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단편·조각

(은신/단편) 그는 왜 고개를 돌리고 있을까 (중) - 전체 공개 버전

그랑블루08 2012. 10. 24. 05:17

 

(은신/단편) 그는 왜 고개를 돌리고 있을까 (중)

 

 

 

 

 

 

 

 

38 

 

 


다시 겨울 - Sweet Sorrow

겨울이 내린 거리엔 모두가 들뜬 모습뿐

그대만 그대만, 내게만 내게만, 없는거야 그런거야



혼자가 외롭긴 해도 어떻게든 살아지더군

그러다 그러다, 힘들면 힘들면, 네 기억만 붙들고있어



눈 오던 겨울밤의 인사

쓸쓸했던 그대 Merry Christmas

그대의 마지막 배려였나요



나에겐 그대만이 나 오직 그대만이

나를 살게하는 이유 내 모든 꿈이라고

아직도 그대만이 내 삶의 전부라고 믿어요

다시 돌아와 줄 순 없나요



모른 척 살아야 한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그러다 그러다, 덧나고 덧나면, 오늘처럼 무너지고있어



눈 오던 겨울밤의 인사

쓸쓸했던 그대 Merry Christmas

내게는 마지막 오해였나요



나에겐 그대만이 나 오직 그대만이

나를 살게하는 이유 내 모든 꿈이라고

아직도 그대만이 내 삶의 전부라고 믿어요

그대여 그대여 너무 늦은건가요



그대만이



그대만이 결국엔 그대만이

휘청거리는 내 맘을 안아줄 수 있어요

아직도 그대만이 내 삶의 전부라고 믿어요

다시 돌아와줘 그대



Merry Christmas



가사 출처 : Daum뮤직

 

 

 

 

 

 

1

 

 

 

“야!! 야!!!”

 

“.........................”

 

“은시경!!! 너 대답 안 해? 너, 이제 왕제도 무시하는 거냐?”

 

“.........................”

 

“야~~!!!!!! 은.시.경!!!!!!!!!”

 

“예..예?”

 

휴대폰을 넋놓고 보고 있던 은시경이 그제서야 재하를 바라본다.

그것도 너무나 말갛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재하를 보자, 재하는 속이 한 번 더 뒤집어지는 것 같다.

 

“은시경! 너!!! 요즘 연애 하냐?”

 

“예~~에? 아, 아닙니다. 그런 거......그러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아..저......”

 

아쭈~ 아예 대놓고 연애한다고 광고를 하네.

재하는 안 봐도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놈, 이거 연애 하네 이거.

 

“야, 너 연애 해 본 적 있긴 있냐?”

 

“예? 예.”

 

“뭐? 있다고? 니가? 답답하다 못해 꽉 막힌 은시경이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거야?”

 

“저도 남잡니다.”

 

재하는 은시경이 그것도 각 맞추는 데만, 원리 원칙 따지는 데만 평생을 바쳐온 듯한 은시경이 연애 경험이 있다고 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짜식, 남자다 이거지?

 

“그래서? 언제? 얼마나 만났는데?”

 

재하가 자꾸 취조하듯이 묻자 은시경은 자신의 눈썹을 곤란하다는 듯 문지른다.

 

“야!!! 너 왕제가 묻는데 대답 안 해?”

 

“대학 때, 두 번 정도 선배 소개로 만난 적 있습니다.”

 

“얼마나? 얼마 동안 만났는데?”

 

“예? 그것까지...굳이..말씀드릴..이유가.....”

 

“야!!! 명령이다!! 빨리 말해!!!”

 

시경은 굳이 이런 자신의 프라이버시까지 말해야 하나 답답해지기만 한다.

그러나 왕제님이다. 왕실의 일원이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공주님의 오빠다.

그것이 시경으로 하여금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은 1~2달 정도 만났고, 한 사람은 6개월 정도 간 것 같습니다.”

 

하, 이것 봐라.

두 명이나 그것도 어느 정도 만났다 이거네.

게다가 6개월?

염동하라면, 진도 빼고도 남았을 시간이잖아.

이 자식 이거.....보게.

 

“그래서 진도는?”

 

갑자기 시경의 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허~ 저 놈 저거 또 열받았네.

 

재하도 알고 있었다.

저 놈 고집도 황소 뒷다리 심줄 같아서, 죽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저 표정이면, 이제 저 놈 절대로 입을 안 열 때가 된 듯했다.

더 이상은 못 물어보는 건가. 아쉽네.

 

“알았다, 알았다고! 더러워서 더 이상 안 묻는다.

거 되게 인상 쓰네. 야~ 누가 보면, 니가 내 상관인 줄 알겠다.

나 참, 이건 주객이 전도돼도 유분수지, 어떻게 왕제한테 저렇게 덤벼...”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어..야야!!! 나 지금 말 덜 끝났잖아!!! 야, 은시경!!!!”

 

시경은 재하가 말을 하고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나와 버렸다.

뒤에서 재하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시경의 신경을 온통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휴대폰이었다.

저녁 8시가 지나 있었다.

지금쯤 점심 식사할 시간이신데, 전화를 해볼까, 문자를 남겨볼까 계속 휴대폰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아침에 모닝 문자를 보내드렸는데, 연락이 없었다.

오늘 지도교수님을 만나 논문 수정을 한다고 하셨는데, 어젯밤 밤을 새신다고 하셔서 시경은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시경은 휴대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고민이 된다. 자신이 이렇게 전화를 해도 되는지, 문자를 보내도 되는지,

귀찮아 하시지는 않을까 늘 두려움이 생기고는 한다.

 

그러나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녀가 떠난 지, 이제 삼 개월.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그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공주님이시니까, 늘 믿음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니까 괜찮으실 거라고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 씩 다짐을 해보지만, 그 때뿐이었다.

 

 

 

 

자꾸만 차올라오는 마음이 시경을 아프게만 하는 것 같다.

그리움이 고통이 되어 숨도 쉬기 어렵다.

 

 

 

 

 

2

 

 

 

 

공주님이 급하게 영국으로 가시고 나서부터 시경의 삶은 그 이전과 180도로 바뀌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휴대폰을 끼고 살기만 했다.

틈틈이 아니 틈이 나지 않을 때도 시경은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도대체 왜 저래,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시경의 상태는 심각했다.

심지어 동하는 혹시 시경이 게임에라도 빠진 것인가 싶어서 의심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뭔가를 조작을 한다거나, 누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창을 띄워놓고, 한숨만 퍽퍽 쉬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8시만 되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가서 한참 있다가 들어오고는 했다.

근위대원들은 서로 모여서, 도대체 뭘까, 무슨 일일까, 토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연애다, 아니다, 갑론을박 말이 많았지만, 미국 유학물을 먹은 김동욱 중위는 확실하다며, 한 마디를 보탰다.

 

연애 확실합니다. 그것도 원거리 연애.

 

모두들 그의 확신에 찬 말에 반신반의했다.

 

“야, 김동욱! 원거리는 무슨? 누구랑 만났다는 거야? 은중대장님 누구 만난 거 본 적 있냐?”

