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9 - 감사

그랑블루08 2012. 6. 25. 01:41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9

 

 

 

 

 

+) 배경음악을 꼭 틀고 봐주세요.

1. 이적 - 다행이다

2. 더킹ost - Lovely Yours

 

 

 

 

 

 

 

 

<윤찡갤 시경재신 횽 짤- 감솨감솨>

 

 

 

 

1

 

 

 

 

 

 

 

 

 

“제가, 싫으십니까?”

“그게 아니시라면, 제가 공주님......모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가 모르는, 그녀가 절대 알 수 없는 나만의 데이트.

늘 부정하던 내 마음을 처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그 성곽에

나와 함께 가주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와 함께 이곳에 또다시 오게 되었다.

 

 

그날처럼 그녀와 나는 나란히 성곽에 앉았다.

그녀가 내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때는 해 주지 못했던, 하고 싶었으나 땀내 나는 자켓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는 것이 더 불경스러운 짓인 것 같아서 하지 못했던,

그 일을 그녀에게 해준다.

그나마 오늘은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아 다행이다 싶어서 자켓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모르겠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나는 참 답답한 인간이다.

이런 작은 행동들도, 오로지 그녀에게만 하고 싶다.

아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웠다.

함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다.

오로지 자신의 여자에게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배웠다.

옷을 덮어주는 작은 행동도 내게는 그러했다.

담요가 아니라 내 옷을 벗어서 준다는 것은, 내겐 마음을 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걸쳤던 옷을, 내가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녀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내게만 의미 있는 일이다.

오로지 내게만.

 

 

그녀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옷을 벗어 바닥에 깔던 나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던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날....얼마나 그녀의 어깨에 내 옷을 덮어주고 싶었는지.......

 

 

그녀가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흔든다.

그때도 그랬다.

그 날도 발을 앞뒤로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셨다.

아이 같이 맑은 모습이 그렇게 내 가슴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한동안 멈춰있던 그녀의 다리가, 그녀의 발이 흔들린다.

자신의 힘에 의해서 흔들리는 그녀의 발이 이상하게 뭉클하게 한다.

 

 

2년은.....정말....긴 시간이었다.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이.....그렇게 착각이 들게 할 만큼,

그래서 자꾸만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을 만큼,

그 날, 그 때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다시 돌아와서, 그녀의 곁에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어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녀가 물었다.

이곳에서 별똥별을 보며 기도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사람이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이냐고 묻는다.

 

 

예. 공주님께서 그러셨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속에 묻어두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본다.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니 점점 몸이 굳는 것 같다.

나를 빤히 보고 계시는데, 도저히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런 긴장감과는 별개로, 가슴에 바람이 인다.

심장에도 간지러운 바람이 인다.

 

 

“별.....안 보십니까?”

 

 

“네? 네. 볼 거예요. 흠흠......”

 

 

내 말에 당황하신 듯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 모습도 귀엽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자꾸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다 잊고, 그저 그녀만 보고 싶게 만든다.

그 순간 별똥별이 떨어졌다.

웃기게도 나는, 공주님께서 빨리 소원 빌라며 내 팔을 치기도 전에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다.

미신이라며 믿지 않는다고 했었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돌아와서 하겠다는 그 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 제 곁에 있는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말하고 싶습니다.

 

 

웃기게도 내 마음 속으로 외친 ‘사랑한다’는 말이 울컥하게 한다.

 

 

 

 

 

 

 

 

 

 

그녀는 그때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다.

그날도 그랬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녀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자석에 끌린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한 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품으며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동일하다.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자꾸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내 의지대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도록, 나는 마치 처음부터 그녀만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그녀 앞에서 무장해제 되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너무나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나의, 공주님.

 

 

밖으로 내뱉지도 못할 말을 안으로만 삼킨다.

그녀를 향한 숱한 말들이....심장에 자꾸만 새겨진다.

그녀가 돌아본다.

그녀의 눈에 내가 보이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에도 내가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리석은 바람도 가져본다.

 

 

그래서 그녀에게 내가 빈 소원을 아주 살짝 비춰서 내어본다.

 

 

“약속........지키게 해 달라고.......빌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고통의 시작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녀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얘기한 건지, 내 약속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다.

그리고는........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왜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대요?”

 

 

그녀의 입으로, 그녀가 직접,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느냐고 물었다.

