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
+)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여.... (배경음악은 저 위에 있습니당)
<위의 사진은 하늘만큼 횽 꺼 강제 협찬....두번째 사진도 조정석갤에서 주운 것.......감솨감솨...문제시 자삭>
1
“은시경 대위는 20XX년 X월 XX일 22시 34분 이후 사망했습니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재하는 자신의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은시경이 사망?
“이것들이 미친 거야!!!!!
야!!!! 지금 저기 저기..안 보여?
지금 심장 뛰고 있잖아?
일직선 아니잖아!!!
근데 뭐가 어쩌고 어째? 사망? 죽고 싶어?
어디서 뻥치고 지랄이야?!!!!”
재하의 입에서는 거의 욕이 튀어나왔다.
분명 심장이 뛰고 있다.
분명히 저렇게 뛰고 있다고!!!!!!
그런데 저 미친 의사 새끼는 사망했다고 씨부리고 있다.
“전하.......이건 엄밀히 말해서 은시경 대위 스스로 심장을 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명백히 기계에 의해서, 기계에 의지해서 뛰고 있을 뿐,
전기 충격과 전자 시스템에 의해서 심장이 기계적으로 뛰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명백히 사망한 상황입니다.
뇌사 판정이 맞습니다.
전하께서 이러시면...곤란....”
“뭐? 곤란? 니가 이러고도 의사야?
의사라는 놈이 뭐? 멀쩡히 살아있는 놈한테 사망?
야!! 너 옷 벗고 싶어? 뭐가 어쩌고 어째?”
“전하!!! 뇌사 판정을 받고 나면, 끝입니다.
그야말로 의학적으로 사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시경 대위의 장기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러시는 건, 욕심이실 수도 있습니...헉!!!!!”
재하는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재하는 장기 기증을 하라는, 은시경의 사망을 인정하라는 의사놈의 멱살을 잡았다.
“더 지껄여 봐!!!!
뭐? 욕심?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야!! 그런데 뭐? 기증?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장기 빼서 다른 사람 주라고?
야!! 이 새끼야!! 니가 무슨 의사야?
넌 살인자야!!!!!!!”
“전하...이거 놓고..말씀....크읍....”
“야 이 새끼야!!! 니 가족이면, 니 자식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냐?
멀쩡히 살아 있는 놈 호흡기 떼고, 죽이라고 말할 수 있냐?
너!! 자식 있지? 니 자식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재하는 정말 미쳐가고 있었다.
감히...내 앞에서 은시경이 사망했다고 지껄여!!!!
이것들이!!!!!
재하는 주위에 빙 둘러선.....나름 내로라 라며 유명하다는 쓰레기들을 향해서 외쳤다.
“야 이 쓰레기들아!! 잘 들어!!
니들 중 누구라도 은시경 사망이라고 말하면, 니들 의사 인생 끝날 줄 알아.
나!!! 이재하야!!! 대한민국 국왕 이재하 이전에!!! 뒤끝 작렬 이재하라고!!!!!!
나!! 건드리지 마!!!!!!
한 마디만 더해!!! 저 놈 죽으면, 너들도 다 죽을 줄 알아!!
내가 못할 거 같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죽자고!!!!
니들 장기로 수십 명 살리면 되겠네!!!!!!
다 죽자니까!!!!!!!!!!”
이성을 잃은 재하 앞에서 의료진들은 단 한 마디도 더 뗄 수 없었다.
재하는 그야말로 미쳐버린 것 같았다.
2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산단 말이야? 살 수 있다는 거지? 그렇지?”
재하는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놈은 살려야 한다. 이 놈은 반드시!!!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은시경이잖아. 그러니까...은시경 답게 살아야 한다고!! 제발!!!!
“전하.........”
“그래...여긴 중국이야!! 중국이잖아!!
뭐든 다 돼. 장기 이식..뭐 그런 거 다 되지? 아!! 심장 이식 수술 되지? 될 거야.
여기...불법으로 하는 것도 있잖아.
다!! 전부 다!!!!! 해 봐!!! 전부 다!!!!!!
이 자식!!! 반드시 살거야. 내가 반드시 살려 낼 거야!!!!!
당장 이식 수술 하라고!!!!! 여기서 할 수 있는 거 다 하란 말야!!!!!!!”