 

“아, 염중위님 확실하지 말입니다. 제가 유학생활 해봐서 아는데 말입니다.

이거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생기는 확실한 증상이지 말입니다.”

 

“야, 니가 어떻게 알아?”

 

“한번 생각해 보십쇼. 은중대장님 원래 게임 안 하시고, 문자 안 하시고, 인터넷도 휴대폰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시지 말입니다.

전화를 하시더라도, 할 말만 간단히, 조금이라도 길게 하면, 대한민국에 큰일 난다 생각하시는 분이신데,

전화하시는 곳도 없지 말입니다.

그런데 저녁 8시마다 나가셔서 한참 있다 오시는데다, 다녀오시면, 또 한참 휴대폰 보고 계시는데,

이건 딱 맞지 말입니다.

연애 아니면, 다른 게 될 수가 없지 말입니다!!”

 

모두들 김동욱 중위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 누가 있단 말인가.

멀리? 도대체 누구?

지방에 있는 사람인가?

설마 외국은 아닐테고, 외국 간 사람을 만날 리는 없고.

근래 외국 간 사람? 공주님 말고는 없으신데....

어!!!

동하의 뇌리에 확 스치고 지나가는 한분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에이,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공주님께 ‘공주님도 품위는 없으셨습니다’라고 정색하고 덤벼든 분인데, 그럴 리가.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동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녁 8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던 시경이 근위대 휴게실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

그 예의 자신의 휴대폰을 주시하면서.

그 이상하고도 긴장된 분위기에 근위대원들은 숨막혀 하면서 하나둘 눈치를 보다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시경은 휴게실에 혼자 남아 저 안에서부터 나오는 한숨을 뱉어낸다.

 

8시 반이 다 되어 가는 동안, 공주님께 연락이 없다.

자신이 전화해도 될지 고민하면서, 공주님 연락처를 화면에 띄웠다가 말았다가 수십 번도 더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공주님과는 늘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은 꼭 통화를 했다.

그 외 시간에는 늘 문자를 서로 보내고는 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가 런던엔 점심시간이어서, 시경이 저녁을 먹고 난 뒤, 공주님은 점심을 드시면서 잠깐씩 통화를 했다.

또 시경이 일어나자마자 6시에 전화를 드리면, 그쪽 시간으로 10시라서, 공주님께선 주무시기 전에 전화를 받으시고는 했다.

그런데 요 며칠 간 전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석사 학위를 준비 중인 공주님께서 논문 지도에 들어가면서, 정신없이 바빠진 것이다.

밤을 새기가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저녁 시간에도 전화하기가 어려웠다.

밤을 새시고 나면, 아무래도 시간대가 엉망이 되고 말아서, 공주님은 그날 그날 스케줄이 엉켜버리고는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지도교수님 미팅이 잡혀 버리면, 공주님은 며칠 전부터 계속 밤을 새며 논문을 쓰느라 정신을 못 차리시고는 했다.

시경이 전화를 해도, 시경 씨 미안해요,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 통화해요, 라며 바로 끊어버리시고는 했다.

그렇게 금방 끊어버리시고 나면, 시경은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 때였다.

시경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이 공주님인 걸 안 순간, 그때부터 시경의 심장이 쿵쿵대며 뛰기 시작했다.

 

“공주님!!”

 

“어, 시경 씨. 나 넘 늦었죠?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아닙니다.”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해도, 일 분, 일 초마다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시경은 그 말을 다 할 수가 없다.

자신의 말이 공주님께 부담이 될까봐 그런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오늘, 미팅은 잘 하셨어요?”

 

“응....이걸 잘 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우리 교수님, 정말 사람 잡아요.

완전히 뻘~~~겋게 해서 주시는 거예요.

게다가 열심히 해 간 것도 다시 다 고치래.

에효...큰일 났어요. 나, 며칠 후에 국제 행사에 참여도 해야 하는데,

오빠한테 빼달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공주님께서 가셔야죠.”

 

“그죠? 내가 가야 빛이 나겠죠? 그래도 대한민국 유일한 공준데,

세계에서 나만큼 이~쁜 공주도 없는데 그죠? 아, 내가 생각해도 나, 좀 재수 없다.”

 

“아닙니다. 공주님!”

 

“응?”

 

“맞습니다. 공주님만큼 아름다운 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풋....이것 봐, 내가 은시경 씨 때문에 더 공주스러워진다구요.

맨날 날 이렇게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내가 최고인 줄 알잖아.”

 

“공주님은.......최고십니다.

대한민국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어? 오늘따라 왜 그래요? 시경 씨?”

 

“사실이니까요. 공주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너무’라는 말에서 시경의 목소리는 한숨소리처럼 느껴졌다.

재신에게도 뭔가 오늘따라 시경이 힘들어 한다는 게 느껴진다.

 

“시경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닙니다. 공주님.”

 

“은시경 씨!!”

 

“예. 공주님.”

 

재신이 단호하게 시경의 이름을 부르자 시경은 상명하복의 자세로 명을 받는다.

이럴 때마다 재신은 속상해지기도 한다.

이 사람은 나를 윗사람으로만 대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아주 가끔은, 이 남자, 내가 공주라서, 내가 자신보다 윗사람이라서 마치 명령을 듣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와 첫 키스를 나눈 이후, 바로 영국으로 넘어왔고, 그 때부터 원거리 연애가 시작되었으니.

재신과 시경은 전화 데이트 하는 사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재신이 가끔 투정부리듯이, 시경에게 화를 내듯 얘기하면 시경은 바로 명령을 듣는 자세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여자친구와 남자친구에서 갑자기 신분 계급으로 상하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재신은 씁쓸해지고는 했다.

이 사람만은 자신을 평범한 여자로 대해주길 바라는데, 그에게는 그게 참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 은시경 씨한테 뭐예요?”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재신이라는 여자가, 은시경 씨에게 뭐냐구요.”

 

“공주님......”

 

시경은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여자라고,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자신의 애인이라고.

그러나 시경은 그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공주님께서 떠나시기 전 날 자신을 받아들여주셨다고는 해도, 자기 혼자 너무 나가 있는 건 아닌지,

자꾸 공주님께 다가가면,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뭔가 두려웠다.

 

“뭐야,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나, 은시경 씨한테 아무 것도 아니에요?”

 

“공주님!!! 아무 것도 아니라니요. 어떻게 공주님께서.......

하아....아시지 않습니까? 공주님께서 제게 어떤 존재이신지.

제 마음이 어떤 지 다 아시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시경의 목소리가 고통스럽다.

바보, 그러니까 시원하게 여자친구다, 말하면 되지, 뭘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지.

 

“아, 진짜 답답해서!!! 나, 은시경 씨 여자친구잖아요.

근데 왜, 나한테 얘기를 안 해요?

힘들면 힘들다, 무슨 일이 있다, 이렇게 얘기해주면 안 돼요?

여자친구가 뭔데? 이 얘기 저 얘기 힘든 얘기 다 하는 게 여자친구 아닌가?