돌아와서 가장 힘든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잊고 싶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잊고 싶었던 사실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놓았다.

 

 

“안 돼요. 은시경 씨. 그러지 마요.

너무 그 사람만 생각하지 마요.

자기 자신도 생각을 좀 해요.”

 

 

그녀가 내게 접지 말고 고백하라고 하신다.

그 사람 사정만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내가 만약 그녀에게 내 마음을 말하면, 뭐라고 하실까.

그녀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나 자신만을 위해서 고백한다면, 뭐라고 하실까.

당신이 나를 좋아했으니,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나 나는.......그럴 수가 없다.

 

 

“은시경 씨, 그래도 고백해요.

그래야 은시경 씨, 가슴에 맺힌 거라도......조금은 풀릴 거잖아요.”

 

 

“그 사람이......부담스러울 겁니다. 제 마음.

이미....오래 전 일이니까.........기억도.......안 날 테니까.......”

 

 

“그런 게 어딨어요? 여자는...아니에요. 절대로...그럴 수가 없어요.”

 

 

“공주님.......”

 

 

“나 솔직히 그 여자분도 이해가 돼요. 그 여자분도 은시경 씨 죽은 줄 알았을 거잖아요.

그러니까...죽도록 괴로워하다가 다른 사람 만난 거겠죠.

그래도, 은시경 씨 그 사람한테 고백해야 돼요.

은시경 씨 자신을 위해서도, 그 여자분을 위해서도 반드시요.

은시경 씨........이렇게 내놓지 못하면, 평생 상처가 될 거예요.

아물 기회조차 없이, 상처만 더 깊어질 거예요.”

 

 

아물 기회.......그런 걸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내 가슴에 생채기가 나고, 상처가 깊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힘든 것이 아니다.

지금....나는, 내 마음이, 내 사랑이, 당신에게 부담스러울까봐, 혹여 드러나서 당신을 당황하게 만들까봐 그것이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잠시라도 당신을 보지 못할까봐, 그래서 내가 그녀 곁에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까봐,

그것이 가장 무섭다.

그러나 그 다음 나온 그녀의 말에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은시경 씨, 그럼, 나한테 고백해 봐요.”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고백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내가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른다.

 

 

“알아요. 은시경 씨. 그런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는 것도 싫어하는 거.

그치만, 이러다 속에 있는 말, 단 한 번도 못하고 이렇게 고통만, 상처만 쌓이면 어떡해요?

나한테라도 연습 삼아 얘기해 봐요.

말에는 힘이 있대요. 입 밖으로 내놓은 말 때문에 은시경 씨가 용기를 내서 그 여자분께 가서 고백을 할지도 모르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시험해 봐요.

어느 정도인지....그 여자분에게 가서 그래도 고백하고 싶은지.......

아니면, 나한테 연습해본 걸로 접을 건지........”

 

 

그녀는 내게 상담하듯이 연습해보라고 한다.

내 상처를 꺼내보라고 한다.

그녀는 아마 내 상처가 덧나지 않게 자신에게라도 얘기해 보라는 거였을 것이다.

그녀의 말이 나를 흔들리게 한다.

그녀에게는 연습이지만, 내게는 바로 실전인 이 상황.

진짜 고백할 수 있는 이 상황.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게 고백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알아듣지 못하는 고백을 하고, 그 말의 힘 때문에 진짜로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가 알아듣지 못해도, 난 그녀에게 고백한 걸로 만족하며 적어도 나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 되었든, 난....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정말 단 한 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직접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인생에 단 한 번은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닐까.

 

 

목이 탄다. 저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적어도 한 번은......나도 이 정도의 사치는 누려도 되는 게 아닐까.

 

 

“얘기하기 힘들면, 못 들은 걸로.......”

 

 

“정말.........”

 

 

“네?”

 

 

“정말, 고백해도......되겠습니까?”

 

 

그리하여 나는 그 말을 던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물었다.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드러내도 되는지, 내 마음을 고백해도 되는지.......

 

 

그녀가 들어주겠다며 눈을 감는다.

감은 두 눈 위에 속눈썹이 가늘게 떨린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뺨이 빛이 난다.

촉촉하고 붉은 입술은 긴장한 듯 다물어져 있다.

 

 

아름답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정말 욕심을 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프다.

