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까지 마감을 끝내고, 내일 행사를 치르자 마자 바로 출장을 가야 해서 정신이 없다.
게다가 절전 때문에 2시부터 거의 6시가 다 될 때까지 에어콘 정지. 극서의 도시에서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게다가 이 놈의 건물은 유리 건물, 자동화 시스템으로 된 건물이다 보니, 맞바람이고 뭐고 다 불가능한 그야말로 한증막이 따로 없다.
그나마 내가 더위를 덜 타니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죽어나가는 듯......
그래도 환전하러 은행에 들른 게, 어느 정도의 피서 효과는 있었다.
여튼 덥고 숨이 막히니, 일도 안 되고, 끙끙 대다 6시가 되어 겨우 에어콘이 되고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덥기도 덥고, 바쁘고, 앉은 자리에서 대충 저녁을 떼우면서 드라마 한 편을 봤다.
정말 요즘 최고의 드라마는, 아니 한 편의 영화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건, <드라마 스페셜>이 아닐까 한다.
이건 뭐, 정말 잘 만든 영화 한 편이다.
장편은 아무래도 퀄리티면이나, 구성면에서 헐렁할 수밖에 없다.
단편은 그 짧은 시간 안에 고도의 퀄리티를 확보하면서 구성의 얼개가 꽉 짜여질 수 있다.
<또 한 번의 웨딩>은 왜 단편 드라마가 필요한지, 그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클리셰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적절한 클리셰로, 상상 가능한 분위기로 이끄는 것도 있지만, 또한 그것을 어김으로써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여운이 오래 간다.
가슴이 저릿하기도 하고, 지나간 인연은....또한 아니지...싶기도 한다.
그러나 고마운 것은, 그래도 지금껏 잘 살아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내게 말했었다.
너 신혼 초에 얼마나 까칠했느지 아느냐고......
이혼이라는 말도, 참....쉽게도 했었던 것 같다.
까다로운 인간형이었다.
지금은 안 그런가 한다면, 그 역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그나마 부드러워졌다고 말할 수는 있으리라.
누군가와 맞춘다는 게,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했던 나로서는 사사건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의무로만 뭉쳐 있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딸내미를 가지고, 조금은 어른이 된 듯도 하다.
그리고 찾아왔던 고비......
일과 아이와 의무들에 치이던 시간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발생했던 경제적인 어려움들......
그러나 그또한 변명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만두라고 했으니까......
더 입 다물고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
몸이 버텨내지 못해서, 3개월에 한 번씩 쓰러져서 링겔을 맞아야 했던 참 바닥같던 시간들.....
그때, 권태기가 왔던 것 같다.
웃기는 건, 남편은 모른다.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싶은데, 자신은 몰랐단다.
올해, 결혼 13년차라 했더니, 혼자서 막 신기해 하면서 그럼, 권태기도 다 지나간 거지...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더니, 보통 5,6년 때 권태기 오지 않냐고...우리는 없었지 않았냐....이러고 있다.
참...무던한 인사라고 해야 하나, 뭘 모르는 인사라 해야 하나, 아니면 혼자 속이 좋은 인사라 해야 하나.....
그래서 내가 얘기해줬다.
나 그 때 힘들었다고....
너무 힘들어서 혼자서 부산 국제영화제 보러 며칠간 내려가기도 했었다고....
자고 올 수는 없으니, 기차로 출퇴근을 했다고.....
일과 아이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라, 나는 정말 힘들었다고.....
남편은 몰랐단다.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래서 자신은 우리는 권태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단다.
이걸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또 한 번의 웨딩>을 보며, 잘 견뎠다고...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욕심 강하고, 언제나 나 자신의 발전이 우선인 여자(채하경)와,
조금은 알뜰한, 그러나 참....진중해 보이는 한 남자(서인재)의 5년 전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아마...내가 채하경이었다면, 나도 저랬을 것 같다.
왜 안 잡았느냐고...그 때 나 좀 잡아주지 왜 그랬냐고...그랬을 것 같다.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 속에 어쩌면 누구나, 아....하고 할만한, 그래서 지금의 내 남자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여전히 끊어내지 못한 미련들도, 하룻밤으로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드라마는 마지막 장면이 살려낸 듯하다.
이 엔딩이 아니었다면, 이런 여운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영화 같은 드라마 한 편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이런 마무리는, 다시 내 삶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여운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내 삶으로 스며들기 때문이 아닌지.
그래서 사실은 완벽한 해피엔딩, 꽉 막힌 엔딩이 실제로는 크게 좋은 결말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올만도 하다.
불완전함이 가져다 주는 여운이, 결국엔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가 되지는 않는지......
여전히 남편과 많이 싸우고, 속았다 생각될 때도 많지만,
심지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아니 엄마나 가족들조차, 니 성질 다 받아주는 니 남편은 정말 좋은 남자라고
그렇게 남편이 훨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지만,
그래서 난 늘 억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란 생각이 든다.
오늘 이 드라마는.....남편과 나의 2번의 고비를....다시 보여주었다.
결혼 직전, 정말로 헤어지려 했던 그 때.....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권태기 때.....
그래도 잘 넘겼다고, 장하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드라마였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인데,
왜 그 땐 그렇게 크게만 보였는지.......
지금도 그럴 것이다.
지금 크게 보이는 일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드라마 스페셜의 <또 한 번의 웨딩>
가볍고, 재미있고, 간질거리지만......끝은 참...여운이 남는......지금 그 사람과 잘 살고 있는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하나 더.....
홍.수.현 씨. 정말 볼수록 매력있는 사람이다.
연기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배우랄까.
그리고 진.이.한...이 배우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다시 보이기도 한다.
남편이랑 많이 닮아서.....그런 듯도.....
언뜻 언뜻 남편의 예전 모습이 보여서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생긴 것도, 극 중 성격도 비슷해 보인다.
어쨌든....저녁 시간, 심심풀이로 본 드라마가, 꽤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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