나 뭐야? 도대체 은시경 씨한테. 왜 나한테 아무 얘기 안 하는 거예요?”

 

공주님의 말씀 때문에 시경은 순간 가슴이 뭉클 한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여자친구라는 말이 자꾸만 가슴을 뛰게 한다.

그녀는 내 여자친구다.

나의 여자다.

그 말만으로도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다.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목소리가 어두워요?

얘기해봐요. 나한테........”

 

그녀의 걱정 어린 따스한 말만으로도 내겐 이미 위로가 된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고, 아직 나를 봐주고 있다고 안심이 된다.

 

하아.......이렇게 나는 바보 같은 남자다.

 

“시경 씨.......”

 

“제가.....못나서 그렇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얘기해봐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하아......공주님이......너무......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고백 같은 한숨처럼 나온 그 말이 재신의 가슴을 쿵하고 떨어뜨린다.

그 말이 파장을 일으키며 재신에게도 그리움이 밀려온다.

 

“시경 씨........”

 

“저, 너무 바보 같죠. 공주님.

잘 참아내겠다고 해놓고, 이제 겨우 석 달인데, 그걸 못 견뎌서......

죄송합니다. 공주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바보 같이.....”

 

“아니에요. 시경 씨, 나도, 보고 싶어요.”

 

“공주님, 그래도 저만큼은 아니실 겁니다.”

 

너무나 확실하게 단언하는 시경의 말에 재신은 황당할 뿐이다.

무슨 근거로 자기만큼은 아니래?

 

“공주님, 그거 아십니까?

이곳은 변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도, 사람도, 장소도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제 주위는 모든 게 똑같습니다. 사람도, 일도 모두 똑같습니다.

오로지 단 한 사람만 이곳에 안 계시죠.

모든 게 똑같은데, 단 한 사람만 이곳에 없어서, 그 빈자리 때문에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정말 모든 게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시경 씨......”

 

시경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한 자락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주님은 모든 게 새로우시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이니........

제가 없더라도, 그 빈자리가 안 느껴지시죠?”

 

“아니에요. 시경 씨, 나도 시경 씨 빈자리 많이 느껴요.”

 

“공주님, 그게 공주님과 제 차이입니다.”

 

“응? 무슨 말이에요?”

 

“공주님께서는 가끔 느끼시는 거지만, 전.......그 빈 자리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랬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한 달은 죽기 살기로 버텼다.

공주님과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주저주저 하면서도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라서 조금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가 되자 시경은 점점 심장에 돌을 매단 것처럼 묵직하게 아파왔다.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데, 시간은 너무나 더디 흐르고 있었다.

어쩌다가 전화가 안 되거나, 바빠서 일찍 전화를 끊으시는 날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토록 무책임하고 바보 같았나 싶어서 정신 차리라고 찬물에 샤워도 해보고, 미친 듯이 조깅도 해보지만,

또다시 떠오르는 공주님 생각에, 가슴은 자꾸만 울컥거리기만 했다.

석 달을 갓 넘기면서부터는 불안이 엄습했다.

공주님께서 자신을 떠나시면 어쩌지, 다른 남자가 생기셨으면 어쩌지, 자신에 대한 흥미가 이제 없어지셨다고 말씀하시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시경은 죽을 것만 같았다.

밤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시경은 처음으로, 사람이 너무 그리워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왜 병이 되는지, 시경은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병이 되었다.

육체에도 마음에도 병이 되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경은 자신의 마음을 누를 수는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전화가 되지 않는 동안,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다.

왜 이렇게 나약한 건지, 뭐가 그토록 불안한 건지, 왜 자꾸만 안 좋은 생각만 드는 건지,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하기만 했다.

시경은 자신이 이토록 나약한 존재인지 몰랐다.

원리 원칙에서 단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어쩌다 만난 여자들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본 적도 없었다.

일에 바빠서, 자신이 몰두한 일이 있으면, 그녀들과 소원해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아쉬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벌을 받는 걸까.......

 

이토록 사람에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시경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냉철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이 이토록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몰랐다.

자신이 이토록 한 사람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될지 몰랐다.

운명처럼 온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시경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자신에게 온 이 운명에 감사했다.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운명이 올 수 있었는지, 어떻게 감히 이토록 아름다운 분을 품을 수 있게 되었는지, 시경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공주님이시니까, 자신이 이러는 건 당연하다고, 감히 자신 같이 못난 사람에게 와주셨으니, 자신이 이토록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리고 이토록 불안한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품었으니,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당연히 응당 치러야 할 대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가 생각하는 것뿐, 시경은 오늘도 전화를 끊은 후, 한참 동안 밖에서 서성대기만 한다.

공주님과 거닐었던 후원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서 죽을 것만 같다.

 

 

 

 

3

 

 

 

 

“예. 아버지.”

 

<너 잠깐 내 방에 왔다 가거라.>

 

“아직 퇴근 안 하셨습니까?”

 

<그래.>

 

 

 

시경은 잠시 마음을 추스린 후, 비서실장 집무실에 문을 두드렸다.

규태가 아직 일이 남았는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래, 거기 좀 앉아 보거라.”

 

“예.”

 

규태는 시경이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경은 뭔가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버지가 굳이 자신을 불러서 진지하게 말씀하실 게 뭐가 있을까.

 

“시경이 너 이번 주 토요일 시간 좀 비워놔야겠다.”

 

“예? 무슨 일이신데요?”

 

“저번에 얘기했었던, 선배님 여식과 자리 마련해 놨다.”

 

“예? 아버지. 그건 그 때 이미 접는 걸로 말씀을.....”

 

“무슨 소리냐? 그 때야 공주님께서 영국 들어가시고, 근위대도 새로 정비하고 하느라 정신 없었고,

그쪽 아가씨도 일이 바빠서 어긋난 거였지,

접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 전, 선 못 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규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자식놈이 거절 의사를 자신에게 밝힌 것도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에 거역한 적이 없는 놈이다.

그런데 이 놈이 어떻게 내게 ‘싫다’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전, 이 선, 안 보겠습니다.”

 

“시경아!!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넌 한 번도 내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셔도, 전 싫습니다.”

 

“뭐?”

 

강경했다.

규태는 자신의 아들놈의 성정을 알고 있었다.

고집을 피우지 않는 놈이지만, 정말 자신이 맞다고 여기는 순간에는 절대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이 놈이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왜 싫은지 나를 납득시켜봐라.”

 

“다른 여자, 만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있는 거냐?”

 

“마음에...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건 한 때다. 너 한 번도 여자한테 마음 빼앗겨본 적 없는 놈이었다.”

 

“그러니까요. 처음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절대로 놓칠 수가 없습니다.”

 

“시경아! 너 도대체!!!”

 

“죄송합니다. 아버지. 전.....이 사람에게 제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 이런 엄청난 운명이, 다시는 올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놓칠 수가 없습니다. 죽어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은시경!!”

 

“죄송합니다. 아버지. 전, 목숨 걸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다시는 제게 선보라는 말씀 하지 마세요.