시경은 재하의 품 안에서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전하.......”라며 억지로 한숨 내뱉더니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재하는 그 순간 자신의 심장이 정지하는 것 같았다. 재하는 소리쳤다.
“의료진 어딨어!!!! 이 자식 빨리 지혈해!!! 빨리!!!!!!”
김봉구가 어떻게 끌려갔는지, 어디로 잡혀갔는지,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차안에 실려 있던 전기 충격기로 은시경을 깨우는 데만 집중했다. 이놈은 살아야 한다. 내가 반드시 살려 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왕실 최고 의료진이 그 장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리 계획된 작전이었다고는 해도, 국왕이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면, 은시경은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전기 충격기로 은시경의 심장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의사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아무리 해도 은시경의 멈춰버린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뇌에 산소가 너무 오래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진짜...로.........끝일지도 모른다.
의사도, 재하도 모두 그 상황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5분 이내에 반드시 돌아와야 했다.
이미........멈춰버린 지 30분이 넘었다. 이대로는........하아........뇌사가 올 수도 있다.
“야!!! 은시경!!!!! 야 이 새끼야!!!! 안 일어나!!!!
심장이라도 뛰란 말이야!!!!!
머리로 듣고 있지? 너 아직 안 갔잖아!!!!
듣고 있잖아!!!!!! 이 새끼야!!!!!! 뛰라고!!!
이.재.신!!!!!!! 재신이 어떡할 거야!!!!!!!!!!
니 마음 가는대로 재신이 만났잖아.
이 자식아!!!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재신이한테 온갖 희망 다 주고, 혼자 가는 거면, 너!! 가만 안 둬!!!!
은!시!경!!!!!!!!!!!”
뚜우우우우우우우우 뚜...뚜.....뚜....뚜......삐빅....삐빅...........
“전하!!! 전하!!!!!! 심장이!!! 됐습니다!! 뜁니다!!! 일단 뜁니다!!!!!!!”
재하는........그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제왕의 기개고, 대한민국의 국왕이고 간에, 재하는....그저...한 사람으로 목을 놓아 울고 말았다.
3
은시경은 10번도 넘게 큰 수술을 받았다. 심장 이식도 그 사이에 3번이나 받았다. 은시경이 수술을 받을 때마다 재하는 따라 다녔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미안해서였다.
재하는 고민했다.
뇌사라고 말하는 의료진 앞에서 미친듯이 화를 냈지만, 자신도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중국에서 심장 이식을 받고 나서 진전이 없는 은시경의 상태에, 재하는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재하도 알고 있었다.
은시경은........의학적으로.....전혀 가망이 없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뇌사.....에 가깝다는 것을........
재하는 그래도 죽어도 뇌사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재신이의 불안해하는 목소리에.....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서, 오빠로서의 자괴감이 들었다.
만약.......이것도 살아 있는 게 맞다면, 살아있다고 했다가.....진짜로 죽게 되면, 이 아이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중국에서 은시경의 2차 수술이 있고 나서, 그것도 국내 최고 의료진까지 불러서 중국에서 극비리에 2차 수술을 진행하고 나서도, 전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은시경을 보면서, 재하는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새끼들이라고, 의료진들을 향해 난리를 쳤지만,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은시경에게 장기를 기증하라는 건 살인이라며 생난리를 쳤지만, 재하 스스로도 점점 기운이 빠져가고 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을.........어찌 해나갈 수 있을지.......
물론 자신은 끝까지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재신이는.....우리 재신이는......어떻게 한단 말인가.........
항아는 그래도 재신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재하를 설득했지만, 재하는 그럴 수가 없었다.
2차 수술 후, 그래도 진전이 없자, 의료진은 단호했다.
바로 뇌사 판정을 내렸다.
심지어 실험실에 기계 연결된 장기와 다를 바 없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했다.
의학적으로 사망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장기 기증을 하고, 명예롭게 죽어라......
그들은.....살인을 강요하고 있었다.
재하는 결단을 내렸다.
백악관의 협조를 얻어 은시경을 왕실수송기로 미국에 보내면서, 재하는.........결단을 내리고 기자회견을 했다.
은시경은 죽은 사람이 되었다.
현충원에서 장례식도 치렀다.
재하는........더 이상 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은시경을 살려내야 했다.
