!”

 

 

 

------------------------------------중략----------------------------------------------

 

내 목소리가 흐느낌처럼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의 입술에서도, 내 입술에서도, 자꾸만 열에 들뜬 신음소리만 제어되지 않은 채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강신우 씨, 여기 있어요?

감독님께서 촬영 시작하신다고, 나오시랍니다.”

 

하아....하아.....

 

조감독의 말을 듣고서도, 그는 나를 꽉 껴안은 채 아무 말 없이 숨만 고르고 있었다.

 

“강신우 씨!! 강신우 씨!!!!”

 

“예, 곧 나가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는 대답을 한다.

순식간에 그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고미녀 씨도 여기 있어요?

같이 있으면, 감독님께서 조금 더 촬영하자고 하시.....”

 

“고미녀 씨는 아무래도 오늘 촬영은 안 될 것 같네요.

몸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인가.

내가 왜......?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어서 준비하고 나오세요. 5분 내로 스탠바이 들어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조감독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지금, 무슨 소리예요?

내가 왜, 못한다는 거예요?”

 

촬영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에게서 벗어나려 말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이미 나가서 촬영하겠다고 했으니, 마저 끝내야지 싶었는데, 그는 일방적으로 못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그의 눈이 내 목과 가슴을 훑고 있었다.

조금은 만족스럽다는 표정.

그 표정이 이상해서, 내 몸을 살피던 나는 그대로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았다.

 

눈에 보이는 부분들이 울긋불긋했다.

마치 열꽃이 핀 듯, 그의 입술이 닿은 곳마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갈 때, 목욕 가운 입고 나가.”

 

“이거...지금....!!”

 

그는 일부러 그런 거였다.

문을 닫고 나가는 그를 노려보다 거울을 쳐다보니, 눈뜨고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목은 아예 붉은 반점처럼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중략------

 

그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중략------

 

몸이, 머리의 명령을.....듣지 않는다.

 

 

 

 

 

3

 

 

 

 

 

탈의실을 열고 나와서 문밖에 기대어 잠시 섰다.

숨을 고르고, 몇 번이나 진정해보려 하지만, 자꾸만 심장이 뛰어댄다.

정말 미칠 것 같다.

이성이 나가버리는 것 같다.

이젠 제어가 안 된다.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이젠 내 몸이 먼저 나가버린다.

이성이 말을 듣질 않는다.

주먹을 꽉 쥐어보지만, 다 때려치우고, 들어가서 미녀를 데리고 나가고 싶다.

 

 

-------------------중략-----

 

 

감독이 미녀에게 비키니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리고 말았다.

바로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김감독님!!! 저, 강신웁니다.”

 

“어, 그래. 신우. 왜 무슨 일이야?”

 

“고미녀도 수영장씬 찍는 겁니까?”

 

“어, 그런데 왜?”

 

“고미녀는 빼시죠.”

 

“왜? 고미녀를 빼? 고미녀 양이 베이글녀로 유명한데, 한번도 비키니 입은 적 없잖아.

이번 우리 프로에 나오면...아주 대박을...칠.....”

 

“안.됩.니.다!!!”

 

“무슨 소리야? 안 된다니?”

 

“고미녀는...그런...비키니 안 됩니다. 촬영 빼겠습니다.”

 

“이거 봐! 강신우!!! 고미녀를 빼면 안 되지.

유일한 여성 멤버야.

아영이도 중요하지만, 씨엔블루에서 객원싱어로서 고미녀도 중요한 거 아니야?

이번 기회에 고미녀 인지도도 높이고 좋은 거잖아.”

 

“싫습니다. 고미녀! 그런 이미지 아닙니다.”

 

“이거 봐! 강신우!!!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너무 하네.

그래, 신우 니가 지금 기획사 사장이라 이건데, 너무 그렇게 싸고돌지 마.

멀리 봐야 될 거 아니야.

