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5 - 마음이 담기지 않은 두려움은 없다

그랑블루08 2012. 6. 7. 20:19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5

 

 

+)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

    배경음악은 공주님 트윗에서 추천하신 곡.

 

 

 

 

 

 

 

 

 

 

 

 

 

 

 

 

 

1

 

 

 

 

 

 

 

 

 

 

“오늘 왜 제가 공주님 호위에서 배제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동욱은 전하께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왜긴 왜야? 오늘은 근위대장이 재신이 호위를 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요. 전하. 왜 공주님 전담인 제가 빠지고 근위대장님께서 호위를 하시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동욱은 전하를 향해 말하고 있는 듯했지만, 실상은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자신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갔는지,

왜 자신이 아닌지.

 

 

저 놈은 뭐가 저렇게 당당한 거지?

일개 근위대원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가 있지?

 

 

시경은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주님은 분명 김동욱과 연애하는 건 아니라 하셨지만, 시경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저 놈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공주님께서 자신도 모르게 저 놈에게 편하게 대하고 계신지도 몰랐다.

저 놈이 착각하도록.

아니다.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경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온다.

화가 난다.

왜, 저 놈은 저리도 당당한 지.

왜, 나는, 나는.........

 

 

그때였다. 공주님께서 들어오신 것은.

갑작스런 공주님의 방문에 떨리던 가슴이 지옥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불과 몇 초였다.

 

 

“오빠! 나 선 볼게. 저번에 얘기했던 그 오빠 친구랑.

날짜 최대한 빨리...........어!!!!”

 

 

선........?

선을 보신다고?

공주님께서?

 

 

시경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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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재신이가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떡할 거야?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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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이 바로 현실화되었다.

설마 했던 순간은 나를 비웃으며 너무나 빨리 닥쳐버렸다.

 

 

우리를 보신 공주님께서 눈을 감으신다.

다시 눈을 뜨신 공주님께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내 눈을 보시던 공주님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내 표정을 읽으신 거겠지.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내 온 맘으로 부르짖고 있는 이 목소리를 들으셨을까.

지금 내 목소리를 들어주실까.

내 마음의 소리를.....

내 심장의 절규를.....

들어주실까.......

공주님......제발..........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무심한 듯 다시 전하께로 옮겨가신다.

 

 

“뭐야? 이 늦은 시간에 다들?”

 

 

“이재신. 일단 너부터 얘기해 봐.

지금 무슨 소리야? 그렇게 안 본다더니, 갑자기 왜 그래?”

 

 

“그냥...뭐....”

 

 

“이상한데? 뭐, 심경의 변화가 생길 만한.......뭔 일이라도 있었냐?”

 

 

“뭐? 그런 거 없어! 무슨 소리야!!”

 

 

당황한 듯한 재신의 반응에 재하의 얼굴에는 벌써 장난스러운 표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오........뭔가가 있긴 있군.

 

 

“뭐, 좋다. 나야 좋지. 바로 연락해 놓을게.

안 그래도 그 놈 때문에 힘들었다. 계속 날 들들 볶는 바람에.

일단 시간은 그 놈이 한국 들어올 수 있는 날짜로 잡아야 하니까,

알아보고 얘기해 줄게.

아마, 이 얘기 들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들어오겠다고 난리겠지만....큭큭.....”

 

 

재하는 방 안에서 유일하게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세 사람 사이에서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두 명과 그걸 바라보는 한 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근데 누구야? 얘기 안 해 줄 거야?

솔직히 오빠 친구들 내가 거의 다 아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다는 거야?”

 

 

“그건 비밀이다. 그 자식이 절대로 말하지 말랜다.

어쩌겠냐. 나도 비밀을 지켜야지.”

 

 

“이상한...남자는 아니겠지?”

 

 

“야!! 이재신!! 너 오빠 못 믿냐? 오빠가 이상한 인간이면 친구 삼겠냐?”

 

 

“응. 솔직히 오빠도 과히 그렇게 괜찮은 남자는 아니었잖아.

항아 언니가 오빠를 구해준 거지.

그래서 오빠 친구라면 더 못 믿겠어.”

 

 

“야!!! 이재신!!!!! 내가 언제?”

 

 

“다 읊어줘? 오빠 여자 편력? 언니한테 가서 얘기해 볼까?”