나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아픈 생채기인 하나뿐인 내 동생을 위해...........
그리고...곧...재하는 후회했다.
4
“오빠......아니지? 그렇지? 나....그 사람 못 봤어.......
그런데 어떻게...그 사람이 그렇게 가? 아니야? 그렇지? 맞지?”
재신이는 웃고 있었다.
재하는 무서웠다. 울면서 웃고 있는 재신이가 무서웠다.
그러다가 까무러치고, 울고, 다시 까무러치고...........
지옥과 같은 시간들이 끝도 없이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 의료진에게서 듣는 내용은.....그야말로 암담할 뿐이었다.
의학적인 사망..........
늘 같은 결론이었다.
그러던 재신이가 갑자기 울지 않기 시작했다.
장례식에서도 재신이는 울지 않았다.
그래서..........재하는..........뭔가........오싹해지기 시작했다.
늘.....안 좋은 예감은 틀린 법이 없는데.........
그랬다.
재신이가 약을 먹었다.
고통스런 위세척 후에, 재신이는 겨우 살아났다.
궁은 날이 선 듯, 살얼음을 걷듯, 재신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타이즈로 목을 매려 했던 날......... 이후, 재신이는 화장실까지도 혼자서 가지 못하게 됐다.
재신이의 사생활은 전혀 없었다.
그 이후 멀쩡한 척 몇 달을 보내던 재신이 때문에 모두들 약간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상담 치료도 멀쩡히 받고, 가족들과 식사할 때도, 아주 미미했지만, 약간의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가장 고통스러웠던 그 날이 왔다.
저녁을 먹은 이후, 재신이가 궁중실장님과 함께 업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오빠...........”
“웬일이야? 우리 공주님이?”
애써 재하는 장난스럽게 대꾸해 본다.
억지로 웃으려 하지만, 입가가 자꾸 떨린다.
그런 재하를 보던 재신은 안쓰러운 미소를 짓는다.
“나.......하나......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그 사람.........마지막...........어땠어?”
“!!!!!!!!!!!!!!!!”
“.....알아.........편안하게 갈 수 없는 상황이지.
그래도....오빠 품에 있었으니까....전하를 위해서 간 거니까........
영광스러웠겠지. 그지?”
“......하아...........”
“그래서......그 사람.....마지막....표정......어땠어?
조금은......편해 보였어?”
마지막.........
그곳에서의 마지막 은시경의 모습은......고통스러웠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 너머에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멈춰 버렸던 심장이 돌아오던 그 순간........
은시경의 얼굴은........뭔가 모르게 절박했다.
모르겠다. 내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분명...나는 믿는다.
은시경은.....이.재.신이라는 이름에 반응했다고!!!
그 이름 때문에 가던 걸음을 돌려, 자신의 심장에게 다시 뛰라고 명령내렸다고!!!
나는......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기적 같았던 그 순간...........
그는 분명, 이미 죽었던 그는.........이.재.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살아났다.
“......재신아..........미안하다.”
“왜...오빠가....미안해.........”
“재신아....그런데.......살아주라. 제발 살아줘.
지금은 견딜 수 없겠지만, 분명........분명........이 모든 게 다 지나갈 거야.
그래서.......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그렇게 말할 날이 꼭 올거야.
오빤......정말....믿어......
그러니까...제발......우리...살자...응? 재신아!”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은시경이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가 없지만, 또 살 거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그렇게 기적같이 자신의 심장을 깨웠던 은시경이라면, 분명...우리 앞에 돌아올 거라고.....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니....그 날을 위해 재신은 살아야 한다.
“오빠.........미안.........”
“뭐?”
“미안하다구...다......전부 다..........”
“재신아........”
“내가....오빠.....사...랑...하는 거....알지?”
“야..........”
“큰오빠...그렇게 가고 나서......내가 젤 마음 아팠던 게 뭔 줄 알아?
내가...말야......오빠 사랑한다고....그 말을....진짜 안 했더라.......
그게....너무 아파.......”
“재신아!!!!! 나도..나도.....사랑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우리...살아야 돼!!! 알지?”
재신이는 대답 없이 말갛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아파서 자꾸만 재하를 괴롭혔다.
재신이 방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재하는 자꾸만......그 미소가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이재하!!!!!!!>
“.......으응?”