아영이는 일반인이야. 일반인도 비키니를 입는다는데,

고미녀는 연예인이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방송 안 할 거야?”

 

“이 프로 자체가 저랑 아영이가 중심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고미녀가 굳이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하~참 답답하네.

왜 이래!! 다 아는 사람끼리!!!

좋아! 강신우!!! 지금 고미녀 촬영 안 들어오면, 계약 위반으로 걸 거야.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멤버들도 촬영에 협조하기로 되어 있었어.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도 아니고,

이때까지 우리 프로, 아이돌 그룹 나오면, 늘 여자 멤버들과 같이 수영장 씬 있었어.

그것도 안 보고 하겠다고 한 거야?

적어도 계약서 쓰기 전에, 소속사 대.표.님.이 확인했었어야지.

좋아! 계약위반으로 소송가든가 알아서 해!!!!!!”

 

하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처음부터 확실히 했었어야 했다.

결국 내 불찰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계약서는 이미 썼고, 김 감독의 말이 맞았다.

열을 내봤자 이미 끝난 일이었다.

 

미녀와 아영이 여자 탈의실로 들어가자, 안절부절 못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형!! 괜찮아?”

 

종현이가 눈치를 보더니 내게 다가와서 툭툭 친다.

 

“왜 그래?”

 

“어?”

 

“미녀.... 때문에 그래?”

 

정신 못 차리고 왔다갔다 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으니, 종현이는 바로 알아채고야 만다.

 

“불안해? 불안하면, 내가 연락해서 따로 나오라고 할까?”

 

아무 말도 없는 나를 보더니, 종현이는 내 앞에서 바로 전화를 한다.

 

<옷, 다 입었어?>

   

<그래, 그럼, 다 입고 나면 잠깐 탈의실 밖으로 좀 나와.

촬영 전에 우리끼리 얘기할 게 좀 있다네.>

 

<응. 우리끼리 뭘 좀 맞춰놔야 될 게 좀 있겠지. 뭐.>

 

 

종현이는 내 앞에서 미녀에게 전화를 걸더니, 가보라고 고갯짓을 한다.

 

“가봐. 형. 아직 옷 덜 입었대.

곧 나올 거야. 할 말 있으면 하고, 단속...하고 싶으면 하고....

제발 그렇게 안절부절 불안해서 난리치지 말고 좀.......”

 

후우.......

한숨을 쉬다가 결국 여자 탈의실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렸다.

 

그런데....

아....

순간 숨이 탁 멈추는 듯했다.

내 눈 앞에 있는 한 여자의 모습 때문에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중략

 

 

하코네, 그곳에서처럼, 나는 또다시 질투로 미치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남자들의 끈적거리는 시선 아래 있게 하고 싶지 않다는,

내 여자라고, 보지 말라고, 단속하고 싶은 내 소유욕.

그것이었다.

다짜고짜 미녀의 손을 잡고 샤워실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뭐, 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듯 미녀는 내게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난 더 단단히 미녀의 손을 잡아채고는 샤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문에 걸려 있던 가운을 빼서 기어이 미녀의 어깨에 걸쳐주고야 만다.

   

“입고 있어.”

 

 

-----------중략---------

 

 

그런 나를 지켜보던 미녀의 눈이 점점 단호해지고 있는 듯도 하다.

 

화가.....난....것일까.....

 

“내가......우스워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럼,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요?”

 

“뭐?”

 

“난 분명 말했어요.

난 이제 완전히 끝났다구요. 이제 당신이란 사람과 나, 아무 인연도 아니라구요.”

 

완전히 끝났다.

아무....인연이 아니다.

 

끝을 말하고 있는 미녀의 말이 내 심장에 비수처럼 그대로 꽂혀버린다.

끝.

나와 그녀의 끝.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미녀의 입에서는 너무도 독하게 끝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헤어졌어요. 아니 이미 3년도 더 전에 헤어졌어요.

당신이 내게 이별을 고했던 그 가을에, 우린 이미 다 끝난 거였어요.”