그 사람이다 생각하고 얘기해 보라는 그 말이 아프다.

 

 

당신입니다. 공주님. 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말이 되지 못한 내 고백은 가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좋아했습니다.

그때, 저를 좋아한다고 얘기해주셨을 때, 제가.....거짓말을 했습니다.

호기심일 거라고, 놀리지 말라고 얘기했던 거.........사실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싫증나실까봐, 제 마음을 들켜버리면, 내게서 마음이 돌아서실까봐,

아닌 척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속상해서라도, 절.......바라봐주실 거 같아서,

조금은....더......신기해하실 것 같아서,

그러면 당신의 시선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거짓말 했습니다.

제 마음을 당신께 들키면, 당신은 정말로 돌아서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그 시간을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시선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오래 잡고 싶었습니다.

 

 

제가 죽은 줄 알았을 시간동안

당신이.......얼마나 힘들었을지.....압니다.

그러니 이 이후의 시간들은 저 역시 달게 받겠습니다.”

 

 

고백......

내 마음의 처음을 내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말한다.

겁쟁이 같았던 내 처음을 그녀에게 보였다.

말로는 늘 싫증나실 거라며, 놀리지 말라며 얘기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뒤에서 떨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녀의 고백에 벅찼는지, 그러면서도 곧 그 관심이 사라질까봐 얼마나 두려웠었는지.

 

 

그리고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

너무나 죄송했던 그 말을 전했다.

당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었던 그 순간들을.....알고 있다고,

그래서 그 이후의 시간은 죗값처럼 달게 받겠다고,

그렇게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적어도, 나는 그녀보다 나으니까,

그녀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녀를 이렇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까,

나는 죗값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목을 본 날,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그녀 스스로 상처를 낸 것을 보고, 그래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었던 그 생채기를 직접 보고,

남겨졌던 그녀의 아픔을 아주 조금은 엿본 것도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 불경스럽게도, 그녀가 아파한 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 때문에 아팠던 것 자체가 그렇게 죽을 만큼 괴로웠던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녀가 정말로 나를 사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도리어 가슴이 뛸 만큼 감사했다.

물론 그녀의 고통이 느껴져 가슴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내가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것은, 사실은 그녀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없는 세상이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공간 때문이었다.

 

 

숨이 막혀왔다.

그녀가 세상에 없다면, 나 혼자 남겨졌다면,

나는 살 수 있을까.

이렇게 빛나는 그녀를 볼 수 없다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없다면, 나는 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그녀가 고마웠고, 동시에 미칠 듯이 고통스러웠다.

그녀가 살아 있는 만큼,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그녀를 느낄 수 있는 만큼,

내가 보지도, 만지지도, 듣지도 못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슴이 타는 듯, 괴로웠다.

 

그러니 나는........그녀가 살아있기만 하다면, 모든 시간들을 달게 받을 수 있다.

살아 있으니까,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

그녀가 살아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가슴이 자꾸 울컥한다.

 

 

“전........전.........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번 정해진 길은..........목숨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 길만 보고, 그 길만 생각하고, 그래서 그 길로만 갑니다.

제 길은.......제 길은.........당신입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을 수도, 다른 길로 갈 수도 없습니다.

운명처럼 당신이 왔으니, 운명처럼 저는 당신을 향한 길로만 갈 겁니다.

비록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길로 간다 할지라도,

저의 길은.......오로지 당신입니다.

 

 

당신은 제게....첫사랑이 아닙니다.

첫사랑은.......다음 사랑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제겐......그런 건 없습니다.

처음도 당신이어야 하고, 다음도 당신이어야 합니다.

 

 

한 번 정해진 길은.....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제 평생..........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 당신만 보며, 당신만 생각하며,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행여, 당신이 힘드실 때, 당신이 외로워지실 때,

행여, 돌아보신다면, 늘 그곳에 제가 있을 겁니다.

당신이 돌아볼 수 있는 그곳에 늘........서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내 길을 고백했다.

내 길은 당신이라고, 나는 언제나 한 길로만 갈 거라고, 그 정해진 길을

운명처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갈 거라고, 내 마음을 보였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면 된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돌아보시면 보실 수 있는 그 자리에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감추어진 또 하나의 진실은........당신이 돌아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혹여, 당신이 힘이 드신다면, 혹여 당신의 길이 아니라고 느껴지신다면, 외롭고 힘들어지신다면,

이런 나라도 괜찮으시다면, 내게 오셔서 쉼을 누리시라는 것이었다.