<이재하!!!!!!! 재하야!!!!!!!!!>
누군가 재하를 부르고 있었다.
뭐지 싶어서 눈을 떠보는데, 거기엔 형이 있었다.
“형!!!!!!”
<재하야!!!!!!!!!!!>
형이 울고 있었다. 언제나 함박 웃음을 짓던 우리 답답이 형이 울고 있었다.
“왜 그래 형? 내가...잘못해서 그래?
형!!! 왜 그래 왜!!!!!!!”
형은 아무 말 없이 울고 있었다.
“형!!!!!!!!!!!!!!!!!!!!!!!!!”
“리재하 동지!!!!! 깨시라요!!! 악몽입네다!!! 깨시면 됩니다!! 어서 깨시라요!!!!”
옆에서 잠들었던 항아가 재하를 황급히 깨웠다.
“...항..아야........”
재하의 눈이 젖어 있었다.
“왜 그람니까? 뭐, 안 좋은 꿈이라도......”
“아니야. 아니야.........형이 나왔어. 근데...이상해. 형이 울어....
왜 울지? 나 때문인가....아니면......헉!!!!!!!!!!!”
재하는 맨발인 채로 그대로 뛰어나갔다.
모르겠다. 뭔가가 두렵게 했고, 뭔가가 불안했다.
형이 울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른다.
그저......재신이가.....내 동생이 무사하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저...전하......갑자기.....”
새벽.......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갑자기 들이닥친 재하 때문에 재신을 모시던 궁인들이 황급히 놀라서 일어난다.
“재신이는? 재신이 어딨어? 재신이?”
재하가 재신이를 찾자 궁인이 화장실로 안내한다.
금방 들어가셨다는....그 말에...재하의 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떨어진다.
아니다...절대 아니다. 그냥 화장실에 간 거다.
“재신아!! 재신아! 오빠야 너....뭐해? 문 좀 열어 봐!!!!”
방금 들어갔다던 재신이에게서 아무 소리가 없다.
화장실에선 물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당장 문 열어!! 밖에 근위대원!!!! 빨리 문 열어!!
문 부숴!! 빨리!!!!!”
그리고는 재하는.........숨을 쉴 수 없었다.
욕실 안에서 재신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낭자한 피 사이로 재신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재신이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재하는 결심했다.
은시경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고...이러다.....재신이마저 보내겠다고.....
그렇게 병실을 찾았다.
“오빠...........”
“재신아!!!!!!”
파리한 재신의 얼굴을 본 순간, 재하는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나....왜 이래? 나...왜 다쳤어?”
“뭐?!!!!”
“나....왜 이러지? 나......하나도.....기억이 안 나.........”
형이 죽은 것도, 자신이 클럽 M 때문에 다리를 잃은 것도, 간헐적으로 기억했지만, 나머지 기억은 거의 하지 못했다. 특히.....은시경이라는 존재 자체는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그러다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재하는....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어쩌면, 내 꿈에 찾아온 형이......재신이를 위해서 준 선물이라고....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우리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형이 가슴 아파하며 준 선물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은시경을 지우는 작업은........
그렇게 궁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5
“저, 실장님, 궁금한 게 있어요.”
재신은 내일 스케줄 브리핑을 하는 궁중실장에게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던졌다.
“예. 말씀하세요. 공주님.”
“혹시....은...시경이라는 사람.....알아요?”
“예...예?”
궁중실장은 은시경이라는 말에 불에 덴 듯 깜짝 놀란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아세요?”
“....아....예..........”
“제가.... 예전에......그 사람........만난 적...있었어요? 제가 그 사람...잘 알았어요?”
궁중실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할까.......
갑자기 살아오신 것도, 궁에서 금기시되었던 이야기도, 어디까지.......허용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예. 아시긴 아셨습니다.”
“근데...정말 그 사람, 장례식까지 했었어요? 근데 어떻게 살아서 온 거야? 진짜 신기해.”
“저희도.......정말 놀랐습니다.”
“그 사람........궁에서 무슨 직책이었어요?”
실장은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차피 들통날 것이다.
피하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전하께서 가장 아끼시던 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건 알아요. 그리구요?”
“또........흠흠.....공주님을........호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에? 나를요? 날 호위했다구요? 그 사람이?”