 

“고미녀........”

 

“그러니까.......이제.......각자 갈 길 가요.

아니, 내가 이런 말할 필요도 없겠네요.

이미 당신은 당신 갈 길 잘 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처럼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하는 이런 행동,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차가운 말만을 남기고, 끝이라고 얼음날처럼 날카로운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미녀를

나는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왜 자꾸 나를 밀어내는지, 왜 나는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나를 봐주면 안 되는지.....

나는 미친놈처럼 그녀를 붙잡고만 싶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내가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다는 말인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숨조차 쉬기 힘든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제 미녀에게 나라는 존재는......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일까.

 

“왜 이래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내 갈 길 잘 가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영 씨랑........잘 어울린다구요. 그러니까......잘 해보라구요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겠네요. 이미 잘 지내고 있으니까......”

 

“고미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건, 그냥 촬영일 뿐이잖아.

근데........지금..........”

 

“아영 씨가, 당신의.......첫사랑과..........닮았다면서요?”

 

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영이? 지금 아영이와 나를 엮고 있는 건가.

내가 아영이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도대체 왜! 아직도 미녀는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내게 다른 여자가 들어올 수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너.......그게 누군지는 알고.......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니요. 몰라요. 당신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내가 알 리가 없죠.

그래도 적어도 하나는 알아요.

당신에게........굳이.........나일 필요는 없었어요.”

 

첫사랑.......

그래, 미녀를 만나기 전에, 여러 여자를 만나왔다.

그것은 그야말로 스쳐가듯이 만난 여자들.

단 한 번도 마음을 준 적이 없는, 그야말로 그냥 여자들이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공허함만이 느껴지던 만남들.

그래서 진심으로 오래 만난 여자는 없었다.

내겐....사랑이 없는 줄 알았다.

심장이 얼어붙은 남자. 그것이 나였다.

그랬던, 얼어붙었던 내 심장을 뛰게 한 여자가 바로 내 눈 앞에 있는데,

그 여자는 모른다.

자신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른다.

내게 첫사랑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그녀는 내게 처음이다.

평생 처음이 될 것이다.

그 처음을 간직하며, 내 평생 가슴 떨리는,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유일한 여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말한다.

자신일 필요가 없다니.

어떻게 너일 필요가 없다는 거니, 미녀야.

너 때문에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는데,

너 때문에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너일 필요가 없을 수가 있니.

이제야, 이렇게 심장이 아파도, 이제야 내가 사는 것 같은데,

내가 살아 있는 사람 같은데,

어떻게 내게 니가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거니.

 

속에서 자꾸만 울컥하고 올라온다.

자꾸만 그녀의 두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놔줘요. 아파요.”

 

“...............”

 

그녀가 놓아달라는 말에도 나는 놓아줄 수가 없다.

마치 지금 놓으면, 정말 끝이 되는 걸까봐,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다시금 미녀가 말한 것들이 떠오른다.

몇 번이나 재생되며 머리를 떠다닌다.

 

나일 필요가 없다......

아영이가....첫사랑과 닮았다......

 

아.........

 

알 수 없는 설렘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아직은, 어쩌면 아직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나마 내가, 내 존재가,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 두근거림을 진정할 수가 없다.

 

“놔 달라구요!”

 

“.........질투..............하는 거니?”

 

내 말에 내 팔에서 벗어나려던 미녀가 순간 움찔하며 멈춰 선다.

나와 마주한 미녀의 눈이 흔들린다.

 

아직은......아직은.....내가 조금은.....니 마음에 있는 거니......

 

내 눈이 말하고 있었다.

미녀의 눈이 커진다.

정적.......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입 속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그녀가.....대답해줄까.

 

미녀는 내 팔을 뿌리치고는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촬영하는 내내 내 시선에서 빗겨 있다.

 

촬영하면서도, 내 정신은 온통 그녀에게로 쏠려 있다.