 

 

“야야.....왜 이래...너.....!

왜 나한테 시비야? 해 준다 잖아. 연락한다고.

열은 다른 데서 받아 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열이라니?”

 

 

“아니다. 그냥 한 소리다.”

 

 

“난...갈게.”

 

 

재하는 시경을 흘낏 쳐다보았다.

시경의 얼굴은 거의 얼다 못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저러면서 뭘 지켜보겠다는 건지.

저 놈은 포커페이스라는 게 뭔지 전혀 모른다.

저렇게 감정이 바로바로 올라오는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재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괴롭혀볼까 싶다.

 

 

“아, 재신아 잠깐만!”

 

 

“응?”

 

 

“일단 다 있을 때 얘기하자.

나중에 나 찾아와서 괴롭힐 놈들 때문에 머리 아프거든.

선보는 날, 호위, 은시경이 나간다.”

 

 

“예?”

 

 

은시경도, 김동욱도, 그리고 재신이도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이거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재하는 점점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근위대장이 내 호위를 서?

말이 안 되잖아?”

 

 

“그럼, 김동욱이 가면 되냐?”

 

 

“어?? 어? 아...그건.....”

 

 

재신은 아까부터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김동욱 대위를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동욱 대위는 안 된다.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게다가 김동욱 대위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상처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은시경, 니가 가야겠다.”

 

 

재하는 당황하고 있는 은시경도, 입술을 깨물고 있는 김동욱도, 좀 짠해지기 시작했다.

잔인해 보여도, 지금 바로 얘기해 버리는 게 나중에 덜 골치 아플 것 같아서 바로 얘기해 버렸는데,

둘 다한테 못 할 짓 한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상하잖아. 왜 근위대장이 날 호위해?

그냥....다른 근위대원이 해도....”

 

 

“제가..........”

 

 

장승처럼 서 있던 은시경이 입을 열었다.

 

 

“제가......하겠습니다.”

 

 

“아니, 왜, 근위대장님이 호위를 해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재신은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은시경을 보자, 이내 입이 다물어졌다.

 

 

“그래, 은시경도 한다잖아.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해.

안 되는 게 어딨어? 왕이 시키면 하는 거지.

게다가 그놈 VVIP야.

그리고 알 게 뭐야? 그 자식이 부마가 될 지.”

 

 

“오빠!!!!!!!!”

 

 

“솔직히 맞잖아.

이재신 공주가 도대체 얼마 만에 남자를 만나겠다고 작정한 건데.

너 나이도 이제 꽉 찼겠다, 지금 만나서 연애질만 하겠냐?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잖아.”

 

 

“그만해! 난...난 그런 의도 아니야.

그냥........그냥........편하게 만나보려는 거야.

결혼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러셔?”

 

 

재하의 얼굴에 능글능글한 미소가 번졌다.

그걸 보던 재신의 얼굴이 이상하게 확 붉어지는 느낌이다.

 

 

“나. 갈게. 하여튼 알겠어. 마음대로 해!”

 

 

재신은 휠체어를 황급히 돌렸다.

 

 

“공주님!!!!!!”

 

 

순간 김동욱이 재신을 불렀다.

아까부터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쳐다볼 수 없었던 동욱을 재신도 이젠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한 가지만.........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김동욱은 평소와는 달리 경직된 채로 재신에게 묻고 있었다.

재신은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들고 있었다.

 

 

“네.”

 

 

“.......왜........갑자기........”

 

 

“네?”

 

 

“하아..........왜 갑자기 선보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한숨을 뱉으며 억지로 쥐어짜듯이 동욱은 질문을 던졌다.

평소와는 다른 동욱의 태도에 재신은 안절부절 못한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가볍게, 즐겁게, 그녀를 대해 왔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래도 늘 가벼운 마음으로 대해왔었다.

그만큼 김동욱은 재신을 편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동욱은.....1년 넘게 봐오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재신은 주저하다가 단호하게 결심한다.

이제 나도 정확하게 내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가 덜 되니까........

그게 저 사람을 위하는 길일지도 모르니까......

 

 

“솔직하게 말할게요.

군인이 취향이냐는 얘기도 들었구요.”

 

 

그 말에 시경이 흠칫 놀란다.