“예..예......아....가끔입니다. 가끔.
그러니까......대부분 전하와 함께 일하셨고, 아주 가끔......”
“그랬군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재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다.
그러나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중실장님은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어쨌든.......자기를 아느냐고 묻던 그 이유는 알게 된 것 같다.
날 호위했으면,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빠가 그만큼 아꼈다면, 우리와도 친했을 것이고.........
어쨌던.........뭔가 마음에 찝찝하게 남아 있는 게 싫어서, 재신은 그를 불러보기로 했다.
“밖에 김동욱 대위 있으면 내가 부른다고 오라고 좀 해 줘요.”
전화를 하자마자, 동욱은 바로 들어왔다.
“뭐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들어와요?”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주님께서 부르시는데 당연하죠.”
사람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원래 장난기가 많은 건지, 동욱을 볼 때마다 재신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뭔가 자유로웠다. 군인이라고 해도, 뭔가 마인드 자체가 자유로웠다.
감정 표현까지도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늘 재신을 당황시켰다.
물론 그 때문에 재신이 웃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혹시......은시경.....이라는 사람 알아요?”
“예? 갑자기 왜?”
“아니...그냥 궁금해서.....생각해 보니 아까 김동욱 씨도 은시경이라는 사람 처음 본 거였죠?”
“예. 전 궁에 들어온지 겨우 1년 반밖에 안 돼서 근위대장님은 그 전에 뵌 적이 없죠.”
“그랬구나...........”
뭔가...생각하는 듯한 재신의 태도가 자꾸 동욱의 마음에 걸린다.
왜....기억도 안 나신다는.......근위대장님 생각을 하는 건지.....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공주님.......기억이 안 나셔서....답답하신 거예요?”
“음...그냥...좀....찝찝해요. 뭔가...남아 있는 것 같아서...나 원래 이런 거 못 참잖아요.”
“그냥.......그대로 내버려두시면 안 될까요?”
“응?”
“기억 안 나시는 것도, 공주님께서 스스로 하신 거니까.....나름 이유가 있겠죠.
게다가......기억하실 만큼, 특별한 기억이 없으실 수도 있고........”
“음.....그렇긴 해요. 내가 생각해도, 내 호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딱히...근위대원에 대해 많이 기억이 날 리는 없을 것 같애.......”
동욱은 그 말에 마음이 상한다.
“공주님...그럼 저도 그런 겁니까?”
“에? 무슨 소리예요?”
“저도 일개 근위대원이니까...아무 생각 안 나시겠네요. 정말 섭섭합니다!!!
제 마음 아시면서.........”
재신은 정말 이 사람 때문에 한숨이 나온다.
정말...애도 아니고......늘...이렇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들이민다.
너무 직설적이라...가끔은....날 놀리나 싶기도 했다.
지금은...그저 이 사람 성격이려니 하고 있지만, 가끔 이럴 때면 당황이 된다.
“김.동.욱.대.위!!!!!”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나오자, 동욱은 풀이 죽는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어휴..하여간......어쨌든.....미안한데, 동욱씨가 은시경씨.....아니 그 근위대장님....내 방에 잠깐 와달라고 얘기 좀 해 줄래요?”
“예? 왜요? 근위대장님을 왜 만나시려구요?”
“정말!!!!!”
재신이 짜증을 내자.......동욱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네. 들어오세요.”
“부르셨습니까........공....주......님.........”
그가 왔다.
공주님이라 부르는 목소리에서 이미 재신은 가슴이 서늘해진다.
단 한 마디에 이 사람의 무언가가 담긴 듯했다.
이 사람...진짜 도대체 뭐지?
재신은 은시경이라는 이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일 줄 알았는데, 은시경도 역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눈빛이..........재신의 심장 안으로 들어앉는 것 같았다.
뭔가.......애처로워하는 듯한..........감정이 울렁대는 듯도 했고,
화가 난 듯도 했고, 또 뭔가.......부서질까 안타까운 눈빛이기도 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를 알아달라는......뭔가 찾아달라는....그런 눈빛이기도 했다.
사람의 눈이....이렇게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사람을 보고 알 것 같았다.
“흠흠.....공주님...........”
적막을 깨고 동욱이 재신을 불렀다.
“어..어...네? 동욱씨? 아직...있었군요.”