스텝들이, 감독과 조감독이 주고받는 말들에도 자꾸만 신경이 곤두선다.

모두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이 싫다.

아무리 촬영에 집중하려고 해도, 누군가 미녀에게 말 거는 것조차 견딜 수가 없다.

고미녀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내 모든 신경은 날카롭게 반응을 해댄다.

 

“와~고미녀 양, 몸매 정말 좋은데?

왜 그렇게 감추고 살았어?”

 

감독의 말에, 옆에서 휘파람을 불어대며 미녀의 몸을 찐뜩한 눈으로 훑고 있는 스텝들의 태도에,

촬영이고 뭐고, 다 접어버리고 미녀를 데리고 나가고만 싶다.

 

“저희 찍는 거 아닙니까? 초점이 너무 다른 데로 가는 거 같은데요?”

 

“어어? 아....그렇지. 찍고 있다니까. 자, 그럼 아영 씨와 신우 서로 얘기 나눠 봐.”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 다 드러났을 것이다.

내가 열받아하고 있다는 것을.......

스텝들은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내 눈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결국 감독은 비치 점퍼까지 벗겨냈다.

미녀의 하얀 가슴이, 늘씬하게 뻗어 있는 다리가, 너무나 요염하게 유혹적으로 카메라에 드러나고 있었다.

촬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멤버들이 미녀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싫었다.

알지만, 미녀를 여자로서 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미녀가 멤버들에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미녀는 수영을 못하는데......

예전 A.N.Jell 시절에도 수영을 못했었다.

태경이를 미녀가 구한 것처럼 얼버무렸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단지 미녀가 여자라는 걸 감추기 위해서 태경이가 연기를 했다는 걸, 나만은 알고 있었다.

 

멤버들과 장난을 치던 미녀가 조금은 위태로웠다.

아영이 나를 의아하게 보는 게 느껴지지만, 뭔가가 불안했다.

미녀가 조금씩 깊은 쪽으로 가는 듯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몸이 향하고 있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그녀가 위험하다고.

 

순간 미녀가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몸은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잠수를 해서 그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이 풀린 듯 가라앉고 있는 그녀를 잡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내 입 속의 공기를 그녀의 입술 안으로 불어넣었다.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더니 이내 그녀의 몸이 축 늘어져버렸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끊긴 필름처럼 내 기억에는 간헐적인 장면만 존재할 뿐이다.

그녀의 입술 안으로 공기를 불어 넣고,

그녀의 왼쪽 가슴을 미친 듯이 눌러대는 한 남자.

고미녀, 라고 외치는 떨리는 목소리.

정신 없이 뛰어대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한 심장.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불안해져서 두려워서 죽을 것만 같은 찰나의 순간들.

 

그렇게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던 순간은 지나고,

그녀가 기침을 하며 눈을 떠서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제서야 한 마디를 겨우 뱉을 수 있었다.

 

"괜찮아?"

 

마치 내 목소리 같지 않은, 신음소리 같은 목소리가 밖으로 나온다.

마치 고통의 깊이처럼 갈라져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서야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비틀대는 그녀를 보다가 결국에는 촬영을 쉬자고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명령처럼 던져버렸다.

안 된다고 했다면, 이 따위 촬영 접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쉬겠다고 나가는 미녀를, 흔들리는 미녀를 안아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화가 났다.

그녀를 이곳에 부른 것도, 이렇게 그녀가 힘든 상황에 처한 것도 다 화가 난다.

스텝들이, 제작진들이, 그리고 아영이 어떻게 보든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내겐 비틀대는 미녀밖엔 보이지 않았다.

 

“내려....줘요......나......괜찮아요.”

 

“내가!!”

 

“네?”

 

“안 괜찮아!!”

 

그렇게 미녀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저 쉬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미쳐버렸다.

 

 

----------중략-----------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이젠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4

 

 

 

 

 

모든 촬영이 끝이 났다.

마지막 촬영.

마지막 부분은 차안에서 촬영되었다.

