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49일이라는 드라마에 빠져있다.
볼 만한 드라마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저번 주 케이블에서 하던 재방송을 보고 급격히 빠져들었다.
내가 빠져드니, 딸내미도, 남편도 다 빠져들어서 온 가족이 요즘 올인하고 있다.
이 드라마......
표절 문제는 나중에 언급한다고 치고, 일단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진짜 중요하다.
특히 내게......
너무나 밝고 착하고 덜렁대는 신지현이라는 여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들은,
내게 너무나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넉넉해 보이는 마음가짐도, 다른 이에게 늘 베푸는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으로 보일 수 있고,
다른 이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오지랖을 넘어서서 다른 이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
늘 웃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도리어 모자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신지현이 발견한 자신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었다.
자신임을 모르는 친구들이, 신지현 자신에 대해 평가할 때,
신지현은 경악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이 부분은 내게 굉장한 쇼크를 주었다.
나 역시....그렇게 보일 테니까....
내 앞에서 말하는 것과, 내 뒤에서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정말로 완전히 다를 테니까......
사실 직장에 고비가 왔다.
여러모로 변화의 조짐이 보여서 다들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위에서 들리는 내용들도 과히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며칠 전에 새벽까지 술자리를 했다.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팀을 이루어 같이 일하고 있는 팀동료들에게서 나는 정말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자기연민"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라는......
음......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에 대한 평가는, 약간은 의문스러웠다.
대화의 중심이 "나"라는 부분.
그것을 지적하던 동료는, 자신과 내가 같다는 말을 한다.
거기에서...사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다른 이까지 내 마음 같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내 얘기를 할 때.....
그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거나,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내게는 있다.
사실.......나라는 존재는 굉장히 내성적이다.
이 부분을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하는 것을......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다른 이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은, 그 뻘줌한 상황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 나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아주 많이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경우다.
그러나, 그 의도는.......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 중심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는.......
처음에는 뒷통수를 꽝하고 맞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생각해 보면, 이 지적은 가장 핵심적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징~한 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직장 동료의 말은,
그야말로 잘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건 나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신지현이 아니었을까.
마치....내가 무언가를 다른 이들을 위해 해주고 있다는 듯이....
내가 이 자리를 즐겁게 해주어야 즐거워진다는 듯이.....
나는 진실로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느끼는 듯이.....
나의 이야기로 다른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듯이.....
그야말로.....착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나 자신의 말을 하고 있다고, 나는 정말 솔직한 사람이라 다 드러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도,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고,
또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 자체도 내겐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고....말이다.
정말 다른 이들을 위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들어주었어야 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도, 상대방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난....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떠들어댔던 걸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싶었다면,
다른 이의 마음을 배려하고 싶었다면,
나는.....
내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질문을 했어야 했다.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묻고.....들을 준비를 했어야 했다.
입을 좀 다물어야겠다.
모두들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데,
나라도 입을 다물고, 물어주어야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느꼈으니, 아직 내 남은 날들은 많으니,
지금부터 입을 닫고 귀를 열면.....되지 않을까.
오늘의 이 부끄러움은.....얼마든지 남은 삶 속에서 반성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입을 닫고 귀를 열자.
요즘........어떠세요?
많이........힘드시죠?
물음은........그 상대의 말을 듣고자 하는 자세에서 던져져야 한다.
나 역시.........듣고자 하는, 열심히 듣겠다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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