전, 못합니다.”

 

목숨을 걸었다는 그 말에 규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저 놈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저 놈은 한 길만 가는 놈이다. 절대로 흔들릴 놈이 아니다.

도대체 누구를 담은 거냐. 도대체 누구를........

분명 주변에 만나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녀석이 자꾸 정신을 빼놓고 있는 일이 많았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너무나 다반사였다.

도대체....누구길래....이놈이 이토록 정색을 하고 야단인 건지.........

선을 거절한 시점은 석 달 전, 공주님께서 영국으로 가시면서부터였다.

 

설마......아니다. 그건 아닐 거다.

절대 아니다.

 

저 놈이......설마.........

 

 

 

 

 

4

 

 

 

 

 

시경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주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공주님은 받지 않으셨다.

며칠 동안 계속 밤을 새신 듯했는데, 아무래도 주무시는 듯했다.

당연히 주무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일을 처리하면서도 계속 헤매고 다니니 요즘 계속 붙어서 같이 일하고 있는 재하가 눈꼴사납다는 듯이 시경을 노려본다.

시경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 일이나 해야겠다며, WOC 상황 보고서를 작성하며, 미국 본부에 보낼 서류를 만들고 있었다.

공주님께서 일어나실 즈음해서 문자를 하나 드렸지만, 답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였다. 그쪽은 이제 점심시간일 텐데 이젠 일어나시지 않으셨을까 싶었다.

그러나 재하가 계속 시경을 계속 갈구고 있어서, 공주님께 전화를 드릴 수도 없었다.

일어나시면 전화하시겠지 싶어서 불안해하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때 재하의 전화가 울렸다.

 

“야, 이놈 보게. 야, 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왕제님의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훨씬 밝았다.

 

“임마! 너 이 오빠한테 너무 무심한 거 아냐?

너 형한테는 자주 전화했지? 너 이런 식으로 나한테 차별 대우하면, 나도 똑같이 갚아준다.”

 

공주님이셨다.

시경의 눈이 바로 전화를 받고 있는 재하에게로 향했다.

 

“야,야, 말이 그렇지. 내가 그러겠어?

공부는 잘 돼?

그래 그래 고생이 많다.”

 

재하는 늘 투닥대고는 있지만, 공주님이라면 껌뻑 죽었다.

목소리부터 달랐다.

공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기만 하셔도 바로 꼬리를 내리는 폼이 참 그야말로 동생 바보였다.

시경은 쳐다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과 귀가 모두 재하의 전화로 향하고 있었다.

재하가 그런 시경을 이상한 듯이 흘낏 쳐다본다.

 

“야,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요즘 근위대원은 연애질 한다고 바쁘지, 나는 일에 쳐밀리지....

누구는 누구야? 근위대원 중에서 젤 답답한 은시경이지. 말이라고 하냐?

저 놈 웃기지도 않아. 저게 분명 연애 하는 것 같았거든.

맨날 휴대폰만 쥐고 난리도 아니더니만, 저놈 저게 꼴에 양다리야, 양다리.

저거 휴대폰으로 연애질하는 여자 있으면서, 선까지 본다?

나도 들은 적 있는 여잔데, 이쁘더라고.

은실장님 친구분 딸이라는데, 죽여주더라.

근데 저놈이 그 여자도 만나고 이 여자도......”

 

“왕제님!!!!!!”

 

“앗!! 깜짝이야!!!”

 

전화하는 와중에 갑자기 시경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재하는 놀라고 말았다.

저 놈이 미쳤나? 어디 왕족에게 소리를 질러?

시경에게 다시 소리를 쳐보지만, 시경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왕제님!! 저 양다리한 적 없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놓고 버럭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재하는 기가 막혀서 한 쪽 손으로 휴대폰을 가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은시경! 너 당장 나가!!!!!”

 

“왕제님!!!”

 

“너!! 당장 안 나가!!! 빨리 나가!!!!!!”

 

시경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왕제였다.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가슴이 꽉하고 막혀버렸다.

공주님께서 오해하시면 어쩌지........

너 그런 놈이였냐고, 너 같은 놈 보기 싫다고 하시면 어쩌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아니다. 믿어주실 거다.

자신의 마음을....분명 믿어주실 거다.

마치 주문처럼 계속 되뇌지만,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공주님께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경의 하루가 저물었다.

 

 

 

 

 

5

 

 

 

 

 

“와 이거 보셨습니까?”

 

동하가 신문 한 장을 가지고 오더니 시경에게 내밀었다.

 

“공주님 정말 아름답지 않으십니까? 진짜 전세계 공주님들 중에 최고신 거 같습니다.”

 

“당연하지.”

 

시경은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뿌듯함이 밀려올라왔다.

동하가 내민 신문의 사진을 보다가, 시경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다. 나가 봐.”

 

“예.”

 

동하는 자신의 상관이 이상해보였지만, 그런가보다 하면서 돌아서서 나왔다.

 

시경의 눈에는 신문의 사진과 기사가 박혀 들어왔다.

공주님 곁에서 에스코트 하고 있는 남자.

유명한 남자였다.

왕가와 오랜 시간 함께 동반자로 지내온 H기업의 둘째 아들이었다.

이상우. 알고 있다.

왕제님의 친구이기도 했고, 워낙 오랫동안 H기업이 왕실을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실과 H기업의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공주님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기사는 더 가관이었다.

세기의 로맨스일까 라니.......

H기업의 둘째 아들과 공주님이 무슨 관계일 수도 있다니.

어떻게 대한민국의 공주님에게 이런 무례한 스캔들을 유포할 수 있단 말인지.

시경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미칠 것 같은 것은, 공주님은 너무나 우아하게 그 남자를 향해서 웃고 계셨다.

누가 보더라도 잘 어울렸다.

그것이 시경을 미치게 만들었다.

 

아니다. 공주님은 절대로 자신을 버리시지 않으실 거다.

몇 번이나 다짐해 봐도, 금세 두려워진다.

나를.......버리실까.....

내게 이젠 흥미가 떨어지셨다고, 말씀하실까......

이젠 내가 싫어졌다고 하실까.......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아니다 사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저 뜬 눈으로 6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드려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설마...아닐 것이다.

공주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은...아닐 것이다.

설마....이 남자와.....아니다. 아니다.....

 

그 생각만으로 시경은 숨이 막혀 왔다.

심장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 같다.

 

 

 

 

“어! 은중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나갔던 동하가 갑자기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 시경이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자, 놀란 듯 그를 부축한다.

 

“괜찮아. 잠깐......이상해서......무슨 일이야?”

 

“아,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전하께서?”

 

한 번씩 전하께서 부르시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요즘은 거의 왕제님과 일을 하고 있어서 전하를 뵐 일은 거의 없었다.

시경은 겨우 몸을 추스르며, 전하의 집무실로 향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아, 은시경 대위.”

 

“예. 전하.”

 

전하께서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계셨지만, 때로 전하의 눈매는 매서웠다.