자신의 말 때문에 공주님이 선을 보시겠다는 건가.

 

 

“그리고, 군인이랑 사귄다는 이상한 루머도 있구요.

이게 다 주변에 남자라고는 군인들밖에 없으니 자꾸 이상한 얘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나도.....이제 군인 말고 민간인들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저........때문.......입니까?

제가.........공주님을.......너무 좋아해서............

그래서.........불편하셨어요?”

 

 

“동욱 씨.........”

 

 

재신은 마음이 아팠다.

동욱은 재신에게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늘 막내 동생처럼, 자신을 이뻐해 달라고, 징징대는 아이처럼

그렇게 재신에게 매달렸다.

그래서 재미있고, 또 그래서 한편으로 한심하면서도 귀여웠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이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내가 아프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공주님........군인은........싫으세요?

군인은........남자라는 느낌이 안 드세요?”

 

 

재신의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두 남자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재신은 도저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입을 뗄 수가 없다.

 

 

“어이~ 김동욱!!! 너, 이제 그만해라.

지금 이거 슬슬 위험해지고 있거든?

나, 왕이야. 왕 앞에서 말 좀 조심해야 되지 않겠어?

그리고, 재신이 넌, 이제 방에 돌아가. 늦었다.”

 

 

재하가 구원자처럼 등장해서 곤란해 하는 재신이를 구해주었다.

재신이는 한숨을 쉬면서 방을 나갔다.

 

 

재신이 나간 후, 한 남자는 흥미로워 했고, 한 남자는 충격에 휩싸여서 괴로워했고, 나머지 한 남자는 자책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어이, 김동욱!”

 

 

“예. 전하.”

 

 

“너 힘든 거 아는데, 니가 얼마나 공주 좋다고 난리 친 것도 당연히 아는데.

너 아무리 그래도 저 놈만큼은 아니다.”

 

 

“예?”

 

 

동욱은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재하와 시경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무리 니가 이 상황이 힘들어도, 저 놈만큼은 아니라고.

그건 알고 있으라고.

이제, 나가봐.”

 

 

재하의 나가라는 소리에, 시경과 동욱은 짧게 목례를 하고 나가려했다.

 

 

“어이, 은시경, 넌 나랑 이야기마저 하고 가야지.”

 

 

재하가 나가려던 은시경을 잡았다.

재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은시경을 한껏 자극해 볼 심산이다.

재하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2

 

 

 

 

 

 

 

뭐가.....이래..........

 

자신의 방에서 재신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왜 하필 그때 갔을까.

왜 하필......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중에 아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얘기하는 걸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김동욱을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도 왠지 이번엔 선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군인이 아닌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진짜 이게 전부 은시경 때문이야.....하아......

 

 

 

정말 이상했다. 은시경이라는 사람.

아직도 그 사람의 입술이 내 손목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던 그의 단단한 손길도, 내 상처 위에 부드럽지만 뜨겁게 놓였던 그의 입술이 지금도 강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재신은 궁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 자신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뛰는지,

그 뛰는 가슴 뒤로 이 말도 못하는 두려움은 뭔지,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재신은 그저 자신의 상처를 보며 생각했었다.

다리 때문에 손목을 그었다면, 참 비겁하다고.......

그래서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애가 있다고 손목을 긋는다면, 이 세상에 있는 불편한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은 얼굴도 들 수 없을 거라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자신이 왜 손목을 그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혹여나 장애 때문에 그은 걸로 사람들이 안다면,

죽어서도 평생 자신은 그 죗값을 다 갚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다리 때문에 재신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법을 배웠다.

언제든지, 주어진 것은 가져가실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행복까지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 안에 다 주어져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배워오고 있다.

그래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임을 하루하루 알아가고 있다.

 

 

항아 언니가 임신해서 태아 검사를 받을 때, 재신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건 장애아 검사와 뭐가 다르냐고,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거냐고,

재신은 흥분했었다.

재하는 그래도 왕실의 가족인데,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재신은 달랐다.

아니, 예전이라면 재신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태아가 아프다고, 태아가 장애가 있다고, 무서운 선택을 해버린다면,

지금 다리가 불편한 자신도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외쳤었다.

 

 

안 된다고! 날 더러 죽으라는 얘기냐고!!!

