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독수리 날다

휴대폰이 처음으로 고맙다

그랑블루08 2010. 11. 12. 16:12

엄마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결국 아이에 대해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저번주......윤이에게 휴대폰을 해주고 말았다.

 

사실 후배의 조카가 학원 버스가 오지 않아서 1시간 동안이나 운동장에서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서 안 사줄 수가 없었다.

그 학원 버스는 오다가 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냥 넋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것도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여자 아이는 어쩔라는 말인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정말 분노 폭발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에게라도 연락을 해 줬으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불안하게 울면서 기다리지 않았어도 되는 일인데......

진짜...세상이 불안하기만 하다.

 

윤이도 아주아주 추웠던 날....

학원 버스가 오지 않아서 꽤 오랜 시간 밖에서 오돌오돌 떨었다고 했다.

물론 그 학원 버스는 오기는 했지만, 너무나 추웠던 날이라서 정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을 지킬 수 없는 경우는 늘 발생한다.

그래도 아이가 있는 미술 학원으로라도 연락해 주고, 언제쯤 도착할 거라도 얘기해 주면 안 되는 건지....

그래서 결국 나도 아이에게 휴대폰을 해주고 말았다.

 

이걸 해 주고 나니...그래도 마음이 훨씬 가볍다.

진작 해줄 걸 싶기도 하다.

 

 

 

오늘 2시가 다 되어갈 무렵 윤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곤 묻는다.

 

"엄마, 안 추워?"

 

"응. 안 추워. 왜?"

 

"어.....엄마가 아침에 춥다고 해서, 계속 추운가 싶어서 걱정 돼서."

 

 

사실 어젯밤에 다시 직장에 들어왔다가 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들었더니,

계속 몸이 으실으실 추웠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 춥다고 그랬더니, 그걸 기억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참.....뭉클하다.

8살 짜리 딸내미가 엄마 걱정을 한다.

이....작은 아이의 말 한 마디가....내내 뭉클하고 기쁘게 한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보니, 아이가 미술 학원에서 다른 학원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결국 버스 타러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며 건 전화였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다.

아직 버스가 안 와서 길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오늘따라 또 버스가 늦는 것 같았다.

 

지금 버스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말했어도 됐을 텐데....

윤이는 그런 말은 하나도 하지 않고,

엄마 안 추워서 다행이라고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 녀석도 참........

 

난....버스가 올 때까지 아이와 통화를 했다.

불과 1~2분 사이에 버스는 왔지만, 그래도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불안함도, 심심함도

또 나의 물안함도....

휴대폰 통화가 날려주었다.

 

 

 

난....휴대폰을, 전화를 무지 싫어한다.

전화받는 거 자체를 정말로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초창기에 이 문제 때문에 남편과도 늘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글은 좋지만, 전화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지 지치는 일이다.

특히 일이 많을 때, 전화가 오면, 정말이지 힘이 든다.

어쩌면 내 시간 자체가 늘 그렇게 빡빡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시간은 새벽 시간이다.

그때라면 얼마든지 통화도 가능하지만,

그때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난.....틈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일이 잦은 것 같다.

 

여튼......휴대폰.....정말로 필요악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오늘...처음으로.

그 휴대폰이 고마웠다.

아주 많이 따뜻했다.

 

 

아이의 걱정을 들을 수 있어서,

그리고 아이의 지루함을 덜어줄 수 있어서,

그래서.....휴대폰이 처음으로 고맙다.

 

 

그리고......이미 너무 시근이 들어버린 우리 윤이도.....너무 고맙다.

 

 

 

윤이와 했던 대화가 떠오르니.....

또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퇴근하면서 엄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참....불량 엄마에, 불량 마누라에, 불량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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