뭔가 내 안 저 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으로 사람을 조금은 얼게 만드시고는 하셨다.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혹시 이번 국제 행사에 호위해줄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해줄 수 있겠습니까?”

 

“예?”

 

“영국에서..........”

 

영국이라는 말에 시경은 바로 재강의 눈을 바라보고 말았다.

그러다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있는 재강의 눈과 마주치자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재강은 이미 순간적으로 멈칫하던 시경의 흔들림을 읽고 말았다.

 

“영국에서 이번에 열리는 국제 평화 포럼 한국 대표로 재신이가 참석하는데,

아무래도 근위대원들이 좀 더 필요해서 말입니다.

좀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몇 명 필요한데, 혹시 추천할 만한 사람 있으면, 내게...추.....”

 

“제가!!”

 

“?”

 

“제가......가겠습니다. 전하.”

 

시경은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야만 했다.

공주님 호위였다.

공주님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이 가야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왜, 가고 싶습니까?”

 

재강의 물음에 시경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왜, 가고 싶으냐는 말씀에, 자신은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공주님을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서 가고 싶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재강은 그렇게 우물쭈물 대고 있는 시경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더 던진다.

 

“참 그러고보니 선 안 본다고.......그랬다지요?

괜찮은 규수라고 들었는데, 은시경 씨, 지금 서른 아닙니까?

재하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예.”

 

“그런데 왜 선을 안 본다고 했습니까?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웠다.

진실을 말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있습니다.”

 

“아, 그래요? 몰랐습니다.

은실장님께서도 모르시는 것 같던데, 한 번 소개시켜드리지 그랬습니까?”

 

“그게.......”

 

시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까지 재강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영국을 가려는 겁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잠시라도 떨어지면 싫지 않습니까?”

 

“.............................”

 

시경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재강이 잠시 얕게 한숨을 뱉는다.

 

“2박 3일입니다.”

 

“예?”

 

“영국으로 가는 데 하루, 행사 당일 하루, 돌아오는 데 하루, 굉장히 빡빡할 겁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다녀올 수 있겠지요?”

 

“예. 전하.”

 

“분명히 약속한 겁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분명 약속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전하.”

 

시경은 재강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자세를 바로 잡아 대답을 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전하는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듯도 하셨고, 뭔가 자신에게 다짐을 받고 싶어하는 듯도 하셨다.

 

전하께서는 자신의 저 안까지 들여다보시는 것처럼 서늘한 눈빛을 하고 계셨다.

재강의 집무실을 나오면서 시경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뱉고야 말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6

 

 

 

 

 

정말 전하께서 하신 말씀처럼, 가는 데 하루였다.

영국에 도착하니, 그쪽 시간으로 늦은 밤이었다.

같이 간 동하와 다른 근위대원들 때문에 시경은 공주님께 따로 인사를 드리러 갈 수도 없었다.

바로 출발해서 오는 거라, 공주님께 따로 연락을 드리지도 못했다.

문제는 그때까지도 공주님은 전화도, 문자도 주시지 않으셨다.

그것이 시경을 자꾸만 애타게 만들었다.

근위대원들만 아니라면, 공주님 곁에 궁인들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공주님 처소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어 공주님 방에 문을 두드리자, 궁중실장님이 나오셔서 들어오라고 하셨다.

 

방안에는 나갈 채비가 끝나신 공주님이 계셨다.

곁에는 궁인들이 공주님의 치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방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시경은 자신의 심장이 이러다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떠나실 때보다도 더 아름답고 우아한 공주님이 그곳에 계셨다.

며칠 간 목소리도 들을 수 없어서 자신을 미치게 만든, 아름다운 공주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시경 씨, 오랜만이네요.”

 

미소를 품고 있지만, 뭔가 사무적인 인사에, 시경은 순간 멈칫하고야 말았다.

 

당연한 건데. 이곳에 궁중실장님도, 궁인들도 있는데, 자신의 뒤에 근위대원들까지 있는데,

왜 이렇게 자신의 심장은 또 이렇게 철렁내려 앉는 건지.....

왜 이렇게 감정이란 놈은 이토록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고야 마는지.......

 

“공주님.........”

 

공주님이라 부르는 순간, 다른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단 세 자를 내뱉었을 뿐인데, 벌써 울컥하고 올라오는 듯해서, 그리움이 그 말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듯했다.

 

“공주님, 지금 바로 나가셔야 합니다.

공항에서 다시 에딘버러 행 비행기를 타셔야 해서.......”

 

“그냥 가면 되는데, 여튼 오빠도 참......”

 

“그래도 버스로는 런던에서 9시간이나 걸리니 비행기를 타시는 것이 맞습니다.”

 

궁중실장의 단호한 말에, 공주님도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럼 오늘 잘 부탁해요.”

 

그렇게 공주님은 내 곁을 스쳐 궁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내려가셨다.

 

영국 왕실에서 제공한 전용기 안에서도 시경은 공주님을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바라보는 것뿐, 이야기를 거는 것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궁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공주님을 보면서, 시경은 자꾸만 자신감이 사라진다.

 

그날, 내게 기다려도 좋다고 말씀하신 그 공주님이 맞으신지,

며칠 전, 내게 여자친구라고 말씀하시던 그 공주님이 맞으신지,

자꾸만 자신이 없어졌다.

 

혼자만 꾼 꿈처럼, 공주님은 자꾸만 자신의 손에서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시경은 숨이 막혀 왔다.

한 여름 밤의 꿈.

깨고 나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꿈.

자꾸만 심장이 옥죄어 온다.

 

평화 포럼은 예상대로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서 결국 얼굴 비추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재신이 앉아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재신은 그곳에서 많은 남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특히 한국 기업의 자제들은 이번을 계기로 어떻게든 재신에게 뭔가 들이대 보려고 하고 있었다.

재신은 일일이 그들을 향해서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다.

시경은 그런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점심 때부터 시작된 포럼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다들 공주님 곁에서 다음 일정이라도 같이 해보려 했지만, 공주님은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바로 호텔 객실로 올라가셨다.

 

이제 내일이면 바로 돌아갈 날인데.......

겨우 2박 3일........

너무나 보고 싶어서 날아온 곳인데,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방문 앞에서 계속 서성대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을 두드리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녀의 방안에는 궁중실장님과 궁인들이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방문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방문 밖에서 시경은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나온 순간, 그의 휴대폰의 문자음이 울렸다.

 

<은시경 씨. 지금 방에 가면, 턱시도 있을 테니, 그걸 입고 호텔 건물 두 블록 내려와서 오른쪽 골목 안쪽 S-club으로 와요.>

 

공주님이었다.

그런데 턱시도? 자신의 객실로 가보니, 턱시도가 놓여 있었다.

턱시도 위엔 메모가 놓여 있었다.

 

<턱시도 안쪽에 가면이 있을 테니 클럽 앞에서 쓰고 들어올 것.>

 

안쪽 포켓에 가면이 들어 있었다.

약간은 화려하면서도 마치 뮤지컬 배우들이 쓰는 듯한, 눈위에 쓰는 가면이었다.