 

 

그런 재신의 손을 항아는 진심으로 잡아주었다.

자신은 절대로 검사받지 않겠다고,

주신 대로, 낳겠다고.

그리고 그 아이가 불편하든, 건강하든 상관없이 ‘행복’이라는 걸 선택하고 살 수 있도록 그런 엄마가 되겠다고,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항아는 재신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재신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해결된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늘 삶만을 생각했다.

자신의 삶은 신이 다시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랬다.

아까......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은 아무 문제도 없고, 자신의 상처는 없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남자 앞에서 자신은 저 내면 밑바닥에서부터 폭발해버렸다.

의식이 전혀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세계에서 재신은 아파하고 있었다.

재신 자신도 몰랐다.

자신에게 이렇게 큰 트라우마가 있는지 정말 몰랐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뭐가 그리도 힘들고 서러웠던 걸까.

 

왜 난 그에게 위로받았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손목의 상처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아픔이 재신의 무의식 속에서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로 잠겨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을 은시경이라는 남자는, 단숨에 끄집어내 버렸다.

그것이 자꾸만 재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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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취향이.....군인이십니까?

곁에 있는 군인에게.....흥미를 느끼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가지고...노시는 겁니까?

장...난감처럼.........

그렇게 처음엔 흥미를 느껴서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버리는.........

그런........장난감처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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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은 그의 말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자신이 왜 이렇게 그 남자를 신경 쓰는 건지, 도저히 재신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진짜......군인에게 흥미를 느끼는 건가.......

옆에 있는 군인에게 자꾸 집적대고 있는 건가........

그의 말처럼 내가 그러고 있는 거 아닐까.......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되었다.

어쩌면 동욱 씨도, 내가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에게 자꾸만 기대감을 줬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동욱 씨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

다리 장애를 가진 나지만, 여전히 옛날처럼 인기 있고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과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사람이 상처를 받건 말건, 난 내 자신이 여자로 어필할 수 있다는 것에만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다.

아까 은시경 씨는 그저 진중한 사람이니까, 왕실의 진정한 충신이니까

왕실의 일원인 내가 스스로 상처를 낸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을 텐데.....

나는 또다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재신! 정말 없어보이게 왜 이래?

뭘 그리 증명하고 싶니?

뭘 그렇게 여자로 보이고 싶어 해?

사람으로 인정받자며?

근데, 왜 이렇게 모두에게 ‘여자’가 되고 싶은 거니?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남자라고는 군인밖에 못 봐서 그런 게 아닐까.

새로운 남자들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

이 이상한 마음도, 동욱 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모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 행동하면, 결국에 이 문제들도 다 해결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결심했다.

저번부터 말하던 오빠 친구를 만나자고.

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군인이 아닌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는 걸로 생각하자고......

그랬더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분명 오빠 방에 들어갈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 나와서는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져 버렸다.

재신은 그 이유를 찾는 것도 자신이 없다.

아까 덜컥 내려앉던 가슴도, 아파하던 눈빛도, 사색이 되던 그 얼굴도

그저 모든 것을 모르는 척하고 싶다.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재신은 바랄 뿐이었다.

 

 

 

 

 

 

 

 

3

 

 

 

 

 

 

 

 

 

“공주님, 은시경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은시경은 재신의 방에 들어가다말고, 멈추어 섰다.

순간 자신의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만이 미친 듯이 뛰면서, 머리까지 심장소리가 울려대고 있었다.

 

재신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다.

하늘거리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계셨다.

하얀 드레스보다 더 하얀 그녀의 피부가 마치 천사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세상 어떤 드레스도, 그 어떤 옷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시경은 ‘정말’과 ‘너무’의 차이를 알아버렸다.

공주님은 정말 아름다우신 게 아니었다.

너무 아름다우셨다.

그래서 슬펐다.

 

 

그 아름다움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움은 다른 이를 위한 준비였다.

 

 

시경의 심장이 턱하고 막혀온다.

 

 

너무 아름다워서 두려웠다.

겁이 난다.

누구라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니, 나 같은 건, 눈에 들어오시지도 않겠지.

 

 

 

“은시경 씨?”

 

 

그녀가 큰 눈을 깜빡인다.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그 눈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눈이 아니다.