“당연히 있었죠. 공주님. 제가 공주님 전담 호윈데 다른 데 가는 게 말이 됩니까?”
동욱의 말에서 뭔가 심통을 느낀 재신은 이상하다는 듯이 동욱을 바라보았다.
그런 동욱을 은시경이라는 그 사람도 쳐다본다.
동욱 역시 은시경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 긴장감이......재신을 불편하게 했다.
그 때 갑자기 얼음처럼 서 있던 은시경이 입을 뗐다.
“김.동.욱. 대.위!”
“예?”
“대위는 근위대 조항이 장난처럼 보이나?”
“예..예?”
“가서 근위대 조항을 다시 숙지하도록!!
지금 보인 대위의 태도에 대해서는 따로 평가할 테니!!!!”
동욱은 단호한 은시경의 태도에 뭐라고 말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만 있었다.
“뭐하는 거지? 김동욱 대위?
내가 분명 나가라고 했을 텐데!!”
“....예. 알겠습니다. 충!성!”
동욱은 은시경의 기에 눌려서 결국에는 경례를 붙이고는 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은시경은 몇 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낮게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내는 말에는 그의 무게감이 들어 있었다.
재신은 생각했다.
뭔가.......꽉 막힌 사람 같다는......
그래서....예전에 자신이 몹시 답답해 했을 것 같다는........
“은시경...씨라고 했죠?”
“예.”
“예전에.....오빠...랑 일하면서....가끔.....내 호위도 했었다죠?”
“...................”
가끔..........
그녀는 가끔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나, 분명....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까.....후원에서 내게 물었죠?”
“.........................”
“기억하느냐구요.”
“..........예.”
“내가........은시경 씨를 기억하는 게........꼭 필요한 건가요?”
“예?”
“내가........당신을 꼭 기억해야 하는.........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이유..........
공주님이....나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내게는 있지만, 공주님께는....그 이유가 있는 건지.....그건.....모르겠다.
이 모든 건...어쩌면.......나만을 위한.........이기적인 이유만 있을 뿐이다.
시경은......주먹을 쥔다.
“공주님.”
“네. 얘기하세요.”
“저도........질문 하나 드려도.....되겠습니까?”
“좋아요. 해 보세요.”
“공주님......지금........근위대원과......연애하십니까?”
“뭐...뭐라구요? 지금...대체...무슨?”
재신은 갑작스런 질문에, 아니.......갑작스런 비난에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공주님 취향이.....군인이십니까?
곁에 있는 군인에게.....흥미를 느끼시는 겁니까?”
“지금...감히.......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근위대 제2중대장 김동욱 대위와.......연애하고 계신거냐고 질문드리는 겁니다.”
“은.시.경.씨!!!!! 날...지금 감히 모독하는 거예요?”
“김.동.욱...대위를........하아.......사랑.....하십니까?”
재신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감히....내게...대한민국의 공주인 내게.....저따위로 말하다니.......
분노로 재신의 손이 떨렸다.
“그게 아니라면..........가지고...노시는 겁니까?
장...난감처럼.........
그렇게 처음엔 흥미를 느껴서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버리는.........
그런........장난감처럼.....말입니다.”
재신은 더 이상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뭐...저런 인간이 다 있지 싶었다.
내 속을 뒤집으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고지식하고 답답한 인간일 거라고, 몇 마디만 나눠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감히......내게.......
대한민국의 공주인 내게......
훈계하고 있었다.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잔인해지고 있었다.
그래서..........어차피 아닐 걸 알면서도 툭하고 내뱉고 말았다.
“왜요? 은시경 씨.
예전에....내가.....당신을......가지고 놀다가 버렸나요?
맞아요. 나.........싫증 나면 버려요.
그래서요?
내 취향이 군인이라서........뭐 문제라도 있나요?
아.....그렇지.
김동욱 대위도, 은시경 씨 당신처럼 버려질까봐.........안 돼 보여서 그래요?”
너무 화가 나서...재신도 평소의 재신이 아니었다.
사람을 직책이 아니라, 상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여기는 재신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장난감 운운하는 은시경이 정말 화가 났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오해하는지.....
예전에 도대체 내가 어땠길래 저러는 건지.......
그 오해하는 게 화가 났고, 나를 모르면서 나를 아는 척하는 것도 화가 났다.