 

 

아니다. 이것도 너무 미화된 것이다.

내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은 이것이 아니다.

그녀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혹시 그 사람과 행복하시지 않다면,

혹은 그 사람이 먼저 공주님을 떠나신다면,

그래서 혼자 남겨지시게 되었을 때,

내게로 와 달라고, 나는 당신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평생,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돌아봐 주실 때까지, 내 평생 기다리겠다는 그런 말이었다.

 

 

내게는 그래서 첫사랑이란 단어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내게...당신 외에 다음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내 평생 기다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 때가 황혼 무렵이어도 좋다고,

단 하루라도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그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아.....그런데.........정말 말은 힘이 있었다.

이 거지 같은 고백도 아닌 고백이, 점점 진짜 고백이 되어갔다.

내 가슴으로, 내 심장으로 하는 진정한 고백이 되어갔다.

마치 그녀가 자신을 향해서 하는 고백임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마음이 바뀌어 간다.

그래서 욕심이 난다.

 

 

그녀의 눈을 보며 고백하고 싶다고,

적어도 사랑한다는 말은....그녀의 눈을 보며 하고 싶다고,

 

빌었다.

 

 

공주님께서 눈을 뜨고 나를 좀 봐주시기를...

내 눈 속에서 내 마음의 진실을 알아봐주시기를.....

 

그렇게 빌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온전히 내가 있다.

그녀의 눈이 젖어간다.

간절한 기도가, 간절한 바람이.....기적을 낳은 것이었다.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올라온다.

 

 

이 말을 하는 데,

이 말을 당신의 눈을 보며 하는 데,

그래서 이 말을 듣는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는 데,

2년이 걸렸다.

너무나 하고 싶었다.

가슴에서 터져나가듯이 나오는 이 말을......진정으로 하고 싶었다.

때로는 이 말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랑한다...는 이 말을.........

 

 

“사랑합니다.

나의 과거이자, 나의 현재이자, 나의 미래인......나의 아름다운.......당신을.......

별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이 깊은 고백이 말이 되어 나오는 데 2년이 걸렸다.

그런데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실체가 되어버린다.

언어가 실체가 되어 그녀에게 간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내 사랑이 전해졌다.

 

 

“사랑합니다........

별처럼 빛나실 수 있게 제가 당신의 어둠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어두움은 제가 다 가져가겠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빛나세요.

당신이 빛나시는 그곳에, 그 뒤에 제가 늘........있겠습니다.

제가 있다는 거, 모르셔도 됩니다.

어둠 같은 거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아름답게 빛나기만 해 주세요.

빛나는 당신을 보면서, 제 평생.....그렇게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짧은 순간이나마, 당신의 마음을 받은 적이 있었노라고,

당신의.....입술을........가진 적이 있었노라고,

그래서 사랑한다고 감히 말해 본 적이 있었노라고.......

그렇게......아름다운 당신을 보며 살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때문에 자꾸만 울컥한다.

빛나는 당신 뒤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내가 어두움을 다 가져가서, 당신이 마음껏 빛나실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빛나는 그녀를 평생 기다리며, 가슴 가득 차오르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그녀의 시선을 받고,

그녀의 사랑을 받고,

그리하여 그녀의 입술을 가지고,

지금, 그녀에게 감히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하늘이......내 기억을 가지고 가시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 기억을 가지고 가셨다면, 나는......살아갈 이유가 없다.

굳이 꼭 그녀와 나의 기억 중에 가지고 가셔야 했다면,

그녀의 기억을 가져가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녀의 아픈 기억을 다 가져가셔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을 가지고 가지 않으셔서 정말 감사한다.

적어도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그녀의 마음을 받고, 그녀의 입술까지도 욕심내 본 적이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말도 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한 기억 없이 그녀를 지켜보며 사랑한다면, 너무나 아팠을 테니까,

지금 이 기억을 가진 것에 정말 감사한다.

 

 

기억을 잃고 왔더라도,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또 봐도, 또 봐도, 나는 그녀를 또 다시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

내게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녀의 마음을 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기억을 가지고 감사하며, 그녀를 평생 기다릴 수 있다.

