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하루살이

그랑블루08 2011. 6. 26. 01:36

 

언제나 길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길이 없었던 적은 없다.

단지 굽이굽이 돌아

보이지 않을 뿐,

그 다음을 모를 뿐,

길이 끊어지거나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일.....일.......

수많은 일에 치이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성격에,

또 행사일을 떠안고 오늘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갔다.

 

6월 30일까지 끝내야 하는 2개의 마감을 앞두고서도 난 거절하지 못했다.

사실 6월 30일 행사를 위해서 월요일까지 마감을 하나 끝내야 하는데,

문제는 6월 30일 오전에 마감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금요일에 또 다른 마감을 끝내고(어제까지 마감이 하나 더 있었다), 다시 다른 마감을 처리하려고 메일을 연 순간,

밤 열 시에 해야 할 일을 보내왔다.

 

뭐, 어쨌든 내가 맡은 일이니 싶어 이 일, 저 일 하느라 또 밤을 샜다.

그렇게 오늘 행사를 준비했다.

 

어쭙잖은 이야기들과, 그럴 듯한 척하는 이야기들에......답답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들의 잔치에 불려가서 나는 그들의 잔치를 맞춰줘야 하는 역할.

그래서...뭔가.....이상하게  마음이 휑했다.

 

내 일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 귀하고 황금 같은 시간에 내가 다른 잔치에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다고 할까.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성의껏 진행을 했다면, 조금 덜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성실하지 않은 답변들에 답답했던 것 같고,

또 무엇보다 이쪽 계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뭔가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나를 더 답답하게 한 것 같다.

 

행사장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들을 한 후,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하루살이들이 내 옆에 미친듯이 날아다니는 거다.

어쨌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가 하루살이를 잡을 수도 없고,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다가 결국 한 마리를 제거(?)했다.

 

그러나 다시 두 마리가 이번에는 카미카제 마냥 내게 돌진하며 정신 없게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잠시 고민하는데,

이거 웬걸.......

내 자리 탁자 바로 위에 이 두 날파리가 앉는다.

뭐지? 싶은 순간.......

이건.......정말 사람을 당황시켰다.

정말 깨알같은 두 마리가 교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걸 촬영을 해 둘 수도 없고,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을 발휘하는 걸 죽일 수도 없어서 그저 멍하니 이 두 점(?)들의 행동을 두고 보기로 했다.

 

그래 뭔가 색스럽다거나, 이거 참 민망하다거나....

사실 그런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자연......스러운.......본능이니까......

하루를 산다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처절할지도 모르는 이 하루살이들의 교미.

처음에는 민망했는데, 그걸 지켜보는데 이상하게 뭔가......"삶"에 대해서 뭉클한 뭔가가 올라오는 듯했다.

 

 

다시 직장에 돌아와.....일을 하려다가 하루살이를 찾아보니......

좀 더 안타까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 녀석들........입도 없단다.

1년 가까이 유충상태로 있다가, 그것도 물에서 살다가,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해 하루 물 밖으로 나온단다.

그래서 교미를 한 이후에는 바로 죽는단다.

하루살이들이 실제로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고, 보름까지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결국 이 녀석들은 교미를 하는 순간 바로 죽으니.....

그리고 교미 후 한 시간 내에 4000마리의 산란을 하고 죽는다니.....

하루를 산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물에서 올라올 때는....입이 퇴화되어 없어진단다.

그 말은 즉.....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교미만을 위해 입도 없고, 장도 없는 몸으로 가볍게 날아올라 자신들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아까 두 녀석의 행위를 보면서, 난감하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작은 미물조차 저렇게 교미에 집착하나 싶기도 했었다.

또한 점처럼 작은 곤충들도 종족에 대한 욕망, 그것은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내게........미묘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 죽는다니......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작업.

아니, 삶의 목표였다니.......

이상하게 겸허해진다.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대해......

그 순간 순간들에 대해......진심을 담아야 한다.

 

 

오늘은.....좀 지쳤다.

마감을 지킬 수 있을지......또 불안해진다.

그러나......

오늘....그 행사장에서 억울했던 마음들도......

어쩌면 순간에 진심을 담으려했다면, 남이 알건 말건 상관 없는 일이다.

 

 

어쨌든.....나는.....또 달려야 할 것이다.

달리고 싶지 않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정신 차리라고, 하는 데까지 또 최선을 다 해보자고,

나는 나를 일으켜 세워 또 달리게 할 것이다.

 

그래서 새벽을...좀 더 떳떳하게 맞이할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 돌아와서 보니, 나는.......오늘......상처받고 속상했었나 보다.

    그런데 또 다시 돌아보니, 아까 그 하루살이 두 마리에게.....약간은 위로를 받게 되었나 보다.

    삶이란.........늘........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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