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사랑니를 뽑다

그랑블루08 2011. 6. 16. 00:50

사랑니......

내게는 사랑니보다는 막니가 더 맞는 것 같다.

뭔가 우아하고 저릿한 느낌의 사랑니가 아니라,

죽을동 살동 하게 만드는 막니다.

 

벌써 2달 째 이 치료를 받고 있다.

신경 치료라는 것이 사람을 잡는다.

16년쯤 전에 금으로 씌운 이가 결국 탈이 나버렸다.

임플란트를 해야 하나 싶어서 벌벌 떨면서 갔는데, 다행히 신경 치료하고 다시 보철하면 된단다.

 

대략 20년 전쯤(아직 20년은 안 된 것 같지만 이 오라버니는 늘 20년 전이라 한다.)....

재수하면서 알게된 오라버닌데...그 당시 같은 반이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웃긴다.

그 오라버니가 나랑 굉장히 친한 후배의 남편이 되었다.

그 당시 오라버니는 4수생 나이였다.

말이 그렇지 사실은 대학을 다니면서 다시 재수를 하는 거였는데,

학원에 거의 나오지도 않았고, 나오면 늘 재수생 남학생들을 데리고 술사주는

그야말로 남학생들의 영원한 형님이었다.

 

여튼......치과를 넘 무서워해서 결국 이 오라버니를 찾아 갔다.

거리가 무지 멀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치료를 받고 싶었다.

역시나...오라버니는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내 인생 동안 수많은 치과의사들을 만나봤으나 단연 최고였다.

아마 공대를 졸업하고 나서 다시 수능보고 시험쳐서 치대를 다닌 거라

공돌이의 마인드가 남아 있어서인 듯했다.

딱 봐도 공돌이스럽게 치료를 한다.

그래서...난 무지무지 편하고 안심이 된다.

 

어쨌든 오래전 치료했던 어금니에 탈이 생겨 신경 치료를 받는데

이 오라버니가 큰 병원에 가서 막니를 뽑아 오란다.

미르치과에 가서 거의 2달을 기다려 오늘 (아..이제 어제다) 오른쪽 아래, 위 막니 전부를 뽑았다.

한 30분이면 된다더니.....아래 막니를 뽑는데 1시간이 걸렸다.

굉장히 잘 하시는 분이라는데, 그만큼 내 막니가 어려웠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봐도...신경이 지나가고 있는데다 밖으로 나 있지도 않고, 하악이 좁은 편이라 이래저래 힘드셨단다.

아...게다가 막니가 앞쪽 어금니 두 개를 밀고 있어서 두 어금니 상태도 안 좋단다.

오늘 뽑는데도 막니가 어금니를 엄청난 힘으로 압박하며 누워 있어서

어금니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데....

 

일단.....마취가 풀리면서부터...죽을 것 같다.

1시간을 갈아대고 째고 했으니....볼은 퉁퉁붓고, 피는 계속 나고....먹지는 못하겠고....약은 먹어야되고...

총체적 난국이다.

 

남편도 나때문에 직장에도 못나가고 나랑 같이 병원에 갔는데,

30분이 되면 나온다는 사람이 안 나오니까 무지 걱정이 되더란다.

1시간이 넘으면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니...

게다가 나랑 같이 들어간 사람들은 이미 나온지가 오래니......남편도 걱정이 됐던가 보다.

의사도 내 이가 굉장히 힘들다는 얘기도 했고,

CT로도 신경이 지나가고 있어서 이래나 저래나 걱정이 됐단다.

 

남편은 내 상황을 보더니 자기는 도저히 이를 못 뽑겠단다.

너무 무섭다나....

사실...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남편이 이렇게 이를 뽑았다면, 나도 포기했을 것 같다.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는지....또 무진장 아프다.

 

그래도...하루라도 어릴 때 뽑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평생 아파하며 이를 붙들고 사느니, 한번 죽도록 아프고 나머지 인생 편하게 사는 게 낫지.......

뭘 그렇게 무서워서 피하며....도망가며...살아왔나 싶다.

 

이번도 치과 의사 오라버니가 강력하게 뽑아야 된다고 안 했으면, 절대로 뽑으러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어금니를 압박하고 있는 이 막니가...결국 다른 어금니들까지 무리하게 만들어서 나중에 큰일날 거라고....

알면서도 일단 주저가 되었었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이런 것 같다.

 

늘...가장 문제가 되는 핵심은 무서워서 이렇게 저렇게 피하고는.....

임시방편으로 때우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그 순간만 모면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효......

어쨌든.......막니 하나가......이래저래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좀 낫고 나면....막니가 가르쳐준 삶에 대해서도...올려봐야겠다.

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어쨌든.....지금은....너무 아프다.......에효.....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이 가장 아프고 점점 덜해진다는 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프고....그 다음부터는 이보다는 덜 아프다.

 

이게....삶의 진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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