예전에 그녀는 늘 감정을 담고 나를 봐주셨다.

그 눈 때문에 설레어서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 눈 안에 자신만이 온전히 담겨 있어서, 너무나 벅찼었는데.

이젠 다시는 그 눈을 보지 못하겠지.

심장에 짜르르하고 고통이 지나간다.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닙니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응, 가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뜬 감정이 느껴진다.

 

 

 

 

 

 

 

 

 

재신은 휠체어를 탄 채로 궁인들과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시경은 먼저 차를 준비해 놓겠다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가 나가자, 궁인들이 뒤에서 소곤소곤대기 시작했다.

 

 

“아......진짜.....쓰러진다. 쓰러져.”

 

 

“옆에서 보니까 정말 근사하지?”

 

 

“응.응......나 진짜 오늘 잠 다 잤다.

저 간지...어쩔 거야.”

 

 

“요새 궁 남자 넘버 1이잖아.

정말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연예인이야. 완전 연예인.....아....진짜........

수트빨 봐라.......등 봤니? 등?”

 

 

재신이 흠흠...이라고 마른 기침을 하자, 궁인들은 다시 조용해진다.

이 사람들은 참 내가 다리가 불편하지, 귀까지 먹었다고 생각하는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은시경 씨 인기가 많다 싶다.

며칠 전에도 궁인들이 은시경 얘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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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대장님, 넘 멋있어.

한번 꼬셔보고 싶다. 정말.”

 

 

“니가 꼬신다고 넘어가시겠니?

차궁남 아니냐? 차궁남!!”

 

 

“뭔 소리야?”

 

 

“차가운 궁의 남자.”

 

 

“정말 어울린다. 진짜. 왜 저래 멋있니?”

 

 

몇 명이서 떠들고 있는데, 한 명이 쉬쉬거리며, 시크릿이라고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근데, 더 멋있는 건, 첫사랑 여자를 못 잊고 있대.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절대 안 변한다더라.

한 사람만 쭈욱~~! 좋아하신다는........”

 

 

“어엉...나 울 것 같아. 왜 저래 멋있어?

일편단심 민들레 형이야? 사람이 저렇게 완벽해도 되는 거야?”

 

 

“야! 근데 좋아하는 여자 있는지 어떻게 아냐?

여자한텐 눈길도 안 주는데?”

 

 

“믿을 만한 소식통이 있지.”

 

 

“누구누구?”

 

 

“누구겠냐? 염동하 대위지.”

 

 

“염동하? 그 자칭 강남 날라리?

그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

그리고 근위대장님과 친한 건 상상도 안 되는데?

과가 다르잖아. 과가!”

 

 

“몰라. 예전에 근위대장님과 늘 같이 작전했다던데?”

 

 

“도저히 난 못 믿겠다.”

 

 

“어쨌든, 염동하 대위 말로는 근위대장님께서 살아 돌아오신 게,

첫사랑한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래.

나 그 얘기 듣고 며칠 잠도 못 잤어.”

 

 

“야야!! 빨리 말해 봐!! 빨리!!! 뭔데 뭔데?”

 

 

“글쎄. 그 때 클럽 M이랑 맞서러 가기 전에,

그 첫사랑 여자한테 돌아와서 사랑 고백한다고 했대.

그걸 영상 편지로 남기셨대!”

 

 

“꺄아아아아악!!! 나 미쳐!! 왜 이래 멋진 거야?

완전 만화다! 만화!”

 

 

“근데 2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있었잖아.

정말 병원에서도 다 포기했대.

근데 그 여자한테 고백하겠다는 약속지키려고 살아돌아왔대.”

 

 

“꺄아아아아아악!!!!!! 나 죽는다!!!!!!”

 

 

 

재신은 도저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뭐, 하이틴 로맨스에 순정만화까지 버무려진 복합물이었다.

 

 

“뭐예요? 근위대장님, 무슨 테리우스야?”

 

 

“어어어!! 공주님!!!!! 다 들으셨어요?”

 

 

궁인들은 공주가 왔지만, 그렇게 경계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재신이 그들에게 편하게 대해줬다는 증거였다.

같이 수다라도 떨 판이었다.

 

 

“공주님, 근위대장님 너무 멋있어요!!!! 요즘 저희 잠을 못자요!!!