 

 

내 앞에 살아 있는 그녀가 있어서,

그리고 내 가슴 안에 그녀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존재해서,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은....시......경 씨........"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입으로 듣는 내 이름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하아...........사랑합니다......."

 

 

그녀 앞에서 나는 봇물처럼 터져버린 내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그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청난 감동을 준다.

한번 터져버린 내 사랑은 자꾸만 고백하게 만든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녀가 없는 곳에서 말했던 ‘사랑한다’는 말과 지금 그녀 앞에서 그녀의 눈을 보며 고백하는 ‘사랑한다’는 말의 강도는 너무나 크게 차이가 났다.

한번 터져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사랑이,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말은 힘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그 벅찬 말은 밖으로 나와서 내 심장을 두드려대고, 내 온 몸을 흔들면서 그녀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기적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나라면 말이에요. 나라면, 내가 그 사람이라면,

나 한번쯤은 다시 돌아볼 거예요.

당신이 죽은 줄 알고, 다른 사람 만난 거잖아.

그러니까.....당신이 살아 돌아와서,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걸 알면,

반드시 돌아볼 거예요.

나라면, 당신을 돌아볼 거라구요."

 

 

".......진짜......그러실 겁니까?"

 

 

"네?"

 

 

"만약에...정말 만약에 공주님이시라면,

한번쯤은 절.....다시......다시 생각해 주실 겁니까?"

 

 

그녀가 돌아봐주겠다고, 다시 봐주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다.

나라면 돌아볼 거라고....나라면.......

나의 고백은 기적을 가지고 왔다.

말이 된 ‘사랑’은 그녀의 마음까지도 두드려주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그녀 스스로 돌아봐주겠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알지만, 그녀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로 공주님이라면, 돌아봐주실 건지,

나를 한번은 다시 생각해 주실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또다시 흘렀다.

그녀는 기적처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치 내 고백을 알고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 하는 고백인지 아는 것처럼,

그녀는 내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간절하고 두려웠던 마음은, 이내 벅찬 감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 손은 이미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내가 잡고 있던 모든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오늘 하루만 미치고 싶다고, 이 사람에게 미쳐버리고 싶다고,

욕망이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서......하세요......."

 

 

"네? 무슨.........!!!!!!!!!!!!!"

 

 

 

 

 

 

 

 

 

 

 

 

그렇게 나는 미쳐버렸다.

놀라는 그녀의 입술을 가져버렸다.

 

 

기억한다. 그 날, 그녀의 입술을 가졌던 그날.

그녀의 입술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그래서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 가슴에 남아있던 기억은, 내가 지금 맛보는 그녀의 입술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은 훨씬 더 사람을 미치게 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달콤해서, 저 아래에 감춰두었던 본능이 자꾸만 꿈틀댄다.

머리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공주님이 놀라시는데,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하지만, 이미 내 안의 본능은 제어가 안 된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내 본능은 이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보다 더 더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 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녀를 더 깊이 가지고 싶다고.......

그렇게 나는 그녀를 더 욕심내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괴로워하시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잠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놓아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맛본 그녀의 입술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대로 그녀를 놓을 수가 없었다.

 

 

“은시.....흡!!!!!!!!!!!”

 

 

나를 저지하려는 그녀의 입술을 다시 머금었다.

놀라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입술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내 본능은 무섭도록 집요했다.

자꾸만 멀어지는 그녀의 혀가 나를 애타게 했다.

그래서 더욱 더 그녀의 혀에 집착하며 얽혀들었다.

놀라는 그녀가 느껴졌다.

그녀가 무서워할지도 모른다.

나의 이성은, 아직 살아있다는 듯이 자꾸만 경고를 해댄다.

그녀가 무서워한다고, 그녀가 싫어한다고......

그러나 내 본능은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만큼 달콤해서, 내 머리 위까지 전기가 흐르듯이 자르르해서,

나는 그녀를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도망가려는 그녀의 허리를 안아서 더 가까이 내게 붙였다.

그녀의 혀를 휘감고, 얽혀들면서, 그녀가 숨이 차서 헐떡일 때까지 밀어붙였다.

 

 

나를 밀어내던 그녀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머리를 흔들며 내게서 피하려던 그녀의 얼굴도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내게 가만히 몸을 맡겨왔다.

