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독수리 날다

윤아.....

그랑블루08 2010. 9. 21. 04:48

윤아.....

 

외할머니 집에서.....

너 오늘..엄청 혼난 날이다.

넌 아마.....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엄마가 화났을 때 하면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싶다.

아주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아주 많이 화가 났어.

 

약한 윤이 모습에 무진장 화가 났나봐.

분명.....다른 사람이 잘못한 건데, 윤이가 기죽는 모습에 엄마가 너무나 화가 났나봐.

 

윤이는 생각하겠지.

엄마는 또 화낸다. 엄마는 정말 이상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래, 윤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윤이가 약하게 나가는 게 화가 났어.

끌려가는 모습 때문에 화가 났어.

아무리 좋아하는 사촌이라도, 혼자 삐지고, 혼자 가만히 있는 건.....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야.

그 친구가 고치고 극복해야 할 문제야.

그런데 윤이가 그런 그 친구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 같더라.

그 친구는 윤이를 더 이용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화가 났어.

 

나 때문에 화났어? 내가 싫어?

 

그 말에 엄마가 너무 화가 났나봐.

왜.....윤이 잘못이 아닌데, 그렇게 기가 죽어서 자기 잘못부터 살피고 있는 걸까.

엄마가 잘못 키운 걸까?

이런저런 고민이 다 된다.

 

그 친구의 대답이 참 웃기더구나.

 

아니, 그냥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윤아.....넌....너무 착하구나.

너무 착하다 못해, 마음이 너무 여려서 모든 문제가 니 잘못이라고 여기는 거니?

씩씩하던 윤이가 왜 이리 기가 죽었을까?

 

엄마도, 아빠도, 너무 엄하게, 너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싶기도 한데,

때로 윤이는 너무나 자기 주장이 강해서, 엄마 아빠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데,

널....어떻게 키워야 할까.......

엄마는.....너무.....어려워.

 

 

오늘 엄마는...아주 무섭고, 강하게 말했지.

 

자존심을 지키라고!

여자라면 자존심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싫으면 싫다! 니가 잘못했다!

그러니 니가 싫으면 관둬라!

나는 나대로 재미있게 살겠다!

그런 말을 너에게 해줬지.

그런 말을 하고 살라고......

 

여덟 살짜리 너에게 엄마가 아주 웃기는 말을 했지.

 

굽히고 살지 말라고!

평생 남자 뒤치닥꺼리 하면서 눈치보며 내가 잘못한 거 없나 그렇게 살 거냐고!

그런 놈하고 살 바에야 씩씩하게 혼자 살라고!

자존심 지키면서, 싫으면 싫다 당당하게 외치면서 살라고!

이 놈의 땅에서 여자로 살려면,

그 정도 자존심 없으면 안 된다고!

 

웃기지?

윤아?

엄마가 너무 앞서가지?

여덟 살짜리 윤이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했지?

 

근데....윤아......

엄마는....계속 이런 말들을 할 거야.

니가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해도,

그게 사촌이든, 친구든 어떤 상황이든

엄마는 늘....이런 말들을 할 거야.

 

 

엄만 참 웃기지?

엄마는 결혼해 놓고.......

엄마는 가끔.....윤이가 사랑을 했으면 좋겠지만, 결혼은 안 했으면 좋겠는......

엄마...참 웃기지?

 

윤이가 결혼하면, 엄마는 윤이가 너무 아까울 것 같다.

당당하게 씩씩하게 이 세상 살아갈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속박당하고, 가족에 속박당하고, 책임과 의무에 속박당하고,

이런 게....너에게는.......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훨훨 독수리처럼 날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행복이 무엇인지.....엄마는 잘 모르겠구나.

무엇이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이가......평생.......행복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해 나갈 수 있길......

'여자'라서 안 된다는 세상 앞에서

그 모든 편견을 깨버리는 선구자가 되길......

엄마는....자꾸만  바라게 된다.

 

넌 이리도 여리고 약한데 말이다.

오늘도 많이 울면서 잠들었는데 말이다.

 

 

엄마는.......마음이 아파서......잠도 못자고 있는데 말이다.

 

윤아.......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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