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독수리 날다

윤이 3학년이 되다

그랑블루08 2012. 3. 7. 11:38

사진출처 : 페리테일님의 Daum 웹툰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라> 6회 중에서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12309

 

 

 

윤이가 드디어 3학년이 되었다.

2년 동안 한결 같았던 기도 제목은

3학년 때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거였다.

1,2학년 때 선생님은 정말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최악의 선생님이었다.

2년 동안 윤이랑 밤마다 둘이 붙들고 정말로 많이 울었었다.

 

 

오죽했으면, 그 어린아이가 학교가 지옥 같다고 했을까...

한번씩 그때 써놓은 글을 보면, 지금도 울컥한다.

아이가 그 상황들을 어떻게 겪어냈는지...대견하고...미안하고.....그렇다.

 

 

1학년짜리가 뭘 그리 안다고......

왜 그리도 공부 못한다고 구박을 해댔는지......

 

 

물론 구조적인 문제겠지만, 일제고사니 시험이니....정말 악마적인 것이다.

1학년짜리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그걸 매겨서.....그걸로 사람을 재단한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1개를 틀리면 평균이고, 2개만 틀려도 평균이하가 되는데.......

그래서 3개를 틀려 85점이라도 되는 날이면, 학년 평균이하가 된다.

 

 

난 윤이에게 0점 맞아도 된다고 말했었고 또 지금도 그렇다.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 하지만, 어떤 아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또 어떤 아이는 달리기를 잘하고, 어떤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그렇게 보면, 윤이가 잘 하는 것도 참 많다.

달리기도 잘 해서 반 계주 대표도 했고, 춤도 잘 춰서 학예회 때 발표도 했으며, 그림을 그려서 작지만 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하는 것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런데 수학 좀 틀렸다고....그것도 3개 틀렸다고, 그걸로 아이를 그렇게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여자 아이들 중에서 제일 못했다고, 그렇게 대놓고 혼내고,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공부 못하니까 저꼴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아이는 주눅이 들어갔다.

워낙 선생님께 공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1학년짜리가......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엄마,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난 공부를 못해. 난 성적이 나빠."

이런 말들을 하게 만든다는 건, 그 세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윤이는 심하게 기가 죽어갔다.

뭐든지 자신은 잘 하지 못한다며, 기가 죽어가는 윤이를 보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내 자신이 바뀌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은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다.

언제든지 아이는 무시당하고, 주눅들고, 상처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내가 똑바로 서서 아이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끊임없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밤마다 얘기해 주고,

같이 기도하고 했었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러 가니...조금씩 윤이도 자신이 가진 장점을 보기 시작했다.

달리기도, 춤도, 그림도, 공부만큼 좋은 거라는 걸.....

윤이도 조금씩 느껴 가는 것 같았다.

 

 

제도가 나쁘다고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니,

시험 치기 전 벼락치기로 아이를 공부시키기도 하면서,

시험 점수도 희한하게 괜찮게 나오기도 했다.

윤이는 희한하게도 평상시에는 잘 모르다가도, 하루 전날 본 건 기가 막히게 기억해 냈다.

그래서 평소 실력보다 시험을 더 잘 치곤 했다.

이걸 좋아해야 할 지,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서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아이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진 거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며,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도 많이 가진 것 같다.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런데.....3학년....기적처럼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1,2학년 때는 단 하루만에 선생님 무섭다며 학교 가기 싫다고 얘기했던 애가,

3학년 때는 단 하루만에 선생님 너무 좋다고 학교 가고 싶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1,2학년 때 선생님이 50대 후반, 60대 근처 나이대라서 더 빡셌던 것 같은데,

3학년 때 선생님은 40대 중,후반 정도이신 것 같았다.

그러니 역시 선생님이 친절하고 온화하게 설명도 잘 해주고,

아이들에게 많이 웃어주고, 칭찬도 해주신 것 같다.

 

 

그리고 딱 3일 학교를 간 윤이가 어제는 내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이 부회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윤이가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되는 것이 무지 부담스럽다.

직장맘이다보니, 아무래도 학교에 자주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윤이가 부회장 선거에 손을 들고 나갔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1,2학년 때 윤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나는 선거에 안 나갈래.

 회장, 부회장은 공부 잘하는 애가 해야 되는데,

 나는 공부를 못하잖아."

 

 

이 말이 왜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던지......

한편으로는 내가 힘드니까 윤이가 회장, 부회장 선거에 안 나가길 바랐지만,

또 이렇게 주눅 들어 있는 아이가 너무 안 되어서 가슴이 아팠었다.

 

 

그런데 그랬던 윤이가 스스로 손을 들고 선거에 나갔다는 자체가 내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마치 2년 동안 주눅이 들어 자존감을 잃었던 윤이가,

진짜 회복이 된 첫번째 증거인 것 같았다.

선거에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손을 들 만큼,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공부를 못 해도, 다른 걸 잘하면 되니까.....

공부를 못 해도, 회장, 부회장이 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잘 하는 것들이 다 다르니까....

나도....할 수 있다는 그 자존감을 회복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감동이었다.

 

 

부담스럽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 나는 일에, 윤이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침 교통도 서기로 했고, 이래저래 학교 일에 내가 열심히 참여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다른 지역까지 출퇴근하고 있는 입장에서 많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아이의 자존감 회복이 내게 큰 기쁨을 준다.

 

 

흔들림 없이 믿어주는 부모 밑에서,

또 끊임없이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칭찬해 주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진짜로 자존감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체험하고 있다.

 

 

이렇게 나도 부모가 되어 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조금 더 성숙해야 하겠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많이 감사하다.

 

 

더보기

그래.....

이러다 또 무서운 선생님과 무서운 세상을 만나 다시 기가 죽고, 또 상처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무서운 곳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아이를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힘을 주는

그런 나무와 같이 흔들림 없이 있어주면 되는 것이다.

 

끝까지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최초이자, 최후의 보루로

끝까지 흔들림 없이 서 있어 주는

그런 엄마가 되면 되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그것인 것 같다.

잘 할 수도 없고, 너무나 어렵지만,

평생을 두고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자리......

 

끝까지 믿어주고,

끝까지 들어주고,

끝까지 지지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자리인 것 같다.

 

그래서 또 무릎을 꿇게 되는 것 같다.

 

' > 독수리 날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신 공주님 놀이에 빠진 우리 딸내미  (0) 2012.06.12
Everybody Good night! I Love You!  (0) 2012.04.05
윤이의 <바른 생활>  (0) 2010.11.23
휴대폰이 처음으로 고맙다  (0) 2010.11.12
윤아.....  (0)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