 

무슨....일이신 건지.

분명 방으로 들어가신 걸로 아는데.......

 

시경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빨리 옷을 갈아 입고, 주위 근위대원들을 피해서 S-club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부터 시경은 얼어붙고 말았다.

이곳은 정말로 세상의 모든 양아치를 불러모은 듯했다.

시체 분장에서부터 애니멀 코스튬에 난리도 아니었다.

여자들은 거의 헐벗고 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어두운 조명에, 귀가 찢어지는 음악에, 어마어마하게 몰려 있는 사람들의 땀냄새에,

엄청난 규모의 클럽이 가득차 있었다.

이 넓은 곳에서 공주님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오시긴 오신 건가.

어서 찾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설마 혼자 오신 건가.

 

시경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어디에.......

그때였다.

무대 위에서 음악이 바뀌며, 경쾌한 로큰롤이 나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 싱어의 목소리가 클럽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핑크빛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게다가 비키니 같이 목 부분에 겨우 끈으로 묶어놓은 듯한 검은 상의에, 거의 아래가 다 드러난 너무나 짧은 딱 붙는 스키니 스커트를 입은.........

한쪽 눈을 캣 가면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분명. 공.주.님.이었다!!!

 

시경의 숨이 멎어버렸다.

 

그녀는 섹시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밑에서는 짐승처럼 그녀의 주변으로 달려들어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시경은 정신 없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도 시경을 발견했는지, 그를 향해서 윙크를 하며 도발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 때마다 짐승같은 남자들은 아우성도 아니었다.

시경은 당장에라도 그녀를 끌고 내려오고 싶었다.

불안했다.

밑에 서서 그녀를 향해서 끈적한 시선을 보내는 수컷들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 외에는 근위대원들도 없는데, 공주님은 왜 이토록 위험한 일을 벌이시는지.......

 

 

“Happy Halloween~!!!!”

 

 

그녀의 말에 모두들 환호하며 그녀를 향해서 손을 들었다.

그녀는 노래를 마친 후, 무대 뒤로 나갔다.

무대 뒤로 가는 길이 사람들에게 막혀서 머뭇대는 사이, 그녀는 이미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내 바로 앞에, 묘한 표정을 한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공.....ㅈ”

 

“쉿!”

 

그녀의 손이 내 입술 위를 눌렀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구석 쪽으로 끌고 간다.

그녀의 손이 내 손에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쿵쿵...대며 뛰어대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지에 몰려 있었다.

그녀는 스테이지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서는 내 앞에서 천천히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내 눈 앞에서 울렁이고 있었다.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나서 그녀의 풍만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서히 흔들리는 몸이 너무나 색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하아........

저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내 수컷을 다스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시경이 재신을 향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지르자, 재신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아, 진짜 재미없다!”

 

재신은 시경에게서 갑자기 등을 돌리더니, 무리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재신이 오자, 다들 재신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재신은 그 속에서 단연 돋보였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에게서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나 색스러웠다.

그녀의 선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못해서, 남자들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그녀에게 몸을 부딪치며, 그녀를 더듬고 있었다.

 

그 순간 시경은 완전히 빡 돌고야 말았다.

자신의 이성이 완전히 나가는 듯한, 완전히 퓨즈가 나가는 듯한 느낌.

머리가 하얗게 질리고, 오로지 자신의 눈 앞에 공주님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내 여자다.

내 거다.

 

자신에게서 떨어진 곳에서 다른 남자들과 몸을 부딪치며 춤을 추고 있는 재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팔을 확 낚아채서는 그녀를 벽 쪽으로 끌고 갔다.

주변에서 시경의 팔을 잡으며, 그녀를 잡으려 하지만, 시경의 완력 앞에서 그들은 힘도 쓸 수 없었다.

시경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여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대 뒤쪽, 검은 커튼이 쳐진 곳까지 시경은 재신을 끌고 갔다.

처음에는 반항하던 재신도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을 밀치고 들어오면서, 시경은 재신의 어깨를 잡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아야!!!! 왜 이래요?”

 

시경의 얼굴이 재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모르셔서 묻는 겁니까!!!”

 

시경의 목소리에 화가 묻어 있었다.

 

“은시경 씨!!!”

 

“싫증 나셨습니까?”

 

“뭐..라구요?”

 

“재미로, 제게 그러셨습니까?

기다려도 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공주님껜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쉬우십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시경은 고통스러웠다.

지금 공주님이 왜 이러시는지, 자신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잔인하게 대하시는지,

도대체 그 남자들과 왜 그런 춤을 추고 계시는 건지.

왜 자신의 전화를 받지도 않으시는 건지.

왜.왜.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이곳에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재미없다고 하셨다.

그래, 자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내 눈 앞에서 다른 남자와 몸을 부대끼고 있는 공주님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미칠 것만 같다.

크고 아름다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사람 때문에,

아찔할 만큼 가슴골을 보여주며, 흔들리고 있는 이 사람 때문에,

짧은 치마 아래 너무나 하얗게 쫙 뻗은 다리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이 사람 때문에,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날 더러 어쩌라는 말인가. 이토록 빠지게 만들어놓고, 지금 재미없다고, 난 아니라고 한다면,

날 더러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제...여자라면서요?”

 

“은시경........”

 

“지금 와서, 절더러....어쩌라는 말입니까......

이제 와서 제게 흥미를 잃으셨다고, 절...버리시는 겁니까?

그러면, 절더러......어떻게 살라고....어떻게 이렇게 잔인하십니까.......”

 

“내가 언제.......”

 

 

 

“Are you okay?”

 

그때 아까부터 그녀 옆에서 그녀에게 지분거리던 놈이 그녀를 향해서 괜찮냐며 묻고 있었다.

 

“What the Furk!!!!! GET AWAY!!!” “꺼져!!”

 

시경의 살벌한 눈빛에 눈치를 보던 그 남자는 재신이 꿈쩍도 하지 않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가버린다.

시경의 눈빛이 짐승같이 변해 있었다.

재신은 시경의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화가.....난......남자.

거친 수컷의 진한 향내를 내뿜으며 재신을 훑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지나갈 때마다, 재신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저, 재미 없습니다. 처음부터 아셨을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저, 남잡니다.

한 번 내 거라고 생각한 거, 단 한 번도 빼앗겨 본 적 없습니다.

아니, 절대 놓아드리지 않을 겁니다.

공주님, 후회하셔도, 이제 돌이키실 수 없습니다.“

 

“은...ㅅ"

 

시경의 입술이 그대로 재신의 입술 위로 겹쳐왔다.

거칠게, 진하게 재신의 입술을 집어 삼키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이 남자가 이토록 거칠었던 건지, 재신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재신의 입술 안으로 거침 없이 들어와서는 그녀의 혀와 얽혀들고 있었다.

재신의 팔이 시경의 목을 감싸 안자, 시경의 몸이 살짝 떨리는 듯하더니, 그녀의 허리를 더 강하게 자신의 쪽으로 붙인다.