이동하는 밴 안에서가 찍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 드디어 대망의 하이라이트다~!"

 

"그렇지, 그렇지! 난 여기가 제일 좋더라고. 큭큭"

 

민혁이 던진 말에 정신이 받아치며 잔뜩 기대한다는 듯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아영 씨가 형한테 연락처를 줄까?"

 

정신이가 옆에 앉은 종현 씨의 팔을 툭 치며 묻는다.

 

"뭐, 일단 아영 씨가 형, 되게 좋아하는 거처럼 보이긴 했지."

 

"그래도 말이야. 알 수 없어.

내가 이 프로그램 열심히 봐서 아는데 말이야.

확률은 50대 50이야.

아무래도 일반인들 입장에서 뭔가 티비 프로그램에서 맺어지는 인연이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잖아.

왜, 저번에 오전반 궈니 형이랑 옹슬이 형이랑 나온 것도 보면, 딱 반이더라니깐.

솔직히 옹슬이 형 상대 여자분이 훨씬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마지막에 연락처 없이 "죄송합니다." 문자만 보냈다니까."

 

정신이는 이 프로그램을 꽤 자주 보는 모양이었다.

뭔가 여자쪽에서 연락을 취해야 하는 것 같았다.

 

"야, 나 마지막 못 봤는데, 궈니 형은 어떻게 됐어?"

 

"짜식~ 너 못 봤구나. 궈니 형한텐 문자 왔지."

 

"뭐? 그럼 그 여자분이 진짜로 자기 연락처 문자로 준 거야?

그럼 진짜 사귀는 거야?"

 

"어휴~ 야! 강민혁! 넌 순진한 거냐, 아니면, 순진한 척하는 거냐?

당연히 아니지 임마~!

너, 연기 학원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그래서 연기하겠어?"

 

"야~~너 죽을래? 이래봬도 이번에 <넝쿨당> 드라마 오디션 1차 합격했거든?"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지.

니가 그 드라마 들어가면, 야, 나도 연기하겠다. 임마~"

 

"어쭈, 이정신 니가? 웃기지 마. 자고로 난 4차원 연기에 최강자야."

 

정신이와 민혁이는 오늘도 투닥투닥거린다.

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일반인과 데이트를 하고 나서, 여자가 남자 스타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면 계속 만남을 갖는 거고, 그게 아니면 끝나는

뭐 그런 상황인 듯했다.

 

그에게 연락이 올까......

 

정작 그는 별 생각이 없는 듯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형~! 왔는지 확인해봐. 제작진이 준 폰 어딨어?"

 

정신이가 그를 재촉하자, 그제서야 폰을 확인해 보고는 고개를 흔든다.

 

"이상하네~ 지금쯤 와줘야 하는데......

형~ 이러다 차이는 거 아니야?"

 

"그러게......"

 

그의 시선이 휴대폰에 가 있다.

그는 지금.......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깊은 한숨이 나온다.

 

 

 

 

 

5

 

 

 

 

 

마지막 촬영을 마친 후, 아영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자며, 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렇게 마주한 자리에서 아영 씨는 계속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뭔가 긴장한 듯한 그 손 끝에 나 역시 긴장이 묻어오는 듯했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나는 아영 씨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 머뭇거리던 아영 씨가 결국 입을 뗐다.

 

“미녀 씨가....신우 오빠의 첫사랑.....맞죠?”

 

“네? 아, 아니...저......”

 

첫사랑.......

아영 씨가 이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디에서 어떻게 그렇게 느낀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는 것을 내게 전하는 말투였다.

 

 

“맞다는 거....알고 있어요.”

 

“아영 씨...그게.......”

 

“두 분.......여전히........좋아하시는 거...아니에요?”

 

“아영 씨.........”

 

“미녀 씨는....일단 미뤄두고라도........신우 오빠는.......미녀 씨만 보고 있어요.

미녀 씨도 알고 있죠?”