분명......그를 자극하려고, 열받게 하려고.......그래서 던진 말이었다.
분명 꿈쩍도 하지 않겠지 하면서 던졌다.
저 답답하고 고지식한 근위대장이라면, 전혀 느낌도 없을 거라고....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재신은.........순간.........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닌데....이게 아닌데..........
감정이 없는, 뭔가 기계 같은......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군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눈이.....젖어들고 있었다.
아......이거...뭐지.......
분명.....저 사람이 먼저....무례하게 나왔는데.........
왜......갑자기...내가 잘못한 거 같지.........
이거...뭐야..........
원망과 회한과......안타까움.........
그리고....깊은 상처의 그림자가 그의 눈동자 속에 어렸다.
물기가 어리는 듯도 했다.
그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아프다고.....너무 아프다고.........
왜....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지.........
재신은 숨이 턱하고 막혔다.
“죄송합니다....공주님......
제가.....하아.....제가......주제......넘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나가버렸다.
그의 목소리가......귓가에.......계속 맴돈다.
한숨 섞인 그 목소리가.........자꾸만 재신의 마음을 휘저었다.
단호하고 딱딱하던 목소리가 아니라........떨리던.....그 목소리가.......자꾸만 재신의 심장 어딘가를 건드린다.
---------------------------------
쓰다 보니 21장이 넘어버렸네요.
어쩔 수 없이.....아픈 부분을 써야만 했다지요.
20회는 없지만, 19회까지 은시경의 모습은 정확하게 짚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은시경의 상황을, 그리고 견뎌내야 했던, 혹은 견뎌낼 수 없었던 공주님의 상황을 보기 싫어도 정확하게 짚어야, 제대로.......은시경이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적고 싶었는데, 그러면, 진짜로 은시경이 돌아온 상황도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그랬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뇌사 부분에 대한 얘기는....사실.....주변에서 직접 겪은 일입니다.
제 사촌 동생이........수 년 전에 쓰러져서 뇌사 판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재활을 해서 일어났구요. 많이 나아서 움직이고, 운동하고, 혼자서 먹기도 하구요. 좋아졌는데...
그 때 의료진에서 말했답니다.
이미.......식물인간이라고....그러니....어서 장기기증을 해서 사람들을 살리라고......
그러면서.....이렇게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을 잡고 있는 건, 이기적인 거라구요.
그 때.....이모는 가슴을 쳤습니다.
결국......제 사촌 동생은 깨어났구요. 그래서 지금은 아주 아주 많이 나아서 재활하고 있구요.
어쨌든 그 경험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의 하루 5>에 보면, 재신이가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 역시....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재신이가 삐졌다고...그래서 마지막에 아버지한테 삐진 상태로 보내드렸다고.....
우는 부분은...사실....제 얘기지요.
자꾸...쓰다보니, 제 경험이 들어가네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마치...옆에 살아있었던 사람처럼, 공주님 때문에, 은시경 때문에.....자꾸 힘들어서,
이 둘을 보내기 위해서 시작한 상플입니다.
그래서......정말 죽었던 것처럼...그 둘의 고통을 리얼하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정확하게 드러내야, 정직하게 드러내야, 상처가 낫는 법이랍니다.
이번 회 힘드셨더라도, 멘탈 치유를 위해서 그러려니...해 주시길......ㅠㅠ
여튼......읽어주셔서 감솨감솨~~
방문수를 보고 약간 겁도 나는 것이........
갤이 확실히 여파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분명 들어오시는 분들은 많은데......혹시나........
진짜 글 때문에 찾아오신 분보다 스팸쪽이나 광고 쪽에 주소가 알려진 건 아닌가 싶어서......걱정도 덜컥 됩니다.
어쨌든...봐주셔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보시고 나시면, 댓글도 날려주시길.......
계속 쓸 힘도, 계속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댓글 속에서 얻는 것이니.......(__)
'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 > (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6 - 세상의 지지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0) | 2012.06.10 |
---|---|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5 - 마음이 담기지 않은 두려움은 없다 (1) | 2012.06.07 |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4 - 위로가 위로를 건네다 (0) | 2012.06.05 |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 - 감각이 깨어날 때 (0) | 2012.06.04 |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1 - 귀환(歸還) (0) | 201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