그래서 나도 천천히 그러나 깊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내 두 입술로 빨아당겼다.

그녀의 입술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촉촉하고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심장을 자꾸만 간질거리게 한다.

그녀의 입술을 혀로 맛보며, 나는 다시 그녀의 입술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여전히 수줍은 그녀의 혀를 만나 천천히 얽혀들었다.

바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혀를 조심스럽게 애무하며, 그녀와 섬세하게 마주했다.

 

 

키스가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것인지,

얼마나 야한 것인지, 나는 지금에서야 느끼고 있었다.

저 깊숙한 본능까지 끄집어낼 정도로, 그녀의 입술은, 그녀의 혀는 야했다.

헐떡이는 그녀의 숨소리도, 그녀의 한숨소리도, 그리고 야수같은 나의 본능의 소리도,

모두 너무나 원초적이게도 자극적이었다.

 

 

도저히 그녀를 놓아줄 수가 없었다.

입술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녀의 혀와 얽혀들면 얽혀들수록,

본능은 더 미치고 있었다.

더 가지고 싶다고, 도저히 그녀를 놓을 수 없다고,

더 깊이 그녀를 안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녀가 또 한 번 고개를 흔들며, 나를 밀어내었다.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그녀의 입술 때문에,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상실감을 맛보고 있었다.

 

 

"하아...하아....은...시경 씨.

그만.......지금.......착각하고 있어요.......그러니까..........헉!!!!!"

 

 

착각이라는 그 말에 다시금 울컥한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의 입술로 달려들었다.

 

 

 

 

 

 

 

 

 

2

 

 

 

 

 

 

 

 

착각.........

 

그래 그는 착각하고 있다.

재신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반항도 하고, 벗어나려고도 했지만, 그는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너무나 집요하게 얽혀들며 탐하는 그의 입술에 재신도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몸의 감각이란 감각이 전부다 일어서 있는 것 같았다.

자릿하고 자글자글한 감각들이 온 몸을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재신의 입술을 놓아주질 않았다.

아니,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더 깊이 들어오고 있었다.

강도는 더욱 세지고, 정신을 잃을 만큼 자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재신의 입술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것은 자신이 듣기에도 뭔가 낯 뜨거운 것이었다.

너무나 본능적인 그 소리에 재신은 스스로가 전기가 통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지금 내가 왜 이러지?

 

 

재신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가 지금 입맞추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가 고백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 생각은 순식간에 재신을 차갑게 식혀버렸다.

차가운 이성이 순식간에 재신을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아, 그래.......그가.....착각하고 있구나......

 

 

심장에 싸한 기운이 퍼진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를 밀어내었다.

 

내게서 떨어지면서도,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천천히 그가 눈을 뜬다.

그 눈이 뭔가 열에 들떠 있는 듯하다.

그에게 어서 착각이라고 말해야 한다.

정신차리라고 말해야 한다.

 

 

"하아...하아....은...시경 씨.

그만.......지금.......착각하고 있어요.......그러니까..........헉!!!!!"

 

 

착각이라는 말에, 그가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강직한 군인으로 돌아와, 안절부절 못하며, "죄송하다" 정도는 얘기할 줄 알았다.

그러면, 괜찮다고, 착각할 만했다고,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니, 내가 고백해 보라고 했으니, 내 탓도 있다고,

물론 당신은 지금 아주 큰 중죄를 저질렀지만, 이번만은 덮어주겠다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착각이라는 내 말에, 그의 눈빛이 강하고도 단단하게 변했다.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마치 상처받은 것처럼,

그의 검은 눈동자가 더 더 깊고 검게 변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내 허리를 잡아 당겨, 내 입술을 덮쳤다.

그는 마치 야수처럼, 미친 듯이 거칠게 다가왔다.

부드럽지만, 거칠고, 본능적이었지만 자극적으로 내 입술과 혀를 가졌다.

자꾸만 정신이 아득해진다.

알면서, 다 알면서, 나는....이 키스의 주인이 내가 아닌 걸 알면서,

자꾸만 이 남자의 입술에 빠져든다.

뒤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자꾸 현실감을 놓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공주님, 어디계세요? 공주님!!!!”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 수 없으나, 한참 만에 그 소리가 동욱 씨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 입술을 탐하고 있는 이 사람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목소리에 놀라서 이 남자를 강하게 밀어냈다.