 

"..........................."

 

아영 씨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날 보고 있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바라볼 때는, 그는 늘...아영 씨를 향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다른 말을 한다.

 

“난....미녀 씨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내가.......신우 오빠를 계속 좋아해도 되는지.....

지금 두 사람 현재진행형인데 내가 끼어든 건 아닌지........”

 

“아니...에요.........”

 

결국 나는 예전의 그와 나 사이를 인정하고야 말았다.

 

“후우..........역시 내 생각이 맞긴 맞았네요.

분명....두 분....지금 상황이야 어떻든 사귄 사이가 맞군요.

설마 설마했는데..........”

 

“이미.....오래 전 얘기예요.”

 

“미녀 씨에게는 오래 전인가요?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하아.......제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내 말에 아영 씨는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뗀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 말을 듣기가 조금은 두려워진다.

 

“제가.......신우 오빠 계속 좋아해도 되나요?”

 

"........................."

 

"미녀 씨........"

 

“그건....저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만약에요......미녀 씨가 접으라면 접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미녀 씨가 상관 없다고 한다면,

나, 오빠 계속 좋아하고 싶어요. 그래도....돼요?”

 

그래도 돼요?

그녀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울리고 다닌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말을 내게 묻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상관이 없어야만 하는 것인가.

입술을 깨물던 나는, 결국 이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든, 후자든, 결국 결론은 같은 것이었다.

 

"전............"

 

"네."

 

"하아......전........아무........상관......없어요."

 

그 때 그녀의 눈은 안심한 듯 빛나고 있었다.

일어서던 그녀는 내게 한 마디를 남겼다.

 

"미녀 씨가 상관없다고 했지만,

나, 좀 더 고민해 볼게요."

 

 

 

그녀의 고민은 끝나지 않은 것인지,

죄송하다는 문자도, 연락처를 남겨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자는 문자도,

모두 오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 건가.......

 

그의 눈은 여전히 휴대폰을 향해 있다.

 

뭔가 자꾸 서럽다.

분명 내가 끝이라 말해 놓고, 나를 헤집고 있는 저 남자가, 자꾸 나를 서럽게 한다.

 

고미녀, 아직 멀었구나.

 

 

딩동.

그때였다.

 

그의 휴대폰에서 문자음이 울렸다.

 

그녀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녀의 고민의 끝은 이것이었다.

 

모두가 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가 대답을 하면, 그들이 계속 만날 것인지, 끝날 것인지 결정이 난다.

그가 연락처를 보낸다면, 그들은 계속 만남을 이어갈 것이고,

그가 죄송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여기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가 천천히 휴대폰의 자판을 찍기 시작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숫자판을 누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다.

아직 멀었다. 고미녀........

3년이 지나도......여전히.....나는 그가 떠났던, 일본, 도쿄의 길바닥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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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참 너무도 늦었습니다.

써야지, 빨리 써야지 하면서도 쓸 수 없었던, 써지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끝을 맺기가 왜 이리 힘든지요.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바꾸고 또 바꾸어 봐도, 결국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합니다.

용두사미.

처음도 용이 아니었다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앞부분이 더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더 좌절을 하고 있나 봅니다.

 

자꾸 질질 늘어나기만 하고, 진도는 안 빠지고 참....그렇네요.

그래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오랜만에 박신혜 양이 직접 부른 <말도 없이>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이 글은 <말도 없이>를 들으며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징하고도 지루한 이야기를,

아직도 여전히 읽어주시는 님들께서 계시다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엄청난 의리와 꾸준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만 3년이네요.

2009년 10월 가을이었으니,

또다시 가을입니다.

 

이 가을....이 두 사람도 이제 끝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네요.

제 자신과의 싸움에, 끝까지 동참해 주실는지요?

 

벌써 아침입니다.

글은 노동이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또 이렇게 한 편을 올립니다.

 

주말도 평안하시길.....(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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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에 올린 글인데요.

전체 공개 버전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