여기 궁인들 전부 맨날 근위대장님 얘기만 해요!!”

 

 

“정말 이러다 여러분들, 은시경 갤이라도 파겠어요?”

 

 

너무 난리라서 재신이 한 마디 거들었다.

 

 

“어!! 공주님 갤까지 아세요? 하여튼 신세대 공주님이세요!!

진짜...저희 그러고 싶어요.

갤러리 신청 갤러리에 가서 줄기차게 달려볼까요? 정말!!! 큭큭큭큭......”

 

 

“야! 공주님께서 갤을 모르실 리가 있니?

예전에 공주님 갤 만들었다가, 난리 났잖아. 왕실 모독이라고.....”

 

 

“아, 맞다, 맞다. 그러고 닫았었지.”

 

 

“어 진짜....그래도 근위대장님은 왕족이 아니시니까 갤 있었으면 좋겠다.

은시경 근위대장님 갤 만들어놓고, 갤주로 신봉하며, 핥고 싶어요. 으으윽......

이름까지 은시경이에요. 정말......미쳐.......”

 

 

재신은 이 분위기는 뭔가 싶어서 기가 찼다.

 

 

“이상해. 진짜. 그 사람 답답하기만 하던데, 뭐가 그렇게 좋아요?”

 

 

“공주님!! 진짜.....남자를 모르시네요.

남자는 그야말로 그 답답한 맛이에요.

자기 여자한테만 올인하고, 다른 모든 여자는 아웃시키는.....

그러면서 일할 때는 완전 상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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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자라......

 

재신은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은시경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흐트러짐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이 서 있는 모습. 그야말로 군인이었다. 대한민국 군인.

 

 

XX 호텔에 도착했다.

은시경은 휠체어를 꺼내 와서 옮겨 앉는 재신을 도왔다.

그러면서 인이어를 끼고 근위대원들에게 지시내리고 있었다.

 

 

“일단 공주님께서 들어가시면, 그 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 다 감시해.

휴대폰 들고 찍고 있으면, 다 압수하고.”

 

 

“예. 알겠습니다.”

 

 

저 모습이 궁인들이 말하는 상남자라는 건가.

그가 하는 모습을 재신은 지켜봤다.

 

 

“은시경 씨”

 

 

“예.”

 

 

“안에는 눈에 안 띄게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근위대원들, 밖에 있으면 안 될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

 

 

“로비 지나서, 내실 쪽으로 들어갈 때는 나 일어서서 가고 싶어요.”

 

 

“예?”

 

 

“은시경 씨 오른팔 좀 빌려줘요.”

 

 

 

 

 

 

 

 

 

4

 

 

 

 

 

 

 

 

 

 

 

호텔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밖에 근위대원들은 일제히 서 있었다.

안으로는 시경과 재신만 들어갔다.

시경은 재신의 휠체어를 천천히 밀면서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몇 명이 수근대기는 했지만, 딱히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경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지켜보고 있었다.

 

 

“은시경 씨, 나 여기서부터 걸어갈게요.”

 

커피숍 안에 내실처럼 마련된 곳 앞으로 오자, 재신은 일어섰다.

시경은 재신의 손을 잡고 그녀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지탱해주었다.

그리고 저번에 재신에게 배운 대로, 그녀가 쉽게 팔짱을 낄 수 있도록 오른손을 자신의 배 근처에 붙였다.

재신은 그런 그에게 팔짱을 끼면서, 풋~하고 작게 웃음을 지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뭔가 자신이 잘못한 건가 싶어서 은시경은 당황하며 공주님께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요. 배운 대로 잘 하네요. 훗~”

 

열심히 배운 대로 하려는 은시경의 모습이 재신을 웃게 만들었다.

분명 궁인들은 상남자라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이 남자, 꽤 귀여웠다.

 

 

참 그러고보니, 이 남자 잘생겼다지? 그런가?

 

 

재신은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왜...왜....그러십니까?”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은시경은 얼어버렸다.

 

 

“은시경 씨........그러고 보니, 잘생겼네요.”

 

 

“예...예?”

 

 

놀라서 옆을 보니, 공주님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따뜻했다.

 

시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눈빛을 알고 있다.

성곽에서 보여주던 눈빛, 그 눈빛이었다.