그도 놀란 듯, 순간 경직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내 팔을 확 잡아당기며, 자신의 품에 안아버린다.

 

 

“아!!!!! 은시경 씨!!!! 지금!! 뭐하는.....”

 

 

“잠시만요. 공주님. 잠시만 이렇게 있어 주세요.”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더 자기 가슴 안으로 끌어 안았다.

지금 동욱 씨가 올 텐데........자꾸 불안해지는데,

이 남자는 지금 나를 자기 품에 안고는 더더 끌어당긴다.

분명 이 남자를 떼내어야 하는데, 지금 뭐하는 거냐고...공주가 우습냐고....

한 소리하고 뺨이라도 한 대 때려야 하는데,

나는 지금 바보 같이 그의 품에 안겨 있다.

 

 

하아...........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그에게,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쉬는 그에게,

그리고 그 숨소리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에게,

도저히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내 잘못일지도 몰랐다.

그의 오랜 상처를, 그의 오랜 아픔을 내가 건드렸는지도 몰랐다.

 

 

“공주님!!!!!!”

 

 

동욱씨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 순간, 그가 나를 갑자기 더 꽉 껴안더니 놓아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성곽에서 내려와서 나를 내려주려는 듯 손을 내밀려 한다.

 

 

“공주님!! 여기 계셨어요? 한참 찾았는데?

제가 부르는 소리 못 들으셨어요?

어!!! 근위대장님도 계셨네요.”

 

 

어느 틈에 바로 앞에 숨을 헐떡이는 동욱 씨가 보인다.

그는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바로 경례를 한다.

 

 

“근위대 제2중대 대위 김동욱, 공주님과 근위대장님께 복귀 신고 드립니다.

충성!!!”

 

 

“동..동욱 씨!! 언제....왔어요?”

 

 

“지금 방금 출장 갔다가 올라오는 길입니다.”

 

 

“맞다. 내일 온다고 오빠한테 들은 것 같은데.”

 

 

“예. 궁에 복귀가 내일인데, 오늘 바로 와서 공주님부터 뵈려고 왔어요.

공주님 뵌 지 너무 오래돼서.”

 

 

“네? 피곤할 텐데...쉬지 그랬어요. 내일 궁에서 보면 되는데...”

 

 

“아니요. 저 출장이 너무 길어서 죽을 뻔 했거든요.

궁에 갔더니 성곽에 가셨다고 해서 바로 쫓아 온 거예요.”

 

 

뛰어올라왔는지 숨을 좀 고르던 동욱 씨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런데......공주님 괜찮으세요?”

 

 

“네..네? 뭐..뭐가요?”

 

 

“얼굴이 많이 붉어지셨는데요. 열도 있으신 것 같고.....

어! 우셨어요? 눈물도......

어디 아프신 거 아니세요?”

 

 

 

재신은 순간 얼굴에 더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먼저 성벽 밑에 내려가 서 있는 시경의 얼굴도 붉어진 듯했다.

 

 

“공주님!!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어서 내려가셔야겠어요.

제가 궁에 바로 연락해 놓겠습니다. 진료 받으셔야....”

 

 

“아니!! 아니에요!! 안 아파요.

피곤해서....피곤해서 그래요.

그냥...지금 내려가면 돼요.”

 

 

“왠지......입술도 많이 부으셨어요.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재신은 입술이 부었다는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눈에까지 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동..동욱 씨, 나...나좀 내려줘요.”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시경이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도저히 시경에게 내려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입술까지 퉁퉁부었다는데.......

 

 

동욱은 재신을 안아서 조심조심 휠체어에 앉혔다.

그런 모습을 시경은 주먹을 쥔 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동욱 씨, 혹시 차 가져 왔어요?”

 

 

“당연하죠. 공주님. 궁에서 바로 달려왔는 걸요.”

 

 

“그럼, 동욱 씨 차로 갈게요.”

 

 

“어? 그러실래요? 알겠습니다. 공주님.”

 

 

동욱의 목소리가 금세 들뜬다.

 

 

동욱 씨 차로 가겠다고 말한 건, 시경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경은 아무 말이 없다.

재신은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한 마디 덧붙였다.