이런 시경을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수컷의 향내를 내는 이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강하고 거칠게 재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재신이 숨을 쉴 수 없도록 밀어붙이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변해 갔다.

오로지 눈 앞에 있는 이 남자의 입술과 숨결, 그리고 손길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등 뒤 맨살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거의 드러나 있는 자신의 등을 쓰다듬자, 그의 손길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재신은 흠칫흠칫 놀라며 바르르 떨었다.

 

“은..은시...경!!!”

 

-------

(중략)

-------

 

그 순간, 갑자기 시경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재신의 귀에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그의 숨소리가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한참을 그렇게 숨을 고르던 시경이 재신의 풀어진 상의를 다시 입혀주며 목 뒤로 리본을 매어주었다.

시경이 하는 대로 재신은 그의 손길에 맡기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검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깊다 못해서, 암흑처럼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의 짙은 눈빛 앞에서 재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가 하는 대로,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며 그렇게 맡기고 있었다.

시경은 자신의 턱시도 자켓을 벗어서 재신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과는 가까운 거리라서 금방 호텔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경은 그녀에게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그토록 뜨겁게 키스를 하던 그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시경은 단호한 표정으로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오로지 재신의 어깨를 잡은 손만은 강하게 힘이 들어가서 아까의 시경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오늘....재신의 도발은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실패했다고 해야 할지.......

 

화가 났던 게 맞았다.

알고 있었다.

시경이 선을 보지 않았을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오빠가 시경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말하자, 순간적으로 자신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분명 은시경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이냐고, 해명하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그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

왠지 그가 정말 다른 여자를 만날 것만 같았다.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 번 시작된 불안함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이성을 마비시켜버렸다.

점점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은 멀리 있고, 앞으로 골치만 아픈 왕족인데,

미래를 생각하려고 해도, 골치 아픈 일들만 있을 테고,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을 수도 있다.

바로 앞에 오빠가 말한 것처럼 죽여주는 여자가 있다면, 혹하는 게 남자가 아닐까.

은시경 씨도 남잔데, 그것도 서른이나 된 남잔데.

이재하라면, 그렇게 혼자서 지내라고 하면, 죽어도 못 지낸다고 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신은 점점 피가 말라왔다.

 

불안은 불안을 물고 오고,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자꾸만 또 다른 의심을 불러오고 있었다.

시경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재신은 그럴 수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자신의 바닥을 드러낼까봐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이대로 전화를 하면, 자신은 짜증만, 화만 낼 것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이렇게 화가 날 때는, 조금은 지나고 나서 연락을 하자 싶었다.

 

그런데 재신은 서서히 그의 태도에 화가 나고 말았다.

자신이 이렇게 묵묵무답이면, 계속해서 연락할 줄 알았다.

그는 점심 때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잠깐 전화를 울리다가 끊고 말았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서도 단 한 번 문자를 보내는 게 다였다.

은근 슬쩍 작은 오빠에게 물어보면, 그 자식 바쁘다는 말이나, 양다리 걸치느라 정신없겠지 같은 속만 뒤집는 얘기만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오빠는 은시경 험담에 재미가 들렸는지, 심지어 예전에 사귄 여자가 있더라며, 그놈이 음흉한 놈이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여자를 두 명이나 사귀어 봤었대.

것도 오래 사귀었더라. 뭐, 알 거 다 알고, 할 거 다 해봤다고 봐야지.

 

그 말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재신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고, 심지어 은시경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로부터 이틀 동안이나 그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었다.

 

행사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근위대원들이 새벽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고,

그 중에 은시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시경이라는 말에 순간, 쿵 하며 심장이 내려앉았다.

 

석 달...만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

 

이때까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다 잊어먹을 정도로,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궁중실장님도, 궁인들도, 심지어 같이 온 근위대원들 때문에라도 티를 내서는 안 되었는데,

은시경 씨를 만나고 보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는 변함없이 은시경이었다.

그날, 그렇게 차안에서 키스를 했다고 해서, 그리고 석 달 간 우리가 전화로 데이트를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마치 홍대에서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그는 제2중대장 은시경이었고, 나는 공주였다.

그 정도의 거리감을 가진, 사이였다.

 

어쩌면, 우리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내가 어쩌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사귀고 있다고, 특별한 사이라고,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쩌다가 영국으로 오기 전날, 차안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그는 그저 기다려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그래도 좋다고 말한, 딱 그 정도의 사이.

절도 있는 그의 태도에서, 격식을 갖추고 예의를 갖추는 그의 모습에서, 게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서

나는 석 달 간 무얼 한 걸까.....싶었다.

 

실망감을, 뭔가 무너지는 듯한 그 느낌을 애써 감추면서 나는 공주로서의 위용은 보이려고 노력했다.

전용기 안에서도, 포럼장 안에서도, 그를 자꾸만 쫓고 있는 내 눈을 부단히 다른 쪽으로 옮기려 노력하며 애써 관심없는 척,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함부로 뿌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 그렇게 매력이 없나.

저 남자에게, 나 진짜 공주 지위 외엔 아무 것도 아닌가.

 

뭐, 죽여줘?

 

작은 오빠의 말이 떠올랐다.

좋아. 나도 한 번 죽여주겠어.

 

뭔지 모르겠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한 내 심사는 자꾸만 비틀리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내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난 지금 질투라는 걸,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이 질투라는 감정을, 나는 너무나 생경하게 원초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그에게 할로윈 파티로 오게 했다.

10월 31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의 할로윈 파티는 너무나 역사가 오래된 파티였다.

다들 괴기스러운 분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여자들은 대부분 섹시함 그 자체였다.

거의 헐벗다시피 해서 오고는 했다.

그래서 그랬다.

그곳에서 이재신이라는 여자를 보여주겠다고......

예전부터 세계 3대 축제인 여름 에딘버러 축제에 오면 오곤 하는 클럽이라, 클럽 사장과도 잘 지내고 있었다.

그에게 부탁해서 무대에도 오르고, 나름 각본을 짜서 실천에 옮겼다.

그의 놀라는 표정, 내 몸을 훑고 있는 시선에, 그럼 그렇지, 라며 조금은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그 날 홍대에서의 첫만남처럼,

공주님도 품위는 없으셨습니다, 를 외치고 있었다.

화가 났다.

 

어쩌면 그를 유혹하려, 그에게 죽이는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돌아섰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게 실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재미없다는 건, 어쩌면 그가 아니라, 지금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서 별 미친 짓을 다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서 떨어졌다.

아니,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버렸다.

그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토록 남자의 느낌을 보여줄지 몰랐다.

그는 철저하게 남자였다.

그래서 미치도록 떨리고, 또한 두려웠다.

나는 지금 그의 금기를 건드려버린 듯했다.

나는 지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진짜 남자 은시경을 만나고 있었다.

 

하아.......

 

10월의 마지막날, 밤공기가 찼다.

그의 품에 안겨서, 그의 자켓을 걸치고 있으면서, 호텔로 걸어가는 길,

이제 그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 싶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 한숨 소리에 그의 팔이 움찔한다.