장난을 가득 품고 있었지만, 따스함이 가득했었다.

공주님께서 지금, 그 눈빛을 내게 보여주시고 계셨다.

 

 

“어...어!!!”

 

 

공주님이 잠시 비틀거렸다.

시경은 왼팔로 급히 공주님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요. 여기서 넘어지면, 이건 정말 뉴스 특보감이야.

딴 짓하면 안 되겠다. 은시경 씨 놀리다가 벌 받을 뻔 했어요. 훗”

 

 

공주님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아이가 첫걸음마를 떼듯이 천천히 한 걸음 씩 걸어갔다.

시경은 그에 보조를 맞춰 가며, 천천히 움직였다.

 

 

“근데요. 은시경 씨. 남들이 우리 보면 웃기겠다.”

 

 

“예?”

 

 

“왠지.......신랑, 신부 같지 않아요?

오늘 은시경 씨도 검은 색 수트고, 나도 하얀 드레스잖아.”

 

 

그녀가 웃는다.

마치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온전히 나를 보고 웃는다.

그래서 착각에 빠지고 싶다.

정말 어느 미래에 한 장면이라고......

나만을 위해 웃는 그녀와 함께, 평생을 그녀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또 그녀를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꿈이라고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한 장면이라고.......

저기까지만, 저곳까지만,

그렇게 착각하며 걷고 싶다.

 

 

내 사람, 내 여자.......

 

 

시경은 왼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꾹 누른다.

 

 

현실은,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데려가는 길이다.

시경은 왼손에 힘을 준다.

 

 

 

 

 

 

“헉헉........”

 

 

“괜찮으세요? 공주님!”

 

 

“응. 괜찮아요. 생각보다 좀 거리가 길었어요.

20걸음 정도일 줄 알았는데, 더 됐나봐.”

 

 

공주님은 또 씩씩하게 웃어보이신다.

아주 많이 웃으신다.

돌아와서 당신의 웃음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제 복이겠지요?

 

 

“어어어? 은시경 씨 지금 웃은 거죠? 그죠?

나, 은시경 씨 웃는 거 처음 봐.

정말, 궁녀들이 뻑이 갈 만하네.

계속 그렇게 웃어요. 웃으니까......진짜 잘생겼다. 훗”

 

 

시경은 그 말도 아프다.

웃는 모습을 예전에도 못 보여드린 듯해서, 늘 심각하게 찌푸린 모습만 보여드린 듯해서 자꾸 마음이 시리다.

지금도 많이 웃지 못하는 자신이 자꾸만 원망스럽다.

 

 

“근데, 나...많이 이상했어요? 좀 자연스럽게 걸었어요?

사람들...많이 쳐다봤을까요?”

 

 

“걱정되세요?”

 

 

“언제나 그래요.

당당해야 하니까.......그래서 늘.....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나오면 부담이 돼요.”

 

 

많이 좋아지신 듯해도, 공주님은 여전히 떨고 계셨다.

 

시경은 무릎을 꿇는다.

약간은 떨리고 있는 그녀의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 안에 온전히 내가 들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모습을 하시건, 늘, 언제나, 멋지셨습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빛나십니다.”

 

 

쿵.............

 

재신의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이거 뭐야? 이거 뭐지?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뛰기 시작한 심장을 눌렀다.

 

이 사람 뭐야.........도대체...........

 

 

 

 

 

 

 

 

 

 

 

 

 

 

 

 

“이재신 공주님...........”

 

 

둘의 시간을 깨고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네. 어어어? 이, 상, 우?”

 

 

무심하게 얼굴을 돌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반가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상우 오빠? 와...세상에 세상에...이게 뭐야!!!”

 

 

“너 놀래켜 주려고........일부러 말 안 했어.

어, 일어나지마!!!

공주님께 무릎 꿇고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지.”

 

 

그는 무릎을 꿇고 재신의 손을 잡고 그 손에 키스했다.

공주님은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너무나 환한 미소.

그 미소 때문에 시경은 아프다.

 

 

아까, 봤었다.

분명 일찍 와 있었다.

걸어오는 중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을 스캔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다.

공주님을 뚫어지게 보던 한 남자.

 

 

그는, 공주님이 앉으실 때까지 기다리신 거다.