 

 

“은시경 씨는 아까 타고 온 차로 바로 퇴근하세요.

전 동욱 씨 차로 갈게요.

가요! 동욱 씨! 나 좀 추워요. 빨리 가고 싶어.”

 

 

“예. 알겠습니다.”

 

 

동욱은 재신의 휠체어를 끌면서 내려간다.

시경은 그런 재신에게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공주님, 저랑 같이 오시지.....왜 그러셨어요?

저 좀 섭섭해요.”

 

 

“응.......다음부턴 꼭 동욱씨랑 올게요.”

 

 

“지금 제 차로 가시는 거, 저한테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죠?”

 

 

동욱은 또 장난처럼 재신에게 농담을 건넨다.

동욱의 농담이 무거웠던 재신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준다.

 

 

“풋!! 맞아요. 미안해서......

근데 미안하면 빨리 퇴근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괜히 늦게까지 붙들고 있네.

이건 도리어 벌인 것 같은데?”

 

 

“공주님!! 공주님과 같이 있는 거보다 더 좋은 상은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원하시면, 저 퇴근 안 해도 됩니다.

제 마음 아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저, 막 속상합니다. 그러시면!!!”

 

 

동욱은 으름장을 놓듯이, 재신에게 궁시렁댄다.

재신은 그런 동욱이 오늘은 좀 고맙다.

지금 자신의 이 복잡한 마음을 조금은 숨길 수 있어서,

여전히 성곽에 서 있는 저 남자의 일을.....조금은 잊을 수 있어서,

그래서 고맙다.

 

 

 

 

 

 

시경은, 자신의 별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그저 서서 지켜보고 있다.

지금......자신이 저지른 짓이 어떤 짓인지...서서히 현실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나 시경은 후회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달콤하면서도 아찔했던 그녀와의 순간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그의 심장에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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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9회는 원래 여기에 몇 꼭지가 더 있습니다.

뒤에 내용을 먼저 적어뒀는데, 이 앞 부분이 너무 길어져서 고민하다가 결국 끊었습니다.

사실상 은시경의 고백 자체를 좀 더 부각시키고 싶어서 뒷내용은 다음 회에 넣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시경의 마음으로 온전히 이 고백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적의 <다행이다>를 꼭 틀고 이 글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8회를 적을 때는 너무 아파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9회 역시......좀 고생하면서 적었습니다. 물론, 새벽 감성에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8회와는 좀 다른 감정입니다.

왜냐하면, 은시경의 마음은 ‘아픔’만은 아니었습니다.

은시경의 고백에서 시경의 마음은 ‘감사’였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자신이 살아있어서 감사하고,

그녀의 아픈 기억이 없어져서 감사하고, 또 자신은 사랑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감사하고,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다행이라고.......그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그 마음이 시경의 고백에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가 꿈꾸는 은시경의 고백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아프다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한 기억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너무나 감사한다는 사람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은시경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온전히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9회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네요.

다음 회 10회도 은시경의 이야기입니다.

9회, 10회 모두 은시경의 목소리로 듣는 은시경 이야기입니다.

 

 

뭔, 내용 전개도 없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냐고 하신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이 뒤에도 시놉상으로 내용이 많지만,

그래도 한 번쯤 멈추고, 시경의 목소리에, 시경의 고백에 집중하고 싶었답니다.

 

8회와, 9회를 같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9회를 쓰면서는, 은시경의 고백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습니다.

일부러 새벽 시간에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감성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량은 저번보다 적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들인 시간은 훨씬 더 많습니다.

시경의 감정을 따라 읽으신다면, 아마 읽으시며 느끼시는 시간은 훨씬 더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한 댓글에 정말 감동입니다.

7회까지 답글 달았습니다. 확인해주시길......

 

 

그럼, 오늘 밤도 평안하소서 (__)

 

 

+) 참, 우리 동욱씨 미워하실까봐, 덧글 하나 더.

    오늘 동욱 씨 큰일 하셨어요. 둘이...얼마나 뻘줌하겠냐능......그래서 동욱씨의 출현은 둘 다한테 어쩌면 다행한 일일지도......그리고 저에게도.....(__)

    둘이 서로 뻘줌해 하는 상황을, 그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제가 도저히 쓸 수가 없더라능.....ㅠㅠㅠㅠ

 

+) 8회까지 답글 달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