로비를 들어가면서, 그는 옷을 내 머리끝까지 올리고 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는 나를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의 자켓을 벗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을 빗긴 채로, 자켓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자켓을 받아서는 의자에 걸었다.

잠시 방안을 바라보다가, 순간 여기가 어디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까 들어왔을 때, 내 방 분위기가 이랬나?

 

어!!!!!!

 

“은시경 씨, 여기..........”

 

놀라서 그를 바라본 순간,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빨리 벗어나자........

 

“나....내 방으로 갈게요.”

 

나는 황급히 방금 들어온 문쪽으로 몸을 틀며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더 빨랐다.

그의 손이 내 팔을 확 끌어당겨서 자신의 품안에 가두었다.

 

헉!

 

“은...은시경..씨.....”

 

“못 보내 드립니다.”

 

“잠..잠깐만요......”

 

당황해서 그의 품에서 벗어나보려 하지만, 그의 힘은 완강했다.

그는 버둥거리는 재신을 그대로 안아서 침대로 데려가 눕혔다.

 

침대에 눕혀진 재신의 위로 시경이 올라왔다.

 

“시..경..씨!!”

 

“저, 남잡니다. 공주님.

그리고 저, 공주님 포기 못합니다.

절더러....차라리....죽으라고 하십시오.”

 

“나..난......흡!”

 

그의 입술이 또다시 재신의 입술을 삼켜버렸다.

 

-------------------

 

(중략)

 

-------------------

 

 

“그만!! 그만......”

 

그녀가 부르르 떨자, 시경이 순간 재신의 눈을 바라본다.

열에 들떠 붉어진 볼로, 야릇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조금은 슬퍼 보였다.

열에 들떠서 그의 눈은 분명 짙어져서 깊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묘하게 슬퍼보였다.

 

“시경..씨.......”

 

그가 재신을 깊게 안았다.

 

하아.....하아....

 

재신의 귀 옆에서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가 힘겹게 참고 있었다.

 

“공주님.......”

 

한참 만에 그의 낮게 가라앉은, 조금은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저, 정말......싫으십니까?”

 

“응?”

 

“전 공주님 아니면, 안 되는데, 전....어떡하죠?

싫증나셨다고 해도, 재미없다고 해도, 저는 공주님 놓을 수가 없는데,

공주님 놓고는 살 수가 없는데, 전....어떡합니까?

제발....떠나신다고, 싫증났다고.....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공주님 없이는, 저, 죽습니다.”

 

남자의 고백.

상처받은 남자의 고백이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언제 싫대?”

 

“그러면, 왜....연락 안 하셨습니까?”

 

재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고통스러웠다.

 

“그건 시경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전요. 공주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주님께 연락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연락하면, 공주님, 숨막히실까봐, 답답하다고 하실까봐 그렇게 못했습니다.

석 달 동안,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고 살았습니다.

공주님 연락 안 되시면, 전 정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이 돼서요.

혹시나 공주님께서 다른 남자가 생기셨나 싶어서, 혹시 제가 지겨워지셨나 싶어서,

또 사실은 잠깐 착각했다고 그러실까봐,

전, 아무 일도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무능력하고, 이렇게 바보 같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시경 씨, 나도....그래요.”

 

“예?”

 

“나...도, 그렇다구요. 시경 씨 연락 안 하면, 왜 그런 걸까 싶고,

선 본다 그러면, 정말 보는가 싶어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해요.

설마 아니겠지 싶다가도, 주변에서 말 한 마디에 자꾸 넘어져요.

불안이 불안을 낳아서, 자꾸 의심하게 되고, 속상하고,

혹시 정말 괜찮은 여자 만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고........

이번처럼.....이렇게 질투...하구요....정말...나...엉망이에요.”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네? 뭐가요?”

 

“질투...하셨습니까?”

 

시경의 눈이 재신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재신은 그 눈빛이 부끄러워 눈을 내리깔았다.

 

“응.....바보 같이 그랬어요.”

 

하아..........

 

시경이 재신의 목에 얼굴을 묻고 기댄다.

시경의 한숨이 재신의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시경은 한참을 그렇게 재신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공주님, 제게.....공주님 주세요.”

 

한참을 그렇게 있던 시경이 뱉은 말을 재신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네?”

 

“제게 주세요.”

 

시경의 눈이 또다시 깊게 가라앉아,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재신의 얼굴이 확~하고 다시 붉어진다.

점점 열이 얼굴로 오는 듯해서 재신은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기가 부끄럽다.

 

“공주님에 대한 제 소유욕, 공주님께서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 공주님께는 이렇게 다 드러나고 맙니다.

공주님, 갖고 싶습니다.”

 

-------------------------------------------------

(중략)

-------------------------------------------------

 

 

 

여자가 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땀을 흘리며, 그녀의 몸 위로 쏟아지는 그의 무게를 받아내면서,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내...남자다.

죽어도 빼앗기지 않을 내 남자.

 

어쩌면, 시경은 그녀를 품으면서 그제서야 재강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는 전하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전하께서 당부하셨던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의 뜻이 무슨 의미였는지,

전하께서 무엇을 알고 계셨는지,

시경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시경은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이 그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여자로 각인시키고 싶었다.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자신의 것이라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 낙인을 찍고 싶었다.

 

 

“공주님, 제 여잡니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안 빼앗깁니다.

제 겁니다. 공주님.”

 

그녀의 입술을 다시금 훔치며, 시경은 또다시 그녀의 몸 깊이 들어오고 있었다.

재신은 한숨을 쉬며, 그의 입술을, 그의 몸을 또다시 받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입니다.

45쪽이네요.

 

이번 단편은 저번에 상편을 구상하면서 하편을 써봐야지 하다가 가져오게 된 것이랍니다.

그 때, candy님과 난K가좋다님의 댓글의 내용에 힘입어 두 분이 원하셨던 내용을 한껏 넣어보았습니다만,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단편 하는 30만 돌파 기념으로 쪄온 것이랍니다.

덕분에 저는 밤을 새게 되었네요.

그래도 단편을 쪄오는 게 그나마 조금 더 시간이 덜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거 웬걸, 이것도 사람 잡네요.

당.기.못 쓸 때 걸리는 시간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ㅠㅠㅠㅠ

벌써 새벽 5시입니다. ㅠㅠㅠㅠ

출근 어쩔....ㅠㅠㅠㅠ

 

여튼 30만 돌파, 여러분의 어마어마한 파워풀한 방문의 결과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구 신청도 넘 감사합니다.

블록 친구 210명 돌파 기념도 겸해서 올려드립니다.

 

단편의 시경이의 컨셉은 상남자입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퓨즈 나가는 상남자, 짐승, 수컷 은시경입니다.

이게 무슨 은시경이냐~ 하신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워낙 은시경의 매력이 다양하여, 그 중 하나를 확대 재생산시켰다고 생각해 주시길....

 

30만 돌파, 여러분의 힘입니다.

그리고 블록 친구 신청 감사합니다. (__)

 

+) (하)->(중)으로 전환. 35만이 되면, (하)편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__)