공주님께서 보여주기 싫어하는 모습일 거라 생각하고 스스로 피해준 거다.

방금도 그는 공주님이 일어서시지 않게 배려했다.

자신이 스스로 무릎을 꿇어 자연스럽게 공주님을 배려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공주님께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오는 시경의 귀에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 왔어? 나, 오는 거 봤어?”

 

 

“아니, 방금 왔어.

내가 감히 우리 공주님을 기다리게 했네.

용서해 주세요. 공주님.”

 

 

“뭐야? 아직 시간도 안 됐는데, 뭘 기다려.

나도 방금 왔어.”

 

 

 

마법 같은 시간은 끝났다.

2년 전을 빌려왔던 시간은 성큼성큼 현재로 대체되어 버리고,

시경을 더욱더 잔인한 시간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품어서는 안 될 꿈을 품고,

감히 품어서는 안 될 기대는, 그 기대가 사라지고 난 후를 더 잔인하게 만들었다.

 

 

 

 

 

 

“왠지.......신랑, 신부 같지 않아요?

오늘 은시경 씨도 검은 색 수트고, 나도 하얀 드레스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심장을 휘감으며, 시경을 난도질한다.

기대했던 만큼, 설레고 들떴던 만큼,

고통은 가차 없었다.

기대했던 만큼, 설레고 들떴던 만큼,

그 이상으로 상실감은 더 클 뿐이었다.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자신의 욕망을, 시경은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그 지옥과 같은 자리를 버텨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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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습니다.

3일 간 틈틈이 열심히 썼지만, 직장 일에, 현충일 은시경 멘붕에,

이래저래 쓰기 참 힘든 회였습니다.

그치만 26장이니 용서해 주시길.....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와 주시고, 엄청난 조회수를 올려주시고,(무섭습니다.;;)

격려와 위로의 댓글 주셔서 감사해요. ^^

 

 

내용 상에서 나오는 임신했을 때 태아 검사 얘기는 저희 새언니와 연관된 얘기기도 합니다.

저희 새언니가 특수교육을 전공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왜 검사를 하냐고, 저 검사를 한 다음에,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아이는 죽어야 하느냐구요.

그리고 언니는 두 아이 다 검사를 받지 않고 낳았습니다.

우성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합니다.

그저 각자의 믿음대로 살겠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태아일지라도 그 인생을 함부로 규정할 수는 없는 거라고 믿고 살고 있습니다.

재신 공주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재신 공주님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 부분이 참 많이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넣어보았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 하나 더 수정해서 넣습니다. 꼭 읽어주시길....

    사실 기형아 검사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면서 쓰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실제 산부인과 의료 상황에 비추어보면, 생각이 짧았던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기형아 검사는(저도 받았습니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기 위해서 받는 검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초기에 치료해서 건강한 아이를 낳도록 도울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 써놓은 부분(새언니와 연관된 부분)은 검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검사를 받고 나서 부모의 태도의 문제인 듯합니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했을 때, 그리고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면,

    아이를 낳으려고 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결국 검사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의 문제인 듯합니다.

   

    재신이는......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저희 새언니도, 자신의 친동생이 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마음을 가졌던 거겠지요.

    제일 중요한 건, 검사를 받되, 빨리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받고,

    혹여, 치료가 불가능해서 아이가 불편하게 태어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전....솔직히 예전에 주변에서 태아를 포기하는 경우를 봤거든요.

 

    여튼, 여러모로 짧은 소견으로 사실을 어지럽힌 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위의 상황은 제 글을 읽어주신 산부인과 전문의께서 정성어린 댓글로 설명해 주신 부분입니다.

 

    이래저래 송구합니다. (__)

 

그리고, 김동욱 대위는, 제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ㅠㅠ

공주님이랑 같이 나온 <민들레 가족>에서 완전 괜찮은데,

제 글이 비루해서 이 괜찮은 배우를 이상하게 그린 듯해서 마음이 아파요.

제 글에 나오는 모든 남자 배우는 제 개취라능.....

이상우 역시 너무 좋습니다.

다들 멋있게 그리고 싶은데, 제 필력이 모자라서 이 모양이라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여전히 은시경과 공주님 때문에 힘든 저에게 댓글로 살짜기 위로의 발자취 남겨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